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인정, 위로, 어른
나는 늘 애정이 부족했다. 넘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하게 자란 게 아님에도, 나는 늘 지독한 결핍에 시달렸다. 그 근원을 찾으려 밤마다 끝없는 회상을 거듭해도, 이미 희미해진 기억들은 그 소맷자락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요즘 들어 최면에 관심이 많아졌다. 나조차 기억할 수 없는 흐릿한 과거들을 누군가 들춰 준다는 것. 그곳의 나는, 생애 첫 결핍을 경험했을 나는ㅡ다섯 살, 일곱 살, 어쩌면 세 살ㅡ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토록 애정에 목마른 나를 만들어냈는지, 나는 상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웃기지, 마법 학교에 입학하는 것 따위의 상상은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도 잘만 하는 내가, 적막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홀로 누워서 내 유년 시절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게. 남의 사소한 문장들은 기억하면서, 막상 나의 전기의 적혀 있을 내 단어들은 알지 못한다는 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욕구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나의 능력를 인정받고, 그로써 나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란 뭘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삶의 목표로 두지 말라는 소리를 언젠가 들은 것 같다. 칭찬을 맹목적인 갈증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것. 오로지 남의 시선에만 온 신경을 쏟아 정작 내 머릿속은 들여다 볼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타인의 욕구에 나를 끼워 맞추는 수동적인 삶이 된다는 것. 그럼에도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삶의 이유가 될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
나에게 결핍이 있다는 걸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머리가 크고, 부모님과 말다툼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무엇에 실망하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생각해 봤다. 답을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항상 언쟁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요구했던 것, 내가 바랐던 것은 그저 따뜻한 위로였고 인정이었다. 고생했네, 힘들었겠다. 속상할 만했네, 피곤하지. 무언가 해결책을 바란 게 아니라 그저, 간단한 공감이 필요했다.
나는 무엇을 성취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상을 받고, 좋은 결과를 내고.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그랬기에 그 모든 게 이젠 당연시되어 버린 걸까.
애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나는 그 모든 것에 굶주려 있다. 친구와의 우정, 가족의 사랑, 연인의 애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받은 것 같지가 않다. 이 글을 내 가족이 읽는다면 어이가 없겠지. 그래, 내 손아귀에 쥐여진 적은 많았다. 다만, 내가 그것을 삼켜 소화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른다. 아무리 애정을 퍼 주어도,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면 더욱, 받아먹을 줄 모르고 오히려 꺽꺽대며 뱉어내는. 어쩌면 나는 그냥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 왔다. 이 주 만에 온 연락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걱정했었다. 나에게 소중한 아이였다. 웃겨 주고 싶었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일상에 지쳐 주저앉은 그 애의 손을 잡아 주고,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이만큼 견딘 것도 대단한 거야, 하며 다독여 주고 싶었다. 이삼십 분 정도 통화했던 것 같다. 문득, 그 애가 그랬다. 너는 어릴 적부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 것 같다고. 힘든 순간에도 그냥, 원래 그렇게 아픈 게 맞다고 스스로 되뇌어 온 것 같다고. 오늘 내가 건넸던 모든 위로가 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 같다고. 너는 되게, 어른 같아. 그 말이 좀 아팠다. 아직은, 좀 더 애처럼 굴며 사랑받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