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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먼지가 곳곳 껴있는 선풍기


가볍게 탈탈 터니 나올준비를 다했었던듯 열어둔 창문의 바람과 함께 옆으로 흩날린다.


다 씻어서 트니 불어온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고 , 아쉬운듯 불어온 바람에


여름이 온것이 실감이 났다.

어디서 왔지?
[["synd.kr", 12], ["unknown",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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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선풍기

 선풍기를 장롱에서 꺼낼 때 여름이 왔다는 것을 한껏 실감하게 된다. 벌레와의 전쟁. 시원함보단 꿉꿉함으로 가득한 장마철. 할아버지 댁 과수원을 괴롭히는 태풍. 좋은 일보단 그다지 살갑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기는 계절이지만 항상 여름이 다가온다고 느껴질 때면 가슴 한켠이 기대로 부푸는 것은 여간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또 겨울 내내 신세를 졌던 보일러를 뒤로하고 먼지 묻은 선풍기를 정성스레 닦으며 그것을 곧이 곧대로 쓰는 것도. 끝끝내 이제는 고집도 아집도 아닌 여름 날 있었던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지고 있다. 
 추운 겨울은 한참 전에 지나갔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여름. 봄의 상큼한 싱그러움이 씩씩한 싱싱함으로 변모해가는 여름. 언제나 그렇 듯 장롱 속 선풍기는 먼지 속에 덮여 있고, 언제나 그렇 듯 나는 그것을 꺼내어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는다. 저번 여름보다 이번 여름이 더 더워졌다는 앵커의 말에 밥을 먹다 목이 막히기도 하는 나이지만 예년이나 지금이나 나는 별다를 것 없이 똑같다. 
 아직은 주위에서 젊다고 하는 나이이다. 달콤한 꿈에서 깨기에는 많이 이른 것 같다. 그러니 장롱 속 선풍기처럼 내 꿈을 숨겨놓고는 생각이 날 때마다 깨끗이 닦아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올해도 내년도 변함없이. 그것이 너무 낡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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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저 멀리서 돌아가는 선풍기
한 번쯤은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었는데
찾아오는 여름마다 드는 그 생각이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몸도 마음도 흐려져가지만
어릴 적 그 생각은
여전히 나를 선명했던 그 시절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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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윙윙 투투툭 탁 윙윙탁탁탁.
이게 무슨 소리지? 위험하겠다 빨리 전원 꺼버려
푹푹찌는 저녁 8시를 위로하던 오래된 선풍기 날이 부숴졌다. 아니지 그 친구는 에어컨은 꿈도 못꾸는 우리 집의 지난 10년을 버텨준 소중한 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 툭. 부러져 버린 것이다. 마치 이제 내 소명을 다하고 이만 가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의연하게
엄마는 당황했다. 에어컨을 사달라는 딸의 눈치를 보며 일요일에 팔 오뎅을 꾸역꾸역 끼운다. 그래 낼 모레 장사하고 번돈으로 딸 방에 작은 6평짜리 에어컨을 달아줘야겠다. 나는 찬 에어컨 바람이 싫으니 괜찮다. 힐끗 바라보니 딸은 그저 마저 꼬치에 떡을 끼우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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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시원하다가도 뭔가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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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자와 구직자...그리고 잡담

