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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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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순간부터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선택하는 것과 그 것에 대한 책임을 늘 생각하게 됐다.

책임감때문에 더 신중해 지는데 ... 

오늘 문득 선택하고 싶은데 책임은 미루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있는데..(없는 사람도 있겄지만)

득만 얻고 싶은 이기심이 발동했다.

이미 어른이 됐지만.. 어른이 되는건 싫다.

그렇다고 힘들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건 더 싫다..

딱 5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선택을 했을까?



  • 득만 얻고 싶은 이기심이 발동했다. <- 난 어른이라 그런 마음이 없는데. ㅎㅎㅎ 농담이고. 득과 실이 따라야 삶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 같아요. 실이 minus 로만 보인다면, 그건 그 가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추구하는 가치를 정말 사랑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꺼예요.
어디서 왔지?
[["synd.kr", 34], ["m.search.daum.net", 1], ["unknown", 253], ["www.google.co.k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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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사회생활은 미숫가루와 같아 이곳 저곳에서 쌓이고 쌓여 남들과 뒤섞인다. 그럼에도 나는 녹아들지 못하고 섞이기만 하다가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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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인정, 위로, 어른

 나는 늘 애정이 부족했다. 넘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하게 자란 게 아님에도, 나는 늘 지독한 결핍에 시달렸다. 그 근원을 찾으려 밤마다 끝없는 회상을 거듭해도, 이미 희미해진 기억들은 그 소맷자락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요즘 들어 최면에 관심이 많아졌다. 나조차 기억할 수 없는 흐릿한 과거들을 누군가 들춰 준다는 것. 그곳의 나는, 생애 첫 결핍을 경험했을 나는ㅡ다섯 살, 일곱 살, 어쩌면 세 살ㅡ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토록 애정에 목마른 나를 만들어냈는지, 나는 상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웃기지, 마법 학교에 입학하는 것 따위의 상상은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도 잘만 하는 내가, 적막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홀로 누워서 내 유년 시절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게. 남의 사소한 문장들은 기억하면서, 막상 나의 전기의 적혀 있을 내 단어들은 알지 못한다는 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욕구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나의 능력를 인정받고, 그로써 나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란 뭘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삶의 목표로 두지 말라는 소리를 언젠가 들은 것 같다. 칭찬을 맹목적인 갈증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것. 오로지 남의 시선에만 온 신경을 쏟아 정작 내 머릿속은 들여다 볼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타인의 욕구에 나를 끼워 맞추는 수동적인 삶이 된다는 것. 그럼에도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삶의 이유가 될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
  나에게 결핍이 있다는 걸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머리가 크고, 부모님과 말다툼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무엇에 실망하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생각해 봤다. 답을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항상 언쟁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요구했던 것, 내가 바랐던 것은 그저 따뜻한 위로였고 인정이었다. 고생했네, 힘들었겠다. 속상할 만했네, 피곤하지. 무언가 해결책을 바란 게 아니라 그저, 간단한 공감이 필요했다. 
  나는 무엇을 성취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상을 받고, 좋은 결과를 내고.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그랬기에 그 모든 게 이젠 당연시되어 버린 걸까.
  애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나는 그 모든 것에 굶주려 있다. 친구와의 우정, 가족의 사랑, 연인의 애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받은 것 같지가 않다. 이 글을 내 가족이 읽는다면 어이가 없겠지. 그래, 내 손아귀에 쥐여진 적은 많았다. 다만, 내가 그것을 삼켜 소화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른다. 아무리 애정을 퍼 주어도,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면 더욱, 받아먹을 줄 모르고 오히려 꺽꺽대며 뱉어내는. 어쩌면 나는 그냥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 왔다. 이 주 만에 온 연락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걱정했었다. 나에게 소중한 아이였다. 웃겨 주고 싶었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일상에 지쳐 주저앉은 그 애의 손을 잡아 주고,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이만큼 견딘 것도 대단한 거야, 하며 다독여 주고 싶었다. 이삼십 분 정도 통화했던 것 같다. 문득, 그 애가 그랬다. 너는 어릴 적부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 것 같다고. 힘든 순간에도 그냥, 원래 그렇게 아픈 게 맞다고 스스로 되뇌어 온 것 같다고. 오늘 내가 건넸던 모든 위로가 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 같다고. 너는 되게, 어른 같아. 그 말이 좀 아팠다. 아직은, 좀 더 애처럼 굴며 사랑받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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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어른

