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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marif shaik / Unsplash>

사랑?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에는 조건은 없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면 조건이 생긴다.

누가 누구와 결혼하면 계약조건이다.

누가 누구와 이혼하면 법정행이다.

누가 누구와 재혼하면 남는 가족이 문제다.


  • 이혼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 내공이 부족해서 생기는 재난이죠. 감당하며 배워야할 수업. 충분히 내공을 쌓았다면 이혼할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 동의할 수 없음. 그렇게 내공이 충만할리 만무하고, 그걸 내공이 충만하다고 볼 근거도 미약.
      이혼은 그저 개인과 개인의 접점에서 타협을 도출할 수 없는 과정에 따른 이상한 계약의 파기 이상의 의미를 둘 수 없다고 봅니다.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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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평등이란 단어의 무게를 아시나요?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뭔가요?
성소수자들의 이름은 뭔지 아시나요?
지금 주방엔 누가있고 침대엔 누가 있나요?
여자 교복과 아동용 옷의 사이즈가 같다는건 아세요?
면접 볼 때 안경 못끼고 굽 높은 구두 신어야 하고 풀 메이크업 해야 하는건 누구죠?
화장실에 들어갈 때 늘 주변을 봐야 하는건 누구죠?
성희롱을 농담으로 넘겨야 할 때가 있나요?
그래놓고 사회성 부족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나요?
목소리를 내봐도 묻혀지는건?
피해망상증이라며 손가락질 받는건? 그게 진짜일까요?
당신 앞의 젠더 권력이 과연 평등할까요?
당신도 아는 차별은 고쳐질 기미가 안보여요.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세요.
신체적인 조건 빼고 평등할 권리가 있습니다.
말 할때 “여자는 ~ 해야지” “남자는 ~ 해야지” 라는 말을 멈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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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제

이것 하나만으로 인간은 그렇게 잔혹해질 수가 없다.
별다른 조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내가 졌다는 패배감, 이겼다는 우월감,그때의 기분.
누가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이라도 줘야겠다.
우리나라 멕여살리는 좋은 시스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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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공평한 것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공평한 것 평등한 것은
몇가지나 있을 까?일단 첫번째는 죽음 이겠지?
죽음은 돈이 많든 없든 모든 사람 모든 동물들이
똑같이 겪는 것이잖아 그리고 탄생 자신이
어디서 태어 나는 건 평등 한 것이 아니 것 같지만 모두다 똑같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 나잖아
사람도 동물도 똑같이 그리고 또 평등한 것은
실패를 이겨 낼 수 있는 용기.모든 사람들
속엔 용기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를 뿐
그리고 또 아름다운 마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사람이 누굴까?연애인?배우?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를 뿐
어쩌면 사람을 죽인 살인범 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살인범의 마음 속
살해 라는 감정 속에 깊게 묻혀 잊혀진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 있다.자신이 남을
돕고 싶을 때 그 마음은 자신에게 보일 것이다
죽음,탄생,용기,아름다운 마음 이런 것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알아 가는 것도
하나의 평등한 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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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탐욕.
자기의 뜻에 맞는 일이나 물건을 애착하여 탐내고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
낮은 자존감 탓에 나보다 나은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그들보다 더 잘나보이고자 노력했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고통의 구렁텅이는 나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서서히, 서서히.
발목, 무릎, 허리, 손, ......
턱끝까지 차오르는 답답함. 가슴 한 켠이 공허했다.
나는 왜 만족할 줄을 모르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매달리며 살았나.
그렇게 나오려 애쓰던 고통의 구렁텅이가,
한순간에,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스스로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리도 간단한 줄 알았더라면.
그런 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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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즈, 엘라스틱서치 필드 값 유무 쿼리

특정 필드의 값이 있거나 없는 조건을 쿼리할 때 _missing_ 과 _exists_ 를 사용할 수 있다.
title 값이 있고 published_at 값이 없는 질의를 Query String 으로 짜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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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성적표

