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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이 시점

어느덧 

두번째 수능을 친지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이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점이고

대학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허나 나는

대학에 왔다는 것이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같은선상에서 출발하는것을

이미 남들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나의 길을 더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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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삶을 이어가는 대여정의 시작

업무의 시작이자 반복적인 하루를 알리는 상징. 태평양에서 태풍이 올라와도 알람이 울리면 침대에서 일어나 문밖을 나서야 한다. 새벽까지 회식이 이어져도 업무시간에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 하는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출근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첫 출근이라면 설렘과 긴장, 두려움의 감정이 함께한다. 마지막 출근길이라면 묘한 여운이 발걸음에 담겨 있다. 출근뿐 아니라 모든 일의 처음과 마지막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인생 전반을 차지하는 것은 반복적인 일상이다. 통상적인 출근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제 갔던 공간으로 가는 일이다. 
서울에서 출근 하는 사람은 평균 68분 정도가 출근에 소요된다.(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 하는 시간 평균 68분, 서울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간 평균 56분 | 자료제공: 서울연구원) 한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어떤 사람은 버스 의자에 몸을 기대 다시 잠을 청한다.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기사를 확인하고 메일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왜 회사를 다니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버럭 화내는 사람이 많을 것 이다. 한국은행은 2015년 6월 가계대출 잔액이 594조5000억 원 이라고 밝혔다. 질문에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출근은 빚을 갚고 생활비를 마련하며 혹시 모를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생존이 걸린 선택이다. 이런 선택은 쉽게 권태감에 빠지게 한다. 우리를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 보다는 연봉에 맞춰 직업을 정하게 만든다. 기업은 높은 연봉을 통해 뛰어난 인재를 채용하지만, 사실 월급은 구성원을 사무실로 출근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정도밖에 주지 못 한다.
위대한 기업가나 창업가를 보면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의미가 함께 따라온다. 반면에 구성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지루하고 사소해보일 경우가 크다. 창업가와 결정권자는 기업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 없이 직원 스스로 일을 풀어나가길 기대한다면 무리한 요구다. 결정권자의 제일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자신 혹은 임원이 느끼는 비전과 목적의식을 모든 구성원이 이해하고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들의 출근시간이 새벽 6시30분 인건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직원이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공유할 때 새로운 혁신 원동력이 발생 한다. 임원이 아닌 평범한 직급의 이상적인 출근 시간은 언제일까? 사실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출근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기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회사는 근무 시작 15분에서 30분 전까지 출근하는 것을 이상적 출근시간으로 보고 있다. 출근길에 생길 수 있는 예상 밖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업무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각이 예상되면 그 전에 상급자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리는 것을 직장 예절로 여긴다. 업무가 밀린 월요일이나 연휴 다음날에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 준비를 먼저 하는 모습이 이상적이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며 이런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회사는 밝은 아침인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빠른 출근은 머리로는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출근 후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메일 체크, 인트라넷 확인, 업무일지 작성, 회의 준비 등 할 일은 많지만, 간밤에 터진 연애뉴스들도 넘친다. 언론사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필코 기사를 클릭하게 만든다.

출근길을 제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교통체증과 대중교통의 혼잡도다. 차량의 혼잡도는 승차하고 있는 사람 수/정원(또는 바닥 면적 등에서의 환산 정원)으로 표현되는 수치로 허용된 공간에 모두 승차하는 것을 100%로 봤을 때 서울의 경우 버스는 94.5% 지하철은 140.5%라는 매우 높은 평균 혼잡도를 보이고 있다.(서울연구원 <서울시 출근자의 대중교통 행복지수 높이기> 정책리포트 자료 참고) 
우리나라의 도심 출근자 대중교통 행복점수는 71.3점이다. 반면 영국은 지역마다 96.6점에서 80.1점까지의 점수대를 분포하고 있다. 한국이 영국 정도의 대중교통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은 시민 삶의 질과 기업의 업무 효율성의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긴 출근시간, 높은 혼잡도, 교통체증, 세 가지는 부동산 문제와 땔 수 없는 연관이 있다. 대다수의 기업은 도심 중심부에 밀집해 있다. 많은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조금이라도 낮은 외곽에 주택을 마련하고 어쩔 수 없이 도심으로 출근을 한다. 
부동산 가격 차이로 외곽에서 도심 중심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출근 문제가 생겼다. 길고 질 낮은 출근환경은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하기 힘들며,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까지 끼친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가 10분가량 멀어지면 연간 출근시간도 3.5일 늘어난다. 가볍게 넘기기에는 버리는 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가족과 휴가를 떠난다면 얼마나 소중할까? 에리카 샌도우 스웨덴 우메오대학 교수는 스웨덴 인구통계 자료를 근거로 통근시간이 45분 이상의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와 비교해 이혼율이 40%나 높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출퇴근은 건강과도 관계가 깊다. 크리스틴 호에너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는 2012년 미국 예방의학저널에서 출퇴근 거리가 길어질수록 신체활동과 심장혈관 적합도(CRF)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 했다. 
라고 밝혔다. 당신이 이유 없이 우울하다면 긴 출근 시간이 원인이 가능성도 있다. 여러 전문가는 장거리 출퇴근을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인 사고와 꾸준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시간을 더 낼 수도 갑자기 연봉이 오를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의 이런 조언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반증이다. 제일 간편하고 확실한 해결법은 대다수 알고 있다.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는 것이다. 혹은 회사가 당신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는 것이다. 확실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은 해결방법이다.