김창완은 예전에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완성되었다고 믿지 말고 늘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어른이 되라고. 채현국 선생은,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젯밤에 길을 걸었을 때 문득 어릴 적에 봤던 드라마 〈가을동화〉가 생각났다. 
가을동화에는 송혜교(극중 이름은 은서)의 아역으로 나온 문근영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드라마를 떠올리면서 어른이란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문근영이 말한 나무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김창완과 채현국 선생이 말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 어른이라면, 어른이란 죽음이 가까워오기 전까지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 나무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나도 언젠가는 꼭 나무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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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가 심해진다

너는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지. 받아들여. 네가 어른이라는 것을. 부모님을 제외한 누구도 이제 너의 투정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네가 자존심이라며, 신념이라며, 투쟁심이라며 내세우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투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게 바로 알을 깨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책임을 지라는 거야. 세상을 알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네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라고. 이제는 충분히 알게 되었잖아?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과거에는 책임을 지고, 지금부터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래서 스스로 위로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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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나...
빛이 어른거려.

그런데 너무 외로워서

그 빛이 잘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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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A4용지에 잉크 한방울 똑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새하얀 종이를 검게 물들인다
나에게 흰 종이와 검은 잉크 중에 무엇을 선택할거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 누구 보다도 혼란에 빠지며 0.1초마다 흑백을 넘나든다고 대답할것이다 
내가 이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쯤이면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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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다

과거, 어릴때의 난 어른이 되기를 원했는데.
현재, 어릴때의 내 모습에 어른이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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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렸었다면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었더라면, 
나는 그냥 어리다고 숨어 회피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 다시 어려지고 싶어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어른이 되는 것' 은 내게 아직 너무 벅찬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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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건 참 간사하다.
꿀 때는 꼭 이루어질 것처럼 생생하더니, 그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흐릿해진다.
꿈이 아니라 헛된 꿈을 꾸게 만드는 어른들이 간사한 건가.
아니, 어쩌면 헛된 꿈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 꾸는 내가 간사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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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예전에는, 마냥 어릴 때 마치 세상에는 온갖 행복으로 차있는 것 처럼 느낄 때는 어른이 되고싶었다 . 시간을 재촉하면서까지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왜 난 어른이 된다는 게 너무나 두려운 걸까. 지금 난 커간다는게 너무나 무섭다 살아갈 수록 나에게 더해지는 기대들에대해 보답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쌓여있는 것 같다. 내가 가고있는 이 길이 진정으로 맞는 길일지 내가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 목적지는 있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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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기 위한 말 한마디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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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어렸을 적 처음 마셔본 커피는 그렇게 쓸 수가 없었어요.
그게 어른의 맛이라는 걸 알게되었어요.
마냥 멀게만 느껴졌어요.
언제쯤이면 마실 수 있을까?
생각만 하며 몇 년이 지났죠.
그러다 언젠가 다시 커피를 마셔봤어요.
다시 마셔본 커피는 어렸을 때 마신 커피와는 너무나도 다른 맛이었죠.
지금도 가끔씩 커피를 마셔요.
아직도 조금은 쓰지만, 그래도.
커피는 어른들의 것이었나봐요, 어렸던 저에겐.
그럼 지금 커피를 마시는 난, 어른인 걸까요?
어른 행세를 하는, 껍데기만 어른인 척 하는 아이는 아닐까요?
커피가 언젠가는 맛있어지겠죠.
그럼 그때 난 어른이 된걸까요?
어른이 되는 동안의 삶이 써서 그렇게 썼던 커피가 맛있어지는 걸까요?
무뎌지는 걸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내 삶은 그리 쓰지 않나봐요.
난 아닌 거 같은데.
아직 커피를 좋아할 만큼 쓴 삶은 아닌가봐요.
그럼 언젠가, 커피가 맛있어진다면.
난 기뻐해야하는 걸까요?
아님 슬퍼해야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