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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거부당하는건 무서워.

사람한테 거부당하는건 왜이렇게 무서울까.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아마 세상은 사람들로 가득차있으니까 그렇겠지. 예뻐지고 싶어. 이것도 아마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위험을 피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고등학교때 날 거부하는것처럼 느껴졌던 세상은 이제 나를 받아주려고 하는 것 같아. 나도 서서히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제 더 넓은 세상을 볼 거야. 할 수 있은 한 돌아다닐 거야. 온갖 경험을 다 해볼 거야. 그렇게 내 마음을 넓힐 거야.

어디서 왔지?
[["unknown", 40], ["synd.k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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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세상

더럽다.
치사하다.
무섭다.
성적이 머길래, 돈이 머길래
사람을 바꿔놓는가?
난 그러지 않을 줄 않았다.
절대로 스며들지 않을 줄 알았다.
허나 15살, 지금의 난 
더러워졌고
치사해졌다.
성적으로 사람을 판가름하는 세상
그 판가름된 정보만으로 살아가는 우리
옳은 세상이고, 바른 나라인가?
바꿔 달라, 달라져라, 이렇게 난 생각한다
허나
난 무한이기주의 속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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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이니까 말하는거야
사람이니까 쓰는거야
사람이니까 들어주는거야
사람이니까 보여주는거야
혹시 너는
말해주고
써주고
들어주고
보여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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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사람

억압된 것에서 벗어서 스스로에 대해 결정하는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환경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삶이 자아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숙고하고 좁히기 위해 달려가는 행로에 접어들 때, 사람이라 부른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변화를 인식하는 건, 언어로부터 구체화되며, 이 언어로 인해 구체화된 인식들이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페터 바에라의 [자기 결정]이라는 핏빛 커버의 책을 읽고 있다. 짧은 책이지만, 난독증에 난시도 심해져 읽는 게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가끔 말인지 막걸리인지, 라고 투덜거리며 시대의 지성에 침을 뱉는 얕디얕은 인내심을 보이기도 한다.
다 읽고 나면, 난 괴이한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각성' 따위를 기대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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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이란 생각보다 하찮은 동물이다.
자기보다 약하면 한없이 무시하지만
자기보다 강하다 판단될때 
누구보다도 앞장서 꼬리를 내린다.
내가 강해서도, 약해서도가 아니다.
단지 지켜보는 내가, 봐야하는 내가
한심할뿐이다.
인간은 더럽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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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을 벌였나.
생각하다
내가 사람이란 게 싫어졌다.
이글을 쓰는 나도.
이글을 읽는 너도
다 사람인데.
가끔씩은 사람이 아닌 것이 되어
사람을 바라보고 싶다.
상상만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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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세상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세상을 못 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이거든요. 그런 저에게도 제 '눈'으로 본 저만의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 세상을 한번 나눠볼까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은 아니었어요. 아마 7살쯤, 어떤 사건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저는 그 사건으로 인해 눈을 다쳤고 그 때 함께 있었던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달려간 후 시력을 영영 잃을것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루하루 흐려져가는 눈 앞의 빛들을 잡으려 의미도 없는 발버둥을 하던 그 때의 제가 생각나는군요. 어머니는 제 치료가 부질없다는 것을 아셨고 필요한 치료가 모두 끝나자 저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주셨죠. 물론 아버지와의 이혼으로 어려웠던 가정형편을 돌보기 위해 어리고 눈이 멀은 저를 두고 일을 가야했기에 저를 호되게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참 눈물도 많이 흘렸던 지난 날이었죠. 지금 와 말하지만, 후천성 장애라는 것이 주는 고통은 상당합니다. 온 세상이 어둠에 잡아먹힌 것처럼, 사실은 나 혼자만 어둠에 먹혀버렸을 뿐이지만 끝도, 빛도,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있다는 고통은 이루말할수없죠. 나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나의 어둠은 끝나지 않는단 사실은 끊임없이 저를 괴롭혀왔습니다. 그렇게 어둠에 익숙해질 때 쯤 저는 제 힘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도 찾았습니다. 어둠속에 갇혀있던 작고 어두운 내 세상이 점차 밝아지고 새로워지는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 세상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당신을 내 어둠속에서도 살지 못하게 하겠다고. 
왜 그 때 제 발을 거셨죠? 왜 제 앞에 위험한 물건이 있단걸 알면서도 보호해주지 않았죠? 왜 내가 잠든사이에 '빨리 죽여 없앴어야했는데…'라고 중얼거리셨죠?
어머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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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따스한 사람이 좋다.
나도 참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좋다.
내가 그런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일잘하는 사람이 멋져보인다.
나도 홀로 멋지게 일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사람은 늘 나를 멋지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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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가버린 그 사람 
오늘따라 그 사람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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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끼고싶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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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은 사람을 만나 좌절하고 슬퍼한다
그래 사람과 사람에 만남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불행이야
사람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하며 사랑하고 성장한다
그래 사람과 사람이 만남은 나와너 그리고 우리는 행복이야
사람과 사람사이에 슬픈 아픔과 애절한 이별은 성장통에 지나지않아. 
이 성장통만 지나면 조금 성숙한 사람과 사람이 되지않을까?
나와너 그리고 우리가 향해가는 그곳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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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사람 이야기 1

