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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꿈속에서도 나는 자주 넘어졌다. 아니 쓰러졌다. 인생을 전부 잡아먹은 깊은 병증은 꿈까지 따라와 발목을 잡았다. 도피할 곳이 없었다. 잠시 잊을 수 있는 아주 조금의 틈조차.

지긋지긋해. 잠에서 깨면 그런 말부터 시작했다. 염증으로 불거져 나온 혈관만큼 검붉은 불평들이 입 밖으로 툭 툭 떨어졌다. 그러면 형은 언제나 말없이 그것들을 주웠다. 통증에 절어 신음처럼 가늘어진 목소리를 어깨에 둘렀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빼곡히 찔러 넣었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되어 이제 더 이상 꽂힐 공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형은 잔잔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게 지독하고 수치스러웠다. 형을 물어뜯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동시에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그의 살점을 메마른 입 안 가득히 뜯어 먹으면서도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렇게 내 치부와도 같아진 행위의 반복만이 하루를 채웠다.

어디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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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만남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사세요? 내 무례하고 유치한 공격에 남자도 진부한 답변을 했다. 꿈을 먹고 살지요. 여전히 미소가 마르지 않은 가벼운 얼굴이 속을 답답하게 했다. 오기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꿈이 선생님의 밀린 전기세를 해결해 주지는 않잖아요. 그러자 그의 웃음이 진해진다. 그래서 요즘 양초를 켜요. 생각보다 쓸만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피웠다.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비수처럼 던져뒀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하다. 짐승을 찌를만큼 날카롭게 갈아낸 칼날도 그의 가죽은 뚫지 못할 것이다.
허탈함이 지나간 뒤 따라온 건 졌다는 느낌이었다. 찻잔 끝에 말라붙은 커피의 색은 내 패배감과 같았다. 그러나 패인은 생각보다 뾰족했다. 내게는 맹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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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식욕

