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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 수 없던 편지

22살에 내가 17살의 너에게.


안녕, 잘 지내니? 날씨가 오락가락해. 감기조심해, 준아. 아, 이런 흔한 말로 안부를 묻는 날 용서해.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추워진 날씨에 니가 좋아한다던 베이지 색 가디건을 여민 채, 그렇게 지내고있어.

너와 나는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만났어. 그것도 인터넷 소설 카페에서 말이야, 기억나니? 너는 카페에 몇 없는 남자였고 나는 카페에 흔한 여자였어. 사실 그때 그 카페,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런데도 흐릿한 기억 속에서 너와 함께 떠들고 연락하던 그 떨림이 아직 잊혀지지 않아. 

비록 우린 온라인에서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친구로 1년, 연인으론 1년 남짓한 세월을 함께했어. 참 우스웠지? 온라인에서 어떻게 우린 애정을 속삭였을까.

당연한 수순이지만 우린 헤어졌어. 얼굴 한번 못 본채, 그저 문자와 전화로 그것도 요금이 떨어지면 네이트온으로 밖에 연락할 수 없었던 우리가, 참으로 애틋하게 서롤 보냈잖아.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렸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지자고, 그렇게 끝이났잖아.

난 우리가 완전히 연락할 수 없다는게 무슨 의민지 몰랐어. 막상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보니 갑자기 무언가 와닿았어. 동시에 왤까, 미친듯이 니가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어, 나는. 

18살 겨울, 난 아직도 기억나. 나는 카톡에 뜨는 낯익은 니 이름에 한 사나흘을 망설이다 먼저 연락을 했어. 우린 다시 연락만 하는 사이가 됐고 나는 홀린듯 니게 매달렸지만 넌 거절했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했는데 너한테 두어번 차이니깐 연락하지 못했어. 너 역시 두어번은 형식적으로 연락을 해줬지만 그 다음은 없었고. 사실은 이후에도 연락하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 너 여자친구 생겼잖아. 

그래, 좋은 대학에 좋은 여자친구가 생겨버렸으니 내 자린 당연하게도 없지. 웃긴다, 그치.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우리가 너의 체온도 모르는 내가 널 이토록 아끼고 그리워하니. 

지금 나도 대학교 다녀. 너보다 좋은 학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 나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기억나? 

나 있지, 비록 작은 신생 사이트지만 연재제의도 들어왔다? 있지, 준아. 너는 내 첫사랑이고 내 학창시절의 반절을 가진 사람이야. 고맙고 또 고마워. 이 말 꼭 해주고 싶었어. 잘 지내고 지금 여자친구랑 오래가. 고마워.

어디서 왔지?
[["synd.kr", 26], ["unknown",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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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해