나는 여지껏 일을 하면서 두군데의 직장에서
관리직이였다.
하나는 공장이고..
하나는 사무직이였는데..
내가 구인자가 되었을때 힘든점은..
"이 사람을 믿고 나와 손발을 맞출수 있을까..."
였다.
공장 구인자였을때..
난 일을 하면 효율적이면서 편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편이다.
물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또 있을것인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나와서 성공했던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주변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해라"가 주된 안좋은 시선이였다.
나는 그게 왜 잔머리라고 하는지 이해 할수 없었다.
왜 효율적이며 빠르고 편한 방법을 찾는게 잔머리 굴리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저 조건에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건 당연한 조건이였다.
저런 문제는 노가다(현장) 생활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쪽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30~40년 생활에 찌들어 
뭔가 바꿔볼 생각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30년전에 하던 방법을 지금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몇몇가지들을 바꿔갈때마다 그 사람들은 놀라움과 칭찬을 하기커녕
쓸때 없는 짓이라며 핀박했다.
오히려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게 힘들었다.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데.. 그리고 편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준 사람이 한 공장 사장님이셨다.
10명 안팍의 작은 공장이였지만
우리는 많은걸 만들어냈다.
물론 그쪽 계통이 신소재 쪽이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같은 계통 공장들에게는 없는 경쟁력을..
우리는 가졌다..
그리고 초보자들도 쉽고 빠르게 익힐수 있는 것들도 만들었다.
직접 만들수 없는 제단기계들은 3천만원을 들여서 
기계제작자들과 상담과 연구를 통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생산속도는 40프로가 빨라졌다.
그리고 직관제단이라는 부분은 1개월만 배워도 할수있는
간단한 업무가 되버렸다.(그 전에는 최소 6개월을 배워야지..그리고 체력이 따라가줘야지만 할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은 같은 계통 다른 공장들이 한달 2000헤베를 생산할때 우리는 6000헤베 이상을 생산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원했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수 있는사람들..
그때 내 나이 26~27살이라.. 더 창의적이였을수도 있지만..
많은 면접을 보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있었다.
온지 이틀만에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
5달을 넘게 가르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생산라인에 혼자 냅둘수 없는 사람.
나쁜사람만 있지 않았다.
오자마자 1개월만에 남들 2인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리지만 꼬박꼬박 차고 올라오는 사람.
불만은 많지만 일은 똑바로 하는사람.
그렇게 팀을 싹 갈아 엎으면서 수십명의 면접을 봤는데..
그러다보니 행동과 얼굴 말투 등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아주 대충 파악되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잘 활용하고있고....
판매직에 있을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직자일때..
일을 가려본적은 없다.
딱히 내가 일을 가리는거라면 
영업직이다. 
판매직도 하는데 이상하게 보험같은 영업직은 못하겠더라..
일만 가르쳐 주면 항상 열심히 했다.
기술을 가르쳐주면 밤마다 연습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쉬지도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돈을 띠어먹는사장도 있었고..
수당까진 안바래도 야간까지 일하면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사장도 있었고..
쉬는날에 인력이 부족한 바람에 다른사람이 힘들까 아침에 출근해 기초적인걸 잡아두고 퇴근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하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쉬는날 너무 피곤해 하루 푹 쉬었더니..
"ㅇㅇ이 요즘 게을러졌어~" 라더라...
난 쉬는날 일하는게 싫다.
쉬는날에 내가 일하는건 다른 직원들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내 쉬는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족과의 시간을 내가 방해 한거일지도 모른다.
이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얹혀
내 어깨위로 지나가는 세월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도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더 못사는 최초의 세대란다.
20대 30대의 소득증가율과 월평균 가계지출이 최초로 -로 돌아섰다.
2003년 이후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란다.
N포 세대란다.
3포세대가 4포세대가 되고 그게 결국 N포세대가 되버렸다.
헬조선,지옥불반도,노오오오력,흙수저,금수저
별의 별 말도 다 생겼다.
그저 웃고만 있기엔 참 씁쓸한 단어들이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더라..
사내결혼으로 아이를 가진 부부를 퇴사시킨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한 대기업은 
사람을 분리수거도 못하는 쓰레기로 취급중이다..
뭐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위해..
발로 뛰는 대기업들도 있다...있긴...있다..
N포세대에 맞춰 30대인 나도
포기한게 많다....
씁쓸하지만...어쩌겠어..
현실인데..
이제 여기서 몸까지 아프면 
정말 한강물에 뛰는 수밖에 없다.
나도 탈조선을 하고 싶었다..
그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할수 있으면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의 사람차별이나...
뭐 별 다를건 없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금방 잊는다' 다.
분노하고 잊지 말자고 하고 바꿔가자고 하고선..
어느새 금붕어처럼 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진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리 되더라...
라는 핑계같지도 않는 핑계를 늘어본다..
그래도 하나 잊지 않는다.
선거는 꼭 하자.
뽑을 놈이 없어도 무효표라도 던지자.
난 '무효표를 던질빠에야 그냥 안하는게 낫지'라고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다행인건지... 
당연한게 이제 시작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20~30대에서 투표를 한다는 사람들
비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한다.
그 전에 일하던곳에선
투표날에 일을 시켰다.
대통령 선거 날이였는데.......
휴가도 못 쓰게하고 일하게 했다.
먹고 살기위해 별수 없이 일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
사전투표라도 했어야 했는데..
설마 투표날 투표하러 가지도 못하게 할줄은...
군대에서도 느끼고 조금한 구멍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두서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부터 
포장을 뜯어서 당당하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산대에 줄서있는게 불만이라 물건을 다 던지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우린 식당도 아니고 그냥 물건 파는곳인데...)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달라고 20분이 넘게 때쓰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항상 간식을 사다 주시는분도 계시고..
힘들까봐 비타 음료 같은걸 가져다 주시는분..
야채를 사갔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반찬으로 먹으라고 주시는분들도..
그냥 존댓말만 써줘도 감사했다.
일상이 반말 듣는거라..
야, 어이 , 거기 , 안들려?, 얼마냐고.. , 아 왜 안되는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도 들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은
전부 손님에게 별 다른걸 원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도 않았다.
먹을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사람 같은 대우만 바랬는데..
본인 아들 , 딸들에게도 저러나 싶다..
사회가 병들어가며..
사람들이 병들었다...
내 탓이 아닌것도 내 탓을 하고...
내 탓인걸 남탓하고..
본인들의 욕심만 채웠다.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한다..
"그냥 전쟁나서 핵폭탄이나 떨어졌으면..."
실제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감히 생각해본다.
구인도 구직도 힘든 세상이다.
양쪽 입장에 전부 있어봐서
더더욱 실감한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보니
더더더더더더욱 실감한다.
공부 못했고 능력 없으면
개처럼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조만간에  난
기계도 아닌...
개처럼...노예처럼 일하러 갈 것이다.
하루에 15시간의 일이다.
쉬는시간도...밥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앉아있는 시간은 밥먹는 시간 뿐이다.
아마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을 다 합쳐서 15시간중 1시간쯤 될거 같다..
손님들 중에 정말 궁금해서인지...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지나가면서 봐도 쉬는사람도 없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으니
궁금할법도 하겠지...
솔직히 말해준다 200번다고.
다들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긴다.
진짠데..............
결국 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같은 일상의 반복을 하러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과거가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고...
그게 나의 최선이니까..
개라도 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 하지 않는다.
조만간 또 이런 나의 투덜투덜
일기장을 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 
웃으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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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上

