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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거리가 왜이렇게 없죠?

글거리가 없으니까 제가 글거리를 만들고 쓰는데 외롭습니다. 타인이 함께 생각하는 글거기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요.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요. 모두모두 아무말이라도 좋으니까 메뉴에서 글거리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떤 뜬금없는 글거리라도 누군가는 할 말이 많을 테니까요.

어디서 왔지?
[["unknown", 27], ["synd.kr", 1]]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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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말은 주관적이지만, 주관적인 것에게는 힘이 있다.
지금 당장 입소문의 예시 만 봐도
그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가.
그런 걸 보면 우린 모두가 알게 모르게 타인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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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너무 좋아해서 다가갔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공통분모는 그냥 같은 학교 같은 도서관.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널 바라보다가 그만 놓쳐버렸다
네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냥 나는 이름모를 지나가는 타인이었을 뿐이었다는걸. 그렇게 다가간 나는 너의 눈에는 소름끼치는 스토커로 보였을 거라는 걸.
미안하다.
내 잘못이라는거 안다.
쳐다보지 않을게. 
생각이 차올라도 꾹꾹 누를거야.
'타인인 나'일것이라는 그 사실을 왜 난 무시했던걸까.. 자책한다
 그래도 니생각이 난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선 사람은 많다는 말들을 해준다?
근데 그렇지..라고 대답하면서 난 속으로 말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진정 그의 존재를 좋아하고 귀히 여기고 싶은 사람과
날 진정 좋아해주고 내 존재를 귀히 여겨주는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열번넘게  눈물로 눈을 씻어도 찾기 힘들다는 거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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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배려란 나의 기분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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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란

사는것은
남는 것이다.
남는 것은
생존하는 것이다.
생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선과 악에 그리고 자신과 타인에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에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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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

타인에게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나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스스로를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쩌면 신뢰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여, 
타인에게 비밀을 밝히라고 암묵적인 강요를 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나를 알리는 것이 나의 약점이 될까봐.
'타인을 믿지 못해 나를 감춰버렸거나 혼자 겁을 먹고 적극적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지'
생각을 결단지으면서 다른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깨달았다
결국,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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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인간은 자신의 아픔을 잘 안다.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잘 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순전히 타인의 시각에서고 나의 상처를 잘 아는 것은 바로 '나'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흉터가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신은 타인의 흉터를 그 상대보다 먼저 알아차린 적이 있는가? 겉의 상처뿐 아니라. 그 속의 깊은 심연 속의 흉터는 그보다 더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상처는 다 낫지 못 하고 흉터로 남아 계속 나를 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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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우울을 좀먹고 살아가는 것들의 공통점은 저들이 애정을 받고 있다 착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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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타인을 배려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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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나와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 사는 그들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말을 하고
다른 이의 손을 거쳐 몸을 갖고
다른 이의 상상에서 태어난 그들은
나의 목소리를 갖고
나의 육체를 갖고
나의 힘으로 존재하는
나와는 달리
숨도 체온도 영혼도 없이
타인의 손아귀 안에서
오직, 움직인다
이렇게만 본다면
분명 살아있는 것은 나이고
죽어있는 것은 그들일 텐데
어째서 타인의 삶을 사는 그들이
나의 삶만을 사는 나보다 살아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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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위로

 내 주변의 사람이 우울해지면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물론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면 대부분 본인과 타인의 관계가 멀어져 있거나 멀어진다.
 하지만 나는 올바른 위로라는 걸 잘 모르겠다. 나도 내가 힘들 때는 누군가가 위로 해주었으면 하는데 막상 위로 받으면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왜 위로하는거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
.
.
올바른 위로의 방법은 무엇일까? 난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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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할수있는게 이것 뿐이라 생각 될때가 있다.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못한, 결국 내 기대에 닿지못한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묻거나 고통을 강요한다.
해결방안이 될수 없음을 스스로도 알고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내는 상처가 나를 표현하는것을 도와줄거라고 생각한다.
미안한얘기지만 이기적인것의 끝에 있는사람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함으로 타인의 고통을 생산하는 사람들.
적어도 나는 용서할수없는사람들
내 가장 소중한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도망쳐버린 소중했던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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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천천히
처음 이 주제로 글을 쓰라는 알림을 받았을 때, 맨 처음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은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가 아닌 어떤 글을 써야 좋은 평가를 받을까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정 받기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가 인정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소심해서 남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두려워 언제나 숨고 도망치려고 했다.
매일을 그렇게 숨으며 도망치며 살았던 나에게.처음으로 숨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은 상냥한 미소로 손을 붙잡아 주었던 사람은 안타깝게도 가족이 아닌 타인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그들은 남의 기분은 상관하지 않고 멋대로 평가하고 비교하길 반복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대상은 자식들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경우에 속했다. 너는 어째서 남들처럼 공부를 잘하지 않는지, 남들은 빠르거나 능숙하게 다루는 악기가 있거나 적어도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있는데 너는 어째서 그런 것 하나 없느냐, 부모들은 당연한 권리라는 듯이 자식에게 따진다.
그래, 나는 잘난 것 하나 없었고 언제나 남들보다 부족한 아이였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에 대한 평가는 결국 타인이 매기고 있었으니까.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타인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사람은 조금의 거짓됨도 없이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앉아 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 쪼그려 앉아 이번에는 말을 걸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천천히 너는 너만의 속도로 달리면 돼."
그 말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마디였다.
- 픽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