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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다

그것에 완벽하게 빠져버렸다


황홀함의 그 이상, 

잔 물결들 위로 유유히 나오는 

붉은 빛을 머금은 태양이 

고개를 내밀 때


그 아름다움을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까, 


그것에 완전히 빠졌다는 게 옳은 것 이겠지


어디서 왔지?
[["unknown", 23], ["synd.kr", 1]]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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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너는,행복하니?
꾹 짓이겨진 입이 나를 향해 물었다.
분노를 참는, 그것을 억누르는 그녀가 나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존경해서, 그래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행복하다,라. 아니,행복하지 않다.앞에 있는 그녀를 붙잡고 싶다. 하지만 알고있다. 나와 그녀는 같은 선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제자리에 멈추어서
내게 손을 밀어줄것이다. 그때동안은 행복할지 모른다.하지만, 그 때 뿐이다.그 먼 훗날,우리는 그날을 후회할 것이다. 누군가는 후회해도 행복해지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후회를 남기어주고 싶지 않다.
설령 나 혼자 후회할 지라도.
행복해요.
나는 웃는다,그녀의 울고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너무 미안해서 그만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그래도,나는 행복하다. 행복해 질 것이다.그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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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없음

책장을 넘기듯 가볍게 굴러들어온 말에 '홍'은 고개를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가볍게 커튼을 흔들고, 뒤이어 제 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저를 담담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을 마주하던 홍은 안경을 똑바로 고쳐 쓰고 책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눈치 챘을지도 몰랐다.
그 말을 듣고난 뒤부터 이미 책은 읽히지 않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제 시선은 빼곡한 글씨들한테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중이었다. '원'의 말을 듣고난 뒤에 아무래도 뇌에서 고장이 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책을 덮고 일어날까 말까, 정신을 좀 차리자는 마음을 먹던 와중, 턱아래로 손이 들어오고 그 잠깐의 채 침묵을 느끼기도 전에, 입술 위로 부드럽고 살포시 누르는 힘이 들이닥쳤다. 
원의 속눈썹이 길다는 것을 홍은 그때 처음 알아챘다. 그것을 알아채고 나서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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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죽어가는 이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어찌 열등감이 아닐래야 
그 사람의 하나의 것이라도 열등한다라면
살게 될 희망을 얻게 되는
망할 이기심아
이제 그만 고개를 숙여 혼자뿐인 바닥을 바라 보아라
들떠있는 승부욕을 꺾어 머리를 쳐라
죽어가는 이야 
죽기를 바란다면 희망을 가지지 마라
그것이 죽기를 실패한
나의 삶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나름 살 만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버린 나는 죽어가는 이들의 실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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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치 한송이 꽃같더랬다.
허나 내눈에만 그랬을까. 널 바라보게돼자, 나는 그만 잃는것이 너무나 많아져 버렸다.
아름다운 네게 다가가려 스스로 제 침을 뽑아버리고, 날개마저 뜯어버린. 이런 멍청한 나는, 네게 분명 줄것이 없더랬다. 나는 이말을할때 붉어진 얼굴로 땅에 고개를 쳐박을듯 아래만 내려다 보았었다.
내 시선이 네 손에 이끌리듯 올려졌을땐, 분명 너는 울고있었다. 시답잖은 고백에 수치심이 치밀어  울고싶던것은 나였음에도.
그날, 나는 네게 물망초와 장미꽃다발을 바치며 맹세했었노라. 
내 너를 나의 한송이꽃처럼, 나의 한평생을 바쳐 싱그럽고 아름답게 가꾸겠노라고.
그대야, 이젠 내가 네게 바라는것은 하나뿐이다.
대답 . 그것이 내가 네게 바라는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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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첫 만남은 내가 먼저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시작된다. 대화를 가장한 폭력에 반듯이 세운 등허리가 굳는다. 질문이 내 앞에 떨어진다. 답은 이미 내려져있고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을 그대로 읊는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야, 내겐 그 자리를 벗어나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그제야 새로운 세상과의 첫 만남이 끝난다.
 나를 처음 마주한 눈빛부터 내게 건네는 말 한 마디, 질문 하나, 마지막의 수고했다는 속 빈 인사말까지. 내겐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암묵적인 명령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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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아아 , 
내님을 맞으려
오늘도 고개를 드네
아아,
저멀리 보이는
내님을 위해서 드네
아아,
나는 달맞이꽃
오직 내 님만을 위한,
달 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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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동요
1~2년 묵은 듯한 비트의 E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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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어둠
그 사람 어둠 몰고왔다 
어둠 몰고 사라진다
그 사람 오던 날, 내가 그 사람에게 가던 날
어둠이 쏟아졌지 아니, 솔직히 어둠이 
빼꼼히 고개를 살짝 내밀었을 때지
막 퇴근하고 6~7시 경에 달렸으니까
마침내 딱 만났을때 
두서없이 두말없이 서로의 채취에 빠졌고
어둠은 벌써 하늘을 덮은지 오래...
그것이 문제였던가 무엇이 문제였던가
어제 그 사람 어둠몰고 사라졌다
만남 뒤에 우린 서로의 채취에 빠졌고 향기에 빠졌고
냄새에까지 풍덩했지 너무 깊게 빠진듯 하지만
이런 각오없이 어찌 사랑한다 할 수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나 그것마저 어둠이었나
그 사람은 이미 저 만치 어둠몰고 가버렸다
여명이 트는 새벽녘 난 왜 취했있는가 
그 사람 생각에 취해있나 그 사람 모습이
눈 앞에서 환하게 비춰졌다 
어둡게 사라졌다해서인가 
아니면 술냄새로 내게 남은 그 사람 냄새
제거하기 위함인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다만 검은것만이 어둠이 아니고 
흰것만이 빛이 아님을 느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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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전에 말을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연하게 반복하기 시작했다 
내 손은 비눗방울을 불었고 
둥둥 채 뜨기 전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피아노소리가 들리면 머리가 기울렸고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멍하니 고개를 까딱였다
의미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쳤고
얼굴을 엎었다 머리가 뒤엉켜 목이 간지러웠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입안에 머리카락 몇가닥이 들어와 있지만 그것마저 신경쓰지 않았다
우주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 침식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그 자리에서 잠에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건 좋아하지 않았다 
들어주는 것이 작은 개미일지라도 기뻤지만
감정과 얼굴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건 용서치 못했다
나는 조그만 인간이고 또 그들과 같지않다
그렇게 나는 단정짓고 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라며
주변은 가라앉는 우주 뿐이었다
스쳐지나가는 기차 밖 풍경이었고
그것의 속도는 ktx만큼 빨랐다
나의 몸짓하나로 생기는 모든 일들을
나의 몸체에 모두 쏟아넣은 책임들을
내가 감당하기엔 힘든 것들이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나를 가두었다
나는 내가 변한 것을 안다
나는 자주적이며 쾌활한 삶을 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현실은 달랐고 그것만큼은 아주 달랐다
가죽 안에 쌓여가는 기름에 고통받는 오늘도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사람들은 자기 전에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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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이별

