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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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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다고,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로 받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차라리, 무작정 힘들어 하자, 솔직하게 말이다 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고난을, 나의 떡밥으로 쓸 수는 없다' 는 입장은 

일종의 자존심이자, 원칙이고 고집이었다.

 

그러다가,  Buddha 가 그에 대한 supporting statement 를 남긴 것을 보고, 

그래, 내가 맞구나, 맞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몇 번을 바닥을 치고, 

별 자존심도 고집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즈음,  

세상에는 나 보다 더 힘든 生의 조건에 주어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은 "매우" 아프다. 

내 이야기를 꺼내놓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렇게 "매우" 힘든 인생을 거쳐왔단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 하는 내내, 

"대단하시네요..." 라는 말만 연속적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은, 하버드를 나온 것도 아니고, 대통령 보좌관도 아니고, 어떤 정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적군을 물리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 말 밖에 달 리 할 말이 없었다. 


반성의 의미로,

군소리 말고,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쿨하다' 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성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나 보다 더 많이 받은 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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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70세가 되어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할머님들의 염원까지 모두 살아내어야지...





어디서 왔지?
[["synd.kr", 47], ["unknown", 197], ["www.google.com",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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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딱 오늘까지만, 씨네코드선재는 상영을 한다. 그리곤 문을 닫는다.
부유하듯 북촌 골목을 떠돌다 선술집에 드나들 듯, 무작정 찾아간 그 적적한 극장엔, 나의 한심함과 세상의 불충분함을 잘도 드러내는 소위 예술영화 같은 게 스크린에 매달려 있었다. 무심하고 쓸쓸한, 하지만 뭔가가 꿈틀대는 극장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북촌의 한적한 골목엔 불이 켜지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하나둘 씩 모여들곤 했다. 북촌엔 낮의 예술이 선사한 취기를 이어갈, 질박한 술집들과 고즈넉한 풍경들이 제법 많았더랬다.
부침이 많은 서울에서, 그런 무의미한, 불분명한, 모호한 것 투성이었던 예술영화, 그리고 그네들을 즐기는 시간들이 오래 허락될 리는 없었다. 그렇게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키 작은 예술영화란 녀석이 매해 땅값이 비싸지는 그곳에 어울릴 수 없었던 거다. 물론 예술영화만을 고집한 건 아니었지만, 그곳은 애시당초 물 건너온 히어로 따위에겐 어울릴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제 우리들 마음 켠엔 우연히 방심하다 조우하는 모든 낯선 것들을 위한 방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다. 
맘 속엔 그리움을 위한 방들만 자꾸 많아지고 있다.   
모든 영화는 끝이 난다. fin 이란 자막이 뜬다해도, 난 조금 더 극장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봐 잠깐, 끝을 음미하고 싶어. 이 영화가 주는 기묘한 여운을 잠시 즐기고 싶단 말이지. 그러니 너무 빨리 극장에 불을 밝히고 다음 손님을 위해 나가라고 하지 말아죠...되새길 시간이라도 좀...내가 왜 이 영화를 찾아온 건지,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했단 말이야...
북촌의 영화 하나가 끝났다. 그리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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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다!!

내 마누라 보러간다
하루를 이 낙으로 산다
집으로 가면서 수많은 아파트 들이 보인다
와 집이 저리 많은데 내 집 하나 없네 
아침에 첫차를 타면 뭐그리 일찍 어디들
가시는건지 사람이 그리많다 
부지런들 하구나..
몇일전 아내가 임신당뇨 검사에서 재검이 나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아내 눈에선 조금한 보석들이 흘러내렸다
내 마음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난 약해지지않는다
내가 무너지면 아내가 무너지고 어머니가 무너지고
우리 아가가 무너진다
그리고 지금도 잘먹고 잘 사시는 우리 아버지에게
고집 피웠던 내 신념과 자존심이 무너진다
아들은 날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잘린날개가 
낫지않아 고름으로 가득차는데...
난 우리 아가 태동을 보며 또 다짐한다
우리 아버지같지만 아버지같지않은 아버지가
되어야지..라고
어쩌다 이리된건지
내가 아버지가 되면 우리 아버지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할까..
아버지랑 이야기를 풀면
정말 억울하고 성질나고 난 자식이 아닌
본인 회사에 직원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고
아주 간단히 요약이된다
내가 10살때 사업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나가서 따로 생활하면서 생활비만 보냈으면서...
그래 생활비라도 보내주셔서 
우릴 버리지않아서 이렇게 살아있지않냐
라며 또 한번 자기위로를 한다
일하면서 땀을 많이 흘렸다
지하철에서 나 때문에 기분좋은 퇴근길에
인상 찌뿌리게 될까 구석으로가서 조용히 선다
그렇게 난 우리 아내를 만나러간다
만난지 14년째 되어도 가는길이 설레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