늘 맛있게 내려주는 커피만큼 괜찮을 줄 알았던 녹차는 기대보다 텁텁했다. 여기는 앞으로 커피만 시켜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던 책을 펼쳤다.
소설은 아직 초반부였으나 주인공은 벌써 사람을 세 명이나 죽였다. 발 앞의 난도질 당한 시신. 기분 나쁜 온기가 남아있는 핏물. 뱃속 깊숙이 박혀 잘 빠지지 않는 칼을 부득부득 빼내는 묘사에 식욕이 완전히 달아났다.
“사람 죽인 적 있어요? ”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한 여자가 앞에 앉아 있었다. 아는 여자다. 맨 윗층에 사는, 집주인의 딸.
“있으면 여기서 커피는 못 마시겠지.”
최대한 억양을 덜어내고 대답했다. 목소리에 자칫 온기나 냉기가 묻어나지 않도록. 목덜미처럼 드러난 감정만큼 손쉬운 먹잇감은 없기 때문이다.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서 내가 들고 있는 책 표지로 옮겨갔다. 핥는 듯한 시선에서 나른한 전의를 느꼈다.
“매일 이런 것만 읽길래, 연구라도 하는 줄 알았죠. 제목에 들어가는 단어부터 그렇잖아. 사건, 살인, 시체, 죽음.”
여자가 책 제목으로 나를 찌르는 동안 나는 그녀의 흰 살결을 본다. 푸른색 셔츠 깃 위로 뻗은 가느다란 목. 두 손으로 잡고 누르면 툭 부러지지 않을까.
누군가 토스트를 주문했는지 카페 안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문득 고개를 든 식욕이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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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죄를 고백하는 것은 쉬웠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내 입을 막고 있었던 것은 가볍고 얄팍한 윤리 의식뿐이었으니까. 도덕책에서 배워 누구나 알고는 있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경계고 벽이었으나, 나에게는 축축하게 젖어 언제든 찢어버릴 수 있는 종이에 불과했던. 그런 물기 고인 의식들.
 “…가출하고 소식이 끊겼던 Y, 이 년 전 실종된 A, 작년 봄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H.”
 아득할 만큼 멀었던 과거에서부터 시작했던 고백은 어느새 현재에 가까워져 있었다. 새파란 얼굴을 하고 부들부들 떨던 P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겁에 질린 개처럼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의 팔을 잡아채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아직이야. 아직 남았어.”
 “이… 이거 놔.”
 “작년 뉴스 일 면에 실렸던 연쇄 토막 살인 사건.”
 “놓으라고…!”
 P는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비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까부터 점차 퍼지던 미소는 어느새 완전한 웃음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목젖 아래서부터 끓어 넘쳤다.
 언제나 열망했다. 내 죄를 고백하는 나를 상상했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팔을 붙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죽였다고. 내가 한 짓이라고.
 “쓰레기…, 쓰레기 같은 새끼! 네가 사람이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게 의아했다. 왜 울지. 아직 제일 중요한 건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작년에 준 화분 기억나?”
 “…뭐?”
 앞뒤 없이 튀어나온 이야기에 P가 좁혔던 미간을 올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속삭였다. 
 “J는.”
 단지 이름 하나. 그 한 명의 이름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멎었다. 몸부림치던 동작, 눈물, 목소리, 울음에 차 가늘게 떨리던 호흡마저. 마치 혼자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기억해?”
 크게 벌린 입가가 이내 일그러진다.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절망이었다. 그녀는 내가 바라던 대로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거든.”
 손을 놓자마자 P는 당장 거실로 내달렸다. 참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감정이 가슴 한가운데를 터뜨렸다. 붕 떠오르는 것들을 애써 가라앉히며 방을 빠져나오자 마침 제 무릎까지 오는 화분을 들고 선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쉽게 던지지 못한다. 두려우니까. 그러나 팔은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도기로 된 하얀 화분은 산산이 깨어졌다. 폭발하듯 흩어지는 산세비리아 사이로 흙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밖으로 굴러 나왔다. 꼭 사람 머리처럼 생긴.
 P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슴을 움켜쥔 채 곧 죽어버릴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다, 이내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터져 나오는 쾌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자는 여전히 오열하고 있었고, 나는 주방으로 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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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하루도 떨어트리면 부서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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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하루는 울게 하시고
하루는 웃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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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오호라. 이게 웬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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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게 물든 참꽃이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가
흩날리는 민들레가


봄이 왔다고
세상에 봄이 왔다고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풀나풀 흰나비가
오밀조밀 토끼가
지저귀는 새들이


봄이 왔다고
세상이 봄이 왔다고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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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안좋으면

글쓰고 싶은듯...
공격적인 말투..
니네가 좀 잘하지.. 니네팀 진짜 문제 많어...
왜케 퇴사하는것같니... 팀원 3명 남은게 정상이냐.. 몇명이었는데.. 으이그..
정신차려 남얘기 옮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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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레이나.

친애하는 레이나.
가끔은 비가 와도 우산없이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날이있어. 그건 나에게 충동에 불과했지만 너에게는 현실가능한 것이였지. 차갑게 내리는 비에도 너는 우산도 없이 맨발로 뛰쳐 나갔어.
그래 너의 발끝이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하얗게 되는 것,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들며 검게 변하는 것, 하얀 원피스가 곧 너의 살결을 내비치도록 젖어가는 것.
그것들 중에서 나는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어.
사랑하는 레이나.
너의 웃음소리가 빗속에 잦아드며 골목을 울릴때, 그때 내 마음을 너의 비가 톡톡 두드렸단다. 너는 멍하니 서있는 나를 향해 뛰어오며 젖은 머리를 귀뒤로 넘겼지. 그리고 입김을 뿜는 붉은 입술로 속삭였어.
나만의 레이나.
너의 붉은 입술에 따라 나도 우산 없이 너만의 골목에 접어들었고, 너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비오는 날을 안겨줬어.
나만의 레이나, 나만의 레이나.
비가 이세상을 잠식하고 홍수로 만들어 버릴지언정, 그 어느 한방울의 비도 미워하지 않으리, 사랑하며 기꺼이 온몸으로 세차게 맞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