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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드리

 한 달째 나사 하나가 빠져 있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돌려 입고 아침마다 공들였던 머리 손질도 생략한 채 다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나마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좀 나았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감정 샐 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상사들의 휴가가 겹쳐 사무실 자리 반이 비었는데 딱히 급한 일도 없다. 심심하면 걸려와 사람 미치게 하던 영양가 전무한 영업 전화도 뚝 끊겼다. 거기다 밖에는 날씨까지 화창해 주니 이건 망망한 무풍지대에 고립된 것 같은 환장이었다.


 “……딱 일주일만 안 깨고 자면 좋겠다.”


 아니면 빈사 상태가 되던지. 탕비실에 서서 텀블러 가득 커피를 따르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코 박고 죽으면 과로사로 산재 인정되려나.


 “서 대리님.”


 누가 온 줄도 모르다가 꿈에서 막 깬 사람처럼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U 씨였다. 디자인팀 모 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부하로 죽어가던 팀을 위해 고오맙게도 겨우 하나 뽑아준 신입 사원. 사내 평균 연령을 훌쩍 낮추는, 칙칙한 사무실의 빛나는 형광등. U가 커피포트에 새 원두를 채우면서 물었다. 혹시 오늘 업무 바쁘세요?


 “급한 건 없어요.”
 “그럼 저랑 점심 먹으러 가실래요? 제가 살게요.”


 신입 월급이 얼마였더라. 아무튼 내가 사줘야지 얻어먹을 처지는 아닌데…… 정신 차려 보니 이미 근처의 샤브샤브 집이었다. U는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납작한 냄비에 살뜰히 채소를 잘라 넣으며 얘기했다.


 “저번에 지원해 주신 거 감사해서요. 계속 밥이라도 한 번 사드려야지, 생각했거든요.”
 “음? 아…… 그거. 별거 아니었는데요.”


 디자이너한테 퍼블리싱 떠넘긴 사장이 잘못한 거지, 나한테 감사할 일은 아닌데. 그래도 앞에서 사근사근 얘기해주는 걸 듣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주세요. 이제 제가 할게요.”
 “에이 아니에요. 아, 이거도 드세요.”


 젓가락을 내려놓고 살짝 팔을 뻗었지만 그는 끝까지 가위와 집게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릇이 한가해지면 고기를 올려주고 마지막 코스로 죽을 먹을 때도 나에게 한 국자를 더 퍼줬다. 투철한 막내 정신일까 원래 성격일까. 어느 쪽이든 그래서 다들 예뻐라 하는 거겠지. 아직 몰라서 실수는 좀 해도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고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작년까지 같은 회사에 다니다 이직한 그 누구는 좋게 돌려 말하면 대기만성형,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답답하고 어리바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착하고 순박했다. 사람은 좋은데 자꾸 혼나는 게 안쓰러워서 몇 번 도와준 게 만남의 시작이 되었고, 그는 눈 돌리지 않고 평생 나만 볼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 무구함을 멋대로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의 방심도 섞여 있었다. 멍청했지. 알고 보니 그 착하고 순박한 사람은 이직 이후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내 집에서 나가던 날, 그 개새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한테 사랑이 남아있기는 했어? 나는 그가 쥔 24인치 캐리어가 기가 막혔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지런했다고 자기 짐만 바리바리 챙겨놓았을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가 되는 것은 그 못난 얼굴을 흠씬 때리지 못하고 바보같이 보내준 것이다.



                                                                                                           *



 “커피는 내가 살게요.”


 양껏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선 건 좋았는데, 근처의 카페들은 이미 만석에 거리에도 사람이 차고 넘쳤다. 얼른 커피만 받아 밖으로 나온 우리는 하릴없이 회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날이 좋아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잖아. 잠깐 괜찮았던 기분이 다시 내려간다. 그냥 들어가자니 아쉽고 인파에 치이기도 싫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을 때였다. U가 나를 살짝 잡아끌었다.


