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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손톱

계속되는 회의와 끝나지않는 야근.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꿈도, 일상의 행복도 잊은채 달리고있는 나에게 몸이 보내는 첫번째 위험신호.


깨진 손톱.


이제는 나에대해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한다고.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 것.


나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여자다.

손끝까지 예쁜. 예쁠.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리지 말자.


나를 예쁘게 가꿀수 있는건 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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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손톱

깨진 손톱이 아렸다 아파서도 피가 나서도 아니다 깨진 손톱이 왜 깨졌는지가 중요하다 손톱을 길게 길러서 깨졌는데 나는 충분히 손톱을 깎을 시간도 도구도 여건이 다 됐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을 깎지 않았다 왜 구태여 그렇게 손톱을 길렀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손톱을 기르고 싶어서 길렀다고 답한다 하지만 손톱이 길면 길수록 내 가슴이 아렸다 손톱이 길어야 책상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나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렀다 하지만 기르는 와중와중이 깨진 손톱보다 아렸다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하나의 불안증세였기에 그랬기에 더 아렸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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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눈앞이 컴컴하다.일상들조차 무너져내려가고,나는 끊임없이 떨어지고있는데도 절벽에 달린 나뭇가지하나 잡지않는다.위쪽에서 아래로 몇몇소리가 들려왔지만,난 구해달라 소리치지못하고 그저,그냥..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손끝부터 타버려 검은재로 바람에 날라가는 환상을 몇번이고보며,스스로를 타박했다.그리고 다시 스스로 위로했다.눈을감으면 눈물에 짓무른 눈가가 쓰라렸고, 눈을뜨면 아무것도못하고 벌벌떠는 내가 쓰라렸다. 
갈라지는 입술로 간절한목소리가 새어나오고 나는울며,웃으며 두손을 모으고 살틈새로 손톱이 자국이남도록 쥐며,간절히 '일상'을빈다 
나는 당신이 있는지도,없는지도 잘 모릅니다.다만,저에게 주셨던 모든것들을 다시 빼앗아가는것은 너무..너무..어리석지않습니까? 저는 부도, 명예도, 가족의 행복도 받지못하고 당신에게 오로지 '일상'만을 받지않았습니까.그렇다면 그것만큼은 제가 욕심부려도 괜찮은것이 아닙니까.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혀진 틈으로 눈물이 흘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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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종이에 스친 손끝에 핏방울이 배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상처를 바라보던 나는, 한 박자 늦게 연고를 꺼내 불편한 자세로 뚜껑을 열었다. 감각이 무뎌진 걸까, 이제야 겨우 따끔거리는 곳에 하얀 연고를 발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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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주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너를 보면서 느껴. 눈짓 하나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 손끝에서 피어나는 열기들은  마음 속에서 끝없이  한데 얽혀가는데. 
그게 너무 벅찬 순간이 있어. 그래서 한 움큼씩 나눠 실어보내려 펜을 들고 입술을 열 때, 내 손을 떠나자마자 빛을 잃는 말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지. 꽃잎같이 애달프고 가녀린 것들.
네 온전함을 닮은 언어를 보내고 싶다. 
나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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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혹시 그거 아니?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내 모든 인생을 한꺼번에 넘길 수 있는 그거.
손끝에서 맑고도 생기넘치던 청춘이 펼쳐지는데.
언젠가 어리숙했던 미소가 
이를 내보이며 들어서는데.
하늘이 맑고, 구름이 떠있고.
마치 한 폭의 수채화같은 날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단다.
이제는 말이지? 
마지막 사진을 찍어야 하거든. 
네가 알 수도, 알지 못할 수도 있을 
그것 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거든.
인생도, 그 속의 모든 것들도.
사랑도, 우정도.
전부 똑같아.
쉼표로 끝나면 불완전하거든.
그래서 말이야.
완벽히 불완전했던 내 삶을 끝맺어야해.

