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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산수유 축제를 보고 있자니, 성탄제가 생각나고, 성탄제가 생각나니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언젠가 내가 어렸을때 무척 아팠을 때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동네 병원까지는 뭐 대략 300미터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볼에 느껴지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가셨다. 나는 열이 너무 올라 그 장면이 블러처리가 된 고흐의 그림처럼 기억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높은 체온을 가르며 가슴팍으로 들어온 차가운 청진기와 이런저런 신체의 체크. 난 엉덩이 주사와 링거를 맞고 아버지의 따듯한 손이 얼굴에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 모든게 내 혈액 속에 흐르고 있구나.

어디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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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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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쾌차하세요

아버지가 뇌출혈로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수술하신다는 것도 이상하고,
이 큰 병원 수술 대기실에 혼자 있는 것도 이상하다.
여기서 6시간 동안 혼자 기도하고 있어야겠다.
근 10년 중에 가장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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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다니는 동선이 싫다.
세브란스 병원과 장례식장, 요양병원. 그 길 위를 덜리는 버스. 그날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이 길을 이젠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때 내가 하던 짓이라곤, 응급요원들에게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보여주는 것 뿐.
'아버지가 말기암인데, 당신께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그 문자를 보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던 응급요원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난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결국, 아버지는 세브란스 응급실에서 한기에 내내 떨고 계셨고, 난 기껏해야 모실 수 있는 근처 병실이 있는 요양 병원을 알아보고 아버지께 내 외투를 덮어드리는 짓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그 말씀대로 결국, 살아서는 집에 못가시고, 벽제 화장터를 거쳐 한 줌의 유골로 큰 손자 품에 안겨 집에 잠시 들리셨다.
이 길이 싫지만, 그래도 다녀야한다. 매일, 이 길을 다니며 이 생각을 늘 하겠지. 나도, 이젠 늘 집에서 나올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각오를 하게 된다. 우린,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생을 마치는 그런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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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참 오래 태웠다.

예전에 세상에 이런일이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하루에 담배 3갑씩 태우는 아저씨가 나왔었는데 병원가서 엑스레이 찍어봤더니 남들보다 폐가 좀 크기도했지만 엄청 깨끗하다고 의사가 놀라더라고. 그 아저씨 차가 코란도였는데 무지 터프하고 남자답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아마 나도 담배많이 피워도 폐가 깨끗하고 건강할꺼라고 생각했는데 미친거짘ㅋㅋ
현실은 당연히 Fail.
병원에서 의사가 담배 얼마나 폈어요 물어보는데 20년은 됐다고 말하기가 얼마나 창피하던지...
폐도 안좋고 가족들한테도 나쁘고 이제 그만 태워야지. 내가 담배 끊었으니까 담배인삼공사는 이제 신규 수익사업을 고민해야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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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아직 5월인데 이렇게 더운거 보면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된다.
이런 더운 날에 어릴적 
엄마 손을 잡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닐때 
자비란 한조각도  보이지 않는 날씨에
자신들이 찜통 속에 
익혀지기를 기다리는
감자들 같다고 표현한  것이 
왜인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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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적성에 안맞다

