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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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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났다.

 대학만 졸업하면 숨통이 트일줄 알았는데 되려 막혔다.

 

 가는곳 마다 떨어지고, 면접까지 붙어도 말을 더듬거나 동문서답 하기가 일수였다.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곳도 죄다 떨어지고.


 집에서 밥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그냥 눈치가 보여서....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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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이 무엇일까
어릴때는 공무원이 꿈이었고 
중학교때는 꿈이없엇고
고등학교때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역사관련 과들은 줄줄이 떨어졌고
관련이 전혀없는 지방국립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공대생이 되었다
그때도 꿈은 없엇다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대학을 졸업할때쯔음 취업을 해야햇다
나는 무엇이 되고싶은걸까 
나는 어째서 잘하는것이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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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기숙사 학교 3년째. 이사한지 3개월째.
이제는 기숙사 잠자리가 더 익숙해졌다.
매일 같은 수업시간과 자습시간.
빨간 날에도 운영되는 학교 자습실.
"좋은 대학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 졸업이나 해서 탈출하고싶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지만 사실 3년동안 내 삶의 전부였던 학교를 떠난다는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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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줄여야해.
대학 갈려면, 일할려면, 사랑할려면,
그렇다면 그래.
잠을 줄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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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또는 공허

어릴때는 그저 엄마 아빠 둘다있는 아이가 부러웠다어릴때 나는 엄마없는 아이라고 애들이 날 안좋아했으니까...아니 정확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쟤는 엄마 없는아이니까 놀지마 라는...
그래서 항상 공허했다 난 그저 친구들과 놀고싶었을뿐인데....
대학을 졸업해서도 나는 항상 공허했다 
진정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지금은 그녀를 만나서 매우 행복하다 
그녀에게 의지할수도있고 그녀가 많이 힘들엇지?라고 하며 쓰다듬어줄때마다 공허함이 사라지는 기분 
그런 그녀와 이야기하는게 내 삶의 유일한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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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oul

이혼한 내 친구는 술취해 물었지
가난이 죄가 되냐고?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사랑이란 어쩌면 사치다
나는 힘없는 노동자의 자식
낭만이란 내겐 무거운 사치다
아직은 꿈많은 책임질 것 없는 청춘이라서
나는 아직도 노래 부르며 산다
빚까지 내서 대학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해도 취직 못 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알바를 하러 간다
식대는 컵라면 한 그릇
하루의 첫 담배는 날 행복하게 하지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어디서 돈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네
나의 기타 나 대신 노래좀 불러줘
빚까지 내서 성형하는 소녀들
빚갚으려 몸파는 소녀들
홍등가 붉은 빛이 나를 울리네
이 노래가 나를 울리네
빚까지 내서 대학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해도 취직 못 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알바를 하러 간다
식대는 컵라면 한 그릇
하루의 첫 담배는 날 행복하게 하지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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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회사놀이