최고로 완전한 그 시절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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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너의 교복이 유난히 낡고 칙칙한 회색빛을 띄었던 것은 형의 것을 물려받은 탓이었다. 빳빳하고 제 신체에 꼭 맞았던 다른 또래들과 어울린 너를 보면 특히 더 그런 태가 났다. 제 몸보다 조금 커서 헐렁이며, 느슨해진 팔목 언저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너는 그걸 못마땅해했다. 주름진것을 가만 넘기지만은 못하는 너 다웠다. 너는 손끝으로 팔목에 걸쳐진 마의를 잡아당겨 빳빳해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알았다. 
모두 같은 회색빛이었지만 조금은 더 투박한 그 교복의 색은 대비되게 어울렸다. 너는 참 하얬더랬다. 꼭 부잣집 도련님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얇팍하고 가느다란 속눈썹과 호선을 그리는 입의 웃는상. 그러면서도 형에게 물려입은 조금 헐렁하고 칙칙한 교복을 입고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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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자, 후 불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검붉은 얼굴은 짓궃은 미소를 짓고있었다. 나는 입을 꾹 닫았다. 불빛에 드러난 상대방의 얼굴이 녹아내린 거친 살거죽과 혐오스러운, 고름으로 번들거리는것이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불가능할정도로 망가진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이라면 삶 자체가 고통이고 절망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귓구멍이 막혔어?어서 불어."
목소리 또한 연기를 잔뜩 마신 사람처럼 꽉 막혀있었다. '분명 그런걸꺼야, 연기를 심하게 들이마셔서. 기관지가 화상을 입은거지.' 머릿속으로 쉼없이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멈추면 내앞에 케이크를 들고있는 사이코가 무슨짓을 저지를지 상상해버릴것같았다.
"겁 먹은거야?"
갑자기 녹아들도록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온몸을 크게 떨었다. 묶여있는 의자에서 한뼘정도 뛰어오른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턱으로 대답했다.
"누,누구야.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상대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은 할로윈에서나 쓸법한 흉측한 가면처럼 미동도 없이 날 바라봤다.
"오늘은 생일이야."
고저없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즐거운 날이라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
"쉿."
그는 내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의 손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고름으로 젖어있었다. 견딜수 없는 혐오감에 토기가 올라왔지만 꾹 참아냈다.
"지금부터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에게 왜.."
뿌드득-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그가 내손에 무슨짓을 했다는걸 깨달았다.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지만 이마와 턱을 고정한 철제받침대가 움직임을 막았다. 그가 오른손을 들었다. 펜치의 끝에 살점이 조금 붙어있는 조각이 보였다. 몇초전까지 내 손끝에 붙어있던 것을 그는 황금조각이라도 되는듯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끄윽...끄아아..."
"쉿."
겨우 손톱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수리부터 주체할수없이 많은 땀을 흘리며 격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가 다시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쉬이이-"
"끄흑...으흐흑."
"조용히."
그가 천천히 펜치끝을 벌렸다. 손톱이 툭하고 내 무릎에 떨어지는것이 느껴졌다. 그가 다시 펜치를 내 손으로 가져가는게 보이자 나는 입을 꽉 닫고 숨소리도 내지 않기위해 숨을 멈췄다. 그가 흡족하다는 듯 웃음소리를 냈는데, 그 웃는 얼굴은 그저 가죽의 일그러짐으로만 보였다. 내가 잘게 떠는동안 그가 천천히 웃음을 멈췄다.
"어디서 부터 시작할까."
그가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말을 빠르게 이해했다. 나에게 무언가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좋은일이 아닐것이다. 나는 내가 할수있는 최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제발, 그만둬주세요."
"당장 너에게 뭔갈 하려는게 아니야."
"제발, 하지마...살려주세요.제발."
"그저 이야기 해주려는거지."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내 애원에 개의치 않으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애가 있었어. 부모는 없었고, 5살위의 오빠와 같이 살았지. 그들이 살던 동네는 후진곳이었어. 얼마나 후졌냐면 밤이 되면 켜지는 가로등이 손에 꼽을정도로 적은 동네였거든. 어둡고, 음침하고. 그 동네는 한창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지역 옆에 있었어. 그들이 사는 좁은 지하 단칸방은 쥐와 바퀴벌레들로 득실거렸지."
별안간 그가 참을수 없다는듯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거 알아?여자애와 그 오빠는 이상할 정도로 속눈썹이 짧았어. 나중에 인터넷으로 찼아보니 그 눈썹들을 바퀴벌레가 먹었을수도 있다고 하더군. 그들은 서로의 눈썹을 보며 소름끼쳐하면서도."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헐떡이며 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동안 내 신음소리가 커지자 그가 다시 펜치를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다시 입술을 깨물고 숨을 삼켰다.
