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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A:노력하면서 안 살면 어때? 그래도 다 살아가잖아.


B:네가 노력하지 않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거야.


A:내가 누군가를 뛰어넘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또 나를 뛰어넘으면 어떡해?


B:그럼 네가 그들을 다시 뛰어넘어야지.


A:계속해서? 누군가가 나를 뛰어넘지 못할 때까지?


B:그런 셈이지.


A:그래서 얻는 건 뭔데?


B:네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뿌듯함 정도겠지.


A:그들보다 위에 있어서 좋은 건 뭔데?


B:당연히 너의 밑에 있는 사람들이 널 우러러보겠지.정말 대단하다는 듯이, 그런 눈빛으로.

A: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을 다 뛰어넘고 맨 꼭대기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


B:아니지. 네가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너를 또 뛰어넘잖아. 그러면 넌 또 그를 뛰어넘어야지.

아니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뛰어야지.


A:그럼 결국 맨 꼭대기라는 건 없는 거잖아.


B: 

어디서 왔지?
[["synd.kr", 9], ["unknown",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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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나를 등지는지..

수동적으로 바뀌어지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부정적이라는걸 어찌 해석해야하는걸까?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는 말 역시 내 노력이 포함되지 않은 모든 변화는 나에게 불리하다는 뜻인가?
"불리하다"가 아니라 그저 조금 "내 뜻대로, 내가 원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정도로 수위를 낮춰 해석한다해도 사실은 나를 제외한 모두의 바램은 나의 바램과는 다르다는 결론이 나올뿐이지 않나.
어쩌면 그게 "경쟁사회"의 기본 동력일까?
분위기와 흐름을, 결과와 댓가를 조금이라도 나에게 득이되도록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나보다.
그렇지. 사회라는게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인 이상 내 input 이 있어야만 비로소 최소의 output 을 기대할 수 있는거겠지.
그럴 듯 하지만 매우 우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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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 넘을 거야.
네가 아무리 높고 날 가로막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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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항상 하고있는 그것
알아봐주지 않는 그것
더 하라고 하는 그것
하고있어
알고있어
계속 할거야
앞에만 서면 기가 살고
앞에만 서면 주눅들고
더 하라고 하면 뭐하나
이미 하고있는걸
알아보려고 하면 뭐하나
이미 포기했는걸
너는 항상 말해
앞에 서는 것도 아프다고
너는 알까
앞에 서는 내 마음을
너만 아프니? 나도 아파
앞에 서는 너는 화내고 잊으면 그만
나는 평생 마음에 묻고가야 할 앙금
울고싶어지면 찾아와
사르르 녹는 말을 던져주면
나는 애써 위로했어
너를 모른채
아파 아프고 아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도
거부할 수 없었어
나는 너의 아래에 있으니까
항상 하고 있는 이것
외면 받는 이것
이미 다 한 이것
너는 이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걸,
알고있을까 생각해봐도
역시 무리야

뒤에서 알아봐 주는 사람 없이
매말라 비틀어진 이것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리니

마음의 앙금도
조금씩 조금씩
매이던 목도
조금씩 조금씩
알것 같지만 모르도록
이상야릇한 기분만 남겨주고
나에게 아픔만 주었던 이것은
기록으로 남아서
오랜 앙금이 되어 굳을 뻔한 이것을
사르르 사르르
아름답게 녹여가네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에게 보내는 한 마디,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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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억압된 것에서 벗어서 스스로에 대해 결정하는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환경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삶이 자아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숙고하고 좁히기 위해 달려가는 행로에 접어들 때, 사람이라 부른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변화를 인식하는 건, 언어로부터 구체화되며, 이 언어로 인해 구체화된 인식들이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페터 바에라의 [자기 결정]이라는 핏빛 커버의 책을 읽고 있다. 짧은 책이지만, 난독증에 난시도 심해져 읽는 게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가끔 말인지 막걸리인지, 라고 투덜거리며 시대의 지성에 침을 뱉는 얕디얕은 인내심을 보이기도 한다.
다 읽고 나면, 난 괴이한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각성' 따위를 기대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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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이란 생각보다 하찮은 동물이다.
자기보다 약하면 한없이 무시하지만
자기보다 강하다 판단될때 
누구보다도 앞장서 꼬리를 내린다.
내가 강해서도, 약해서도가 아니다.
단지 지켜보는 내가, 봐야하는 내가
한심할뿐이다.
인간은 더럽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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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끼고싶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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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따스한 사람이 좋다.
나도 참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좋다.
내가 그런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일잘하는 사람이 멋져보인다.
나도 홀로 멋지게 일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사람은 늘 나를 멋지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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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그 사람이 너라서"
내 안은 너의 빛으로 물들어요
눈을 감아도 비처럼 스며든
그 사람이 너라서
니 안을 나의 빛으로 물들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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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없으면 허전한 사람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나는 사람
말만 했다하면 날 깔깔 웃게 만드는 사람
곁에 있어주면 왠지 든든한 사람
나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
가족보다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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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하루종일 웃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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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사람
My bes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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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란 사람

 너란 사람..  나를 웃고, 힘들 때 일으켜주고, 다시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다시 행복하게 해주지.. 넌 항상 나를 지켜주었는데, 넌 예전의 그림자 속에 있었던 나를 빛으로 인도해주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평생 그림자 속에 있었을 거야..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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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사람 이야기 1

   누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내 이름은 동동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동동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운 자기 이름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넌 동동이야." 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동동이라는 걸 배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성별을 소개할 때에도 왠지 "전 여자애에요."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화장실에 갈 때에는 여자칸으로 가야한다는 것과 학교에서 줄을 설 때면 여자아이들과 함께 서야한다는 걸 배워습니다.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동동이에게 자주 못되게 구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편했고, 동동이에게 착하게 대하는 친구들은 여자아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동동이는 자신이 '여자 그룹'에 속한다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 그룹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여자 같은' 성격이나 외모를 말할 때멸 그게 자신의 성격과 외모와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에 동동이는 자기를 여자로 소개하는 게 어색했던 겁니다. 
  남들에게 굳이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면,  동동이 혼자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동동이는 "나는 슬픈 사람이야."라고 했을 겁니다. 동동이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서 사실 자기가 어떤 이름표를 써야 하는 지 어떤 줄에 서야 하는 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잔잔히 아슬아슬한 얕은 표면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배우고 베껴 행동할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룰이 필요 없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오면 동동이는 마음에 꽉찬 슬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이건 어디서 온 걸까 어떻게하면 이 슬픔을 떠나게 할 수 있을까. 팽팽히 불어난 슬픔으로 머리의 모든 통로가 막혀 공부도 장래희망도 즐거운 놀이도, 다른 건 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동동이는 이 마음의 소화불량을 먼저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골몰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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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 첫 사람

어쩌면 웃는 너였거나, 어쩌면 같이 걷던 너였거나
또 어쩌면 그 때 그 시절의 너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