몇달 전부터 불면증이 도졌다
수면제를 먹거나 병원에 가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둠고 조용한 새벽을 버텨내기 위해 가만히 누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서워서, 또다시 어둠에 먹히면 이번엔 영영 돌아올 수 없을까봐
밤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자는 사람들을 흉내내는 걸 반복하고, 그마저도 안되면 한참을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워보기 위해 귀엔 이어폰을 꼽았지만
슬픈 노래는 그 무엇하나 채워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애써 나오는 울음을 참았다
밤은 자꾸만 그리운 이름을 불러왔다
그 애와 함께 있을 땐 미련할지언정 이렇게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앨 더 미워하게 됐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려면 미워하는 법 외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움은 후회를 불러왔고 후회는그 아이의 부재를 증명했다
점점 모나고 비뚤어질 것 같은 밤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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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보물은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수만가지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집이 될수도 있고, 차가 될수도 있다.
재능이기도 하고, 지식이기도 하다. 또는 건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보물이 있다. 게다가 난 그 보물을 이미 곁에 두고 있다.
햇살이 이리도 따가운데도 지칠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딸.
또래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 노는 모습이 마치 토끼가 깡총깡총 춤을 추는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는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슬쩍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아이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40분이었다.
슬슬 소아과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아이와 함 께 병원에 가봐야 했다.
왠지 아이의 행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예약 시간에 제때 가지 못하면 진료시간만 더더욱 늦어질 것이었다. 아이도 병원에 있는걸 싫어하니 매도 일찍 맞는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에 갈 시간이다. 이제 그만 준비하자꾸나."
아이는 뜀박질을 멈추었다. 더 놀게 해달라며 눈으로 호소하듯이 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는 듯 순순히 내 말을 따라주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나게 웃고 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이가 느릿느릿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꺼냈다.
"이따 병원 갔다 와서 맛있는 초콜릿 사줄게."
"...몇 개?"
"음... 두 개?"
아이의 반응은 덤덤했다.
"좋아, 아빠가 인심 썼다. 세 개!"
아이는 하는 수 없나, 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만족스러워 했다.
"네? 정밀 검진이요?"
"예. 사진으로 보면 아이의 순환기 계통에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해보고 진단을 내려야겠습니다."
병원 대기실에 우두커니 선 채 의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
순환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 즉, 아이의 심장에 문제가 발견되었단 말인가?
"아, 일단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심장 쪽에 무언가 미세한 입자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세한 것은 검사를 더 진행해..."
믿을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매 환절기마다 골골거릴 때 같이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심장병이라니, 있을 수가 없다.
의사는 자기 얼굴을 보는지 허공을 보는지 모를 나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려 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이미 새하얘질 대로 새하얘져 있었다.
그저 방금 전 공원을 나서며 아이와 한 약속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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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내줄려고 돈도 모았는데, 
Balenciaga 핸드백이나 사야 겠다. 
나를 위해서. 
hourly level로 배설하는 성질머리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부리는 욕설과, 
(상대방 입장에서는 욕설 듣고 과일 먹느니, 차라리 안먹고 욕도 안먹는 게 더 행복할 텐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설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배가 아프다'와 '오줌마렵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저들의 저능아스러움과
아들만 싸고도는 저 노인네들의 노망스러움때문에
역시 10년전과 같은 생긱이다. 
저 성추행/폭행하는 노인네가 가래침 밷는 소리로 시작하는 매일 아침과
죽은 시체 처럼 누워있는 노인네가 지겹다는 사실이 15년간 꾸준하다는 것이 
약간은 애석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토록 행복하기에, 
스토커들은 과거에 내가 철저하게 버렸고, 끊어냈던 놈들의 뒷꽁무니를 털어서 
임용과 내 소중한 가치를 결정하려는 것이겠지. 
후루룩 소리내면서 찌개 먹는 저 소리도 할복하고 싶도록 지겹고 넌더리가 난다. 
저 노인네 시대에는 소리 내면서 국물을 먹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던 것인가. 
저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들의 배설을 잊기를 바라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저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게 저들의 배설에 대한 폭행과 욕설과 가래침 밷는 소리를 평생 들었던 것에 대한 위로금이라고 치자. 
그것으로 여생동안 비를 피할 처마 정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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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감기라는 것에 마지막으로 걸려본 것이 대략, 음, 7년전 쯤 되시겠다. 죽을듯이 열이 오르고,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분간이 안되는 순간이 있었다.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한참 누워있다가 나았다.
그 다음부터, 절대 감기 안걸린다. 다시 감기 걸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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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분 알어?

