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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아슬아슬하다. 

두 갈래로 갈라진 펜촉이 벌어졌다 만났다, 벌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흔적을 새긴다. 

펜촉이 벌어졌다 만났다, 벌어졌다 만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조금이라도 힘이 더하거나 덜 해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다시 만난다는 것. 시작점은 같아도 끝은 나뉘어진 만년필을 보며 

나는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아도 후에 되돌아보면

지금 우린 다시 만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라는 생각에 목을 큼큼, 비워보지만 

그래도 이 헛된 기대에 가슴 한 켠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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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만년동안 쓴다해도
잃어버린다는 얘기
사실일까?
원수지간인 사람도
잊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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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아직 내가 쓰기에는
버벅거리는,
 익숙치 않은 필기구.
연필은 버렸고. 샤프는 조금 쓰다가.
볼펜이 익숙해진  지금 이 나이에.
조금 더 늙으면 쓸 수 있겠지.
한 구석에 묵혀놓고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멋스럽게 서명하는 날이 올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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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만년필을 사 주셨다.
특이하게 생긴 볼펜이네, 하고 생각했다.
왜 만년필(萬年筆)인지 궁금했다.
바로 공책에다가 휘갈겨 보았지만,
펜촉에 하얀 털이 낄 뿐이었다.
아부지, 이거 안나오는데요. 고장난 거 아입니꺼?
뭐라카노, 이리 주바라. 
하이고, 그거를 꺼꿀로 잡고 있으이 안 나오지.
아버지가 만년필을 잡자 마자 멋진 필체로
공책에 내 이름이 쓰여졌다.
나는 우와 하고 감탄하며
다시 건네주신 만년필을 들고
한동안 공책 한 면을 내 이름으로 가득 메울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물론 그 공책에 아버지같은 멋진 필체로 쓰인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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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만년필.
그는 영원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외로웠다.
친구를 사귈수 있었음에도 사귀지 않았다.
친구의 마지막 길목에서 웃어줄 용기가 없어서.
다만 그의 친구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넘쳤다
만년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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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만년동안 글만 써 와, 이제는 낡아빠진 만년필의 촉에. 그 세월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듯. 우리는 글을 쓰자는 꿈을 만년 동안이나 꾸었겠지. 이제는 우리 마음 속의 만년필을 하나 만들자. 꿈을 꾸기 위해 태어난 만년필은, 몇천, 몇만번의 꿈을 꾸곤 한대. 하지만 결국 돌아와 쓰게 되는 것은 만번의 글, 만번의 의미와 만번의 필사. 만년의 소설과 만년의 책. 만번의 시도와 구천 구백 구십 구 번의 실패. 그리고 마지막 단 한번의, 가장 의미있는 성공이었지. 만년필 만큼 꿈을 꾸고, 만년필만큼 실패하고, 만년필만큼 성공하자. 딱. 그정도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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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돈을 가져다주는 도깨비의 방망이가 될 수도 있고,
수만의 생명을 죽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
쓰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냐.
항상 문제는 쓰는 사람에게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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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스토리지 형식의 만년필이 나오기 이전에.
펜촉을 잉크병에 담갔다가 꺼내서 글을 쓰던 때.
나는 그 잠깐의 여유가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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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잉크는 늘 위험물질이었다.
아직 그 묵직한 손놀림의 매력을 몰랐을 때...
복어독처럼 아슬아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한 글쓰기의 맛을 몰랐을 때.
그 잉크는 만년필과 짝을 이루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구성으로 나와 만났다.
아무리 잘 다뤄도 손에  묻어나고 어쩌다 묻히지 않은 날에도 기어이 종이 위에라도 한 방울 떨구던 것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수제비로 연명하거나 그나마도 늘 아슬거리던 시절에도 집에 잉크와 원고지는 있었다.
나는 왜 글쓰기를 등한시 했을까...
이제와서 다시 글쓰기를 하자니 어렵고 막막하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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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은 누구를 위하여 울었나

그 소식이 들려온것은 그렇게 오래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좋은 소식이 들릴것이라고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을때. 뒤에서 각목을 치며 다가왔으니.
'야 물병아, 우리 이제 어쩌지.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사슴 아저씨 해고당했다는데.'
휴대전화의 진동소리. 날아온 문자 메시지. 조용히 바늘 소리만 내고 있는 시계 하나. 전형적인 소설을 쓸때 사용되는 세가지 소재다. 소설가인 물병은 주변의 상황을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장 누군가 이것을 옮긴다면 물병은 탁자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던졌다라고 전자기계라면 자판을 두드릴것이라고. 현실식이라면 종이에 만년필 먹 하나 들고 썼겠다고. 참 다행인지 우스움인지 이 소식 역시 지난번에 쓴 원고가 신춘문예에서 탈락한다음에 들여온 소식이었으니. 참으로 재미있지 아니한가?
물병은 탁자에서 일어나 자기 머리를 한번 때렸다. 그리고 주방에서 자기머리에 물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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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를 만나보니깐 손가락이 열개에요”

뭐랄까? 주황색 불빛에 반짝이는 동그란 어깨는 귀엽다. 어느 카페에 앉아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귀여운 어깨를 가진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지 고민해본다.

