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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달빛이 이지러는 졌으나 
여전히 밝으매 밤인지도 모를만치 눈부셔서 
아래만 바라보는데도  
닳고 닳아 부서진 네 빛 알갱이들이 
나를 건드리매 바라보니 
하늘 끝도 모르고 퍼져서는 
나는 이것을 별이라 부를 테다. 


네 빛이 다하거든 내게 조각을 쥐여 주렴, 
거뭇해진 너를 보고서도 
언젠가 눈부시게 밝았을 너를 기억하리니.

어디서 왔지?
[["synd.kr", 11], ["unknown", 67]]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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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거쳐온 모든 과거들과 관계들과 희로애락의 조각들이
먼지 크기로라도 모두 쌓여왔더라면
진작에 돌무지 아래에 깔려버렸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서로 녹여주고 녹아주거나 접어주고 접혀
어쩌다 한번씩만 몸 속 어딘가로 던져지다가
노을이 지는 저물녘이거나

눈 그친 밤의 달빛이거나
아니면 저기 어느 먼 집 불빛이거나에
눈길을 들어 몸을 돌리면
그때에도
매번은 아니고 가끔씩 살짝씩
내가, 나를, 네가, 너를,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비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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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눈동자에서 깨져가는
삶의, 추억의, 유년의, 슬픔의, 쓸쓸함의, 아주 작은 기쁨의, 
          ,                   ,                 ,
조각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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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집

산 중턱 어딘가에
아파트로 치자면 2층쯤
우두커니 있는 달동네 대포집
메뉴는 가정식
된장찌개, 김치찌개, 백반,
그리고 가끔 나오던 고등어조림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항상 시키시던 탁주 한사발
그리고 대포집에서 기특하다고 주시던
술빵 한 조각
소주 한 잔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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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아이스크림

아직 5월인데 이렇게 더운거 보면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된다.
이런 더운 날에 어릴적 
엄마 손을 잡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닐때 
자비란 한조각도  보이지 않는 날씨에
자신들이 찜통 속에 
익혀지기를 기다리는
감자들 같다고 표현한  것이 
왜인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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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유리

이 글을 보니, 자연스럽게 오래 전 쓴 이 글이 생각나서 달아봅니다.
구슬치기
심장이 버석거리는 유리구슬,
 
구덩이를 파고, 하나, 둘, 셋 구슬을 깐다.
 
그러고 나서 번들거리는 소매로 구슬을 보듬을 즈음, 의례
내 지붕위로 붉은 은하수가 지나간다. 하지만 그건,
내 구슬
 
그리곤, 난 부러 구슬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꿈은 구슬 같아서, 쉬 깨지고, 붙곤 한다.
 
숨을 쉴 때마다, 방귀를 뀔 때마다,
버석버석한 가루가 방 안 가득 차곤,
난 마른 기츰을 하고, 유리조각을 부스럭...
 
사람을 만났다, 그는 별빛처럼 빛난다, 그 빛에 내 눈이
조금씩 삭아내린다. 내 삭아내린 눈은 어디로 갈까..
 
수염이 나서야 다시 구슬을 꺼내본다. 이 구슬로 저 구슬을 따먹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팔을 들어본다. 소매 가득 유리가루가 묻어 있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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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감기

베개를 끌어안자 더운 숨이 베갯잇에 부딪혀 얼굴로 되돌아왔다. 머리가 웅웅 울리고 코언저리가 뜨겁다. 일어나고 싶은 동시에 일어나기 싫어서 갈등하다가 결국 번데기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로 구물구물 일어났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 허리를 세우자마자 세찬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아, 왔다, 왔어… 어쩐지 어제부터 낌새가 수상쩍더라니.
 방전되어 있던 핸드폰에 밥을 주고 전원을 켜자 문자 서너 개가 한꺼번에 떴다. 일어났어요? 저는 지금 일 마무리하고 버스 타요. 열한시쯤이면 터미널 도착할 거예요. 미열 때문에 멍멍한 손끝으로 늦은 답장을 보냈다. 조심해서 와. 근데 나 감기 왔나 봐. 올 때 종합감기약 하나만… 거기까지 보내고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넘실거리는 수면에 이리저리 떠다녔다. 잠결에 문이 열리는 소리, 이마를 짚는 찬 손과 A의 먼 목소리를 들었다.
 많이 아파요? 오면서 죽 사 왔어요. 약이랑 먹고 자요.
 대답만 겨우 하고 한참 정신을 못 차리다가 간신히 상 앞에 앉아 죽을 떴다. 분명 새우랑 당근 같은 게 보이는데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없는 식욕에 억지로 씹을수록 머리가 무거워진다. 오로지 의무감으로 반 그릇을 비운 뒤 약을 먹고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 떨어지듯 꾼 꿈에는 내가 걸린 감기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다. 놈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몸살과 열도 데려왔다. 그것들과 놀다 보니 한겨울인데 나는 점점 따끈따끈해지고, 줄줄 흘러 바닥으로 퍼져갔다. 킬킬 악독하게 비웃는 것들에게 팔다리를 허우적대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식은땀으로 등과 머리가 축축했다. 숨을 들이쉬자 내내 꽉 막혀 있던 콧속으로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온다. 뻐근했던 몸이 조금 개운한 듯도 했다. 약이 잘 듣나. 누워서 마른세수를 하다가 또 잠들었다.
 좀 살만해진 저녁.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시집을 보고 A는 옆에서 키위를 잘랐다. 팔랑팔랑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A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키위가 미네랄이랑 비타민이랑 뭐더라, 미네랄이 많대요.
 이미 수십 번 읽은 시집은 책장을 덮어도 눈을 시리게 했고, 조곤조곤 말하는 네 목소리는 어딘가 봄볕 같은 데가 있었다. 하루 동안의 병 앓이로 가슬가슬해진 몸이 금세 녹녹해진다. 어느새 접시에 산처럼 쌓인 키위를 한 조각 찍어 먹자 입 안에서 무르고 신 과육과 까만 씨가 자박자박 씹혔다.