 “대리님. 여기 들어갈까요?”
 “……여기요?”


 회사 근처의 동전 빨래방. 재미없는 농담인가 했는데 U는 정말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더니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토닥인다. 얘 뭐지… 어정쩡한 기분으로 일단 앉았다.


 “저 밥 먹고 산책하다가 가끔 여기 오거든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저기 세탁기 돌아가잖아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되게 마음 편해져요.”


 그래서 취향 존중이라는 게 있고… 이제 보니 좀 도라이인가… 잠깐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곧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았다. 벽면을 채운 커다란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잔잔한 백색소음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주선 창문처럼 동그란 유리문 너머 색색이 뒤섞이는 이불과 베개와 옷가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한 섬유 유연제 냄새.


 “U 씨. 저 오늘 출근하다가요.”
 “네.”
 “회사 무너지라고 빌었거든요. 근데 오니까 괜찮네요. 한가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U가 웃는다. 저도요. 커피를 내려놓고 U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끔히 닦인 유리 벽으로 가장 높은 태양 빛이 쏟아졌다. 시야를 전부 지워버릴 것 같은 정오의 햇볕. 뭉그럽고 간지러운 것들이 솟아난다.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손바닥 안에 가득 잡힐 것처럼. 다 타버렸다고 믿었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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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어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그 아래 난 살아 있죠 부서져 좁은 텅 빈 공간에
날 살려 줘요 제발.. 살려 줘요 제발.. 이 어둠이 싫어요
날 꺼내 줘요 제발.. 꺼내 줘요 제발.. 난 숨이 막혀요
이미 늦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가망 없다고 하지 마요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아래 
숨쉬고 있죠 이 미어 터진 좁은 공간에
나는 아직 살아 있죠 이 빌어먹을 텅 빈 공간에
이미 늦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가망 없다고 하지 마요 내 심장 아직 뛰고 있죠
내가 죽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내가 식었다 하지 마요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 아래
이미 늦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가망 없다고 하지 마요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아래
숨쉬고 있죠 이 미어 터진 좁은 공간에
나는 아직 살아 있죠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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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브런치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일을하고 있다.

본좌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있음.

근데 사람들이 브런치를 모름.
우와 ㅋㅋ

하긴 여기 문화부터가 구닥다리이긴해.
근데 내가 잘못한건..
브런치 모른다고 했을때 모든 사람이 들을만큼 깊은 한숨을 쉬며 "너무 관심없는것 아냐?" 했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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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中