너와나 행복한 시간만이 남은거야
가끔가다 우리 싸울때도 있겠지만
우린 언제나 즐거울 수 있을거야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니~Yeah~
울아들이 아빠 노래 듣고 싶다며 차에서 찾아준 cd~
그전날도 애앞에서 싸워서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와~아빠말이 맞네!싸울때도 있지만 엄마아빠는
서로 사랑해^^!"그랬더니 울아들이(1학년)
"오~!진짜네!아빠가 엄마한테 쓴건가봐!"
그땐 엄마가 여자친구가 아니였단다..할수 없어서
"그런가?"했는데 씁습하네~
그나저나 사랑은 엄청 하지만 드럽게 마니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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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1년간의 짝사랑은 허무하게 끝났다.
대화는 질문하고 답하는게 끝이다.
1년동안 하교할때 너랑 같은 길을 갔다.
조금이나마 네가 날 알아봐주길 빌며...의미는 없었지만 좋았다 하교하면서 네 집을 알았고 등교시간도 알게되었다.그렇게 매일 널 따라 등하교를 하였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널 쫓아가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 우린 2학기가 끝나고 선배님들의 졸업날이 되었다.2학년 마지막날 신호등을 건너고 있을때 혼자가는 널 봤다.같이 가고싶었다.하지만 내 몸은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문득 드는 생각이 3학년때는 서로 같은반이 되지 않는이상은 만날일이 없기에 널 좋아하는 마음을 접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마지막으로 고개돌려 널 보며 중얼거린 말
"안녕"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끝났다.
~외전~
설렘과두려움등 복잡한 심정으로 반배정표를 봤다.
기가차고 어이없다.거기엔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잡다가 저 멀리 던질뻔 했다..예전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반배정 정하신 분께 달려가서 넙죽 절을 했을것이다.다음날 정해진 반으로 갔다.난 3반 문을열고 칠판쪽으로 걸어갔다.자리랑 앞으로 내 번호를 봐야하기 때문이다.2분단 맨끝,번호는 25번이다.작년에는 24번이었는데..그리고 걔는 23번..애매모호한 기분으로 자리에 갔다.아직 텅텅 빈거 보니 늦잠이거나 친구들이랑 같이 오는거겠지
5분정도 폰하다가 주변이 시끌시끌 해졌다.'어느새 이렇게 많이 왔지?'란 생각하다가 내 앞에 앉은 남자애가 너무나도 익숙했다.바로 그애다.내가 좋아했던 남자애!신이 날 버렸어.엉엉 혼자 속으로 좌절하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셨다.간단한 인사하고 청소를 시켰다.역시 첫날은 청소인가..궁시렁궁시렁 하다가 빗자루 하나밖에 없었다.쓰레받이는 전멸이오 빗자루는 다털리고 하나남은 짧은 빗자루...그거라도 들고 3분단을 쓱쓱 쓸었다.다쓸고 쓰레받이 빌리러 1분단에 갔다오는데 그애가 쓸어주고 있었다.고맙단 말할려다가 그애는 무심하게 가버렸다...끝내 말못하고 청소시간은 끝났다.몇번이고 '고마워'를 머릿속으로 외치고 있는 내 맘도 모르는 나쁜자식..결국 고맙단 말도 못하고 하교하였다.그렇게 잊혀갔다."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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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혼자만의 머릿 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불현듯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서 뱉어내는 얕은 이야기들이 아닌
조금은 더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사람들 사이에서 밝게 웃고 떠들다가  
문득 
혼자가 되었을 때
우린 정말 친했을까? 
우린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많이 안다는 것이 우리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주보고 웃고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까? 
시간이 흐르면
스쳐지나는 바람처럼 그렇게 잊혀지는 관계들은 아니었을까? 
이런 상념들로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조용히 어둠이 내리고 
바람에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오늘 같은 날은
진부하지만 조금은 깊은 그런 얘기들로
빈 마음들을 채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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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그런 햇살 가득한 날 온갖 날벌레 날개소리
그 와중에 가장 돋보이던 날개짓 하나 거기에 끌려
동네 개새끼들이 일제히 날아 올랐다.

어쩌면 벌의 지루한 소리보다 쇠파리의
잔뜩 흥분한 윽박지름보다 짐짓 양반스러운 물잠자리의 그것보다 우린
보이지도 않는 온 몸의 사위를 좋나했나보다.

모든 잡소리가 뒤를 돌아보고 어쩌면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젓가락을 손에 드는 노인네의 부질없는 가락질에 스스로를 묻고 싶은
그런 펄럭임에 녹아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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קודם(첫번째)

Cindy박지은의 시(詩 ),노래
::부제::קודם(첫번째)
지금 그대가 빛을 내는 시간일텐데
왜 나는 그대
보이지 않을까요
혹시 그대는
구름뒤에서 나를 기다리나요?
그렇게 믿고
구름걷어봤어요
그대의 밤이 깊어져만 간다면
나에게 다가와 주시겠어요?
그대의 달빛이 되어
아프다고 하여도
그대가 나에게
비추어주었던
그 별빛을
내가 그대에게
뿌려도 되어요?
안개가 다가와서
우리들의 빛을 훔쳐가고
그들이
아무리 함부로
우리 귀에 속삭인다 하여도
우린
서로의 빛이되어
다시 매일 새벽
빛을 머금고
미소를 짓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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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이런 시대에도 난민이 있다는게 넌 믿겨져? 
그래, 난만이 있다고 치자. 그런 난민이 어떤 국가에서도 받여들여지지 못하고 그 조그만 쪽배가 정원초과된 상태로 바다위에 있다가 피로파괴가 되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이런 사실이 믿어져?
좀 더 생각하면, 우린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어, 아니, 이미 난민일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런 난민에 대해, 주위 빈민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되려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건 어쩌면 우리가 태생적으로 잘못된게 아닐까, 라고 지금 방금 생각했다가 바꿨어. 교육이 엿같은거야. 교육에서 누구도 우리에게 궁휼하게 여김을 가르치지 않았거든. 적어도, 우린 내가 밥을 세끼 먹을때 두끼 먹는 사람을 걱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밥 한 끼를 한 숟가락씩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적어도, 그런 수고에 대해서는 '수고했어' '애썼어' 라는 표현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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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다니는 동선이 싫다.
세브란스 병원과 장례식장, 요양병원. 그 길 위를 덜리는 버스. 그날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이 길을 이젠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때 내가 하던 짓이라곤, 응급요원들에게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보여주는 것 뿐.
'아버지가 말기암인데, 당신께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그 문자를 보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던 응급요원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난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결국, 아버지는 세브란스 응급실에서 한기에 내내 떨고 계셨고, 난 기껏해야 모실 수 있는 근처 병실이 있는 요양 병원을 알아보고 아버지께 내 외투를 덮어드리는 짓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그 말씀대로 결국, 살아서는 집에 못가시고, 벽제 화장터를 거쳐 한 줌의 유골로 큰 손자 품에 안겨 집에 잠시 들리셨다.
이 길이 싫지만, 그래도 다녀야한다. 매일, 이 길을 다니며 이 생각을 늘 하겠지. 나도, 이젠 늘 집에서 나올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각오를 하게 된다. 우린,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생을 마치는 그런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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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택스 11월 11일 장애관련 팝업

