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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

 그래, 팔 쪽에 붙어가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반창고 뿐이었던 거야

어디서 왔지?
[["synd.kr", 2], ["unknown", 22]]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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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비오는 날엔 비를
맞자
Feat.머리숱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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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사람들은 간혹 직감하고는 한다.
 아, 이 뒤는 없겠구나.
 하지만 곧 깨닫고는 한다.
 아직 나는 괜찮구나.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는다.
 그까짓거 어렵지 않지.
 자신감은 용기가 되고.
 용기는 만용이 된다.
 결국 낭떠러지는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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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 글 한줄

태어나서 글 한줄
학교 들어가서 글 한줄
친구를 만나서 글 한줄
지금은 글 세줄이지만
나중에는 더 쓸 수 있을거라며
나중에는 내 인생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다며
그렇게 큰 자신감을 보여줬지만
지금도 글 세줄로
초조해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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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해지다

나는 이 순간 다른 때와 달리 대담해져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오만하고 교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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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가면을 써 버렸어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아름다운 목소리만 보이려고 가면을 쓴
오페라의 유령처럼
안 좋은 이미지를 감추고 잘하는 모습만 보이려고
보이지 않는 가면을 써 버렸어
못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놀림받을 내 모습이 미워서
가면을 써 버렸어
자, 이제 그 가면을
벗어던질 차례야
답답한 가면 속에서 살지 마
못생긴 내 모습까지 좋아하는
멋있는 자신감을 키워 봐
남들이 뭐라 하든 뭐 어때?
나는 나인걸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잖아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될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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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원한다, 잊다

집이 있다.
내 방이 있다.
에이스 침대가 있다.
최신형 맥북이 있다.
에이스 침대에서 2017 최신형 맥북의 키보드를 칠 수 있다.
보드라운 담요가 있다.
심장이 작게 뛰고 있다.
다리가 있다.
손이 있다.
발바닥이 있다 
무릎을 접을 수 있다.
눈으로 모니터를 볼 수 있고,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칠 수 있고, 등을 기댈 수 있는 척추가 있다.
통장엔 돈이 있다.
당장 몰디브도 갈 수있다.
가서 뭐해..
얻고 싶다.
니 마음을
용서를
건강을
자신감을
지식을
사랑을
실력을
새로운 경험을
잊고 싶다.
너를 
흑역사를
슬픔을
마음을 
아픔을
이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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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비결

언제 새가 첫 번째 비행을 할 준비가 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새는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하늘을 날 때가 언제인지 다만 본능적으로 느낄 뿐이다.
 어린 새들은 어떻게 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다만 날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자신감은 성공이 뒤따를 것을 아는 순간까지 쌓인다.
 결국, 이런 경우에 실패는 나중에 치명적인 낙하가 아마도 일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날기를 배울 때, 새들은 어떤 교육을 받거나 시도를 연습하지 않지만, 그들은 거의 실패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려고 시도하든 간에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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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화장

여자는 특히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감성적으로도(특히 미적인 부분에서) 남자보다 무디지 않으며, 신체적으로도 여성호르몬 덕에 피부도 곱다. 그 때문인지 여자들은 언제나 아름다워지려 하는 듯하다.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여자 사회 속에서 너무나도 상향 평준화된 미적 기준 때문에 어느 날 화장을 못하기라도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알 없는 안경을 쓰기도 하며, 자존감이 여느 때보다 낮아지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에 대한 가치 부여가 상당히 높은 것이다. 때문에 공격적인 페미니스트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는 남자들에 대해 추하다고 비난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화장해야 하는 본인들의 수고는 살피지 않거나 살핀다 해도 불평 뿐인 무개선이다.
사람은 정말 외적인 아름다움이 전부일까?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사실 자연계에서는 무척이나 불평등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못생기게 태어날 수도, 예쁘게 태어날 수도 있다. 예쁘다면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이고 못생겼다면 운이 나쁜 것이다. 그 차이를 메꾸려고 화장한다 하지만, 예쁜 자들도 화장은 한다.
그렇다면 아예 화장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꾸며낸 얼굴로 자신감을 얻는 것보다, 그렇게 놀려대는 남자들의 근본 없는 자신감을 닮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여자들은 미를 극도로 추구한 결과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남성 뿐만이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바보같다.
이 부조리한 가치를 끝까지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내면을 사랑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화장하지 말자. 그것은 너무나도 귀찮으며, 부조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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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멈춰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슥슥 써내려갔던 것이 지금은 쓸려고 노력해봐도 도저히 써지지가 않는다.
어렸을 적엔 분명 넘쳐나는 이야기 홍수에서 보물찾기 하듯 잘도 꺼내다 썼었는데 왜 지금의 나는 손도 머리도 멈춰있는 것일까?
글에 미친것 처럼 글만 썼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게 확실해 주변에서도 나를 칭찬하는걸?'

