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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Fernanda Rodríguez / Unsplash>

붉은,


어둠만이 가득한 방 안에 붉은 구슬이 도르르.

무뎌진 칼에서는 피가 뚝 뚝 흐르고,

뚝뚝 흐르는 피가 황홀하고,

수령에서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요.


그은 손목이 아릿하게 아파요.

나를 정신병자라 불러도 좋아요.

하지만 아픔만이 나를 살아있도록 해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줘요.

나는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살려주세요.


어디서 왔지?
[["unknown", 29], ["synd.k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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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 아이가 내게 오른쪽 손목을 보여주며 말해왔던 일이 있었다. 미지근한 물 속에 손목까지 담가서 커터 날로 그으면 아프지 않고 나른한 기분이 든다고. 너는 특별함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흔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너같은 아이는 흔하기만 하다. 그 말을 하고 있는 네 표정이 꽤나 우쭐해 있는 것 같아서, 이상한 반발심이 들어 나는 네 말을 일부러 흘려 들었다.
나는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피를 흘리는 이야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선명한 것이 싫다. 피처럼 붉고 끈적여 선명하게 아픔을 드러내는 주제가 싫다. 아픔은 눈밭 위에 한 점 뿐이면 족한데 온통 붉어서 속이 메스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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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안써

설령 당신이 나의 손목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나는 경멸과 혐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더라도
나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당신이 죽고싶다는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나에게 연민으로 만든 작은 쿠키를 던져주더라도
나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당신이 죽고싶다는 나에게
죽어선 안된다며 네 몸을 상처낼 용기로 살아가라
이리 말하더라도
나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당신이 신경쓰지 않는 나에게
정신병자라 욕하더라도
나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경안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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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네 눈을 바라보기 부끄러워서 시선을 낮췄더니           네 여린 손목을 감싸고 있던 손목시계가 보였다
화려하지도 그렇게 빛나지도 않았지만 난 그시계가 좋았다
그 손목시계는 마치 너같았다
난 그런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그 손목시계를 찬 네 모습마저 사랑하게 되었