과거 영화 '넘버 3' 에 보면 한석규가 상대역인 이미연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자기, 나 얼만큼 믿어?'
한석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51프로'
이미연이 크게 실망한다. 80이나 90프로도 아니고 고작 51프로라니.
영화 말미에, 한석규가 이미연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49프로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내가 51프로를 믿는다는건 다 믿는다는거야.'
위와같은 전제조건으로 올해의 성적표를 낸다. 성적 기준은 -1점, 0점, 1점.
1점.
다른 요원님들은 어떤 성적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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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우리는 헤어졌다. 단골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평소 즐겨 마시지 않던 에스프레소를 각자의 앞에 두고 한참을 침묵하다 결국 헤어졌다. 이별을 선고한 건 너였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건 나였다. 우리가 헤어지는 시간을 견디며 다 식어버린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허한 느낌이 가슴을 채웠다가 슬픔이 잠시 머물렀다가 진공 상태에 빠졌다가, 나는 외로웠다. 그러나 결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너와 나의 관계가 얼마나 적요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소파에 널브러져 얼룩덜룩 때가 낀 천장만 하릴없이 바라봤다. 니가 내 집에 와서 저 천장을 봤다면 우리 만남의 시간은 더 짧아졌을까, 길어졌을까. 조건이 걸린 말에 대답은 신조차도 할 수 없으므로 곧 몰아치는 어떤 추억들에 생각을 맡겼다. 조건부 문장들이 해사하게 피어나 나를 잠식하려 들었다. 이별의 이유가 꼭 나한테 있는 것만 같은 후회가 나의 무심함에 생채기를 냈다. 공허함에 피가 스미자 나는 곧 아끼던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전부가 너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너를 방치하며 지낸 편에 가까웠다. 별다른 추억이랄 것도 없이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내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가미도 없이 슬픔에 침잠해 헐떡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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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어린 시절, 비눗방울 놀이를 좋아했다. 여러가지 재료를 가지고 물의 비율을 조절하면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에 몰두했었다. 주방용 세제, 샴푸, 세안용 비누, 빨래 비누 등 여러가지를 단일 재료를 이용하여 물의 비율을 조절해봤고, 여러가지 재료를 혼합하여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대단한 조성비를 찾아내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자랑했다.
아마도 그런 기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나보다. 새로운 도전, 실험, 실행. 생각만 하면 그건 허공에 흩어지는 하나의 망상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면, 그 결과가 병신같더라도 나의 경험치는 1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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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with Morrie #1

Morrie: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Marie: 네. 자연의 음식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도국의 조건속에서 길을 찾는 학생들도 도와주고 있구요. 사실, 임용 경쟁 사회에서 제 살 길도 막막해서, 이럴 주제가 되는가 늘 고민을 합니다. Tenure 받은 사람들이 해야지... 이런 걸 내가 왜 하나 싶은 생각이요. 

Morrie: 어차피, 모두가 자기 인생을 사는 것 뿐이라네. employment status 가 그걸 막을 순 없는 것이지.

         자네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았나?

Marie: 아......
Morrie: 얼굴이 빨개졌구만. 왜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나.
Marie: 찾는 중입니다.

Morrie: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결혼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서 엄청난 걸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할것이야.

Marie: 결혼이 사랑을 근본으로 한다는 거군요. 뭔가, 미혼의 싱글 교수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 할 때, 제자들이 곁에 있어주는 훈훈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요.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군요.

Morrie: 맞아. 찾을껄세. 자네는.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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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내가 힘들다고,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로 받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차라리, 무작정 힘들어 하자, 솔직하게 말이다 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고난을, 나의 떡밥으로 쓸 수는 없다' 는 입장은 
일종의 자존심이자, 원칙이고 고집이었다.

그러다가,  Buddha 가 그에 대한 supporting statement 를 남긴 것을 보고, 
그래, 내가 맞구나, 맞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몇 번을 바닥을 치고, 
별 자존심도 고집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즈음,  
세상에는 나 보다 더 힘든 生의 조건에 주어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은 "매우" 아프다. 
내 이야기를 꺼내놓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렇게 "매우" 힘든 인생을 거쳐왔단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 하는 내내, 
"대단하시네요..." 라는 말만 연속적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은, 하버드를 나온 것도 아니고, 대통령 보좌관도 아니고, 어떤 정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적군을 물리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 말 밖에 달 리 할 말이 없었다. 
반성의 의미로,

