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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Timothy Eberly / Unsplash>

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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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 이룰 수 있기를 애원한다.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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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나는 엄마 아빠에게 애원했다. 어릴 때부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릴때면. 그만하라고. 하지말라고. 때리지말라고. 제발. 날 사랑해달라고. 그 당시에는 무감각했지만 지금 생극해보면 매일 마음속으로 간절히 애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교 때는 소리내어 애원했지만 내 애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무력함을 느꼈다. 내가 해결할 수 없었다. 경찰을 불러도 별 조치가 없었다. 세상은 나를 도와주지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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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그대가 그 말을 했을 때 의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이였다. 

나의 기분은 언제나 그대가 하는말에 반응하고 슬퍼졌다가 기뻐졌다가 그랬다. 그런데 오늘 그대가 나에게 한 그 한마디에 나는 심장이 갈갈이 찢어지는 기분이 였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다. 그대가 한 그 말 그 모든게 거짓이길 바랬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모두 환상이라고 모두 거짓이라고 잘못 된거라고 그렇게 마음이 너덜 거릴정도로 속으로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하지만 닿지 않을거란거 너무도 잘알기에 그저 애써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틀어 올리며 축하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소리내어 나의 감정을 내뱉는다고 해도 그대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란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닿지 않을 마음속 애원을 애써 꾹꾹 눌러두며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애써 다잡으며 아무렇지 않은척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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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간절한 마지막 부탁이
힘겹게 돌아서는 그대를
힘들게 할까봐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바보같은 나라서
마지막 뒷모습에
닿지 않을 마음을
조용히 전해본다
힘들고 지친 날
너의 곁에 있을 사람이
너보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모든 슬픔은
내게로 와서
눈물이 되고
모든 행복은
너에게로 가서
미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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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너만을 기다리며 휴대폰만 보았다
돌아오라며 애원을 해 보아도 오지 않는 너에게 원망을 품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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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애원이었어
부담되지 않는 전 애인이 될 테니까 한 번이라도 더 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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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이별

어그러진 듯, 숨을 쉬는 것 조차
나에게 벅찬 듯이
나의 한숨은 허공 속으로 타오르다가
보이지 않는 재가되어 떨어지네.
나의 심장은 더 살아가라고
나를 재촉하는데
그 박동은 여전히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는 듯
애원하며 매달리며
나를 놓아주지 않네.
그리는 정은
떠날 생각을 않는지
그대 가시는데 마음 속에
깊게 패인 흔적을 남겨놓고
울음을 삼켜내며
전한 그 사랑한단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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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무슨 생각해요?"
울려퍼진다, 귓가에 맴돌으면서.
잊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애원하는 것 같아서.
잊고자 했던 당신의 목소리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 괜스레 짜증나던 날, 이미 끊어진 인연인 걸.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위로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에 괜스레 네 욕을 한바탕 소리치던 날에.
그런 날에 처음의 시작으로 돌아간 우리가 떠오른다.
"두번째의 처음 만난 날이요."
이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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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또 니가 나왔다.
애원하는 나에게서 차갑게 돌아서며 욕설을 내뱉던 마지막 그모습이 끊임없이 꿈속에서 재생된다.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였나
왜 나는 너를 잊지못할까
내 말투, 습관, 표정, 취향, 좋아하는 음식 
내 삶 깊숙히 아직 니 향기가 배여서 빠지질 않는다.
그 향기를 빼내려 이리 저리 돌아다니고, 
이런사람 저런사람 마구잡이로 만나봐도
결국 하루의 끝에 도달하는 건 니가 나오는 그 꿈이다.
왜 헤어진 뒤에도 너는 나를 괴롭히는걸까
너는 이미 다 잊고 다른사람 옆에서 웃고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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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上

1.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음악이 들리면 몸이 멋대로 춤을 추는 병이다. 웃지 마라. 이것은 아주 좆같은 일이다. 나는 가족, 이웃,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 그 외 길 가던 행인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자라왔다.