어제 (11월 10일) 밑도 끝도 없는 홈택스의 전자세금계산서 장애로 1시간+ 새로고침을 하며 누군가에게 "잠시 후"란 이것보다 몇배 더 긴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시간의 상대성을 깨닫고 결단력있게 관련업무를 오늘로(11월 11일) 미뤄놨지.
오전 중 처리하려고 홈택스에 접속해보니 "현재 ... 원할하지 못해 현재 수정 조치 중에 있습니다".
헛!?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살펴보니 메시지가 작성 시점인 어제의 "현재".
연 이틀 짜증나는 문서!
단어를 훑으며 시제를 파악해야하는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도 웃기고, 
어제 장애로 인해 매우 불편했고 대충 대충 작성한 장애 처리 문구로 더욱 짜증났었는데 이거 설마 아무 언급도 없이 넘어가는거냐? 공지에도 아무 글도 없고 심지어 장애 사실조차 안남아있네....
이거 혹시... 공지로 작성하면 기록이 남으니까 항상 팝업으로 대충 떼우고 있었던거 아녀??
그러고보니 올해 초 시스템 도입 이후 지금까지 장애나 사고에 대한 고지가 하나도 없구나?
없어도 되는거 맞나?
이상한거 같은데?
다른 정부 시스템과 서비스도 이렇게 문제나 장애에 대해서 공개 기록없이 운영되고 있나?

거지같은 팝업 문구 캡처나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이거 좀 알아보고 싶어지네.

하지만 결론은 여전히 나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어.. 돈내고 쓰는거면 당장 갈아치웠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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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쉬워서

20살에 너에게 모든걸 걸어보겠노라 생각했고
21살에 예쁜 딸을 낳았지 그때 혼인신고를 하지말았어야했다 아이를보고 예뻐서 어쩔지 몰라하던 너를보고 나한텐없었던 아빠를 잘해줄것같았던마음에
20대에 절반을 너에게  줬다 엄마없이 자란 너 에게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수있을까 우리엄마가 나한테준 내림 사랑을 너와 내새끼한테 다 퍼부었다  직장상사 때문에 화난다며 다짜고짜 일그만두고 집에온날 내새끼굶길까 걱정됬지만 밖에서 눈치볼까 
  기죽어서 집에들어 오진않을까 화도내지않고 돌갓지난애기 어린이집 맡기고 난  12시간 일했어  열심히 일하는 와이프 보고있으면  행여나 마음고쳐먹을까 하는 마음에 죽기살기로 일했다 남들이 여자인생평생에 한번할  결혼식 안하냐 묻는말에도  행여나 결혼식도 못해주는 형편에 남에집 귀한딸 대려갔냐는소리 너듣게하기싫어서 따분한결혼식 싫다고 웃으며  그돈으로 너랑애기랑 애기크면 해외여행다닐꺼다 큰소리쳤던 나였다, 너랑 연애하고 결혼하고 너를안지 어느덧8년이 다되가는  시점에 월급이라며 가져온돈 1년도 받지못했고 아픈 너네아버지 병수발까지 들고 미성년자 니동생 내동생보다 더 알뜰히 챙겼다
돈한푼안벌어오는니가 무슨베짱에 주점이나 드나들며 백만원짜리양주 마셨는지 모르겠고 
니새끼랑 다녀야할 좋은곳예쁜곳 술집여자들이랑 드나들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혼을하고온 날  내새끼한테 아빠뺏은게 미안해 펑펑울었고 그래도 그간든정에 빈자리가 너무느껴져 
잘못된선택을 했나 후회도했다  술먹고들어오면 집에물건이 다부서져도  나는 행여나 그러다 니손 다치진않을까 걱정하던 그런병신이였으니깐  보통바람나면 이혼해달라 빌어도 시원찮은데 너는 내가 하고싶다는 이혼조차 막았고 술만안먹으면 그래도 아빠노릇 남편노릇 하는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어린나이에 결혼해도 행복하게 사는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너에게 인생을 버리지말라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년간 이혼문제로 씨름을했고 위자료한푼받지못하고 합의이혼으로 우린 끝났다 딱 한달짜리 판결
한달만에 몇년간에 생활이 판단되는게 무서워 숨기만했는데 이혼하고 딱 6개월이지난지금 그시간들이 지금은 어찌나 아깝고 화가나는지 모르겠다 제일 하고싶은게 놀고싶은게 그리고 제일용감하고 예쁠 나이 겁이없고 내자신만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버거울 이십대에초반을 전부 너에게 주고 이십대에 후반에 한발짝 다가선 지금 너에게 하고싶은말이야
양육비 주기싫어 잠수탄 너란걸 알기에 
아가씨에 나보다 애기엄마인 나로 이야기하자면
넌 정말불쌍하고  지독하게도 비참하게 살았으면좋겠어 니가너무불쌍해서 내가 내아이에 아빠인 너를 욕 하지않고 살수있도록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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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자와 구직자...그리고 잡담

