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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Dylan Ramsey / Unsplash>

어머니가 보여준 그건 조약돌처럼 반질거리는 밤이었어.

가을 낙엽 사이로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는 밤송이들과 그 안에 들어찬 열매들의 갈색 겉껍질, 노란 속살...아참,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우리 어머니는 늘 뜨겁게 익힌 밤을 이빨로 까주셨지.
어금니로 밤을 쪼갤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 아마 모를걸. 한글은 이 세상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는 말이 있지. 그런데 난 그 소리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모르겠어. 와작? 까득? 뿌득?
이번에도 말로 형연할 수 없는 소리가 나왔지.
반으로 쪼게 지고, 익은 속살에서 달큼한 냄새가 풍겼어. 안경으로 김이 올라왔지. 쥐고 있는 손은 뜨겁고, 짐승의 등짝 같은 껍질이 침으로 번들거렸어. 그런데 세상에, 스푼이 없는 거야! 식으면 맛이 없을 텐데... 난 걱정했지. 그리고 결국엔 손을 쓰기로 결심했어. 어쨌거나 수돗물은 나오니까, 손이 더러워지면 씻을 수 있잖아? 나는 손가락을 갈퀴처럼 만들어서 속을 파먹었어.

응? 뭐라고? 그냥 앞니로 긁어먹으면 된다고?






아직도 내가 밤 이야길 하는 것 같아?


어디서 왔지?
[["unknown", 54], ["synd.k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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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거리를 걷는다. 가로등이 없는 거리는 적막하다. 가로등 없는길을 지나 있는 밤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는 내 마음이 적막하다. 나 혼자 외로이 밤에 남겨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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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차다.
혼자 있으니
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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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조용하고 혼자라서 좋아.
근데 계속 밤이면 너무 외로우니까 아침이 있는 거지
새벽까지는 혼자를 마음껏 즐기다가 아침부터 슬슬 소란스러워져야 해 점심때쯤엔 맘껏 떠들고 사랑하고 소리지르고. 그게 슬슬 질릴 때쯤에 다시 밤이 오고 우리는 다시 차분하게 혼자로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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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의 무게

01
아침부터 냇가에 나갔던 B는 점심 무렵 옷을 흠뻑 적신 채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재주로 잡았는지 양동이에는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 한 마리와 우렁이 서너 마리가 헤엄 중이었다. 우리 이걸로 뭐 해먹자. 손질할 줄 모르잖아. 라면에 넣으면 어때. 엄청 비릴걸. 아 그렇겠네. 양동이에 담긴 민물처럼 맑고 심심한 대화가 오간 뒤 B는 씻으러 샤워장에, 나는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02
민박집 뒷마당을 지나 시멘트와 흙이 섞인 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자 금방 시내가 나왔다. 내를 둘러싼 자갈밭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각자각 소리를 냈다. 물 앞에 송그리고 앉아 우렁이 하나를 건져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우렁이는 혓바닥 같은 몸을 날름 내밀었다가 내 살에 닿자마자 놀라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쩌면 물 밖의 환한 햇빛에 놀란 걸지도 모른다.
03
문득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다. 언제나 붐비고 졸음 가득했던 전철 안에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강은 출퇴근길의 짧은 위안이었다.
유리 벽 너머 멀리 넘실거리던 한강과 여기 부지런히 물결치는 작은 냇물. 둘 다 똑같은 강물인데,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만 다르다. 
04
툭툭 털고 일어나 양동이를 쏟았다. 물고기는 얕은 곳에서 몇 번 첨벙거리다 이내 헤엄쳐 사라졌다. 정수리에 손을 올리자 따듯하게 데워진 한낮의 온도가 와 닿는다.
05
점심을 먹고 대청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넘치는 과즙이 팔을 타고 팔꿈치까지 흘러 뚝뚝 떨어졌다. 한철인 수박은 달아서 배가 부른데도 계속 손이 갔다.
하얀 속살만 남은 껍질을 치우고 끈끈해진 팔을 닦는데 B가 눈썹을 찌푸린다. 머리 울려. 귀에 물 들어간 거 아냐? B는 아이처럼 무구한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본다. 해답을 말해주길 기대하는 얼굴이었지만 나도 아는 게 별로 없다. 고개 기울이고 있어 봐. 이런다고 나오나? 더 들어가지는 않겠지. 드라이기로 말려 볼까. 아… 우리 드라이기 안 가져왔어.
06
길어지는 낮 시간만큼 생각도 늘어간다.
나는 이제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 끝없는 결재 서류와 보고서, 업무 일지, 일을 위한 일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은, 복잡한 체계와 절차만 가득한 지겨운 페이퍼 워크, 떨어지면 얼른 채워야 했던 탕비실의 커피, 종이컵, 복사기의 인쇄용지. 그리고 막내야, 멍청아, 저 좋을 대로 버릇없이 부르던 무례한 목소리와도.
과연 이 안도는 언제까지 갈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한정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매일 알람이 아닌 햇살에 눈이 부셔 깨는 달콤한 아침도 곧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될 것이다.
목 아프다, 그냥 누워 있을래. 내내 고개를 기울이고 있던 B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온전히 기댄 머리의 무게가 술렁이던 생각들을 누름돌처럼 지긋하게 눌렀다. 동그스름한 뒤통수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따듯한 물에 푹 잠긴 것 같은 안정감. 나에게 날을 세우거나 숨 막히게 짓누르지 않는 안전한 무게가 좋았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맴맴, 매미가 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주위의 나무들이 산들거리며 소낙비 같은 소리를 냈다.
벅찬,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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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널 생각하며 칼을 집어 들었다. 
지독히도 채워지지 않는 이 버석한 마른 갈증에, 
한없이, 끝없이 밀고 올라오는 나에 대한 깊은 모멸감과 자괴감에 얇은 커터칼날을 집어 들었다. 
바지를 내리곤 두 팔을 걷어 붙인다. 징그럽게도 새하얀 나의 허벅지가 보인다. 
더럽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흉 하나 없이 깨끗한 나의 맨살을 보니 더럽단 생각이 잔뜩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보기가 그렇다니 더럽힐 수 밖에. 
나는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조금씩 칼날을 움직였다. 새하얀 살이 붉게 물든다. 얇은 속살이 이따금씩 비친다. 바닥으로 피가 조금씩 뚝뚝 흘러내리며 떨어진다. 따갑다. 그닥 아프진 않았지만 조금씩 거슬리며 느껴지는 미세한 고통이 괴로웠다.
마치 심장이 옥죄여오는 듯한 그런 류의 고통이다. 
생살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마음 또한 아파왔다. 
너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나에게 푼다, 이건 상상이상으로 아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너를 생각하며 자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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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치즈 카레 식빵