 이 병은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발병했다. 우리 애는 끼가 많군! 핫핫 웃었던 부모님의 입가에는 곧 어두운 주름이 졌다. 이 정체 모를 병은 수도꼭지처럼 물의를 쏟아냈고 두 분은 그로 인해 신음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돈에 관해서는 꽤 여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 돈도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세상 곳곳이 전쟁터였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음악에 나는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발병 이후 열다섯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의사와 목사와 신부와 무당과 그 외 민간의학 사이비를 만났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달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어린 시절 억압된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춤으로 나타나는 거죠. 하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악마가 들렸군요. 구마 의식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체온이 1도 높아지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몸에 자철석을 지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전부 실패했다. 헛된 희망에 끌려다니다 너절해진 나는 열여섯이 되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안 할래요.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해요. 나를 설득하려 했던 부모님은 되려 설득당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
 말도 안 되는 치료와 의식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자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은 부모님이 집에서 특히 공을 들인 곳으로, 방음벽과 차음벽을 몇 겹으로 둘러 바깥의 소리가 한 틈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시공했다. 나는 집에 오면 거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영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 무렵이다.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 이름 석 자를 다 붙여 윽박지르던 목소리들이, 거기에 담긴 기겁과 짜증이, 오랜 시간 밟혀 까맣게 굳고 더러워진 어감이 나를 짓눌렀다. 평범한 이름마저 염증이 되는 게 버거웠던 나는 자조하듯 새 이름을 지었다. 영고. 영원히 고통받는 김영고. 그리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영고야.”
 수업 종이 울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탭댄스를 추는 미친놈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던 사람. 얇은 은테 안경을 쓰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답지 않게 피부가 깨끗했던 A.
 “고등학교 어디 가?”
 “안 가.”
 “에이 알려줘. 난 고고고. 거기 교복 예쁘더라.”
 “진짜 안 가. 검정고시 치기로 했거든.”
 “헐. 존나 부럽다.”
 “뭐라는 거야… 학교 안 간다고 노는 줄 아냐?”
 나는 유일하게 아는척하는 A가 낯설고 불편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치근덕대지. 그럼에도 새 이름을 알려준 것은 걔가 달라붙은 뒤로 본명을 더 자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땡땡! 땡땡! 땡땡아! 돌아볼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불러대는 바람에. 그럼 평균적으로 바닥을 치던 기분이 외핵 내핵까지 뚫고 들어갔으니까.
 “영고.”
 “응?”
 “이름 말고 영고라고 불러.”
 “별명이야?”
 “어. 너만 알려주는 거야.”
 사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는 착실하게 영고라고 불렀다. 진짜 이상한 애였다. A는 내가 매번 데면데면하게 굴고 가끔 무시하는데도 꼭 와서 인사를 받아가고는 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개 같은 질문도 했다.
 “야야. 그럼 너 섹스할 때 뮤뱅 틀면 박자 맞춰서 하냐?”
 “……미친놈아…. 박자대로 털리고 싶냐?”
 중학생답게 태양처럼 밝고 개념 없었던 A. 배시시 웃는 얼굴에 티 하나 없는 것이 천진해 보이던 A.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의 설득에 떠밀려 억지로 나간 중학교 졸업식 날, A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 인생이 뮤지컬이라고 생각해.”
