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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나는 너를 안다.


너의 생각을 알고,

표현을 알고,

논리의 이름으로  흘러가는 너,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너를 안다.


의심하지 않는 수용을

논리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받아들였을 뿐인 너의 존재를

소유하고 있다고 감히 내가 선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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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5년 전에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유를 못 찾아 방황을 했던 적이 있다. 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농담조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똑같은데 이렇게 힘들게 아둥바둥 살아야 돼?"
주위에서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며 얘가 공부가 하기 싫으니까 별소리를 다한다며 웃어넘겼지만 나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 선언을 했다.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평생 속 한 번 안 썩이고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했던 애가 갑자기 공부를 안하겠다고 말을 꺼냈으니.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게 엊그제였는데. 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는 공부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방에 혼자 들어가 펑펑 울었다.
혼자 펑펑 울면서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 서러웠다. 다른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아예 선택권조차 없었다. 여기서 내가 울어봤자 세상은 하나 변하지 않고 내 성적과 대학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얼마 후에 나는 다시 평소 생활로 돌아왔다. 전처럼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고 학원을 다니며 다시 부모님이 좋아하던 바람직한 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부가 아니라 내 행복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다. 힘들 때도 나를 몰아붙이기 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게 되었고 미래의 일을 불안해 하기보다는 잘 될거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그 때 내가 바라던 의사가 되지도 못하고 여러 불운이 겹쳐 대학 입시도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의 행복을 목표로 삼아서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이 긴 방황도 끝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