       가을날 이별
가을이었다
그 가을 어느 대지 위에서
그 님은, 그 사람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내 눈앞에서 떠나갔다
그 해 봄에 만난 그 님은 가을이 오는
여태껏 무표정한 얼굴과
굳건한 모습으로 나와 눈을 맞췄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별이란 기미는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다른 타인들이 이별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도 이별이 다가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기미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은 끝내 노랗게 떠버린 얼굴빛을
내게 보이더니 점점 날이 갈수록
이별을 언급하였고
바람을 타고 정말 이별이 내 발치 앞에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 님은 내가 눈물 보일 수 없도록
내 앞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떠나갔다
차라리 내 앞에서 떠나지 말지
나는 한동안 울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멍한 심신만 바람에 실어
그 사람 떠난 곳으로 보낸 것만 같아
괜시리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제 내 눈 앞에는 그 님 품에 품고있다
남기고 간 추억들만이 한 톨 두 톨 쌓여있다
방구석 틈에 낀 사연조차 태우리라
굳은 맹세를 내비췄지만
정녕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것들이
나에게서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쏟게 했고
이내 그것들이 재회의 증표임을 깨달았기에
소중히 간직하고 따뜻하게 품기로 했다
그 즈음 고갤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타인들도 붉게 달아오른 얼굴빛,
노랗게 떠버린 얼굴빛을 한 채
씨익 웃고는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난 허무한 이별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만남이 돌아올 것을 이미
내 깊은 곳에서 삼켜 믿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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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上