“얼마 전에 회사 그만두고 양복점으로 돌아왔다. 집사람과는 이혼했다. 저는 실패한 걸까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지금 제가 마주한 게 실패의 얼굴일까요?”
“삶이란 얼굴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때 그 때 표정이 바뀌는 것뿐이다. 넌 지금 어떤 한 지점을 지나왔고 여기서 무릎 꿇으면 실패가 되고 다시 일어나 걸으면 경험이 된다. 한 가지, 이것만은 명심해라. 누구도 널 일으켜줄 수 없다. 가족들이 지켜보며 응원하겠지만 결국 네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네가 일어나서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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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난 커서 선생님 할꺼다!"
"그래라 난 대통령 될꺼지롱!"
"난 우주비행사!"
"나는 과학자가 될거야! 아마 미래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있겠지? 내가 다 발명해서 너희들을 놀래켜줄게!"
"얘들아 이제 자리에 앉자. 자 수업 시작할게요~"
우린 어렸다. 미래는 꽃길만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근데 내맘처럼 되는게 없더라.
과학자를 꿈꿨던 난, 키보드를 두드리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타다다닥. 초등학교 때는 즐겁게만 들렸던 타자소리가 이젠 일상이 되어 지루하기까지 하다. 
"다른 애들은 뭐하고 살려나..."
SNS를 들여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SNS속에선 모두가 천국에 살고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빰빠빠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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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말 친하게 지냈던 단짝이였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연락이 뜸했는데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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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는 커서 선생님을 할거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줄곧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교권에 들었다. 대학교를 갔다는 건 들었는데, 선생님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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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때 보자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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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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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동창회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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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
"오 상오 왔네! 잘 지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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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행복하지 않은것 같다. 나만 평범히 사는 것 같다.
괜히 온것 같다. 서로 자랑에 격려에 자꾸 박탈감이 든다.
술에 취해서인지 자꾸 입에서 혀가 움직인다.
"나도 잘 살고 싶었는데... 내맘대로 되는게 왜 없지?"
"나도 그렇더라. 그냥 사는거지 뭐... 현실을 받아들이니까 꿈도 목표도 없어지더라... 그래서 이렇게 회사 다니고..."
"내가 왜 치킨집 한지 아냐? 회사 잘리고 가족 눈치 보여서야... 퇴직금이랑 대출 싹싹 긁어서 이 가게 닫으면 내 인생도 끝난다는 마음으로 오픈했다."
"여행하는 건 정말 좋아... 책 팔리고 베스트셀러 되면 뭐하냐? 결혼도 연애도 지금까지 전무후무야...ㅋㅋㅋㅋㅋ"
술이 들어가니 처음과는 전혀 딴판인 소리들을 해댄다.
역시 사람은 다 비슷하게, 그렇게 사나보다.
내가 티비에서 본것들은, 상위 0.1퍼센트의 허상이었던걸까?
친구들의 한탄을 들으며, '그래도 여기서 내가 제일 낫다.'라는 더럽고 심심한 자기합리화, 그리고 위로를 한다.
오늘도 난 밝은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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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이곳

낯 시간에 바닥을 바라보며 이런생각을 한다
저 바닥 너머에 달이있겠지
여기에 태양처럼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게는
지금만큼은 달이 가장 빛나겠지
여기에 태양처럼
그러곤 바뀔거야
반대엔 태양이 여기엔 달이
서로 가장 빛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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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둘곳을 정하여 기댈수있는곳이 되어주기도, 힘을 받기도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난, 내 마음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인형에게 기대게 해 달라며, 힘을 달라며 오늘도 눈에 비가 오며 말없이 웃기만 하는 인형에게 털어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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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공부

여기도 공부하다가 들어오는 사람들 많나요?
익명으로 서로 힘내자고 얘기해요~
오늘도 수고했다고 내일도 잘할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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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건

여기 들어온건
마음이 아파서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혼자가 아닌 것엔 낮설어서
아직 시간이 있다면 그게 좋겠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장 나답고 멋지게 성장한 사람이
많이는 몰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알고
가진게 없어도 마음으로 나누고 함께 울고 웃는
비가 와서 그런가...
못나고 부족해도 나를 사랑하고 열심히 살면 되겠지
되게 쉬운건데 가끔 그게 너무 어렵다
잘 안된다
덜 성장했나보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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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h.... I can't believe it

' 도저히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해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요소 중에서 뭐가 해낸 것일까'

라고 잠시 생각을 했다가, 
금새 깨달았다.
아, 내가 한 게 아니라, 그들이 한 거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땀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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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청년

 겨울이 되자 유난히 자주 코피가 터졌다. 예고 없이 떨어지는 핏방울은 가지런히 개어두었던 빨래와 아끼던 목도리에 자국을 남기고 기껏 복사한 서류를 붉게 적셨다. 지리멸렬했던 한 해가 끝나 제야의 종이 나를 새해로 떠밀었던 순간에도 그랬다. 피가 좀처럼 멎지 않아 휴지 한 통을 다 쓸 만큼 애를 먹었다.
 