지하철에, 버스에, 거리에 사람이 넘쳐.
졸고있는 덩치 큰 아저씨. 수다떠는 할머니들. 잘생긴 젊은이들. 
핸드폰도 보고 책도 보고. 
뭐하는 사람인지 뭣하러,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궁금하다가.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쓰레기 같다는 생각에 숨이 막히고. 머리끝에 열기가 모이고. 원인없는 불안감과 쓸모없는 조급함에 아랫배가 꿈틀거리는.
심호흡도 해보고.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감은 눈을 쓸어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뺨을 소리나게 때려도 보고.
마음속으로 쓰레기 ,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라고 되뇌이면서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게 쓴 욕을 뱉었다가 삼켰다가.
병원을 갈까? 절이나 교회, 무당을 찾아가볼까?
아무 소용도 없을껄.. 아무 소용도 없을껄.. 아무 소용도 없을껄.. 아무 소용도 없을껄.....
너도 너도 너도 너도 너도 너도 너도 부러워.
나 빼고 다 부러워.
이런 기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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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 감사합니다

핸드폰 수리를 맡겼습니다.
액정이 깨지고 본체에도 스크래치가 많이 생겼거든요.
왜 그랬냐면... 너무 얘기가 길어요.
아니 얘기는 짧네요.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보도블럭에 주우우욱~ 와장창! 긁혔거든요.
긴 얘기는 뭣이냐면, 핸드폰뿐만 아니라 노트북도 깨졌고 제 머리도 깨졌고 허리도 삐끗했고 양쪽 무릎도 멍이 들고 오른쪽 옆구리에도 찰과상이 생겼습니다.
핸드폰은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겨놓고
저는 깨진 이마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서 대기 중입니다.
노트북은 힘겹게 하드디스크만 뽑아 데이터만 백업하고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데탑이 없던 저는 노트북을 새로 사야했을 뿐 아니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었던 주말동안 얼마나 극적인 상황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단 한번의 넘어짐으로 이렇게 많은 일이 생기고 일들과 관계가 얽혀 복잡한 상황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뿐 입니다.
몸은 아프고,
최소 72시간이 버려졌고,
150만원가량의 금전적인 손해도 발생했습니다.
전 그냥 보도블럭에 발을 한 번 헛디뎠을 뿐인데 말입니다.
글로 써보니 한 번의 넘어짐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보다는 지난 39년간 길에서도, 인생에서도 숱하게 넘어졌을텐데 아직까지 모두와 관계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게, 수많은 넘어짐에도 주위를 지켜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드네요.
처음으로 경험할 40대에도 저는 무수히 넘어질 것 같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균형을 잡으며 조심하겠지만 저는 또 넘어질 수 있겠죠.
병신년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구요.
그럴때마다 아낌없이 힘과 격려 부탁드려요.
저도 아낌없이 감사드리겠고 넘어져있는 주위분들에게 힘과 격려 나누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송년카드를 씬디에 띄우게 됐네요.
2015년 정말 감사했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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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下

 가족 중 누구도 병원 신세를 길게 져 본 적은 없었다. 그 최초가 H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H를 거의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방치에 어떤 책임을 느낀 것 같았다. 이 지경까지 온 게 자신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집에서 늘 하던 부업을 미룬 채 오로지 간호에 매달렸다. 아빠도 되는 데까지 휴가를 쓰고 되도록 병원에 붙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뒤 H를 보러 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며칠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류는 조금씩 달라졌다. 늘 나에게 치우쳐져 있던 관심이 균형을 맞추듯 H에게로 흘러갔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곧 불균형이 될 거라는 걸 멍청하게도 그때는 몰랐다.
 “H. 안 심심해?”
 “…….” 
 “야, 대답 좀 해 봐.”
 아픈 H는 생소했다. 말 걸어도 대꾸 하나 없고, 밥 먹고 볼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랬는데…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가볍게 증발했다. 아프니까 그렇겠지. 다 낫기만 하면 평소처럼 돌아오겠지. 간이침대에 엎드려 문제집을 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며칠째 백지만 넘기고 있는 관찰 일기에도 쓸 거리가 생길 거라고.