 그게 뭐야. 멱살이라도 잡아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A의 하얀 얼굴 대신 감색 융으로 덮인 졸업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A는 떠들썩한 친구들의 물결에,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헤어졌다.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 창업한 스타트업이 크게 잘 되었다는 소식을 아주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3.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던 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꽤 살만해졌다. 과외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쉬는 모든 것이 내 방 안에서 가능했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안전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거짓말처럼 달콤했다. 내 삶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일 년쯤. 내 삶에 불행을 쏟아부었던 악마는 겨우 숨을 틔운 나를 다시 진흙탕 속에 처박았고, 나는 그제야 이 평화가 태풍의 눈이었다는걸 깨닫는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막 열여덟 살이 된 겨울밤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지던 트럭과 부딪혀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슬픔보다 황망함이 앞섰다. 내가 뭘 실감하기도 전에 친척 어른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지도 비교적 덤덤한 상태였던 나는, 그들이 나를 추스르겠다고 한마디씩 건넬 때마다 오히려 죽음을 감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것. 영영 볼 수 없게,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 그건 갑자기 찾아온 만큼 터무니없이 무겁고 까마득해서, 나는 점차 제정신을 잃어갔다. 몸속의 수분을 모조리 짜낼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영정 앞에 엎드려 목놓아 우는 나 대신 큰아버지가 상주 노릇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완전히 탈진해 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그제야 식장 안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 친척과 부모님의 지인들이 모여 떠들썩했다. 그중에는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내게는 사촌인 B도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B는 비죽 뻗친 머리와 개구지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직선적이라 무심해 보이는 큰아버지의 턱을 가졌다. B는 아마 장례식이 지루했을 것이다. 자기 부모님도 아니고, 얼굴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고작이고, 가끔 명절에 만나면 용돈을 많이 줘서 좋은 친척분이 돌아가셨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겠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B를 포함한 온 일가족은 내 병을 알고 있었다. 불치병인지 정신병인지 관심병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던 B가 내 옆에 와서 댄스곡을 재생한 것은 명백히 새빨간 고의였다.
 새빨갛다고 표현한 것은 기억 속 시야가 터진 토마토처럼 붉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때 나는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하던 빨간 구두였지만, 그 많은 이들 중 내 다리를 잘라줄 자비로운 나무꾼은 없었다. 영문 따위 알 리 없는 문상객들과 영문을 아는 일가족들은 한 몸처럼 나를 물어뜯었다.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눈을 떠보니 장례식은 끝났고, 나는 왜인지 이마가 찢어져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내가 물려받게 될 재산에 눈이 돌아간 어른들은 온갖 법률 용어로 뒤덮인 문서를 들이밀었고 저들끼리도 개처럼 싸웠다. 내 의사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있는 순간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장례식 날 몸을 뒤덮었던 통증이 종종 다시 살아나 나를 끝없이 잘게 조각내었다.
 B를 죽여야겠다. 그런 생각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모님이 죽었으니 B도 죽어야 공평한 것 같았다. 분노는 맥락 없는 비약을 논리로 만든다. 주방에서 식칼을 골라 칼집을 빼고 신문지를 채운 가방 속에 넣었다. 큰집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옆 동네의 주공 아파트. 택시로는 20여 분. 머리가 식기에는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기어코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 큰어머니 뒤로 큰아버지가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우리 조카님 왔네! 들어 와. 춥지? 커다란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오자 따듯한 음식 냄새가 훅 끼쳤다.
 “밥은 먹었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큰아버지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녁 먹고 가. 그러면서도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살피는 기색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미성년 후견개시…”
 그의 눈이 짐승처럼 반짝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군침도 삼켰을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역시 큰아버지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징그러울 만큼 활짝 웃었다. 잘 생각했다고, 몇 번이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큰어머니도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며 음모를 꾸미는 이들처럼 속닥거렸다. 내내 이 모든 상황을 껄끄럽게 쳐다보고 있던 B는 안절부절못하다 내 가방에 뭐가 있냐고 질문했다.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굳은 얼굴로 애써 웃고 있었다. 어차피 걷힐 미소인데 헛수고였다.
 “궁금해? 자, 봐.”
 지퍼를 열고 칼을 꺼내자 B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 치는 B를 잡아 찌르는 것과 동시에 귀 옆을 세게 얻어맞았다. 옆으로 이미터쯤 날아가 벽에 반대쪽 머리를 부딪쳤다. 큰아버지가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무언가 터진 듯 얼얼한 머리 위로 상스러운 욕들이 쏟아졌다. 새된 소리로 우는 B와 겁에 질린 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어떡해, 어쩌면 좋아……”
 좋겠다. 걱정도 해 주고. 그 와중에 그게 부러웠다.
 시야가 흘러내리고 이명이 세상을 뒤덮었다. 대자로 누워 빙빙 도는 천장을 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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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일지

9월이면 박차노 시켜서 
마약중독자들이 요가원에 따라붙어
Jtbc sbs kbs 등 반기문과 멍청도 지잡대 쓰레기 멍청도 정신병자 틀딱들이 스토킹하던 시점이다. 