1.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음악이 들리면 몸이 멋대로 춤을 추는 병이다. 웃지 마라. 이것은 아주 좆같은 일이다. 나는 가족, 이웃,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 그 외 길 가던 행인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자라왔다.
 이 병은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발병했다. 우리 애는 끼가 많군! 핫핫 웃었던 부모님의 입가에는 곧 어두운 주름이 졌다. 이 정체 모를 병은 수도꼭지처럼 물의를 쏟아냈고 두 분은 그로 인해 신음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돈에 관해서는 꽤 여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 돈도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세상 곳곳이 전쟁터였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음악에 나는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발병 이후 열다섯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의사와 목사와 신부와 무당과 그 외 민간의학 사이비를 만났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달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어린 시절 억압된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춤으로 나타나는 거죠. 하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악마가 들렸군요. 구마 의식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체온이 1도 높아지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몸에 자철석을 지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전부 실패했다. 헛된 희망에 끌려다니다 너절해진 나는 열여섯이 되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안 할래요.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해요. 나를 설득하려 했던 부모님은 되려 설득당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
 말도 안 되는 치료와 의식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자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은 부모님이 집에서 특히 공을 들인 곳으로, 방음벽과 차음벽을 몇 겹으로 둘러 바깥의 소리가 한 틈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시공했다. 나는 집에 오면 거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영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 무렵이다.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 이름 석 자를 다 붙여 윽박지르던 목소리들이, 거기에 담긴 기겁과 짜증이, 오랜 시간 밟혀 까맣게 굳고 더러워진 어감이 나를 짓눌렀다. 평범한 이름마저 염증이 되는 게 버거웠던 나는 자조하듯 새 이름을 지었다. 영고. 영원히 고통받는 김영고. 그리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영고야.”
 수업 종이 울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탭댄스를 추는 미친놈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던 사람. 얇은 은테 안경을 쓰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답지 않게 피부가 깨끗했던 A.
 “고등학교 어디 가?”
 “안 가.”
 “에이 알려줘. 난 고고고. 거기 교복 예쁘더라.”
 “진짜 안 가. 검정고시 치기로 했거든.”
 “헐. 존나 부럽다.”
 “뭐라는 거야… 학교 안 간다고 노는 줄 아냐?”
 나는 유일하게 아는척하는 A가 낯설고 불편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치근덕대지. 그럼에도 새 이름을 알려준 것은 걔가 달라붙은 뒤로 본명을 더 자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땡땡! 땡땡! 땡땡아! 돌아볼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불러대는 바람에. 그럼 평균적으로 바닥을 치던 기분이 외핵 내핵까지 뚫고 들어갔으니까.
 “영고.”
 “응?”
 “이름 말고 영고라고 불러.”
 “별명이야?”
 “어. 너만 알려주는 거야.”
 사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는 착실하게 영고라고 불렀다. 진짜 이상한 애였다. A는 내가 매번 데면데면하게 굴고 가끔 무시하는데도 꼭 와서 인사를 받아가고는 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개 같은 질문도 했다.
 “야야. 그럼 너 섹스할 때 뮤뱅 틀면 박자 맞춰서 하냐?”
 “……미친놈아…. 박자대로 털리고 싶냐?”
 중학생답게 태양처럼 밝고 개념 없었던 A. 배시시 웃는 얼굴에 티 하나 없는 것이 천진해 보이던 A.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의 설득에 떠밀려 억지로 나간 중학교 졸업식 날, A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 인생이 뮤지컬이라고 생각해.”
 그게 뭐야. 멱살이라도 잡아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A의 하얀 얼굴 대신 감색 융으로 덮인 졸업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A는 떠들썩한 친구들의 물결에,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헤어졌다.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 창업한 스타트업이 크게 잘 되었다는 소식을 아주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3.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던 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꽤 살만해졌다. 과외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쉬는 모든 것이 내 방 안에서 가능했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안전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거짓말처럼 달콤했다. 내 삶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일 년쯤. 