아니 어쩌면 단순히 너라서 좋은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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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시간이 많은 날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지고
긋고
또 긋고
내 손목을 긋지만
상처는 내 가슴에 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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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눈을 뭉쳤다 흐린 색이었다 손을 타니 검어지고 흘러내렸다 글씨가 되었다
과일을 올려두었다 종일 빛이 들었다
어느 날 물을 쏟았다 주름진 페이지가 늘어서 책이 두꺼워졌다
사소한 먼지가 쌓였다 주로 내가 들르던 거리였다
다른 사람을 초대하지 못해서
손목을 벅벅 지웠다
문을 닫고 나가니 책상위가 서늘해졌다 곧 눈이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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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어두운 밤 눈물은 그치지 않고
나에게 농락당하는 나란 사람은
칼을 쥐었다 놓았다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고
밤에 산책도 나가 보고 달달한 간식도 먹어 보고
뛰어도 보고 누워도 보고
소리를 질러도 보고 종이를 찢어도 보고
그래도 나의 만행은 그치지 않아
잿빛 달을 쳐다보며 붉은 선혈을 보아야
비로소 심장이 안정을 느낀다
오늘 밤 나의 손목에는 흔적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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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나는 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겁쟁이라 죽을 수도 없어요.
나의 얇디얇은 손목, 생명줄에 칼로 흠집을 낼 뿐이에요.
어딘가 모르게 칙칙한 붉은 구슬이 선을 따라 도르르 굴러가요.
구슬이 굴러간 자리에는 얇디얇은 자국이 남아요.
나는 이것에서 왠지 모를 아름다움을 느껴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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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뼈시린 영하의 추운 겨울
이른시 집나서 입김을 불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내 입김에
얼어붙은 내 손을 녹여보았다.
얼어 둔해진 관절 마디는
다시 살아 움직이고
얼어 붙은 뼈속 골수는
다시 살아 흐른다.
생명이라도 얻은 마냥
 다시 움직이는 나의 손
고드름 속 거미
고장난 자판기
얼어 죽은 새끼 고양이
나의 입김으로 얼어붙은 존재들을
따스히 녹여주어 생명을 줄 순 없나
나의 입김으로 얼어붙은 세상의
부서질 추위를 녹여 줄 순 없나
없다. 
내 입김이 흩어지며
만들어지는 단어
내가 숨이 멎도록 숨결을 뱉아도
얼어붙은 생명은 돌아올 수 없다.
얼어붙은 세상은 돌이킬 수 없다.
뼈시린 영하의 추운 겨울
늦은시 집에서 심장을 뚫는다.
검붉게 흘러나오는 따뜻한 선혈에
얼어붙은 내 몸을 담궈보았다.
피가 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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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녹슨 커터칼은 걱정과 달리 잘 들어 얇은 살갗을 갈라냈다. 할 일을 끝낸 커터칼은 피범벅인 채 바닥에 내팽겨쳐진다. 붉은, 그러나 조금은 어두운 적색의 피가 갈라낸 피부 틈으로 차올라 손목을 타고 뚝 바닥에 떨어졌다. 공기에 노출되어 있는 그 상처부위가 따가웠다. 아프다. 찡그려니던 표정도 잠시, 입꼬리는 금방 호선을 그려내며 슥 올라간다. 아프네. 고개를 뒤로젖혀 조용히 미소짓는 눈꺼풀에선 안도감에 젖은 눈물이 한줄기 스륵 떨어졌다. 오늘도 난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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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흐린하늘에서 한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억수같이 비를 퍼부었다. 당연하게도 가방안에는 우산이 없었다. 온몸이 아플정도로 내리는 장대비였다. 비를 피할만한 곳으로 가거나 우산을 사야했지만 그냥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싶었다.
기어이 당신을 밀어내고 오는 길이였다.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비에 쫄딱 젖은 청승맞은 모습으로 터덜터덜 인도를 걸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실성했거나 실연당한 여자로 보일게 분명했다. 연인에게 무정한 말들을 쏟아내고 결별을 선언한 여자로 보이진 않을거다. 독하도록 멀쩡한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끝내고 싶었는데, 기상청 예보라는 의외의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세금도둑놈들.
나는 완벽하게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공주님과 왕자님은 그 이후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같은 끝맺음은 어쩐지 의심스럽고 비현실적이다. 슬리핑뷰티와 왕자님도 백년의 세대차이와 정치적 견해로 언성을 제법 높였을 것이다.
나는 온전한 끝을 바란다.
이를테면 마왕을 물리친 용사가 왕국으로 돌아와 공주와 결혼하고, 몇십년후 장성한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말이다. 하지만 용사의 경우 불치병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건강하고, 행복했고, 공주와 결혼해서 잘 살다가 정정한 모습으로 늙어갔을것이다.
나에겐 늙을기회가 없다. 나는, 이제 얼마 못산다.
나는 끝을 바란다.
병들어서 누워있는 내 곁에서 내 불행에 가슴 아파할 가족이나 연인은 필요없다. 동정이 싫어서가 아니다. 내 아픔에 더 큰 아픔을 느낄 그들을 보는게 괴롭다. 두렵다.
고고하게 혼자 죽을생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렇게도 볼 수 있을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정말 그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뭐가 좋아서 혼자 거울을 보며 이별연습을 했을까. 사랑해서 떠나보낸다는 말은 다 개소리다. 이건 그냥 내 이기심에서 비롯된거다. 당신이 내 병든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걸 보고싶지않다.
그래, 이건 그냥 전부 내 욕심이다. 내 탓이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드라마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건 이 세상에 없다. 어느집이나 적당히 불행하고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가 끝날때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은 나에게 구역질 이외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이 싫은게 아니다. 단지 조금 작위적이라 역겨울뿐이지.