몰스킨 노트를 펼치고 라미 만년필을 들었다. ‘1’ 숫자를 쓰고 몇 분간 그 다음 글을 쓰지 못했다.
“아 키보드.. 키보드가 없으면 글이 안 나가네” 라고 작게 중얼 거리고 가방에서 ‘맥북 에어’를 꺼냈다. 전원 버튼을 넣고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바라봤다.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뭘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 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메모장을 하나 열었다.
우선 ‘작은거부터 사소한거부터, 목표는 크지만 목적은 작게, 한 걸음씩 걸어 나가자’ 라고 적었다.
드디어 생각났다.
1. 귀여운 어깨를 더 빛나게 해줄 ‘달콤한 향의 록시땅 바디크림’
2. 한달치 마실 수 있는 양의 ‘피지워터’
3. 일본 원서에 한국 번역본, 대만 해적판까지 좋아하는 만화책의 다국어 버전 컬렉션 증정
4. 그녀가 잘 다니는 음식점에 미리 돈을 지불하고 어깨가 귀여운 여자가 오면 계산하지 말고 그냥 보내라고 요청.
5. 아침에 먹을 빵 한 아름 증정
6. 취향에 맞는 음악 찾아서 아이팟에 집어넣고 무심하게 선물
7. 알프스에서 입을법한 원피스 선물
8. 같은 책 읽기(유대감 형성)
9. 경제기사 소리 내서 읽어주기(내 강점 부각)
‘후으’
어머니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해본 내가 뭐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에 이쯤 쓰자 한숨이 나왔다.
‘아냐 아냐 저번 명절에 다들 결혼하는 게 효도라고 말했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10. 데이트 할때 어떤 영화 볼지 쉽게 결정하도록 영화 주간지 정기구독 시켜주기
11. 방에서 집중하기 쉬운 조명 사주기
12. 숙면 취하라고 양키캔들 방에 두고 가기
13.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에 올라 캠핑하기
14. 하고 싶은 일 생기면 적극 응원해주기
14-1. 관련 기사 스크랩해서 전해 줌
15. 일 바쁘면 신용카드 주면서 어디서 굶지 말고 밥 먹고 다니라고 말함 여기서 키포인트는 ‘없는 돈에 주는 거니깐 잘 사용해’라고 이야기하는 것
반쯤 남아있는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이야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 써야할 게 더 많네 내가 미친놈인가’라고 중얼 거렸다.
혹시 모니터 너머 누가 내 글들을 보는 건 아닌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봤다.
“아 형 오셨어요!”
때마침 카페에서 보기로 한 형 두 분이 왔다.
“어 성석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전 잘 지내죠. 형 아메리카노죠? 제가 가지고 올게요.”
“응 그래 고마워”
형과 나는 공백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형 그러니깐 걔가 말은 하더라고요. 딱 문장 구조에 맞게 제 앞에서 말을 하는데 그게 진짜 좋았어요.”
“그랬어? 그래도 다른 애들도 있는데 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이 말했다.
“아니야, 형 성석이 이야기 들어보니깐 거의 ‘걔를 만나보니깐 눈이 두개 있더라고요, 손가락이 열개에요! 이건 기적이에요’ 이런 거랑 지금 똑같은데요? 이건 이미 활주로 탔는데 이미 유턴도 못 해”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이 쉽게 진단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볼이 빨개졌다.
“아..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말은 다 하는 건데…”
“그래도 몇 년 만이다. 네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앞에 앉은 형이 말했다.
“그 그죠? 저도 놀라다니깐요.”
몇 마디 대화에 다들 웃었다.
“형 얘는 지금 아무 이야기도 안 들려요. 몇 달 후에 돈 털리고 정신 황폐해지고 몸 상해야 그때 형 말이 맞았어요. 라고 말하면서 온다니깐요. 직접 경험해봐야지 모.. 형 우리도 그랬잖아요?” 옆에 앉은 형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 형들이 나 생각하는 건 알지만… 누가 몸에 좋다고 마약하나 나쁜 거 알면서도 순간이 좋으니깐 하는 거지.. 나는 메모장의 내용을 저장하고 조용히 맥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형 괜찮아요. 지금 제 삶은 이미 충분히 황폐하고 허무해요. 날 좋아하는지가 문제죠.”
나는 토마토 주스에 남은 얼음을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