 달력을 넘기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들 특유의 요란함이 왜 내게는 없는지 생각했다. 새해가 뭐. 당분간 연도를 쓰다 끝자리 숫자를 다시 고치게 될 거라는 점 말고는 와닿는 것이 없는데. 이제 나는 반이 바뀔 일도 없고 수강 신청을 할 일도 없으니 언제나 어제 같은 오늘, 작년 같은 새해였다. 가끔 짙은 안개 같은 무력감이 깔릴 때면 말해 보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는 왜 삶의 끝을 결정할 수 없을까요. 하지만 막상 병원에 가려니 마음이 안 먹힌다. 결국 가는 곳은 늘 교보문고였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책 냄새를 맡으며 자기계발과 심리학 코너를 빙빙 도는 것이다. 이런 거 읽으면 좀 좋아질까. 무심코 중얼거렸는데 누군가 불쑥 대답했다.
 “그거보다는 이게 더 나을걸요.”
 깜짝 놀라서 옆을 쳐다보자 씩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가 하도 태연해서 내가 아는 사람이었나 잠시 고민했다.
 “이십 대 초반이시죠?”
 “그런데요.”
 “아,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M 출판사 직원인데요, 요즘 이십 대들은 어떤 책 좋아하는지 조사하고 있거든요.”
 내미는 명함보다 길고 가느다란 손마디와 매끄러운 손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에는 도톰한 흰색 종이에 진초록으로 찍힌 글자가. M 출판사 마케팅부 D 대리. 받았으니 나도 줘야 하나? 잘은 몰라도 일단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와, 직장인이었어요? 어려 보여서 학생인 줄 알았는데.”
 “어린 건 맞아요. 스물둘.”
 D는 겨우 스물 예닐곱 정도로 보였지만, 사회생활에 익숙한 사람 특유의 유연한 반응, 세련됨, 오랜 시간 갈리고 축적되어 생겨난 둥근 석공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 요령 없이 서툴러서 죽고 싶은 나는 가질 수 없는 것. 붙임성도 좋아 낯가림이 심한 나를 그 자리에서 웃게 만들었다. 서점에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내가 들고 있던 책에서부터 요즘 뜨는 베스트셀러, 하는 일 얘기까지 이어지던 대화가 끝날 무렵이었다.
 