군소리 말고,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쿨하다' 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성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나 보다 더 많이 받은 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전쟁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70세가 되어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할머님들의 염원까지 모두 살아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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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달그락.
권이삭은 컵을 닦으며 낮의 일을 떠올렸다. 낮에 마주친 한 손님이 그와 아는 사람이었다. 반은 단골 장사인 이 가게에서 아는 얼굴 자체는 드물지 않았지만 그 얼굴은 너무 갑작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니 교복 시절 첫사랑이라니. 물론 학교 있던 자리에 가게를 차린 시점에서 이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긴 했어야겠지만. ...조건에 비해선 너무 늦은 재회일지도 모르겠다. 
"...권이삭!"
낮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도 권이삭만큼 놀랐던 거겠지. 김별은 어릴 때도 감정을 숨길 줄 몰랐다. 사실 얼굴도 이름도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자신과는 달리 하나도 변하지 않은 푸른 눈에 돌던 빛을 본 순간 다 기억나버렸다. 옳다. 그 푸른 빛에 반했고, 그 빛을 견딜 수 없어서... 그것까지 떠올라버려서 권이삭은 눈을 떨궜다. 
그 눈동자를 마주친 순간 이미 권이삭은 말짱한 정신은 아니었다. 역광을 받아 약간 어두웠던 손님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빛난 눈 속에 푸른기가 돈다고 생각했을 때 오래된 기억 속에 묻어 둔 얼굴이 살아나 겹친 것이다.
"...권이삭?!"
"김별."
생각해보면, 그 순간 대단히 쫄았던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대응한 것 같다. 그거 말고 나올 말이 없기도 했지만. 김별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직 여기 살았구나? 잘 지내?" 
"어어어 아주 잘 지내, 어어."
그때에는 아주 바보같이 대답해버린 것 같다. 그 눈에 홀린 걸지도 모른다. 그가 좀 걱정스럽게 살펴보는 것도 같았다. 뒷 손님이 기다리다 참지 못한 인기척에 먼저 자리를 피해준 것도 김별이었다. 
"미안해, 아아로 테이크아웃 해주세요."
"어, 어 응.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 아웃.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카드요."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나중에 봐, 하는 얼빠진 대화를 나누고 그는 커피를 받아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 문에 단 딸랑이가 유난히 크게 울린 것도 생각이 났다. 다음 손님을 받느라 문을 쳐다본 기억은 없다. 권이삭 자신의 손에 유리문을 뚫고 내린 햇살이 비친 게 기억났다. 그럼 아주 낮은 아니었구나. 그는 나중 언제 오겠단 거였을까, 오늘 보인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동창회를 해도 다신 못 볼 것 같았다. 
'테이크아웃을 주지 않아도 좋았을 걸.'
지난 후에 생각해도 무슨 소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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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자와 구직자...그리고 잡담