불평은 여기까지다. 날이 밝으면 불만을 뒤로 한 채 문 밖을 나서야 한다. 출근은 미래를 위한 행동이며 동시에 당장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3년 출퇴근의 행복상실의 가치를 분석한 적이 있다. 
라고 밝혔다.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가 높은 한국에서 통근시간은 삶의 질과 행복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아쉽게도 한국교통연구원은 “수도권 통근 직장인이 희망하는 통근시간 42분은 현재 교통 체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분석했다. ‘실현 불가능’ 인류의 역사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기록이었다. 혼잡한 출근길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빅데이터를 이용해 혼잡한 시간대를 피해 출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시는 2014년 시민의 교통카드 사용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중교통 이용은 일주일 중 금요일이 1,207만 명으로 이용객이 가장 많았으며, 시간은 오전 8시 10분에서 20분이 가장 혼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객이 가장 많은 정류장은 지하철은 강남(2호선), 고속터미널(3,7,9호선), 잠실(2,8호선), 서울역(1,4호선), 사당(2,4호선) 순이고 버스는 청량리역환승센터 3번 승강장, 미아 사거리역, 신논현역, 고속터미널, 서울역버스환승센터로 나왔다. 또 하차 승객이 가장 많은 지하철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분석됐다. 금요일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하고 승객이 많은 정류장은 8시 10분에서 20분을 피해서 출근 경로를 선택하면 조금이나마 육체적으로 편한 출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깨에 걸린 마음의 무게도 무겁다. 그렇다면 출근을 왜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보자. 남들의 시선, 돈, 명예를 빼버리고도 출근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가령 자신이 속한 분야에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든지, 자신이 없으면 업무가 안 돌아갈 거 같거나, 자신을 기다리는 고객이 생각나거나 회사를 통해 이뤄야만 할 무엇인가 있다면 사무실로 향해 자신이 정한 목적에 집중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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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내가 이 주제를 정했지만 이 주제는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렵다.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고등학교때의 방황. 가정사로, 내 우울증으로 시작된 방황. 
겪고 싶지 않은 방황이었다. 억울했다. 내 탓이 아니었다. 세상은 나를 무섭게 했다. 대학을 향한 환상을 한참 키울 시기에 나는 나를 붙잡기에 바빴다. 하나의 줄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흔들리는 시기였다. 내가 의지할 곳은 심리학 도서. 나만이 이상한줄 알았는데 책은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같은 이가 많이 있고,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낸 사람 또한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책을 보고 알았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신경쓰며 살았구나. 내 마음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나는 나를 너무 몰아붙여왔구나.
책을 읽으면서 바뀌어 가고, 나는 나를 리셋한 후 다시 채워나가는 기분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다시 세우시려고 이런 어려운 시기를 주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1학년 때에 이런생각을 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동시에 기특하기도 하다. 그런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에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나를 대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었다. 방황 전과 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가끔은 그 전이 그리워 질 때도 있지만 바뀐 이 시점부터 새로운 기쁨과 그리움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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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줄여야해.
대학 갈려면, 일할려면, 사랑할려면,
그렇다면 그래.
잠을 줄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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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몇시간 안남았네..
대학시험 치러가는 시간 8시간뒤..
마음이 덜컹덜컹 나의 기분은 초조해진다.
긴장하지말자..계속 중얼거려봐도 두근거리는건 내심장뿐 인거같다. 앞으로 대학시험 3개정도 남았는데 과연...좋은결과가 있으면좋겠다..
내일 아니면 앞으로 대학치러가는 사람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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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5년 전에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유를 못 찾아 방황을 했던 적이 있다. 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농담조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똑같은데 이렇게 힘들게 아둥바둥 살아야 돼?"
주위에서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며 얘가 공부가 하기 싫으니까 별소리를 다한다며 웃어넘겼지만 나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 선언을 했다.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평생 속 한 번 안 썩이고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했던 애가 갑자기 공부를 안하겠다고 말을 꺼냈으니.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게 엊그제였는데. 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는 공부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방에 혼자 들어가 펑펑 울었다.
혼자 펑펑 울면서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 서러웠다. 다른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아예 선택권조차 없었다. 여기서 내가 울어봤자 세상은 하나 변하지 않고 내 성적과 대학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얼마 후에 나는 다시 평소 생활로 돌아왔다. 전처럼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고 학원을 다니며 다시 부모님이 좋아하던 바람직한 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부가 아니라 내 행복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다. 힘들 때도 나를 몰아붙이기 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게 되었고 미래의 일을 불안해 하기보다는 잘 될거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그 때 내가 바라던 의사가 되지도 못하고 여러 불운이 겹쳐 대학 입시도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의 행복을 목표로 삼아서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이 긴 방황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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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났다.
 대학만 졸업하면 숨통이 트일줄 알았는데 되려 막혔다.
 가는곳 마다 떨어지고, 면접까지 붙어도 말을 더듬거나 동문서답 하기가 일수였다.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곳도 죄다 떨어지고.
 집에서 밥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그냥 눈치가 보여서....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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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요즘 대학들은 취업률을 내세운다. 지하철에 붙어있는 대전 대학교의 광고문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2014년 4년제 대학 대전,충청,세종지역 취업률 1위 및 전국 3위. 그걸 보고 재작년 모 대학의 사건이 떠올랐다.