 H가 퇴원한 주말, 집에서도 내내 자던 녀석은 갑자기 한밤중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다가 놀라서 급하게 H를 붙잡았다.

 “너 어디 가.” 
 “산책.” 
 “이 시간에?” 
 “답답해서… 계속 병원에만 있었잖아.”
 부모님이 있는 침실을 흘끔 내다봤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이거 말려봤자 안 듣겠지. 하는 수 없이 얇은 재킷을 걸치고 나도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잠들었을 시간. 까만 밤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H는 번화가 정 반대편, 산이 깊고 길이 외진 쪽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하염없이 나아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헛헛해 보였다. 쟤가 저렇게 가벼워 보인 적이 있었나.

 H, 어디까지 갈 거야. 내내 돌아보지 않던 녀석은 내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전철이 지나다니는 굴다리 안이었다. 근처의 개천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비린내와 함께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짐작하기에는 수백 마리 같은 울음이 바글거렸다. 

 “……형.”

 평생에 걸쳐 H가 형이라고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H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조용해.”
 “뭐?”
 H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전철이 세찬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거대한 소음이 계속해서 말하는 H의 목소리를 덮고 귓속을 가득 채워 몸을 뒤흔들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전철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야 겨우 말 끝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벌레 떼처럼 들끓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문득 선뜩한 공포감이 신물처럼 차올랐다. 마주친 H의 눈이 너무도 낯선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
 “귀가 멀어버린 것 같아.”
 H는 바스라기 같은 웃음을 피웠다. 언제나 드세게 타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처럼.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H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제시간에 학교를 왔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책에 필기라는 걸 했다. 부모님, 선생님, 반 아이들, 너나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리고 좋아했다. 이제 좀 살겠구나. H에 관한 일이라면 늘 비이성적으로 변했던 모든 곳에 평화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게 곧 불행이었다.

 “너 머리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아보자.”
 “나 멀쩡해.” 
 “아니야, 뭔가 이상이 있어. 미친 것 같다고.”
 “…미친 건 형 아니야? 헛소리 그만해.”
 저벅저벅 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책을 펼치는 H를 보며 머리를 잡아 뜯었다. 저게 뭐야. 겉가죽 외에는 비슷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 저게 어떻게 H야. 내가 부정하거나 말거나 현실은 점점 확고하게 못 박혀 갔다. 갱생한 H, 정신 차린 H. 모두 기뻐하는데 나만 화가 났다. 하루아침에 무미건조해진 생활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손을 놓고 수업을 듣다 보면 학교에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고는 했다.

 혼란스러운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악몽을 꿨다. 놈의 안에 있다고 믿었던 악마가 내게로 찾아온 것 같았다. 온갖 짐승에게 물어뜯기고, 절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삼지창에 쉴 새 없이 몸이 찔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겨우 잠에서 깨면 불면의 시작이었다. 새파란 새벽을 타는듯한 머리로 새까맣게 지새웠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어갈수록 성격도 뾰족해졌다. 날카롭게 갈린 신경이 스스로를 찌를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성적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굴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갔다. 안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내가 울컥할 때마다 끓어오르기도 했다. H가 말하던 끓는 상태라는 게 이런 걸까.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듯한 막막함이 명치께 가득 쌓여갔다.

 “…너 때문이야.”

 무작정 방에 들어와 돌을 던졌다. H는 나를 흘끔 쳐다봤다가 이내 풀던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가 나 때문인데.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너 때문에 여기가 지옥이 됐어. 잠깐의 정적 사이로 바깥의 소음이 끼어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 엄마와 아빠의 듣기 싫은 웃음소리. 나를 깡그리 무시한 채 홀로 평온한 녀석을 보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H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됐네.” 
 “…….” 
 “축하해.”