 빵 좋아하니?
 갓 구운 식빵은 모락 모락 김이 나서 손으로 '아뜨아뜨' 하면서 겨우겨우 잡아 커다란 덩어리를 반으로 쭈욱 찢으면 바삭바삭해보이는 겉과 달리 하얗고 결대로 살살 찢어진 속살이 보이지. 이 찢어진 결 사이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날 때 한 입 베어물면 '바삭' 하면서 이빨이 들어가 혀로 부드러운 하얀 결들을 느낄 때 난 행복을 느껴. 이런 갓 구운 빵은 쨈도 필요없지
 그냥 식빵도 맛있는데 치즈 카레 식빵이라니! 난 치즈라면 무슨 치즈든 상관 없어. 꾸덕하게 녹아내리는 노오란 체다치즈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도 좋고 쭉쭉 늘어나서 쫄깃쫄깃한 짭쪼름한 모짜렐라는 말할 것도 없지! 하얗고 짭짤해서 샌드위치에 많이 들어가는 아메리카 치즈도 좋고 곰곰한 냄새에 달큰한 꿀이 어울리는 고르곤졸라 치즈도 좋아. 그래도 식빵에 들어 갈꺼면 역시 체다랑 모짜렐라가 좋겠지?
 카레 음~ 생각만 해도 살짝 매콤한 향신료가 코 끝과 혀 끝에 맴도는 듯해. 인도 카레는 뭘 먹어도 맛있지 매운맛 카레부터 향신료 강한 그린카레. 그리고 내용물로 치킨, 포크, 비프 다 좋지. 난에 치킨 커리 얹어서 한 입 먹으면 고소한 난 사이로 혀에 스며드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과 코를 찌르는 향신료향. 매우면 라씨 한모금 먹으면서 먹는 인도카레는 빠지면 한 동안 그것만 생각 난다니까. 하지만 그래도 카레는 집에서 당근(당근은 조금만. 헤헤)과 감자를 큼지막하게 썰고 단맛을 위한 양파 그리고 커다란 국거리용 돼지 고기를 넣고 볶다가 오뚜기 분말 카레 중간 매운맛을 넣고 푹 끓인게 맛있지. 밥 위에 얹어서 김치와 함께 먹으면 금새 뚝딱 한그릇 다 해버리지.
이 맛있는 것들의 조합이라니 너무 좋잖아! 바삭하고 폭신한 빵을 잘랐을 때 그 사이로 짭잘한 체다와 모짜렐라 그리고 익숙한 오뚜기 카레가 쏵악 흘러 내리며 코 끝에 향기가 화악 들어온다! 참지 못하고 아직 뜨거운 빵을 치즈 카레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매콤한 카레와 부드러운 치즈가 빵과 어우러져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맛이야! 한 개 다 먹으면 또 먹고 싶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