기생충들 헤로인 커플
교수들 공무원들이 스토킹하던 기록이
나를 힘들 게한다.
무던히도 떨궈내려고 안간힘을 썻다
그러니까 헬조선 탈출도 안되고
자기들 똥물 마시고 독극물 맡으란 거.
내가 하는 건 다
자격미달들 간판으로 베껴 재탕 삼탕이다.
내가 15년간 bitterness 를 삼킬때
걔네들 교수로 뽑았지.
눈물을 흘리니 난소가 아파온다.
내가 골병들어 죽으면
미빠 훌리시켜서 성매매하는 여자 연옌더러
걸레라한 것이다한 댓가라고 유투브에서 
떠들겠지. 
성매매하는 여자들한테 세상은 참 따뜻해..
공부하는 여자는 못 죽여서 안달인데
지난 번에는 
남편이 행복의 원천이라도 되는 양 개소리하는
골빈 년을 연극 수업에 투입, 
출산하는 년한테 박수까지 치게 했다. 
멍청한 나를 가르치겠단 거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제일 먼저
가장 아픈 트라우마를 그에게 입혀서 문질러주는 게 자칭 선생님들 가르침. 비록 자기들이 살인을 저질러도 다 용서하라 재갈을 물리는 게다.
대사를 하거나 공작소라 이름붙이며 나를 능욕하지. 웃기는 건 자칭 선생님들 아이큐가 
별로 높진 못해서 내가 댓글만 잘 참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데리고 놀 수도 잇단 거지.
가르리고 세뇌시킬 게 많은 자칭 선생님들에겐
댓글이 신앙이자 진리의 세계인거야. 
나는 역겨움을 참으며 연극수업을 견뎌야 했지만 다음 시간엔 안갈 꺼야. 
매스컴과 연옌으로 돈 지랄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 꼭 내 사생활에 똥물 발라야 집단윤간이 만족스러운가.
자기들이 그렇게 분질러놓고 
매일 매일 집단 윤간하고 노는 걸 
대대손손 하고 싶은 거다. 
미안한데 쉽지 않을꺼야.
그러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생충들의 터전에 
왜 자꾸 기어들어가냐.
사람을 왜 만나.
수업을 왜들어.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
기생충들한테 살인자들한테 구슬린 장애를 
치유하고 싶었어. 
어리석게도.
난 더러운 년이야. 
기생충 달고 무슨 행복이니.
기생충 달고 무슨 사랑이야.
사랑이란 나한테 열등감 느끼는
멍청하고 무능한 맹인들이 내 앞에서 과시대고 싶을 때 자기 껄 주장 allegation 하는 것에 불과해.  
아.... 난소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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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일지

27장의 카톡 사진을 검토해보니,
단 한 장도
더러운 기생충이 들러 붙지 않은 경우가 없다.
가수한테 들러 붙어 동영상 뿌리셨고 → 이웃 끊어버림.
심지어 레인보우 대기 현상까지 베꺼서 까댐 → 얼어붙으려고 대기중이지만 쌩깜
독일 여행은 엠병신 예능 프로에 훔쳐다 써먹었고,
안경 사진은 여군들 홍보하는데 써먹고,
요가원에는 독약먹고 뒈졌음 하는 반기문 멍청도 틀딱들이 들러 붙어 박찬호에 국제 홍보원으로 위촉 유투브에 남창 요기 추천 동영상으로 얼려 누드쑈에 엉덩이 보여주며 토쏠리게 함 → 요가원 탈퇴하고 카톡 차단. 
스쿠버하니까 더러운 US citizen 창녀, 한고은을 들러 붙여 제주도 해녀 관종, 
아티스트에는 더러운 외교부 틀딱들 사진 찍고 지랄이고,
거울 사진은 인터넷 게시물 떡밥 
영어 모임 여선생 멤버한테 들러 붙어 사진 찍어 카톡에 올렸고,
(아마 거기에서 기생충들이 꽂아 놓았던 남자들 사귀었으면 볼만 했을 것이다....)
