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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저녁 8시만 되면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처럼 시끄럽게 울어재끼던 옆집 아기 고래의 울음 소리와 나이 서른 처먹은 백수 주제에 술이 입구녕으로 넘어가냐던 윗집 노망난 영감탱이의 잔소리가 사라진 지금, 내 옆에서 젖은 눈으로 잠든 이 꼬마의 숨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아저씨, 괜찮아요?"


언제 깼는지 비몽사몽 걸어와 되려 나를 위로한다. 고작 8살밖에 안 된 이 아이가 기특하게 울지도 않고 괜찮냐고 물어오는데 안 괜찮아도 별수 있나.


"괜찮아. 너는?"


"안 괜찮아요. 근데 엄마가 그날 안 울고 가만히 있으면 꼭 데릴러 온다고 했어요. 엄마는 약속 잘 지키니까 꼭 데릴러 올 거예요. 전에 놀이공원 간다는 약속도 지켰으니까요."


아이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냥 모른 척해 줬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끄러운 평범한 일상이 거짓말처럼 다시 시작되길 바랐다. 지금 이 아이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건 네 말이 맞다고 인정해주는 것과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꼭 약속 지키실 거야."


사건당일은 물살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일렁이고 산호초가 평소보다 심하게 요동치는 그런 날이었다. 나 포함 이웃들은 각자의 은신처에 숨어 숨소리마저도 아주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그리고 곧 장시간 지속됐던 정적이 깨지며 외마디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엄마!"


"우리 아이는 잘못이 없어요! 차라리 절 데려가세요!"


모녀가 울부짖는 소리에 질끈 감고 있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아이의 엄마는 정체모를 도구에 끌려가는 아이를 구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성인 몸집만한 큰 도구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도구에 붙잡혀 점점 위로 올라가는데 어찌할 바 몰라 애타는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던 아이의 엄마는 이윽고 자신의 머리를 큰 도구에 들이받는다.


"엄마! 그러지 마! 엄마 피! 엄마 잘못했어! 하지 마!"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다 못해 경끼를 일으켰다.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철컹 소리와 함께 아이가 풀려났다. 아이의 엄마는 행여나 아이가 다치진 않았을까 구석구석 살폈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


이번엔 커다란 도구가 아이의 엄마를 꽉 움켜쥐었다. 놀란 아이는 엄마 주변만 빙빙 맴돌았다.


"괜찮아. 아까 엄마 머리 부딪혀서 피났잖아. 이번엔 치료해주려고 온 거야. 그러니까···"


아이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우리 아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


"엄마!"


"울지 말고 얌전히 있어. 엄마가 꼭 데릴러 올 거니까."


아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육지 사람들이 고래사냥을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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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흰수염 고래, 범고래, 돌고래...
 어릴때 본 두꺼운 플립북에서 본 고래들이 생각났다. 푸른 바다에서 뛰어나온 짙은 남색. 그 고래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마치 '너'를 닮았다.
 절대로 마르진 않고 통통한 편이고, 멀쩡한 교복 놔두고 파란색 학교 체육복을 즐겨 입고, 작은 눈을 가진 너. 절대 호감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입만 열면 쌍욕에, 공부도 그닥. 많이 먹긴 또 많이 먹는다. 무엇하나 빠짐이 없는 최악의 여학생이었지만.
 어째선지 그녀를 볼때마다, 귀여운 고래들이 떠오른다. 산호들과 물고기가 아닌 아스팔트 위를 나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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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그 커다란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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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것은 하나도 없어보였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마치 나도 모든 두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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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래같은
무겁고 웅장한 뒷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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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바다 끝자락,
파도치는 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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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래가 살았다. 아주 큰 고래였다. 얼마나 컸냐면,  옆옆 집에 살던 우람한 덩치인 최씨보다 컸고, 동네에서 가장 넓은 건물을 몸으로 단번에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전까지 고래를 봤던 적은 없었지만 이 고래는 세상에서 제일 갈 거라고 생각했다. 고래는 최씨보다 뚱뚱하니까, 고래는 마을회관의 해를 가리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고래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대단한. 근데 그게 아니었다. 고래는 죽었고, 세상은 그렇게 푸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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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도구인 말.
언젠가 말을 잘 탈수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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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당신의 눈 안에 담긴 나를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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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감정은 마음 속 응어리를 풀기 위한 '도구'로는 참 적합한 존재에요. 다만, 휘둘리면 본인만 힘들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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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울은 항상 대부분의 글에서
자아성찰의 도구로 이용될까
그냥 빛이 반사되서 우리 눈에 들어와
나의 표면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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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VK) 양아치 새끼와 연애란 ep 00