 페이스북에, 학생들이 대자보를 만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학교가 회화과를 폐과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취업률이 낮아서. 그런데 회화 자체가 어디 취업을 하기 위해 배우는 학문인가. 학생들이 항의했다. 피카소가 취업해서 그렇게 성공했나요. 돌아오는 학교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 피카소가 나온 적 있습니까. 분노한 학생들은 길고 긴 대자보를 적기 시작했다. 실상을 알리려 여기저기 SNS에 부지런히 퍼날랐다. 지나가다 글을 보게 된 나도 화가 나 댓글을 남겼고, 한동안 그게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 고등학교 때는 이런 이야기도 들어봤다. 우리 지역에는 한 학년에만 서울대를 서른 명이나 넘게 보낸 명문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어떻게든 서울대에 집어 넣으려고 원하지 않는 철학과나 러시아어과 등에 원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다른 학교 학생이었으니 진위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내용이다.

 그렇게 한바퀴 거슬러 다시 지하철로 돌아온다. 공식적으로 높은 취업률 뒤에는 그것을 위해 잔디처럼 밀려버린 다른 학생들이 존재한다. 취업률이 낮은 과는 폐지시키고, 취업하지 못한 학생은 위장 취업을 시켜 교수의 실적만 채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냐고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먼저 취업률을 측정하는 방식이 문제고, 일자리에 목을 매게 만드는 취업난이 문제고, 이렇게 과열된 사회도 문제고, 머릿속이 작은 나는 생각하다 아득해져서 그만 까맣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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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이 무엇일까
어릴때는 공무원이 꿈이었고 
중학교때는 꿈이없엇고
고등학교때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역사관련 과들은 줄줄이 떨어졌고
관련이 전혀없는 지방국립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공대생이 되었다
그때도 꿈은 없엇다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대학을 졸업할때쯔음 취업을 해야햇다
나는 무엇이 되고싶은걸까 
나는 어째서 잘하는것이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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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대숲에서 본글

