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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나는 너를 안다.


너의 생각을 알고,

표현을 알고,

논리의 이름으로  흘러가는 너,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너를 안다.


의심하지 않는 수용을

논리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받아들였을 뿐인 너의 존재를

소유하고 있다고 감히 내가 선언할 수 있을까?

어디서 왔지?
[["unknown", 47], ["synd.k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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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시는군요, 사랑 이야기

일종의 냉소.

일종의 경멸.
일종의 혐오.
남자는 그런 어조로 말했다. 몰이해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남자는 사랑이 지긋지긋하다 말한다.
사랑의 열병을 자주 겪어서도, 애정을 넘치도록 받아봐서도 아니었다.
온 세상에 넘쳐나는 사랑놀음들에 질린것뿐이었다.
흔하디 흔한 사랑고백과 미적지근한 진심들과 클리셰 범벅의 창작물들. 사랑할것이고 사랑하고 사랑했다는 선언들. 그 멍청한 꼴들을 보고있노라면 정신적인 멀미가 느껴진다고 남자가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상상한다.
그 속에서 남자는 사랑의 허리케인과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폭풍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 모두 엿이나 먹으라고.
그를 조롱한다는 뜻이 아니다. 동정하고 싶지도 않다. 사랑을 배척하는 그가 두려운것도 아니다. 사랑을 폄훼하는 그에게 화가 난것도 아니다. 그건 너무 주제 넘는짓이다.
세상일 이라는 것이 꼭 경험 해봐야 알수있는것도 아니니까.
남자는 칼처럼 삐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단정하게 다듬은 손톱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너무 많지않습니까. 너무 과하고."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풀 뜯는 양떼도 초지에 흙이 드러나면 자리를 옮깁니다. 짐승도 아는것을 사람은 왜 알지 못할까요."
정통 로맨스와 러브스토리 광신도인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이 남자는 마뜩찮아 할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는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로미오 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희믓하게 웃고. 나는 조금 생각을 해보다가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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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앓이