나는 여지껏 일을 하면서 두군데의 직장에서
관리직이였다.
하나는 공장이고..
하나는 사무직이였는데..
내가 구인자가 되었을때 힘든점은..
"이 사람을 믿고 나와 손발을 맞출수 있을까..."
였다.
공장 구인자였을때..
난 일을 하면 효율적이면서 편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편이다.
물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또 있을것인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나와서 성공했던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주변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해라"가 주된 안좋은 시선이였다.
나는 그게 왜 잔머리라고 하는지 이해 할수 없었다.
왜 효율적이며 빠르고 편한 방법을 찾는게 잔머리 굴리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저 조건에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건 당연한 조건이였다.
저런 문제는 노가다(현장) 생활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쪽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30~40년 생활에 찌들어 
뭔가 바꿔볼 생각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30년전에 하던 방법을 지금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몇몇가지들을 바꿔갈때마다 그 사람들은 놀라움과 칭찬을 하기커녕
쓸때 없는 짓이라며 핀박했다.
오히려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게 힘들었다.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데.. 그리고 편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준 사람이 한 공장 사장님이셨다.
10명 안팍의 작은 공장이였지만
우리는 많은걸 만들어냈다.
물론 그쪽 계통이 신소재 쪽이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같은 계통 공장들에게는 없는 경쟁력을..
우리는 가졌다..
그리고 초보자들도 쉽고 빠르게 익힐수 있는 것들도 만들었다.
직접 만들수 없는 제단기계들은 3천만원을 들여서 
기계제작자들과 상담과 연구를 통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생산속도는 40프로가 빨라졌다.
그리고 직관제단이라는 부분은 1개월만 배워도 할수있는
간단한 업무가 되버렸다.(그 전에는 최소 6개월을 배워야지..그리고 체력이 따라가줘야지만 할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은 같은 계통 다른 공장들이 한달 2000헤베를 생산할때 우리는 6000헤베 이상을 생산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원했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수 있는사람들..
그때 내 나이 26~27살이라.. 더 창의적이였을수도 있지만..
많은 면접을 보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있었다.
온지 이틀만에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
5달을 넘게 가르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생산라인에 혼자 냅둘수 없는 사람.
나쁜사람만 있지 않았다.
오자마자 1개월만에 남들 2인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리지만 꼬박꼬박 차고 올라오는 사람.
불만은 많지만 일은 똑바로 하는사람.
그렇게 팀을 싹 갈아 엎으면서 수십명의 면접을 봤는데..
그러다보니 행동과 얼굴 말투 등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아주 대충 파악되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잘 활용하고있고....
판매직에 있을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직자일때..
일을 가려본적은 없다.
딱히 내가 일을 가리는거라면 
영업직이다. 
판매직도 하는데 이상하게 보험같은 영업직은 못하겠더라..
일만 가르쳐 주면 항상 열심히 했다.
기술을 가르쳐주면 밤마다 연습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쉬지도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돈을 띠어먹는사장도 있었고..
수당까진 안바래도 야간까지 일하면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사장도 있었고..
쉬는날에 인력이 부족한 바람에 다른사람이 힘들까 아침에 출근해 기초적인걸 잡아두고 퇴근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하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쉬는날 너무 피곤해 하루 푹 쉬었더니..
"ㅇㅇ이 요즘 게을러졌어~" 라더라...
난 쉬는날 일하는게 싫다.
쉬는날에 내가 일하는건 다른 직원들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내 쉬는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족과의 시간을 내가 방해 한거일지도 모른다.
이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얹혀
내 어깨위로 지나가는 세월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도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더 못사는 최초의 세대란다.
20대 30대의 소득증가율과 월평균 가계지출이 최초로 -로 돌아섰다.
2003년 이후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란다.
N포 세대란다.
3포세대가 4포세대가 되고 그게 결국 N포세대가 되버렸다.
헬조선,지옥불반도,노오오오력,흙수저,금수저
별의 별 말도 다 생겼다.
그저 웃고만 있기엔 참 씁쓸한 단어들이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더라..
사내결혼으로 아이를 가진 부부를 퇴사시킨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한 대기업은 
사람을 분리수거도 못하는 쓰레기로 취급중이다..
뭐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위해..
발로 뛰는 대기업들도 있다...있긴...있다..
N포세대에 맞춰 30대인 나도
포기한게 많다....
씁쓸하지만...어쩌겠어..
현실인데..
이제 여기서 몸까지 아프면 
정말 한강물에 뛰는 수밖에 없다.
나도 탈조선을 하고 싶었다..
그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할수 있으면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의 사람차별이나...
뭐 별 다를건 없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금방 잊는다' 다.
분노하고 잊지 말자고 하고 바꿔가자고 하고선..
어느새 금붕어처럼 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진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리 되더라...
라는 핑계같지도 않는 핑계를 늘어본다..
그래도 하나 잊지 않는다.
선거는 꼭 하자.
뽑을 놈이 없어도 무효표라도 던지자.
난 '무효표를 던질빠에야 그냥 안하는게 낫지'라고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다행인건지... 
당연한게 이제 시작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20~30대에서 투표를 한다는 사람들
비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한다.
그 전에 일하던곳에선
투표날에 일을 시켰다.
대통령 선거 날이였는데.......
휴가도 못 쓰게하고 일하게 했다.
먹고 살기위해 별수 없이 일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
사전투표라도 했어야 했는데..
설마 투표날 투표하러 가지도 못하게 할줄은...
군대에서도 느끼고 조금한 구멍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두서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부터 
포장을 뜯어서 당당하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산대에 줄서있는게 불만이라 물건을 다 던지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우린 식당도 아니고 그냥 물건 파는곳인데...)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달라고 20분이 넘게 때쓰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항상 간식을 사다 주시는분도 계시고..
힘들까봐 비타 음료 같은걸 가져다 주시는분..
야채를 사갔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반찬으로 먹으라고 주시는분들도..
그냥 존댓말만 써줘도 감사했다.
일상이 반말 듣는거라..
야, 어이 , 거기 , 안들려?, 얼마냐고.. , 아 왜 안되는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도 들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은
전부 손님에게 별 다른걸 원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도 않았다.
먹을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사람 같은 대우만 바랬는데..
본인 아들 , 딸들에게도 저러나 싶다..
사회가 병들어가며..
사람들이 병들었다...
내 탓이 아닌것도 내 탓을 하고...
내 탓인걸 남탓하고..
본인들의 욕심만 채웠다.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한다..
"그냥 전쟁나서 핵폭탄이나 떨어졌으면..."
실제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감히 생각해본다.
구인도 구직도 힘든 세상이다.
양쪽 입장에 전부 있어봐서
더더욱 실감한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보니
더더더더더더욱 실감한다.
공부 못했고 능력 없으면
개처럼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조만간에  난
기계도 아닌...
개처럼...노예처럼 일하러 갈 것이다.
하루에 15시간의 일이다.
쉬는시간도...밥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앉아있는 시간은 밥먹는 시간 뿐이다.
아마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을 다 합쳐서 15시간중 1시간쯤 될거 같다..
손님들 중에 정말 궁금해서인지...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지나가면서 봐도 쉬는사람도 없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으니
궁금할법도 하겠지...
솔직히 말해준다 200번다고.
다들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긴다.
진짠데..............
결국 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같은 일상의 반복을 하러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과거가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고...
그게 나의 최선이니까..
개라도 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 하지 않는다.
조만간 또 이런 나의 투덜투덜
일기장을 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 
웃으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