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신의 오후

(1)
'사갈.' 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뱀과 전갈을 뜻한다.
아, 무자비하고 냉혹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붙이는 명사치고는 제법 오싹하다.
사갈. 뱀사에 전갈갈자가 들어간 낱말. 이 두글자가 아깝지않은 사람이 있다. 우리 회사의 명부장 같은 인간들에겐 사갈이라는 말도 아쉽다.
국내 굴지의 명문대학교에서 4년동안 경영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 취득후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명부장은 전공으로 마케팅이나 회계학따위가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고문하는법을 배운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다. 동료들과 팀장들의 일관된 주장과 명부장의 평소 행실을 근거로 내린 결론이다.
경력으로, 혈연관계로. 명백히 이사자리에 앉아야 할 인물이 왜 부장이겠는가.
사장의 종형제의 늦둥이 외동아들인 명부장은 그를 위해 비워둔 이사진 자리를 발로 뻥 까버리고 직원들의 고충을 몸소 느끼고. 실전에서 실무감각을 익히고 싶다며 공채를 통해 이력서를 제출했다.(잠깐만, 그런데도 왜 부장이냐고? 원래는 사원으로 입사하려던 그에게 사장이 겨우겨우 쥐어준 직함이다.)
이게 뭘 뜻하는걸까? 대체 그가 뭘 원하는걸까? 가만히 있어도 풍족한 인생을 누릴 명부장이 왜 굳이 삶의 회의감이 가득한 가시밭길로 들어오려는 걸까?
명부장이 입사하고 2주가 지난 어느 평화로운 봄날. 우린 깨닫고야 말았다.
직원들의 고충과 실무감각, 이 말뜻은 뱀과 전갈의 지옥이 강림했다는 뜻이었다. 부장 이하 사원들을 가까운 자리에서 갈구겠다는 깊은뜻이었던 것이다...
아아, 명부장이라고 쓰고 명이사님이라고 읽을 그 이름이여.
"최팀장."
명부장이 날 부른다. 그는 절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마치 조선시대 선비같다.
"최팀장. 들어와보세요."
아니다. 선비 보다는 옆으로 누워서 지랄맞게 뿌리를 뻗댄 매복치와 마주친 살기등등한 치과 의사에 가깝다. 명부장이 곧 나에게 행할 일도 그렇다.
'저기요? 의사선생님? 제 잇몸으로 뭘 하시는거죠? 잠깐만요...왜...턱뼈가 뽑힐거같죠? 선생...선생님? 제 입속에다 무슨짓을 하시는건가요??'
회사와 치과가 다른점은 아프면 팔을 들어올릴수도 없고, 무설탕 사탕도 없으며, 날 소중하게 대해달라고 어필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가장 큰 불행이 뭔지도 말해주겠다. 회사엔 마취주사가 없다. 웃음가스도.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대신 어른답게 처신한다. 명부장의 사무실로 향한다. 그러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다. 살아돌아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