1.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음악이 들리면 몸이 멋대로 춤을 추는 병이다. 웃지 마라. 이것은 아주 좆같은 일이다. 나는 가족, 이웃,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 그 외 길 가던 행인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자라왔다.
 이 병은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발병했다. 우리 애는 끼가 많군! 핫핫 웃었던 부모님의 입가에는 곧 어두운 주름이 졌다. 이 정체 모를 병은 수도꼭지처럼 물의를 쏟아냈고 두 분은 그로 인해 신음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돈에 관해서는 꽤 여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 돈도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세상 곳곳이 전쟁터였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음악에 나는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발병 이후 열다섯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의사와 목사와 신부와 무당과 그 외 민간의학 사이비를 만났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달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어린 시절 억압된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춤으로 나타나는 거죠. 하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악마가 들렸군요. 구마 의식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체온이 1도 높아지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몸에 자철석을 지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전부 실패했다. 헛된 희망에 끌려다니다 너절해진 나는 열여섯이 되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안 할래요.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해요. 나를 설득하려 했던 부모님은 되려 설득당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
 말도 안 되는 치료와 의식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자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은 부모님이 집에서 특히 공을 들인 곳으로, 방음벽과 차음벽을 몇 겹으로 둘러 바깥의 소리가 한 틈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시공했다. 나는 집에 오면 거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영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 무렵이다.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 이름 석 자를 다 붙여 윽박지르던 목소리들이, 거기에 담긴 기겁과 짜증이, 오랜 시간 밟혀 까맣게 굳고 더러워진 어감이 나를 짓눌렀다. 평범한 이름마저 염증이 되는 게 버거웠던 나는 자조하듯 새 이름을 지었다. 영고. 영원히 고통받는 김영고. 그리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영고야.”
 수업 종이 울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탭댄스를 추는 미친놈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던 사람. 얇은 은테 안경을 쓰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답지 않게 피부가 깨끗했던 A.
 “고등학교 어디 가?”
 “안 가.”
 “에이 알려줘. 난 고고고. 거기 교복 예쁘더라.”
 “진짜 안 가. 검정고시 치기로 했거든.”
 “헐. 존나 부럽다.”
 “뭐라는 거야… 학교 안 간다고 노는 줄 아냐?”
 나는 유일하게 아는척하는 A가 낯설고 불편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치근덕대지. 그럼에도 새 이름을 알려준 것은 걔가 달라붙은 뒤로 본명을 더 자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땡땡! 땡땡! 땡땡아! 돌아볼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불러대는 바람에. 그럼 평균적으로 바닥을 치던 기분이 외핵 내핵까지 뚫고 들어갔으니까.
 “영고.”
 “응?”
 “이름 말고 영고라고 불러.”
 “별명이야?”
 “어. 너만 알려주는 거야.”
 사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는 착실하게 영고라고 불렀다. 진짜 이상한 애였다. A는 내가 매번 데면데면하게 굴고 가끔 무시하는데도 꼭 와서 인사를 받아가고는 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개 같은 질문도 했다.
 “야야. 그럼 너 섹스할 때 뮤뱅 틀면 박자 맞춰서 하냐?”
 “……미친놈아…. 박자대로 털리고 싶냐?”
 중학생답게 태양처럼 밝고 개념 없었던 A. 배시시 웃는 얼굴에 티 하나 없는 것이 천진해 보이던 A.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의 설득에 떠밀려 억지로 나간 중학교 졸업식 날, A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 인생이 뮤지컬이라고 생각해.”
 그게 뭐야. 멱살이라도 잡아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A의 하얀 얼굴 대신 감색 융으로 덮인 졸업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A는 떠들썩한 친구들의 물결에,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헤어졌다.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 창업한 스타트업이 크게 잘 되었다는 소식을 아주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3.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던 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꽤 살만해졌다. 과외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쉬는 모든 것이 내 방 안에서 가능했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안전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거짓말처럼 달콤했다. 