원본 출처 - 비믕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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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형과는 1학년 때 처음 만났고, 쫌 뚱딴지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던가, 복장도 불량스러웠으며, 꼭 민윤기와 붙어 다녔다. 그러니까, 김태형과는 처음부터 친하지 않았으며 석진이는 필사적으로 김태형과 가까워지기를 꺼려했다. 내가 김태형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게 된 건, 고작 일년하고도 반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야! 전정국!!"
"왜 왜 뭐! 오늘은 절대 버스비 못 내줘!"
"지랄을 하세요. 누가 내달래?"
"아 미안 설레발 쳐서"
  항상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일년하고도 반개월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는 공식
"얘가 낼 거예요"
"아 뭐...! 아, 학생 두명이요"
"짜식이 낼 거면서 튕겨"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친구라서 내는 거다. 어떻게 내가 매정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을 김태형은 잘 이용해 먹었다. 거기에 나는 매번 속고 당하는 쪽이고. 치밀하지 못한 김태형한테 맨날 엮여서 억울한 눈으로 노려봐도 김태형은 꿈쩍이지 않았다. 탕탕- 당당하게 맨 뒷좌석 옆자리를 친다. 그래도 김태형만 이득 보는 건 아니다. 녀석 때문에 더럽게 꽉 막힌 버스에서 앉아 학교까지 편하게 간다는 건 나또한 손해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부럽냐? 부러우면 지는 거란다. 남몰래 피식 피식 입꼬리를 들썩이는 내 어깨에 툭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기대온 김태형이었다.
"너도 자지 마라. 저번처럼 조따 뛰고 싶지 않으면"
"아아 불편해!! 대체 든 것도 없는 머리는 왜 때문에 무겁니"
  내가 투덜거리던 말던 눈을 감고 잠을 잔다. 역시 전정국 어깨가 세상에서 제일 푹신해서 잠이 잘 온단 말이지. 쪼르르 딸려오던 여러개의 시선은 김태형 손짓 한방에 떨어진지 오래다. 언제나 창가 구석으로 나를 몰아넣고, 내 어깨를 말없이 빌리는 이 자식과 나의 관계는 친구다. 평범하게 그게 끝이다. 누가 보아도 김태형과 나는 친구 한정이다.
  솔직히 말 못하는 속사정이라면, 이쯤에서 시선을 창가에 두었다.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김태형도 남자고, 나도 같은 생식기가 달린 남자로서 불공평하게 나혼자 이 녀석을 좋아하고 있다. 그저 이 자식은 나를 편리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렇게 가까이서 붙어 있는 게 나름대로 만족도는 높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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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머지않아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고 
죽음은 내 머리와 몸을 감쌌으며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는 뾰족한 것의 무언가가 붙들려 있었다. 
손목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빛을 내는 도구를 
들었을 때에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무서워졌다.
난 죽고 싶어도 죽지 못 하는 겁쟁이 또는 멍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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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늦은 봄, 친구 한태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갔다. 한태한테 늦은 술자리에서 우리 심심한데 지리산 종주나 갈까라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해서 시작된 종주였다. 
그 전에도 수차례 종주를 한 터라 별 준비 없이 물통 하나씩 챙기고 김밥 두세트 사서 늦은 6시에 장터목을 향해 출발했다.
젊은 치기에 처음 산행에도 불구하고 한태는 앞장서길 자청하였고, 어려운 산길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던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모험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한참을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너바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사, 사람길이 아니었다. 멧돼지 따위의 산짐승이나 산에 미친 사람들이 다니는 아주 희미한 길의 흔적만 남은 곳을 걷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너무 많이 와서 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산에서 이런식으로 길을 잃었다면 반드시 위를 향해 가야한다. 전체 산세를 읽고, 목적지를 정확하게 정할 수 있는 뷰 포인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짐을 뒤져서 남은 식량과 물, 기타 도구를 체크하였다. 
물 1리터, 김밥 2줄, 스팸 2통, 쌀 400그램, 휴대용 버너와 기타 도구들.
일단 이정도면 버틸만하다고 판단하고, 겁에 살짝 질린채 허세가득한 목소리로 내려가자고 떼를 쓰는 한태한테 우린 올라가야 한다고 설득하여, 야간 조난 모험을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대략 22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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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손톱