나는 여지껏 일을 하면서 두군데의 직장에서
관리직이였다.
하나는 공장이고..
하나는 사무직이였는데..
내가 구인자가 되었을때 힘든점은..
"이 사람을 믿고 나와 손발을 맞출수 있을까..."
였다.
공장 구인자였을때..
난 일을 하면 효율적이면서 편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편이다.
물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또 있을것인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나와서 성공했던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주변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해라"가 주된 안좋은 시선이였다.
나는 그게 왜 잔머리라고 하는지 이해 할수 없었다.
왜 효율적이며 빠르고 편한 방법을 찾는게 잔머리 굴리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저 조건에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건 당연한 조건이였다.
저런 문제는 노가다(현장) 생활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쪽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30~40년 생활에 찌들어 
뭔가 바꿔볼 생각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30년전에 하던 방법을 지금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몇몇가지들을 바꿔갈때마다 그 사람들은 놀라움과 칭찬을 하기커녕
쓸때 없는 짓이라며 핀박했다.
오히려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게 힘들었다.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데.. 그리고 편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준 사람이 한 공장 사장님이셨다.
10명 안팍의 작은 공장이였지만
우리는 많은걸 만들어냈다.
물론 그쪽 계통이 신소재 쪽이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같은 계통 공장들에게는 없는 경쟁력을..
우리는 가졌다..
그리고 초보자들도 쉽고 빠르게 익힐수 있는 것들도 만들었다.
직접 만들수 없는 제단기계들은 3천만원을 들여서 
기계제작자들과 상담과 연구를 통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생산속도는 40프로가 빨라졌다.
그리고 직관제단이라는 부분은 1개월만 배워도 할수있는
간단한 업무가 되버렸다.(그 전에는 최소 6개월을 배워야지..그리고 체력이 따라가줘야지만 할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은 같은 계통 다른 공장들이 한달 2000헤베를 생산할때 우리는 6000헤베 이상을 생산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원했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수 있는사람들..
그때 내 나이 26~27살이라.. 더 창의적이였을수도 있지만..
많은 면접을 보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있었다.
온지 이틀만에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
5달을 넘게 가르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생산라인에 혼자 냅둘수 없는 사람.
나쁜사람만 있지 않았다.
오자마자 1개월만에 남들 2인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리지만 꼬박꼬박 차고 올라오는 사람.
불만은 많지만 일은 똑바로 하는사람.
그렇게 팀을 싹 갈아 엎으면서 수십명의 면접을 봤는데..
그러다보니 행동과 얼굴 말투 등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아주 대충 파악되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잘 활용하고있고....
판매직에 있을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직자일때..
일을 가려본적은 없다.
딱히 내가 일을 가리는거라면 
영업직이다. 
판매직도 하는데 이상하게 보험같은 영업직은 못하겠더라..
일만 가르쳐 주면 항상 열심히 했다.
기술을 가르쳐주면 밤마다 연습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쉬지도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돈을 띠어먹는사장도 있었고..
수당까진 안바래도 야간까지 일하면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사장도 있었고..
쉬는날에 인력이 부족한 바람에 다른사람이 힘들까 아침에 출근해 기초적인걸 잡아두고 퇴근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하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쉬는날 너무 피곤해 하루 푹 쉬었더니..
"ㅇㅇ이 요즘 게을러졌어~" 라더라...
난 쉬는날 일하는게 싫다.
쉬는날에 내가 일하는건 다른 직원들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내 쉬는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족과의 시간을 내가 방해 한거일지도 모른다.
이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얹혀
내 어깨위로 지나가는 세월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도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더 못사는 최초의 세대란다.
20대 30대의 소득증가율과 월평균 가계지출이 최초로 -로 돌아섰다.
2003년 이후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란다.
N포 세대란다.
3포세대가 4포세대가 되고 그게 결국 N포세대가 되버렸다.
헬조선,지옥불반도,노오오오력,흙수저,금수저