내 삶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일 년쯤. 내 삶에 불행을 쏟아부었던 악마는 겨우 숨을 틔운 나를 다시 진흙탕 속에 처박았고, 나는 그제야 이 평화가 태풍의 눈이었다는걸 깨닫는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막 열여덟 살이 된 겨울밤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지던 트럭과 부딪혀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슬픔보다 황망함이 앞섰다. 내가 뭘 실감하기도 전에 친척 어른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지도 비교적 덤덤한 상태였던 나는, 그들이 나를 추스르겠다고 한마디씩 건넬 때마다 오히려 죽음을 감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것. 영영 볼 수 없게,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 그건 갑자기 찾아온 만큼 터무니없이 무겁고 까마득해서, 나는 점차 제정신을 잃어갔다. 몸속의 수분을 모조리 짜낼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영정 앞에 엎드려 목놓아 우는 나 대신 큰아버지가 상주 노릇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완전히 탈진해 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그제야 식장 안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 친척과 부모님의 지인들이 모여 떠들썩했다. 그중에는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내게는 사촌인 B도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B는 비죽 뻗친 머리와 개구지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직선적이라 무심해 보이는 큰아버지의 턱을 가졌다. B는 아마 장례식이 지루했을 것이다. 자기 부모님도 아니고, 얼굴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고작이고, 가끔 명절에 만나면 용돈을 많이 줘서 좋은 친척분이 돌아가셨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겠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B를 포함한 온 일가족은 내 병을 알고 있었다. 불치병인지 정신병인지 관심병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던 B가 내 옆에 와서 댄스곡을 재생한 것은 명백히 새빨간 고의였다.
 새빨갛다고 표현한 것은 기억 속 시야가 터진 토마토처럼 붉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때 나는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하던 빨간 구두였지만, 그 많은 이들 중 내 다리를 잘라줄 자비로운 나무꾼은 없었다. 영문 따위 알 리 없는 문상객들과 영문을 아는 일가족들은 한 몸처럼 나를 물어뜯었다.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눈을 떠보니 장례식은 끝났고, 나는 왜인지 이마가 찢어져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내가 물려받게 될 재산에 눈이 돌아간 어른들은 온갖 법률 용어로 뒤덮인 문서를 들이밀었고 저들끼리도 개처럼 싸웠다. 내 의사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있는 순간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장례식 날 몸을 뒤덮었던 통증이 종종 다시 살아나 나를 끝없이 잘게 조각내었다.
 B를 죽여야겠다. 그런 생각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모님이 죽었으니 B도 죽어야 공평한 것 같았다. 분노는 맥락 없는 비약을 논리로 만든다. 주방에서 식칼을 골라 칼집을 빼고 신문지를 채운 가방 속에 넣었다. 큰집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옆 동네의 주공 아파트. 택시로는 20여 분. 머리가 식기에는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기어코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 큰어머니 뒤로 큰아버지가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우리 조카님 왔네! 들어 와. 춥지? 커다란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오자 따듯한 음식 냄새가 훅 끼쳤다.
 “밥은 먹었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큰아버지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녁 먹고 가. 그러면서도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살피는 기색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미성년 후견개시…”
 그의 눈이 짐승처럼 반짝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군침도 삼켰을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역시 큰아버지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징그러울 만큼 활짝 웃었다. 잘 생각했다고, 몇 번이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큰어머니도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며 음모를 꾸미는 이들처럼 속닥거렸다. 내내 이 모든 상황을 껄끄럽게 쳐다보고 있던 B는 안절부절못하다 내 가방에 뭐가 있냐고 질문했다.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굳은 얼굴로 애써 웃고 있었다. 어차피 걷힐 미소인데 헛수고였다.
 “궁금해? 자, 봐.”
 지퍼를 열고 칼을 꺼내자 B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 치는 B를 잡아 찌르는 것과 동시에 귀 옆을 세게 얻어맞았다. 옆으로 이미터쯤 날아가 벽에 반대쪽 머리를 부딪쳤다. 큰아버지가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무언가 터진 듯 얼얼한 머리 위로 상스러운 욕들이 쏟아졌다. 새된 소리로 우는 B와 겁에 질린 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어떡해, 어쩌면 좋아……”
 좋겠다. 걱정도 해 주고. 그 와중에 그게 부러웠다.
 시야가 흘러내리고 이명이 세상을 뒤덮었다. 대자로 누워 빙빙 도는 천장을 보다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