내 삶에 불행을 쏟아부었던 악마는 겨우 숨을 틔운 나를 다시 진흙탕 속에 처박았고, 나는 그제야 이 평화가 태풍의 눈이었다는걸 깨닫는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막 열여덟 살이 된 겨울밤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지던 트럭과 부딪혀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슬픔보다 황망함이 앞섰다. 내가 뭘 실감하기도 전에 친척 어른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지도 비교적 덤덤한 상태였던 나는, 그들이 나를 추스르겠다고 한마디씩 건넬 때마다 오히려 죽음을 감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것. 영영 볼 수 없게,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 그건 갑자기 찾아온 만큼 터무니없이 무겁고 까마득해서, 나는 점차 제정신을 잃어갔다. 몸속의 수분을 모조리 짜낼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영정 앞에 엎드려 목놓아 우는 나 대신 큰아버지가 상주 노릇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완전히 탈진해 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그제야 식장 안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 친척과 부모님의 지인들이 모여 떠들썩했다. 그중에는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내게는 사촌인 B도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B는 비죽 뻗친 머리와 개구지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직선적이라 무심해 보이는 큰아버지의 턱을 가졌다. B는 아마 장례식이 지루했을 것이다. 자기 부모님도 아니고, 얼굴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고작이고, 가끔 명절에 만나면 용돈을 많이 줘서 좋은 친척분이 돌아가셨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겠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B를 포함한 온 일가족은 내 병을 알고 있었다. 불치병인지 정신병인지 관심병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던 B가 내 옆에 와서 댄스곡을 재생한 것은 명백히 새빨간 고의였다.
 새빨갛다고 표현한 것은 기억 속 시야가 터진 토마토처럼 붉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때 나는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하던 빨간 구두였지만, 그 많은 이들 중 내 다리를 잘라줄 자비로운 나무꾼은 없었다. 영문 따위 알 리 없는 문상객들과 영문을 아는 일가족들은 한 몸처럼 나를 물어뜯었다.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눈을 떠보니 장례식은 끝났고, 나는 왜인지 이마가 찢어져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내가 물려받게 될 재산에 눈이 돌아간 어른들은 온갖 법률 용어로 뒤덮인 문서를 들이밀었고 저들끼리도 개처럼 싸웠다. 내 의사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있는 순간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장례식 날 몸을 뒤덮었던 통증이 종종 다시 살아나 나를 끝없이 잘게 조각내었다.
 B를 죽여야겠다. 그런 생각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모님이 죽었으니 B도 죽어야 공평한 것 같았다. 분노는 맥락 없는 비약을 논리로 만든다. 주방에서 식칼을 골라 칼집을 빼고 신문지를 채운 가방 속에 넣었다. 큰집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옆 동네의 주공 아파트. 택시로는 20여 분. 머리가 식기에는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기어코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 큰어머니 뒤로 큰아버지가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우리 조카님 왔네! 들어 와. 춥지? 커다란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오자 따듯한 음식 냄새가 훅 끼쳤다.
 “밥은 먹었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큰아버지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녁 먹고 가. 그러면서도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살피는 기색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미성년 후견개시…”
 그의 눈이 짐승처럼 반짝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군침도 삼켰을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역시 큰아버지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징그러울 만큼 활짝 웃었다. 잘 생각했다고, 몇 번이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큰어머니도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며 음모를 꾸미는 이들처럼 속닥거렸다. 내내 이 모든 상황을 껄끄럽게 쳐다보고 있던 B는 안절부절못하다 내 가방에 뭐가 있냐고 질문했다.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굳은 얼굴로 애써 웃고 있었다. 어차피 걷힐 미소인데 헛수고였다.
 “궁금해? 자, 봐.”
 지퍼를 열고 칼을 꺼내자 B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 치는 B를 잡아 찌르는 것과 동시에 귀 옆을 세게 얻어맞았다. 옆으로 이미터쯤 날아가 벽에 반대쪽 머리를 부딪쳤다. 큰아버지가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무언가 터진 듯 얼얼한 머리 위로 상스러운 욕들이 쏟아졌다. 새된 소리로 우는 B와 겁에 질린 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어떡해, 어쩌면 좋아……”
 좋겠다. 걱정도 해 주고. 그 와중에 그게 부러웠다.
 시야가 흘러내리고 이명이 세상을 뒤덮었다. 대자로 누워 빙빙 도는 천장을 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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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의 소망

백조같이 꿋꿋한 고개를 들고 무리지은 옷걸이야
물에 닿고 싶어 매일 세탁되는 옷을 부럽다는듯 쳐다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