나는 회사를 한번도 다녀본적이 없다
재수할때 커피숍 아르바이트해보고
대학 졸업후엔 아빠한테 차 사달라고 할려고
피아노 개인레슨 2년정도 한거 빼곤
정식으로 회사를 다녀본적이 없다
그래서 눈이 오나 비가오나 아파도 매일
회사를 가야하는 기분을 모르겠다
자기 책상이나 사무실이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울아들 낳기 전에는 가끔 회사놀이나 은행놀이도
혼자 했었는데. 지금은 바빠서 못하지만~
그럼 울여보가 정상이 아니라며 기여워해줬다~ㅋ
은행에서 모르는 고객과 상담도 하고 컴터보고
서류작성하고 젤 해보고 싶은건 큰도장 찍기!
마트에선 바코드 찍는거 말고 그 포스 같은 기계도
네모도 큼지막한게 너무 눌러보고 싶다.
소리도 너무 좋다 삑삑삑!~막 눌러보고 싶다
또 단아하고 세련된 정장에 겁나 높은 하이힐도 신고
항상 단정하고 깔끔해야하는 그런 회사원.
비록 이모든 나의 환상들이 어떤이에게는
억지로 해야하는 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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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몇시간 안남았네..
대학시험 치러가는 시간 8시간뒤..
마음이 덜컹덜컹 나의 기분은 초조해진다.
긴장하지말자..계속 중얼거려봐도 두근거리는건 내심장뿐 인거같다. 앞으로 대학시험 3개정도 남았는데 과연...좋은결과가 있으면좋겠다..
내일 아니면 앞으로 대학치러가는 사람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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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할머니에게 사랑받고싶었다
열심히 노력했다 공부도 했고 학원도 한번도 안빠지고...그러나 그분에게 돌아온답은 "꺼져 자랄수록 그년닮아가지고 너같은건 바다에 빠져 죽어버려"
나는 항상 울었다 엄마 닮고싶어서 닮은거 아닌데..
다른애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다른애들은 할머니가 그러는건 니잘못이라고 할머니가 손녀한테 그럴리 있겟냐며 핀잔을 줬다 
대학4학년이 끝났다 1박2일로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취업도못하는년이 어딜놀러가 넌 동거인이야 그러니까 빨리취업해서 이집에서 나가!!"
눈물이 났다
할머니 생신 선물을 샀다 그러나 돌아오는건 "취업도 못하는년이 이딴거 살시간에 공부나 더해 그래 취직 왜못하는데? 그래 니 남자친구도 일본에잇는데.일본으로 꺼져버려"
우울해졌다 친구들은 날 이해해주지 않는다
왜 이세상 할머니들은 손녀를 이뻐할거라고 생각하는걸까 
나는 왜 미움을 받고있는걸까 나는 태어난것이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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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는 바다를 싫어했다. 바다는 너무 깊고 어두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얘기했었다. 그러면 나는 그를 향해 겁쟁이라며 그런건 애들이나 무서워 하는거라며 그렇게 그를 놀렸다. 나와 그는 그렇게 장난치곤 했지만 그는 그 이후에도 나에게 종종 바다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고 얘기하곤 했다. 
나와 그가 중학이 되던 해 나는 그를 끌고 바다로 갔었다. 바다는 그가 얘기하던 것처럼 어두웠지만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물에 못 들어가겠다는 그를 비웃으며 걱정스럽게 해변가에서 날 지켜보는 그를 내버려 둔 채 신발을 내던지고 물 속으로 들어갔었다. 처음으로 들어갔던 밤바다는 몸이 시리도록 차가웠지만 몸을 지나가는 물의 흐름이 기분 좋게 느껴져 나는 그 안에서 몇분이고 헤엄을 쳤었다.
그 후에도 나는 종종 학교가 끝나면 그와 함께 바다를 갔다. 그는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나를 걱정하여 따라와 바다 속에 있는 나를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지켜보곤 했었다. 

어렷을 때의 나에게 그것은 약간의 우월감을 주었고 그 순간동안 부모님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 같은 해방감 마져 주었기에 나는 그를 끌고 몇번이고 바닷가로 향했다. 

이 비밀스러운 일탈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며 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끝나게 되었다. 그는 나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이상 바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는 것 같았다.
이사를 온 후 대학 입시를 거쳐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며 서서히 그와 바다에 대하여 잊어갈 때 즈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은 그로부터의 편지 한 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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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수능이 끝난 이 시점
어느덧 
두번째 수능을 친지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이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점이고
대학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허나 나는
대학에 왔다는 것이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같은선상에서 출발하는것을
이미 남들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나의 길을 더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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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능을 위해 시험을 잘 봤다
시험을 위해 공부를 했다
수능을 출구로 여겨
열심히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을 지나기 위해 열어 본
출구의 문은
대학의 입구였을 뿐이더라
수능인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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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추운겨울 횡단보고를 건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자랑을 하신다.
우리둘째가 어느대학을 갔다고...
엄마시절 엄두도 낼 수 없던 대학에
동경만 하던 대학에
딸이 원을 풀어 주었을까?
자랑하는 엄마를 모시고
대학축제에 갔다
잔듸밭에 앉아 엄마와 둘이 솜사탕을 먹고
학교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보았다.
가장 예쁘게 하고 오신  엄마와
자주가는 분식집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카페에 가자고 했더니
돈아깝고 동생 올 때 되었다고
얼릉 집에 가야 한다며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를 끝냈다.
내가 지금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큰애는 축제때 그림을 그려 인기만점 코너를 운영했다고 자랑하고
난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가 떠오른다.
지금
누구의 도움 없이 움직이기 어렵고
어제의 기억보다
우리 어린시절을 더 잘 기억하시는 엄마
지나간 날이 아리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 기억나세요?
나와 같이 지낸 시간...
난 즐거웠어요
그럼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