저는 정말 말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식당일을 하시는 엄마와 둘이서 6평정도되는 반지하방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엄마는 하루 열시간넘게 일을 하시면서 생활비를 버셨어요.
수시를 지원할때가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비싼 원서비에 손을 바들바들떨면서 두 곳의 대학만 지원했어요. 당장 집에 원서비를 낼 돈이 없었기때문에, 저희 집 사정을 대충 아시는 담임 선생님이 주신 10만원으로 두 곳의 대학을 지원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어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하셨고, 차비로 5만원을 마련해주셨어요. 엄마는 안타깝게도 바쁜 식당일 때문에 따라올 수 없었어요.
저는 지방에 살았기때문에, 버스표를 왕복으로 끊고, 남은돈 만 오천원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아침 면접이었기 때문에, 전날 오후에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입구로 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학교로 가기로했어요.
그렇게 난생처음 서울에 도착했는데, 돈이 없어졌어요. 가방을 뒤져보고 주머니를 한 시간씩 털어봐도 돈이 안보였어요.
저는 대합실에 앉아서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걷기 시작했어요. 터미널에서 서울대로 걸어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어보니깐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대충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한 2~3시간쯤 걸었을까, 너무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힘들었어요.
저는 갑자기 너무 무섭고 서러운 마음에, 길에 앉아 펑펑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면접을 못갈 것만 같았어요.
밤11시가 넘은 시간에 어딘지도 모를 아파트앞 벤치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왔어요.
아저씨는 제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주었고, 저는 제 사정을 겨우겨우 말했어요. 아저씨는 놀라시면서, 저를 숙직실로 데려다주셨어요. 라면을 끓여주시면서, 자기는 하루정도 좀 못자도 괜찮으니깐,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퇴근하시면서 저를 태워주겠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차에서 셔츠를 벗어 주시면서 옷이 너무 촌스럽다고 이거를 입고 가라고했고, 저는 죄송해서 못받는다고 하니깐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면서 나중에 대학에 붙고 옷을 갖다주러오라고 하셨고, 터미널까지 갈때 차비하라고 만원을 주셨어요.
저는 그 아저씨 덕에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합격자발표가 나고, 제일 먼저 엄마 식당에 전화를 했고, 그 다음엔 그 아저씨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아저씨는 자기일처럼 너무 행복해하시고, 나중에 올라와서 밥 한끼 먹자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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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고, 과외랑 아르바이트도 한계가 있었어요.
악착같이 50만원을 모은 저는, 첫 학기가 끝난 날 눈여겨보았던 양복을 샀어요. 7개월만에 아저씨를 만나서 멋진 양복을 전해드렸어요. 셔츠는 돌려드렸지만, 그 셔츠에 맞는 멋진 양복도 꼭 드리고 싶었어요. 다행히도 아저씨는 계속해서 거절하셨지만 결국엔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태어나서 가장 큰 돈을 쓴 날이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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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선 갑자기 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갑자기 남의 슬픔을 보고 이런감정이 들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지금이 감사하고..나도 남을 도아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더 나은 내가 되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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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어릴 땐 같은 반에 있는 아이를 친구라고 했다. 그냥 나이가 같으면 친구였고, 같은 반에 있는 친구라면 친한친구 정도는 되었다.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는 친구라는 관계의 정의가 좀 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개기라 할만 한 잏은 딱히 없었다. 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에게 나는 그냥 아는 사람, 혹은 그저 같은 소속을 지닌 사람일 뿐이었다는 등의 일이 많아지자 나 스스로도 친구라 칭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오랜 친구들은 말 그대로의 친구지만 그때부터 알던 애들은 그저 동창이고, 대학에서 만난 몇몇 친구를 제외하곤 그저 동기, 군대에서 만난 이들 역시 친구라는 카테고리 보다는 군대동기라 부르곤 했다.
 친구 사이에서 서로를 친구라 칭하는 일은 잘 없기에 나 스스로도 그들을 어떻게 칭하는 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었지만, 간혹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그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친구보다는 동기, 동창,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곤 했다. 나 스스로가 타인에 의해 친구라는 존재를 친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정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 또한 나 스스로를 누군가의 친구에서 아무개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처럼 누구라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친구라 부를 때, 최소한 나 또한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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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능을 위해 시험을 잘 봤다
시험을 위해 공부를 했다
수능을 출구로 여겨
열심히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을 지나기 위해 열어 본
출구의 문은
대학의 입구였을 뿐이더라
수능인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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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추운겨울 횡단보고를 건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자랑을 하신다.
우리둘째가 어느대학을 갔다고...
엄마시절 엄두도 낼 수 없던 대학에
동경만 하던 대학에
딸이 원을 풀어 주었을까?
자랑하는 엄마를 모시고
대학축제에 갔다
잔듸밭에 앉아 엄마와 둘이 솜사탕을 먹고
학교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보았다.
가장 예쁘게 하고 오신  엄마와
자주가는 분식집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카페에 가자고 했더니
돈아깝고 동생 올 때 되었다고
얼릉 집에 가야 한다며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를 끝냈다.
내가 지금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큰애는 축제때 그림을 그려 인기만점 코너를 운영했다고 자랑하고
난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가 떠오른다.
지금
누구의 도움 없이 움직이기 어렵고
어제의 기억보다
우리 어린시절을 더 잘 기억하시는 엄마
지나간 날이 아리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 기억나세요?
나와 같이 지낸 시간...
난 즐거웠어요
그럼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