 해가 지나간다. 감기도 과일도 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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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볼테르의 명언으로 시작된 혼란

처음엔 그냥 좋은 문장 하나 찾았으니 대충 멋있는 척 올려보자였는데 이게 쉽사리 끝이 나질 않는다.
- Voltaire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면 충분한 상태로 끝난 작업보다 못하다는 해석이 적당하다.

Le meglio è l'inimico del bene
볼테르(Voltaire)의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에 있는 내용으로 옥스포드 인용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고 함.
2003년 구글 answers 에서 사용자들끼리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재미난 쓰레드도 있네.

The best is the enemy of good
좋고 나쁨의 여러 단계에서 사회통념적으로 영단어 "best"가 의미하는 단계를 어디로 보는가에 따라 문장의 느낌의 달라질텐데 나는 "best" 가 극도로 좋다는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아 Perfect가 사용된 문장이 좋다. 
The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인터넷에 '볼테르'의 명언으로 번역된 문구는 크게 2가지.
최선은 선의 적이다
"선(善)"이 "최선(最善)"에 못 미친 상태인건 맞는 것 같은데 "선"이라는 단어가 그 쓰임에 와닿지 않고 "최선"은 극한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돌직구같은 아래의 번역이 마음에 든다.

완벽함은 훌륭함의 적이다

그런데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하는 나는:

정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될까?
스티븐 잡스의 아이폰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제품의 아름다움과 강력함을 증명한 결과물이 아닌가?
완벽함을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내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변명의 문장인가?
만약 완벽함이 아니라면 내 작업과 제품의 "훌륭함" 단계는 무슨 기준으로 정해야할까?
아, 머리 아퍼.
내가 이 문장에 왜 매달리고 있는거지?
그렇지만 뭔가 생각을 포기해버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

내 친구 중에 부모님이 크고 아름다운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친구고 그 집 부모님들과도 오래 알고 지내서 거기서 뭘 먹고 돈을 내본적이 없지.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갈 때마다 식사를 마치면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여기, 5만원 맞죠?"

"이놈 봐라? 내가 니 돈 받겠냐? 맛있게 먹었으면 자주나 와라."
"어휴~ 어머니, 자꾸 돈을 안받으시니까 부담스러워서 못 오자나요."
"에라, 이놈아! 어여 가고 다음주에 또 와."
그런데 서로가 대사를 바꾸면 아주 골때리지.
"어머니, 저한테 돈 받으실거 아니죠? 또 올께요!"
"5만원이나 나왔는데 또 돈 안내고 그냥 가려고?"
"어휴~ 어머니 언제는 제가 돈 냈어요?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아니 이놈아 공짜로 처먹을라면 1~2년에 한두번이나 오던가!"
뻔한 결론이 나와버렸네.
내 제품의 "훌륭함"을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비유로 든 얘기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에 대한 얘기라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각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과 어떤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웃긴 놈이 된다는 것.
제품의 사용자들이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단정한다는 것이 이미 주제넘은 일인 것 같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내 사업이 인터넷/온라인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네.
이건 조각이나 벽화, 건축이나 공산품과 다르게 명확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들을 작은 단위로 끊임없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실시간에 가깝게 어떤 단계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감사하네.
제품의 단계가 "완벽함 - 훌륭함 - 충분함 - 부족함 - 쓰레기" 다섯 단계라고 봤을 때 내 제품들은 아직 부족함과 쓰레기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단계"인거야.
하나씩 해결하고 한걸음씩 내딛으면 결국 앞으로,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게임이지.
다들 힘내자구.


영문위키: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 내가 대체 왜,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전개로 여기까지 온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