별의 별 말도 다 생겼다.
그저 웃고만 있기엔 참 씁쓸한 단어들이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더라..
사내결혼으로 아이를 가진 부부를 퇴사시킨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한 대기업은 
사람을 분리수거도 못하는 쓰레기로 취급중이다..
뭐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위해..
발로 뛰는 대기업들도 있다...있긴...있다..
N포세대에 맞춰 30대인 나도
포기한게 많다....
씁쓸하지만...어쩌겠어..
현실인데..
이제 여기서 몸까지 아프면 
정말 한강물에 뛰는 수밖에 없다.
나도 탈조선을 하고 싶었다..
그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할수 있으면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의 사람차별이나...
뭐 별 다를건 없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금방 잊는다' 다.
분노하고 잊지 말자고 하고 바꿔가자고 하고선..
어느새 금붕어처럼 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진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리 되더라...
라는 핑계같지도 않는 핑계를 늘어본다..
그래도 하나 잊지 않는다.
선거는 꼭 하자.
뽑을 놈이 없어도 무효표라도 던지자.
난 '무효표를 던질빠에야 그냥 안하는게 낫지'라고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다행인건지... 
당연한게 이제 시작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20~30대에서 투표를 한다는 사람들
비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한다.
그 전에 일하던곳에선
투표날에 일을 시켰다.
대통령 선거 날이였는데.......
휴가도 못 쓰게하고 일하게 했다.
먹고 살기위해 별수 없이 일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
사전투표라도 했어야 했는데..
설마 투표날 투표하러 가지도 못하게 할줄은...
군대에서도 느끼고 조금한 구멍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두서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부터 
포장을 뜯어서 당당하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산대에 줄서있는게 불만이라 물건을 다 던지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우린 식당도 아니고 그냥 물건 파는곳인데...)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달라고 20분이 넘게 때쓰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항상 간식을 사다 주시는분도 계시고..
힘들까봐 비타 음료 같은걸 가져다 주시는분..
야채를 사갔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반찬으로 먹으라고 주시는분들도..
그냥 존댓말만 써줘도 감사했다.
일상이 반말 듣는거라..
야, 어이 , 거기 , 안들려?, 얼마냐고.. , 아 왜 안되는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도 들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은
전부 손님에게 별 다른걸 원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도 않았다.
먹을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사람 같은 대우만 바랬는데..
본인 아들 , 딸들에게도 저러나 싶다..
사회가 병들어가며..
사람들이 병들었다...
내 탓이 아닌것도 내 탓을 하고...
내 탓인걸 남탓하고..
본인들의 욕심만 채웠다.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한다..
"그냥 전쟁나서 핵폭탄이나 떨어졌으면..."
실제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감히 생각해본다.
구인도 구직도 힘든 세상이다.
양쪽 입장에 전부 있어봐서
더더욱 실감한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보니
더더더더더더욱 실감한다.
공부 못했고 능력 없으면
개처럼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조만간에  난
기계도 아닌...
개처럼...노예처럼 일하러 갈 것이다.
하루에 15시간의 일이다.
쉬는시간도...밥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앉아있는 시간은 밥먹는 시간 뿐이다.
아마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을 다 합쳐서 15시간중 1시간쯤 될거 같다..
손님들 중에 정말 궁금해서인지...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지나가면서 봐도 쉬는사람도 없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으니
궁금할법도 하겠지...
솔직히 말해준다 200번다고.
다들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긴다.
진짠데..............
결국 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같은 일상의 반복을 하러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과거가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고...
그게 나의 최선이니까..
개라도 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 하지 않는다.
조만간 또 이런 나의 투덜투덜
일기장을 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 
웃으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