"여자애와 오빠가 살던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재래시장이 나왔어. 요즘처럼 철제 아치를 세우고 그사이 천막을 올려둔 현대화된 시장이 아니라, 가판대마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과일가게에서 생선비린내가 날정도로 가게들끼리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고 비위생적인 시장이었어.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집앞에서 들려오는 시장소음과 뒤에서 아파트를 올리느라 쿵쿵거리는 공사소리 때문에 온몸이 울리는것 같았지. 시장의 상인들은 자기들이 내는 소음과 재건축현장의 레미콘이 돌아가는 소리, 포크레인이 굴러가는 소리에 점점 목소리를 높여야 했지. 세상에 그런 난장판이 또 있을까 싶을정도로 온갖 소음공해의 천국이었어. 그리고 여름이 왔어. 여전히 시장의 소음과 공사판에서 무언가 뚝딱거리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끝이질 않았어. 거기다 미친듯이 매미들이 울었지. 여자애와 오빠는 마침 여름방학이었고, 돈이 없으니 어디론가 갈수도 없었기에 집안에만 박혀있었어. 집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시끄러웠지만 어쩔수없었지. 그리고 어느날 여자애와 오빠는 크게 싸웠어. 너도 들어봐서 알고있을거야. 공사소음이 얼마나 사람을 날카롭게 만드는지. 오빠는 집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어, 사실 어딘가 갈곳은 없었을거야. 발길 닿는데로 그냥 걸어갔으니까. 집안에 홀로남은 여자애는 훌쩍이며 울다가 곧 대성통곡했어. 그들은 정말 별것도 아닌걸로 싸웠거든. 여자애는 그들 사이의 다툼을 후회했어. 하지만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법이잖아.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지. 그들은 가난했어. 여자애는 가난이 싫었어, 너무 가난해서 생일케이크 하나 사지못하는 환경이 저주스러웠어. 하지만 그걸 이유로 서로에게 욕설을 주고받을 필요는 없는거잖아? 여자애는 오빠와 싸우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지. 하지만 교회 헌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가난뱅이들을 누가 구원해주겠어? 그런데, 짠! 네가 나타난거야!"
그가 힘차게 박수를 치곤 양팔을 벌려서 나를 가르켰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있다가 천둥같은 박수소리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 머리는 미동도 하지않았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스멀스멀 스며나왓다. 이자는 미쳤다. 이 미치광이는 망상에 빠져서는 멀쩡한 사람을 데려와서 고문했다.
"바로 네가!!"
그는 또 다시 박수를 치곤 흐느끼듯 웃었다.
그리고 도저히 환희를 참을수 없는듯 피투성이 펜치를 지휘봉처럼 휘저었다.
"여자애는 현관문이 잠겨있지 않다는걸 몰랐어. 오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집문을 그냥 열어두고 나온걸 몰랐지. 그날은 두 사람 다 그럴 정신이 없었어. 세상은 시끄러웠고, 그들의 마음은 어지러웠거든. 그런데 네가 나타난거야! 네가 나타난 덕분에 그들의 삶은 단순 명료해졌어. 술에 떡이 된 네가 여자애를 깔아뭉게고 강간하면서 말했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여자애가 빌었지. 제발 그만둬달라고. 살려달라고. 네가 말했어. 오늘은 즐거운 날이라고, 너도 즐거워 하라고. 그날은 무슨일이 있어도 즐거워해야 하는날이었어. 네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그런데 넌 그날 아주 즐거웠어.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셨고, 현관문이 열려있었고, 여자애가 있었고, 그 동네는 아주 시끄럽기 때문에 여자애의 비명소리같은건 쉽게 묻혔지. 몇시간이나 여자애를 강간했어? 여자애는 하루종일이라고 했어. 어쩌면 이틀, 어쩌면 일주일. 그 시간만큼 너는 즐거웠어. 그런데 모든짓을 다 끝내고 여자애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든걸 알았을때 너는 아차했을거야. 즐거운 날을 망치면 안되니까. 그래서 너는 가스렌지의 불을 켜놨어. 여자애의 오빠가 모아둔 폐지를 싱크대에 쌓아놨지, 쉽게 쓰러지도록. 그리고 떠났어. 참 유감이야, 그 여자애의 오빠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으면 네 좋은 하루를 씹창내줬을텐데.
오빠는 너무 늦게 돌아왔어. 하지만 집안에 여자애가 있다는걸 알았으니 포기할순 없었어. 오빠는 불타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갔어. 세상에 단 둘밖에 안남은 혈육이잖아. 하지만, 어찌나 끔찍하게 뜨겁던지 숨쉴때마다 목구멍과 폐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지. 기분탓이 아니었을테지만. 아무튼 오빠는 집안으로 들어갔어.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고, 얼굴이 녹아내렸어. 작은방에 누워있던 여자애도 똑같았어. 그냥 죽는게 나을것같다고, 차라리 죽고싶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빠가 방안으로 들어왔어. 불타는 문을열고 불타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불타는 여자애를 두손으로 일으켜서 제 몸으로 보호하며 집밖으로 나왔지. 집이 불타면서 나온 까만 연기에 그 지역의 모든 소방대가 왔을거야. 그들은 구급대원에게 발견됬고 병원에 실려갔어. 두 사람 다 심각한 화상으로 살아남기 힘든 상태였지. 하지만 살았어."
그가, 아니. 그녀일까? 모르겠다. 화상으로 짓무른 얼굴이 좌우로 찢어졌다. 뭉툭하게 흘러내린 코 아래로 까만입이 히죽 미소지었다.그 미소를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그날은 아닐것이다. 내가 아니야. 그 애가 살아있을리가 없어.
"그래!네가 나타났어!! 살아 남아야 할 그 이유를 네가 만들어 준거야! 알겠어? 네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된거라고!!"
그가 들뜬 동작으로 내려놓은 케이크에 다시 초를 꼽고는 불을 붙였다. 일렁이는 촛불너머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오느을은 즐거우운 날이지이."
그가 반짝거리는 까만 눈구멍으로 촛불과 나를 번갈아가며 본다. 기대감 어린, 어린아이같은 맑은 눈.
"자, 후 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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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의 부재