그러니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오는 발소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미친여자를 구경하려는 사람이거나 범죄자거나 조금 동정심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일리가 없다.
"청승맞게 뭐하는거야?"
당신이여선 안된다.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
나는 무시한다.
"무시하지 말고."
"누구시죠?"
당신이 피실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모르는 사람인척한다 이거지?"
"그런척이 아니라 사실이거든요?"
"아닌데."
"우리 이제 사귀는 사이 아니거든요?"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완전 타인이라구요. 완전 생면부지의 타인."
"아, 정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당신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이 손 놓으시죠. 성추행범으로 경찰서에 신고하기전에."
"나 좀 봐."
"손 놓으라고."
"알았어. 그럼 도망가지도 말고 헤어지자고 하지도 말자."
나는 당신을 돌아본다. 의아하게도 당신은 울고 있었다. 목소리에선 한점의 떨림도 없었는데 처량한 두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헤어졌어."
내 말을 듣고있는 당신의 눈썹이 느른하게 풀려있는게 보이지만 나는 안다. 당신이 괴로워 하고 있다는걸 안다.
"알아."
"난 도망가지도 않았고."
"알아. 그것도."
"그런데 왜 따라온거야?"
"나도 몰라."
당신은 고개를 숙인채 계속 내손을 붙잡고있다. 나도 당신의 손을 마주 잡고있다.
"나도 모르겠어."
"나쁜사람이 되고싶지않아."
내 목소리에 당신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말했지. 나 이제 오래 못산다고."
"들었어."
"그리고 말했잖아. 나중되서 후회하지말고, 날 원망하지도 말게 우리 그만 하자고."
"응."
"그냥 적당히 끝내고 서로 갈길 가자고."
당신이 돌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래, 나는 이쪽으로 가고싶어."
미친새끼. 생리적인 욕설이 치밀어 올랐다.
"돌았구나."
"널 따라가는게 아니라. 그냥 이쪽길로 같이 가고싶은거야."
"완전 미친놈."
"그러다 네가 잠시 쉬게되면, 나는 다른 예쁜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을꺼야."
"개새끼야!!!"
내 주먹질을 맞으면서도 당신은 태연히 말한다.
"자식들이 손자, 손녀 낳고 내가 나이먹고 늙으면. 그럼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되잖아."
"또라이새끼!"
당신은 발버둥치는 나를 껴안는다. 나는 당신의 정강이를 향해 발길질하다가 멈춘다.
"그러니까, 조금만. 응?"
"......"
"조금만 같이 있자 우리."
당신이 울고있다. 이제는 구태여 울음소리를 참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당신을 마주 껴안는다. 나는 당신의 젖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우린 행복하지 못할거야."
"응, 그래도 괜찮아."
당신은 날 껴안은채 계속 괜찮을거라 말했다.
모두 다 괜찮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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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이제 더 이상 나의 반쯤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졌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마음의 병이라고 흔히 말한다. 마음의 병.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전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나을 수 있는 줄 안다. 그런 사람들이 정작 암에 걸리면 살지 못 한다고 벌벌.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도 애가 정신이 빠져 있다고 쌍욕을 해 놓고선, 유방암에 걸리고는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산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내 병은 별 거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즈음에 나는 손목을 그었다. 죽지 않았다. 피는 꽤 났어도 살살 긁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엄마한테 보였을 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다. 최대의 불효를 내가 하는구나. 싶었다.
  아직은 약을 먹고 있다. 친구들이 물으면, 비타민이라고 속이고 혼자 먹는다. 아직도 내 심장의 반쪽은 공허함으로 차 있다. 두려운 감정과 두렵지 않은 감정 그 사이에 놓여져, 어느 순간 끊을 놓아버리면 그 때처럼 손목을 그어버릴 지도 모른다.
 누구는 나를 시한폭탄이라고 부르고, 또다른 누구는 나를 꾀병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부르든 상관 없다. 결국 나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전혀 너희들 따위와는 상관 없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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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te you but, I love you

 나는 사람 사는데에 누군가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누군가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친구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내 혈육이자, 내 가족, 나와 비슷한 피가 흐르는 나의 남동생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한다.
 그를 안을 때마다 나는 그에게 사랑해 라고 말하지만,사실은 역겹고 더럽다. 혐오스럽다.
 그가 나에게 입맞춤을 해 올 때마다 분명히 나는 웃고 있지만, 이대로 계단으로 밀어뜨려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사실, 그 아이는 내게 뭔가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거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가 내게 했던 일은 그저 나와 함께 살지 못하고, 더 이상 내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였다. 
 내 집착은 나를 옭아메고 갉아먹었다. 손목은 자해가 남긴 상처들로 빨갛고 보기 흉해졌다. 우울증과 정신착란, 강박 때문에 내 정신과 내 몸은 망가져 갔고 그 결과는 누가 내 자신인지 모르는 이중인격이 만들어졌다. 
 그를 진심으로 싫어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이성을 잃으면서까지 그를 그리워 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이 바보같은 모습은 연민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헛된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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