서로 말 몇 번 섞어 보지 않은 존나 재수 없던 행정상 지도교수는 (걔네들은 병신이라 행정 허스아비가 SUPERVISION으로 되어있으면 무슨 슈퍼맨인 줄 아는 초딩 지능. 공부 안하는 공무원이 뭘 알겠나)
힐러리 공작활동 라인이자 개나 소나 병신 같은 유엔병자 다 받아주는 창녀집단 하버드 교수 저서 저자 추천인으로 삽질 공작활동해서 키워 놓았는데 나한테 보여주면서 들러붙길 구걸 (그 색히는 진짜 자격미달에 낙하산 중 낙하산인 색히. 학자로 인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업적도 제로지만, 유엔 병자들의 병신미를 타고 마치 명문대 글로벌 대학의 리더인 것으로 대국민 사기꾼), 창녀 대학 하버드 나왔다는 애 붙여서
해외 체류시 섹스 정보 달라고 지랄 (자기들이 24시간 들러붙어 감시하기론 국내에선 없다고 확신하는 듯.....구삼열 반기문 UNICEF 등 유엔병자들의 유일한 공작활동 논리가 섹스 스캔들이거든. 아니정 날리듯 그렇게 한 방에 날릴려면 그 동안 사귀었던 남자들 스타일을 알아야 남자를 붙일 테니, 남자 취향도 알려 달라 지랄...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사는데, 결혼못한 걸 되게 한심하다고 생각함.
뭐, 한심하긴 하지.  
사찰음식에 US Military 붙여놓고,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넌더리나는 superfacial한 국적, 지리 정보를 숭배하는 기생충들이라 유럽과 남미로 측근이라고 착각되는 인간을 보내 스토킹+ 추적했으며  (저급한 병신들은 국가 정보, 지리 정보, 이름, 나이 등등 육체 정보에 입각해 사람을 괴롭힘),
창녀 아이돌 붙여서 개나 소나 유화 그린다며 관종, 그림 활동에 똥물 뿌렸고,
연예인 육체 정보 나이 딱 하나 인식, 연하남에 욕정 느끼는 여자로 매도하여 나이차 나는 연예인 커플로 언론에 똥물 뿌렸으며, 
미군 노예 공작원 붙여 양조위 영화 OST 보내질 않나, 기생충들 공작 채널인 YOUTUBE 에 중경삼림 ost 쓰레기 보라고 추천 영상으로 쓸어 넣었으며 (그 여자가 17세 연하한테 채였단다.) 
정신병자 UNICEF 공작원들은 헐리우드 걸레 중 섹-파랑 17세 나이차 나는 악의 축 미국인만 골라내 언플에 똥물을 뿌렸으며, 
마약 중독자 연옌 소속사 중 패션테러리스트한테 악플 달아드렸더니 질투한다며 따박 따박
그 애 노래만 골라 카톡에 올려주시고,
판빙빙 코스프레 남창한테 Youtbe 선플 하나 달았더니, 엠병신 헤어나오질 못하고 계속 그 ost 만 보내고 앉아 있다.     
외국인 학자 한 마리는 내가 컨택했던 교수한테 들러 붙어 세미나 하고 지랄 (존나 웃겨. 지가 먼저 컨택한 것 처럼 으시대. 스토킹하는 기생충 주제에...누가 이니셔티브야.유명하다고 기생충이 여신되는 거 아니다.) 내가 컨택하면 다 지들이 빼앗아서 가로채야 하지. 정말 소름 끼치게 싫다.
갤러리 가서 사진찍은 건 대북 공작원 SM 가수들 MV 떡밥으로 전락된지 오래고,
칼 세이건은 더러운 노예 식민주의자 유시민, 대북 공작 창녀 이효리 예능에 떡밥으로 전락되었다. .
엠병신 쓰레기 예능에서 ecstatic dance (지들 수준에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한다고 병신 색히 전현무가 따라하고 지랄이고...
이런 고문 활동과 폭력, 집단 윤간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지들 공작 도구 네이버 블로그써서 동호회 활동 뭐하냐고 물어 보드라고.
결론은 
카톡 사진 27장을 보니 관계가 다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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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watch me

꺼져
나 쳐다보지마.
니 더러운 눈깔로 너나 많이 찔러.
self-stabb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