유독 모든게 힘들고 싫은 날이 있다. 몸이 피곤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지쳐서 몸에 힘이들어가지 않는것인지도 분간되지 않는날, 묘하게 모든것들이 현실감이 없고 괜시리 숨이 차는것도 아닌데 숨을 헐떡이게 되는 날. 부동산 중개소 전광판으로 보이는 평생 인연조차 없을것같은 숫자의 나열과 걷고 있지만 사실은 더이상 걷고싶지 않음을 느꼈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현실'이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지금도 그렇지만 이 세상은 점점 현실이 아니게 되는것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질수도 냄새를 맡을수도 맛볼수도 없는 무언가를 거래하고, 그 거래수단조차도 이제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는 물욕이 그런진행을 오히려 늦춰주는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더이상 세상은 피부로 와닿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면, 곧 세상도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알아서 자기들끼리 돌아가는것 아닐까. 과연 이 기계화된 톱니바퀴 사이에서 나란 존재 하나가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질수 있을까. 아니 전부까지 갈것도 없다. 내 주변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우울해지는 날이다. 아직도 추위는 손끝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손으로 누군가를 만질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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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감기

베개를 끌어안자 더운 숨이 베갯잇에 부딪혀 얼굴로 되돌아왔다. 머리가 웅웅 울리고 코언저리가 뜨겁다. 일어나고 싶은 동시에 일어나기 싫어서 갈등하다가 결국 번데기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로 구물구물 일어났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 허리를 세우자마자 세찬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아, 왔다, 왔어… 어쩐지 어제부터 낌새가 수상쩍더라니.
 방전되어 있던 핸드폰에 밥을 주고 전원을 켜자 문자 서너 개가 한꺼번에 떴다. 일어났어요? 저는 지금 일 마무리하고 버스 타요. 열한시쯤이면 터미널 도착할 거예요. 미열 때문에 멍멍한 손끝으로 늦은 답장을 보냈다. 조심해서 와. 근데 나 감기 왔나 봐. 올 때 종합감기약 하나만… 거기까지 보내고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넘실거리는 수면에 이리저리 떠다녔다. 잠결에 문이 열리는 소리, 이마를 짚는 찬 손과 A의 먼 목소리를 들었다.
 많이 아파요? 오면서 죽 사 왔어요. 약이랑 먹고 자요.
 대답만 겨우 하고 한참 정신을 못 차리다가 간신히 상 앞에 앉아 죽을 떴다. 분명 새우랑 당근 같은 게 보이는데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없는 식욕에 억지로 씹을수록 머리가 무거워진다. 오로지 의무감으로 반 그릇을 비운 뒤 약을 먹고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 떨어지듯 꾼 꿈에는 내가 걸린 감기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다. 놈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몸살과 열도 데려왔다. 그것들과 놀다 보니 한겨울인데 나는 점점 따끈따끈해지고, 줄줄 흘러 바닥으로 퍼져갔다. 킬킬 악독하게 비웃는 것들에게 팔다리를 허우적대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식은땀으로 등과 머리가 축축했다. 숨을 들이쉬자 내내 꽉 막혀 있던 콧속으로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온다. 뻐근했던 몸이 조금 개운한 듯도 했다. 약이 잘 듣나. 누워서 마른세수를 하다가 또 잠들었다.
 좀 살만해진 저녁.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시집을 보고 A는 옆에서 키위를 잘랐다. 팔랑팔랑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A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키위가 미네랄이랑 비타민이랑 뭐더라, 미네랄이 많대요.
 이미 수십 번 읽은 시집은 책장을 덮어도 눈을 시리게 했고, 조곤조곤 말하는 네 목소리는 어딘가 봄볕 같은 데가 있었다. 하루 동안의 병 앓이로 가슬가슬해진 몸이 금세 녹녹해진다. 어느새 접시에 산처럼 쌓인 키위를 한 조각 찍어 먹자 입 안에서 무르고 신 과육과 까만 씨가 자박자박 씹혔다.