이라고 자신감에 가득찼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더 성숙하고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것을 봤다. 하지만 지금의 글을 본다면 실력이 많이 퇴보했음을 뼈져리게 느끼고있다.
나는 무엇때문에 손이 멈춰있는 것이고 쓰고 싶은 이야기 하나 머리속에서 제대로 꺼내오질 못하는걸까.
나는 이 재능이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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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조금이라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그 아이의 주위를 서성이고, 
조금이라도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그 아이의 주위를 서성이고, 
조금이라도 다가가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마음에 그 아이의 주위를 서성거렸다.
한 걸음 다가서자니 그 아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지는 않을까, 그런 마음에 그 아이의 주위에서만 서성거렸다.
자신감 내어서 행동하다가 실수하기가 뻔히 반복되었기에 혹여나 괜히 그 아이에게 걸어갔다가 실수할까봐 그런 마음에그렇게 주위에서만, 멀리서만 서성거렸는데.
누가 그 아이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간지 오래였더라.
자리가 있었구나.
나는 딱 이 거리. 이 정도. 이 자리. 고작 이거에 불과했던 거다. 그렇게 아쉬운 짝사랑으로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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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정신

인디 정신이 뭔지는 몰라도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자유'와 '저항'이라는 두 낱말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와 '저항'이라고 꼭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언론·예술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만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꼭 사회운동가나 예술인·언론인·출판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유'와 '저항'은 사람들의 일상 도처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설령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자유로워야 한다. 저항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속엔 저항심을 가져야 한다. 비록 현실은 원치 않은 직장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할지라도, 비록 백수일지라도,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는 을일지라도, 끝끝내 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못났다고 욕하고 상처를 줄 일이 아니라 '난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언제든지 갑질에 맞설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참을 뿐이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비록 실천하지 못하는 '자유'와 '저항'이라도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어야 한다. 비루해보여도 그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마음 속의 인디 정신이라고 난 믿는다. 그리고 또 아나.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면 마음 속이 아니라 정말로 '인디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
2016.01.05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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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