   누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내 이름은 동동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동동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운 자기 이름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넌 동동이야." 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동동이라는 걸 배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성별을 소개할 때에도 왠지 "전 여자애에요."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화장실에 갈 때에는 여자칸으로 가야한다는 것과 학교에서 줄을 설 때면 여자아이들과 함께 서야한다는 걸 배워습니다.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동동이에게 자주 못되게 구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편했고, 동동이에게 착하게 대하는 친구들은 여자아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동동이는 자신이 '여자 그룹'에 속한다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 그룹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여자 같은' 성격이나 외모를 말할 때멸 그게 자신의 성격과 외모와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에 동동이는 자기를 여자로 소개하는 게 어색했던 겁니다. 
  남들에게 굳이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면,  동동이 혼자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동동이는 "나는 슬픈 사람이야."라고 했을 겁니다. 동동이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서 사실 자기가 어떤 이름표를 써야 하는 지 어떤 줄에 서야 하는 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잔잔히 아슬아슬한 얕은 표면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배우고 베껴 행동할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룰이 필요 없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오면 동동이는 마음에 꽉찬 슬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이건 어디서 온 걸까 어떻게하면 이 슬픔을 떠나게 할 수 있을까. 팽팽히 불어난 슬픔으로 머리의 모든 통로가 막혀 공부도 장래희망도 즐거운 놀이도, 다른 건 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동동이는 이 마음의 소화불량을 먼저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골몰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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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어릴때  착한어린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야 된다고 해서  착해지려 했고 그런 아이가 되어야지만  이쁨받는 줄 알았다.
동생이 태어나서 착한 오빠가 되어야 했고
학교 다니며 공부는 그리 못했어도 부모님과 선생님 속은 썩이지 않는 착한 학생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사람이 되기 위한 삶이었다. 
 어떠한 계기로  나는 행복한가 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을 때
용케도 난 아니란 대답을 내리게 되었다. 남을 위한 행복과 순도100의 나를 위한 행복을 구분하게 된것이다.  날 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마치 이기적인 생각인 마냥 치부해 버리는 그 나쁜 버릇을 깨달은 것이다.
  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느끼게 되니 어릴적 배운 것들의 상당부분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남는 딱 한가지가 있다. 누구나 아는 이 말.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국민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를 누리며 내 행복을 위해 살수있다는 글이 헌법에 실려있다는 상식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깨달은 듯 쓰는 지금이 민망할 정도로  난 너무 중요한걸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난  처음부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수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배워야 했던건  나에게 좋은사람이 되는 법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인연이 생긴다면 그때 그런 사람이 될수있는  따뜻한 인성의 사람이 되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미 적은나이는 아니지만 난 이제 ' 어른이 되려면' 이라는 여태 답도 안나오는 그 질문을 버리려 한다.
앞으로의 내 질문은 ' 나 다운'  이 될것이고  답을 찾아가며 더 행복해 질것이다. 더 이상 삶을 낭비할 순 없다
ㅡ 문과사나이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