 해가 지나간다. 감기도 과일도 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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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길이 캄캄했다. 점점 심해지는 배앓이가 아침에 뾰족이 가다듬었던 것들을 엉망으로 흐트러트렸다. 집에 가려면 아직 오백 걸음이나 남았는데. 노인처럼 허리를 숙이다 결국 주저앉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위로 노랗게 번지는 가로등 불빛만이 나를 알았다. 육지에서도 바다 위처럼 한없이 침잠하는 나를.
 이마와 땅이 가까워지면 그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스쳐 지나간 것들. 탈이 난 배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과 술에 절어 나를 걷어차던 아빠의 발. 어린 기억을 고백하며 다시 더듬어야 했던 마른 흉터. 수치로 발갛게 부어오른 나를 끌어안았던 후배의 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문을 안줏거리로 씹어대던 이들. 관망하던 눈들. 가을이 다 되도록 울던 매미. 학사에 휴학 신청서를 밀어 넣고 도망쳤던 날, 진탕 취한 채 찾아와 형이랑 자고 싶어요, 울면서 매달리던 후배. 모진 마음을 먹고도 무너진 것은 때린 네 뺨이 데일 것처럼 뜨거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너무 엉망이어서.
 창이 반 토막 난 단칸방. 닳디 단 이불. 처음으로 벗겼던 타인의 옷. 하얗게 드러나는 맨살에 혼곤해지던 정신. 입을 맞추다가도 몸을 떨게 했던 안을 헤집는 낯선 감촉. 하얗게 물드는 손끝. 솜털 사이사이 숨결이 밸 만큼 가까이, 서로의 체온을 포갠 채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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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제는 텅 빈 거울 틀과 유리조각, 먼지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가 향한 방향을 본다. 커튼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새어들어온다. 내게는 닿지 않는다. 빛을 받은 곳을 제외하면 모두 제 색을 잃은 곳이다. 조용했다. 방에는 네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산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이 가진 것을 우리는 모두 잃었다는 점이다. 무감정한 눈이 깨진 거울 파편을 향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떠올려본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꽃이다. 장미, 프리지아, 튤립, 페튜니아. 백합, 바이올렛, 아네모네. 물망초를 사온 날에 너는 그걸 그냥 시들게 두었다. 꽃병을 던지지도 않았고 꽃을 버리지도 않았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 그걸 부정하려 했다면 왜 죽이지 않은걸까. 네가 망설이는 사이 꽃이 시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고민했어? 오늘은 밀집꽃을 샀다.
고양이는 어떨까. 좋아한다. 꽃을 사러 나가는 길에 매일 고양이를 보러 갔다. 뒷골목, 쓰레기통 옆, 자동차 밑, 담벼락 위로 그들은 변함없이 거기 있었다. 얼룩이 있는 고양이는 사람을 싫어했다. 회색 고양이는 근처 가게 주인이 주는 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항상 함께였지만 노란 고양이는 항상 혼자였다. 나는 늘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을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가 오면 나가지 않았다. 나는 좋아한다고 해도 겨우 그 정도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줄 일 없는 무관계에서 이뤄지는 애호. 내가 선호하는 관심의 표현이었다. 고양이들은 내가 계속 곁에 있었는줄도 모를걸 안다. 그 사실에 안심한다.
다음으로 너를 떠올리고 나는 연상을 멈춘다. 사랑 다음으로 네가 나와선 안된다. 너는 거기서 가장 먼 곳에 존재해야했다. 하지만 곧 인정하게 된다. 내가 가장 증오해 마지않는 네가 지금 나온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순이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놓인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확실히 싫어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사랑과 너. 너와 사랑. 나와 사랑. 너와 나.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런 의미없는 생각을 할 바엔 어서 잠드는 편이 좋겠다고 나는 눈을 감는다. 눈가에 흐리게 남은 빛도 서서히 사라지고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끝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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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밤