 “혹시 내일 시간 되나요? 오늘 주말이라 인터뷰 용지가 회사에 있어서, 괜찮으면 내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어….”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가 마치 손수건을 권하듯 웃음을 건넸다. 인터뷰하면 책도 보내드려요. 활짝 올라간 입매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입술이 고우시네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할까 봐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하죠, 뭐.”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이는 올해로 서른하나. 서초동에 살고, 날씬한 몸매에 윤기나는 갈색 털을 가진 아비니시아 고양이를 길렀다. 나는 보기보다 많은 D의 나이와 주인과 똑닮은 고양이의 생김새에 놀랐다. D가 그의 집에서 정반대인 내 회사 근처로 온다는 것을 말려 중간 지점에서 보기로 했다. 퇴근하고 역 출구로 나오자 약속 시간 전인데도 벌써 나를 기다리는 뒷모습이 보였다.
 “어. 어제 봤을 때보다 더 예쁘네요.”
 “오늘 미팅 있어서요.”
 “맞아, 직장인이지 참. K 씨가 어려서 자꾸 잊게 되네요.”
 봄은 아직 멀어서 여전히 해가 짧고 칼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조금 걷다가 발견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D가 따듯한 커피 두 잔을 시키면서 물었다.
 “배고프죠? 뭐 빵 같은 거라도 먹을래요?”
 “아, 괜찮…”
 “여기 케이크도 많네. 혹시 단 거 싫어해요?”
 나를 살피는 두 눈이 묘하게 반짝거린다. 좋아한다고 대답하자 그는 한껏 기쁜 얼굴로 케이크 두 개를 추가했다. 
 납작한 가죽 가방에서 설문지와 펜을 꺼내든 D는 질문을 읽어주고 내 대답을 적었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질문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뭔지, 특별히 관심 있는 장르가 있는지. 서로 흥미 있는 책이 맞물릴 때마다 잡담으로 빠져서 진행이 더뎠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한 달에 책 몇 권 정도 읽어요?”
 “요즘 바빠서 많이는 못 읽고… 한 달에 두 권쯤.”
 “진짜? 그거 엄청 다독 아니에요? 요즘 일 년에 세 권도 못 채우는 사람 수두룩해요.”
 “그래요?”
 “그럼요. 회사 다니면서 바쁜데 대단한 거죠.”
 나는 D의 공들여 손질된 단정한 머리카락, 커피를 불어 마시는 입술, 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대답을 기다려주는 차분한 눈, 영영 질리지 않을 새그러운 웃음을 보았다. 시간이 많았으면, 질문이 좀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고 헛되이 바랐다. 어느새 설문지는 마지막 장이었다.
 “이건 좀 추상적인 질문이라,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으면 건너뛰어도 돼요.”
 “네.”
 “K 씨는 책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선뜻 운을 떼놓고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가랑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는 책이 삶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어서 떠오른 뒷말은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하고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게 곧 무너질 삶이라도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뿌리가 필요하잖아요. D는 대답을 바로 적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미미하게 떠돌던 웃음이 곧 진하게 번졌다. 와, K 씨.
 “보기 드문 청년이네요.”
 짧은 시간 동안 목소리를 잃었다. 호흡을 잃고 시간을 잃었다. D의 말이 나를 순간 속에 박제했다. 나는 종교 대신 다른 것을 믿었다. 많은 이들이 하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 몸의 수분은 빗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심장을 관통하는 음악과 영화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고 내게는 그것을 헤쳐나갈 에너지가 없다. 열정을 불태우고 증명하며 나아지지 않을 삶을 일구는 것은 너무나 혼곤한 일이다.
 “진짜로요. 우리 회사 데려가고 싶다. K 씨 글도 잘 쓰죠?”
 그럼에도 숨을 붙잡는 것은 그 부질없는, 어쩌면 인사치레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한심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 자신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이었으므로.
 가끔 쓰는 일기와 졸업 후 질리도록 썼던 자소서, 취미로 쓰는 글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막차 시간 직전에 카페를 나왔다. 눈은 그치고 바닥만 젖어 있었다. 우리는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역까지 나를 데려다준 D는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나는 꾸벅 인사하고 계단을 몇 걸음 내려가다 도로 올라가 그를 붙잡았다. 저기.
 “…또 연락해도 되나요?”
 
 D는 동그랗게 떴던 눈을 반달처럼 접어 웃었다. 그럼요. 다음에는 맛있는 거 사줄게요. 언젠가 비에 녹아 스러지는 것, 달의 인력, 영원히 팽창하는 우주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D야말로 드문 청년이었고 나는 나를 버리는 마음을 조금 누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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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래,

     너 만 힘든게 아니야.
    너만 아픈게 아니야.
그래서 ? 나만 그런게 아니라도 내가 힘들다는건 변함 없잖아.
라는 생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거야 ?, 어리광일 뿐이야,
정말 그렇다면 포기해 버려, 주저 앉아 버리라고, 
그렇게 말하면 정말 포기할수 있어  ?
아니 , 못하잖아 ㅡ. 여기까지 왔는데 , 이것들을 내 노력들을 , 날 응원해주던 그들을 등져버리지 못하잖아.
너무  많이 와버렸기에  조금만 , 아주 조금만 더하면 힘든것이 행복으로 바뀔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내 옆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네가 있어 웃는 사람을 위해서, 노력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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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그 때 다 보내지 못한
그 사람에 대한 마음
다시 돌아오는 봄
여기 한가닥 미련이 남아
매해 돌아오지 않을
그대라는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흔한 말도 전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나는
미련하게 그대 떠난
어느 따뜻한 봄날
다시 만날 그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