또 다시 핸드폰화면을 들여다 보고있다.
끝난것을 안다. 이미 알고있는데도 카톡창을 다시 켰다가 끄고, 다시 켠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다.
이순간 내가 궁금한것은 하나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카톡메세지를 내가 보고 또 본다는걸 너는 알고있는가. 하는것이다.
아마 모를것이다.
「그럼, 낼봐~」그리고 복숭아 캐릭터 이모티콘.
이별을 말하려 나오는 약속에 너는 어처구니 없이 귀여운 이모티콘을 썼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걸까?
약속을 잡은 당시에는 이별을 염두해두지 않았던걸까? 아니면 별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쓴걸까?
전자라면 이해할수없고, 후자라면 수긍이 가능하다.
약속을 잡고나서도 우리사이는 여느날과 같았다.
직장인들의 연애라는것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시간적 여유가 없을때가 되서야 서로의 얼굴을 볼수있는것 아닌가.
이를테면, 퇴근후의 밤과 새벽사이의 시간말이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린 후 보게 된 연인의 얼굴은 정신적인 고조감은 주었을지언정 온몸에 가득한 피로감을 사라지게 해주진 못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오고, 힘없이 웃는 얼굴이 안쓰러웠다.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헤어지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몇시간이고 거기 앉아서 네 얼굴윤곽을 눈에 새겨뒀을 것이다.
이별을 선언하는 연인의 발치에 업드리고, 무릎을 꿇고, 옷자락을 잡고, 그동안의 추억들을 상기시키려하고, 지지부진한 모든 과정들을 거쳤다는건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결론만 말하자면 헤어졌다.
너는 나와 헤어졌고, 나는 아직도 그 장소에 그대로 무릎꿇고 앉아서 울먹거리며 네 발치를 바라보고만있다.
양동이에 들어있는 구정물처럼 진저리치며 미련을 내다버릴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을 가위로 싹둑 잘라낼수 있다면. 그럴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가 나에게 왜 그랬는지 이유따위 알고싶지 않다.
이세상 무엇이든 이유가 될 수있다.
새로운 사람이 생겨서, 질려서, 따분해서, 기다리고 기다려주는게 싫어서. 백가지의 이유를 붙일수있다. 이유따윈 필요없다.
나에게 필요한건 오직 너뿐이다.
하지만 너는 창문아래에서 꽃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남자따위에겐 매력을 느끼지 못할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너는 알고있을 것이다. 내가 그 마지막 대화를 곱씹고 그동안의 다툼들을 후회하고 네가 좋아하던 꽃이 무엇인지 기억하려 애쓴다는것을.
사랑이 아니라, 이별로 인한 열병을 앓고있다는것을 알고있을것이다.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하고싶지 않아서 모조리 나에게 주고 떠났다.
절대로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는것은 남은것이 많은 사람뿐이다.
남은 감정의 찌꺼기가 많아서, 나는 한발자국도 떼지못하고 계속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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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흐린하늘에서 한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억수같이 비를 퍼부었다. 당연하게도 가방안에는 우산이 없었다. 온몸이 아플정도로 내리는 장대비였다. 비를 피할만한 곳으로 가거나 우산을 사야했지만 그냥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싶었다.
기어이 당신을 밀어내고 오는 길이였다.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비에 쫄딱 젖은 청승맞은 모습으로 터덜터덜 인도를 걸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실성했거나 실연당한 여자로 보일게 분명했다. 연인에게 무정한 말들을 쏟아내고 결별을 선언한 여자로 보이진 않을거다. 독하도록 멀쩡한 모습으로 오늘 하루를 끝내고 싶었는데, 기상청 예보라는 의외의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세금도둑놈들.
나는 완벽하게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공주님과 왕자님은 그 이후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같은 끝맺음은 어쩐지 의심스럽고 비현실적이다. 슬리핑뷰티와 왕자님도 백년의 세대차이와 정치적 견해로 언성을 제법 높였을 것이다.
나는 온전한 끝을 바란다.
이를테면 마왕을 물리친 용사가 왕국으로 돌아와 공주와 결혼하고, 몇십년후 장성한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말이다. 하지만 용사의 경우 불치병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건강하고, 행복했고, 공주와 결혼해서 잘 살다가 정정한 모습으로 늙어갔을것이다.
나에겐 늙을기회가 없다. 나는, 이제 얼마 못산다.
나는 끝을 바란다.
병들어서 누워있는 내 곁에서 내 불행에 가슴 아파할 가족이나 연인은 필요없다. 동정이 싫어서가 아니다. 내 아픔에 더 큰 아픔을 느낄 그들을 보는게 괴롭다. 두렵다.
고고하게 혼자 죽을생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렇게도 볼 수 있을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정말 그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뭐가 좋아서 혼자 거울을 보며 이별연습을 했을까. 사랑해서 떠나보낸다는 말은 다 개소리다. 이건 그냥 내 이기심에서 비롯된거다. 당신이 내 병든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걸 보고싶지않다.
그래, 이건 그냥 전부 내 욕심이다. 내 탓이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드라마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건 이 세상에 없다. 어느집이나 적당히 불행하고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가 끝날때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은 나에게 구역질 이외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이 싫은게 아니다. 단지 조금 작위적이라 역겨울뿐이지.
그러니 아까부터 내 뒤를 따라오는 발소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미친여자를 구경하려는 사람이거나 범죄자거나 조금 동정심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일리가 없다.
"청승맞게 뭐하는거야?"
당신이여선 안된다.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
나는 무시한다.
"무시하지 말고."
"누구시죠?"
당신이 피실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모르는 사람인척한다 이거지?"
"그런척이 아니라 사실이거든요?"
"아닌데."
"우리 이제 사귀는 사이 아니거든요?"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완전 타인이라구요. 완전 생면부지의 타인."
"아, 정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당신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이 손 놓으시죠. 성추행범으로 경찰서에 신고하기전에."
"나 좀 봐."
"손 놓으라고."
"알았어. 그럼 도망가지도 말고 헤어지자고 하지도 말자."
나는 당신을 돌아본다. 의아하게도 당신은 울고 있었다. 목소리에선 한점의 떨림도 없었는데 처량한 두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헤어졌어."
내 말을 듣고있는 당신의 눈썹이 느른하게 풀려있는게 보이지만 나는 안다. 당신이 괴로워 하고 있다는걸 안다.
"알아."
"난 도망가지도 않았고."
"알아. 그것도."
"그런데 왜 따라온거야?"
"나도 몰라."
당신은 고개를 숙인채 계속 내손을 붙잡고있다. 나도 당신의 손을 마주 잡고있다.
"나도 모르겠어."
"나쁜사람이 되고싶지않아."
내 목소리에 당신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말했지. 나 이제 오래 못산다고."
"들었어."
"그리고 말했잖아. 나중되서 후회하지말고, 날 원망하지도 말게 우리 그만 하자고."
"응."
"그냥 적당히 끝내고 서로 갈길 가자고."
당신이 돌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래, 나는 이쪽으로 가고싶어."
미친새끼. 생리적인 욕설이 치밀어 올랐다.
"돌았구나."
"널 따라가는게 아니라. 그냥 이쪽길로 같이 가고싶은거야."
"완전 미친놈."
"그러다 네가 잠시 쉬게되면, 나는 다른 예쁜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을꺼야."
"개새끼야!!!"
내 주먹질을 맞으면서도 당신은 태연히 말한다.
"자식들이 손자, 손녀 낳고 내가 나이먹고 늙으면. 그럼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되잖아."
"또라이새끼!"
당신은 발버둥치는 나를 껴안는다. 나는 당신의 정강이를 향해 발길질하다가 멈춘다.
"그러니까, 조금만. 응?"
"......"
"조금만 같이 있자 우리."
당신이 울고있다. 이제는 구태여 울음소리를 참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당신을 마주 껴안는다. 나는 당신의 젖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우린 행복하지 못할거야."
"응, 그래도 괜찮아."
당신은 날 껴안은채 계속 괜찮을거라 말했다.
모두 다 괜찮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