 빈틈없이 꾹꾹 눌러온 화가 결국 터졌다. 구석에 박혀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었다. 맞아서 이렇게 됐으니, 한 번 더 맞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근거 없는 확신이 악의와 뒤섞여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팔을 휘두르자마자 터진 H의 짧은 비명과 함께 놀란 부모님이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야!”

 벼락같은 호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엄마가 H를 감싸 안고,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힘이 풀려 놓친 배트가 떨어지며 발등을 찍었다. 쓰러지듯 주저앉아 올려다본 H의 눈가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 형이, 형이… 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는 끔찍하다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도리질 끝에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왜 그래, 왜! 지긋지긋해,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이번엔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픈 발등도 잊을 만큼 황황해 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웃음이 터졌다. 그들이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았지만 웃음은 발작처럼 그치지 않았다. 조악한 연극 세트를 보는 것 같았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H도, 경멸 섞인 눈동자가 H가 아닌 내게 향해 있는 이 상황도. 견고하게 쌓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발밑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는 쟤가 안 이상해?” 
 “…….”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아빠가 뭐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 자식이, 이거 당장 열지 못해? 쫓아온 아빠가 문을 덜컥거리며 소리쳤다. 엄마가 창고에서 방문 열쇠를 찾아오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도망쳐야 했다. 책가방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 버리고,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관찰 일기를 쓸어 담은 뒤 책상 위 아빠의 라이터와 지갑을 훔쳐 창문으로 달아났다.

 한참 뛰어서 온 곳이 겨우 학교였다. 이제 다 자랐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디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어리숙한 중학생에 불과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가장자리를 뱅뱅 돌다가 운동장 구석에 앉아 일기를 꺼냈다. 어설프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 또 끅끅 웃었다. 인생 최초의 절망이라는 게 H의 갱생이라니. 우스웠으나 이번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H는 구제 불능이었다. 제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결국 차례차례 H를 포기했다. 나는 그 옆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든 칭찬은 내게 돌아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뺨을 적시고 입 안을 붓게 만들 만큼 울었는데도 계속해서 솟아났다. 무너진 발밑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움켜쥔 바닥의 모래는 새까만 하늘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낮 동안 받았던 햇빛이 사라지자마자 식는 온기는 얼마나 매정한가. 비겁하고 평탄했던 인생이 꼬였음을 자각했다. 짓밟을 디딤돌이 사라진 나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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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사이

scene 1.

그와 헤어졌다.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진 것을 뒤늦게 알게된다. 
scene 2.

병원. 시간이 흐르고 출산이 다가오는 시점.
병원의 과실로 아이의 장애 사실을 뒤늦게 통보받는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나. 
상황이 나아질 방법은 없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scene 3.

지난 여름을 같이 보낸 저널쓰기 선생님이 보인다. 
그 분 어깨를 붙잡고 말 없이 큰 소리내어 울었다. 
쏟아지는 눈물과 통곡. 

내 등을 토닥여 주시는 선생님 손의 온기와
그리고 함께 도닥여주는 목소리.
real1.
그럴리가. 
이것은 앞으로의 (꿈 속의)일을 위한 프롤로그.
real2.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일들이 하나씩 나의 일로 전환된다.
서로 말로 전부를 주고 받지 못한 
그 무게가 고통들이 내 기준으로 몸과 마음을 채운다. 
미숙한 현실 속의 관계. 대화. 말.
real3.

그 절절함이, 감정이 눈을 뜬 순간에도 이어진다. 

선생님이 내 맘속에 그런 존재로 남으셨나보다. 

현실에서 깨닫지 못한 내게 필요한 것들을 무의식에서 행한것일까.

epilogue.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 
아수라장 속에서 눈이 떠진다.
일주일도 지난 꿈의 파편들

남은 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 전하지 못하는 고맙고 미안한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