단 한번의 실수만으로도 저 아래로 추락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능선과도 같은 길을 끊임없이 걸어왔다. 숨막히고 죽을것만 같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는가. 그런 회의감이 들어 그만 뛰어내리고 싶을 때, 그때 나를 잡아준 것은 친구도, 가족도 아닌 별이었다. 그냥 저 위에서 찬란하고 비추고 있는 별을보며 조금 더 해봐야 겠구나. 아직 끝을 보기에는 이를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다짐해오곤 했다.
참 재미있는것이 꿈이란 녀석과 저 별은 상당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득하고 손에 닿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없을만큼 저 멀리 있었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나는 몇번의 고비를 넘겨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마 셀 수 조차 없을것이다. 
내게 꿈이란 그런것이었다. 감히 내가 담아선 안되지만 그래도 숨쉬기 위해 필요한 도피처. 적어도 꿈을 꾸고 터무니 없고, 현실감은 없지만 1년뒤엔 이런것도 해야지. 내년엔 이렇게 해야겠다. 하며 계획을 세우는 동안엔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긴 이후에는 난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곤 했다.
효과 잘듣는 진통제. 현실에 지쳐 열병이 났을때 열을 내려주는 해열제. 그게 내겐 별과 꿈이었다.
사진을 찍고싶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단지 그 꿈을 꾼다는 것이 그렇게 큰 사치였을까.
어느순간부터 꿈을 입에 담는 것 조차 사치부리기 위한 핑계로, 투정으로 들린다며 지금은 해야 할 일에나 집중하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 버티고 있는가. 그런 회의감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밀려들어왔다.
지금 이것을 쓰는 이 순간조차도 말이다.
장녀, 첫째라는 자리는 내가 원한 자리가 아니었다. 내게 어울리는 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아직도 너무 어리고, 나약한것을 내 스스로가 더욱 잘 알고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런 일들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해야할 것 만큼이나 하고싶은것도 많았던 그 시간은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결국 지금 내게 남은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의 무게 뿐이었다.
왜 나는 가장도 아니고, 누군가의 부모도 아닌데 가정을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아주 기본적인 의문조차 불경시되었다. 너는 첫째가 되어서, 너는 누나가 되어서. 그동안 네가 지원받은걸 생각해봐. 따위의 말 밖에 돌아올 수 없음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그런 생각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 혹여 든다고 해도 입밖으로 내지 않으려 스스로의 입을 닫고 생각을 돌리곤 한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느냐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나도 살 수 있고, 못난 딸으로나마 남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왜 내가 그래야 하느냐 한다면 나는 가족도 없는 독한 계집 그것으로 남을 뿐일테니 말이다. 
한때는 요리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준비하던 그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저 그냥 그렇게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아, 그래도 내게 이정도는 투자해주시는구나. 못낫다 못낫다 하면서도 그래도 가족이니까 해주시는구나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 내 행복은 단  3개월만에 산산히 부숴지고 끝이 났지만.
아직도 엄마는 니가 의지박약이라 그래. 진득하게 하지도 못할거 왜 한다고 해서 돈이나 축내고. 하고 나를 원망하지만 내 귀엔 아직도 시험끝나고 엄마와 한 통화가 귀에 맴돈다.
시험 일주일전부터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어떻게든 더 익히려 연습해온 내 모습을 보고도 당신은 그런소리를 하고 싶었던걸까.
그냥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는것이 싫은건 아니었던건 아닐까? 그래도 내가 당신 자식인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려 애써도 어린 내게 그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니가 그럼 그렇지 뭐. 열심히 할 생각도 없으면서, 공부하기 싫으니 하겠다고 한거면서 뭘. 이제 그만하자'
그때 당시엔 당신이 참 원망스럽고,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잇는 당신의 첫마디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쓰렸다. 당신은 아는가, 아직도 나는 조금만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으면 니가 그럼 그렇지 뭐 하는 한숨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것을. 사실 지금도 원망스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다. 다만 원망의 대상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것은 스스로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돈' 그놈의 돈.
그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 그게 뭐라고 나는 지금까지 퀘퀘묵은 일들을 꺼내가며 눈물흘려야 할까. 그게 뭔데 나는 나를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가. 당신이 그랬어야만 했던 이유를 난 차라리 학원비에 돌리기로 했다. 빠듯한 형편에 돌리면 그래도 나는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당신을 조금이나마 덜 원망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난 가족이라는 끈을 붙잡고 살아야 했기에.
사실 지금도 별 다를건 없을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여전히 나는 꿈을 꿀 것이고, 소소한 희망을 가지고 살 것이다. 다만, 여전히 끊임없이 가정형편이라는 벽앞에 내려 놓아야 할 것이고, 돈이라는 놈 앞에 던져야 할 것이다.
꿈을 꾸는데 자격이 뭐가 필요하냐. 하는 말에 차마 동의할 수 없는것은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일것이다. 
살면서 나는 단 한번도 마음놓고 꿈을 꿔선 안된다는것을 알게 되었기에.
로또 1등같은 꿈은 단돈 5천원이나마 그것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꿀 수 있는 꿈이다.
그럴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내가 꿀 수 있는 꿈은 단 하나 뿐일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꿈이길. 이 지옥같은 꿈에서 깨어나 아늑한 내 침대에서 눈뜨길. 
자는동안 다 불타 사라지길.
내일 또 꿈을 꾸고 내일 또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죽고싶다고 말하며 살기위해 살 방도를 찾아 헤멜것이고,
돈이 싫다고 말하며 돈을 벌기위해, 또 그 돈을 쓰기위해 이곳 저곳을 헤멜것이다.
단지 그냥 그렇게 늘 비슷하게 돌아갈 뿐일테지만, 적어도 내일은 조금 더 후련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눈을 감을 수 있을것같다.
내가 누군지, 읽을 당신이 누구일지 서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오늘 여기에 내 가장 아픈구석을 내려놓고 가니, 당분간은 조금 더 나은 하루들로 지속되길, 그렇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