우선은 다짐을 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글로 다짐을 서술하진 않았다. 글로 다짐을 서술하는 순간 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가혹하게도 분풀이는 그것으로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확고하게 다지고 강인하게 정신을 차렸다. 맹렬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하며 이 분노에 대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출하지만 가슴 속 깊이 담았다. 다짐은 분풀이로 끝나지 않았다.
찬찬히 고민해보자, 그/그녀를 죽일 수 있는 방법.
이 내 감정은 천천히 시행하고도 싶었고, 아주 빠르게도 처치하고 싶은 강렬하지만 차갑게 식은 분노, 이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분노. 들끓는 분노에 손끝이 벌벌 떨리고 심장 속에는 어느 여자/어린아이보다 더 날카로운 비명이 울리고 있다.
찬찬히 고민해보자. 어디서 부터 시행할지.
우선 나는 그/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는다. 그 차갑다 못해 시린 가슴을 유지하여라, 그 어떤 얼음, 추위에도 비할 수 없는, 그 어떤 뜨겁고도 활화산 같은 사람/사랑이 다가와도 녹아내리지 않는, 달아오르지 않는 시린 가슴을 유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단련된 상처로 덕지덕지 딱지 앉은 나의 심장은 이제 눈물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그/그녀의 죽음은 나에게 아주 객관적이고도 진실한, 희망하는 사실.  그리고 이 사실에 가장 괴로워해야할 그/그녀는 설령 나의 앞에서 죽음을 받아들지 못하고 울어버린다면 그것또한 나의 다짐을 확고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두가 나에게 묻거든 그/그녀는 죽었다고 전하자. 무미건조한 발음으로, 미사어구 없는 간단한 구조의 단어. 단호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