깨진 손톱이 아렸다 아파서도 피가 나서도 아니다 깨진 손톱이 왜 깨졌는지가 중요하다 손톱을 길게 길러서 깨졌는데 나는 충분히 손톱을 깎을 시간도 도구도 여건이 다 됐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을 깎지 않았다 왜 구태여 그렇게 손톱을 길렀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손톱을 기르고 싶어서 길렀다고 답한다 하지만 손톱이 길면 길수록 내 가슴이 아렸다 손톱이 길어야 책상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나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렀다 하지만 기르는 와중와중이 깨진 손톱보다 아렸다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하나의 불안증세였기에 그랬기에 더 아렸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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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전란의 시대. 영웅이 태어났다. 모두가 그에게 기대했다. 그는 과중함을 느꼈지만 기대에 미치는 성장을 보여줬다. 힘, 민첩성, 지략.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을 위한 전술기계로 키워졌다. 오직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계로. 시간이 흐르고 그가 건장한 몸을 갖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부추겼다.
"요즘 나라가 위험하단 소문이 들려와."
"그가 나서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를 불러와야 해!"
"그가..."
"그만이..."
사람들은 불러댔다. 영웅... 영웅은 어디있냐고.
그 때-
"제가 가지요."
영웅이 나섰다. [특별한] 힘을 가진 그는 전장에 앞장서 적군을 베어나갔다. 수 명. 수 십명. 수 백명. 수 천명. 수 만명. 해치운 사람의 수가 늘어갈수록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 내면의 괴로움도 늘어갔다. 수백, 수천, 수만이 내뱉는 신음, 고통, 좌절, 절망, 저주의 소리. 쌓이고 쌓여갔다. 그는 지쳤다. 쇠약해졌다. 하루에 열 번도 출정하던 몸이 이제는 일 주일에 한 번의 출정도 힘겨워했다. 호쾌한 승리의 소식이 점차 줄어가자 사람들은 비난했다.
"영웅은 지금 뭘 하지?"
"놀고 있는 거야?"
"어서 가서 싸워!!"
의문, 비난, 윽박에서-
"이제 쓸모 없는 거 아니야..?"
-버리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그제야 영웅은 자각했다. 자신은 [도구]이지 저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 길로 그는 조국을 등졌다.  [영웅]이 없는, [영웅]에 의지해온 나라는 순식간에 적군에 쓸려나갔다. 영웅의 나라. 철의 요새같던 그가 사라진 나라가 증발하자 주변국이 땅따먹기를 통해 나라를 나눠가졌다. 그동안 그는 그저 어릴적 훈련했던 장소, 머물렀던 집, 이제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마을에 머물렀다. 주변국은 알고 있었다. 영웅이 어디 있는지. 그를 포섭하고자 사신을 보냈다. 미인을 보냈다. 금은보화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부질없음을 느꼈다.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영웅이 아무 나라도 선택하지 않는 날이 길어지자 주변국은 불안해했다. 그리곤 합의했다.
[불안요소?]
[움직이지도 않아?]
결론은-
[없애자]
그의 집 앞.
"수 만의 사람들을 죽인 악마는 당장 나와라!!"
"죽여라!!"
"내 동생이...!!"
백이 넘는 병사가 포위했다. 그러나 그는 능력이 있었다. 죽지 않을 능력. 도망칠 능력. 모두 죽여버릴 능력. 악마도 영웅도 아닌 그는 선택하지 않았다.
'질려버렸다. 이렇게 죽이지 않으면 죽는 삶에. 그냥 죽어도 별 문제 없는 거 아니야?'

순순히 잡혀 제국의 수도로 이송되었다. 한 숨도 재워주지 않고, 따뜻한 빵이 아닌 거칠고 딱딱한 빵을 먹여가며.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자기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와아아아!!
-악마다!!
제국민들로부터 한 뼘... 아니 한 걸음 떨어져 이송되던 그는 근위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한 아이가 보였다. 비켜서지 않으면 즉결처분하겠다는 말에도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국의 수도의 국민이라면 모두 풍족한 삶을 누릴 텐데 저렇게 낡고 헤진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영웅의 나라... 아니 망국의 피난민일 터였다.
"아저씨!!"
부와 귀가 넘쳐보이는 곳에서의 부조화 때문일까. 순간 그의 초점이 돌아왔다.
"아저씨가 그 영웅 맞죠? 왜 우리 나라를 버린 거에요?! 왜!!!"
점점 시끄러우지는 거리를 의식했는지 앞서가던 대장이 빨리 해치우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으아아아아--"
아이가 골목으로 끌려나갔다.
'아마 병사의 칼에 죽고 말겠지.'
(옛)영웅은 생각한다.
'내가 영웅이라고?'
피식
그의 웃음이 점점 진해진다.

"아하하하하하-"
주변의 병사들이 드디어 돌아버렸다는 말을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수 분을 웃는다.
"아하하.. 영웅?"
털썩-
사형장에 도착했다.
"이젠.... 아니야."
또 하나의 목숨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