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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았던 엄마.

지금도 있을거란 생각을 안고, 동생과 늘 찾아나선다.

하지만 늘 같은 결과


"으아아아아아앙~~~!!!!!"


동생 나리 메이커는 밤 8시만 되면 계속 운다.공포를 느끼고 있나보다.


"메이커, 괜찮아.언니가 있잖아."


나의 나이는 19살.이름은 하니코 레베카.


엄마는 이런 이름을 지어주시곤, 떠나셨다.

아빠도 없다.친척은 여기에 살지 않다.그렇다고 오기도 힘들다.


"으아아아앜!!!!!"


더 커지는 동생의 울음소리.

이쯤 되면 늘 가까운 숲에 텐드를 친다.

당연히 물이 있는 곳에 말이다.


"이제 됬니?메이커^^"


있을 건 다있다.

가스레인지, 물, 부탄가스, 조명, 음식 등등..


"메이커..몇 달만 있음 엄마를 찾게될거야.오래 걸려도 1년이라고!"


그 때는....몰랐다.


엄마는 아빠에 의해 죽었다는 걸..


어디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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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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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꿈

와 진짜 신기
어제 하루종일 먹는거 말하는거 조심했는데
내가 조심하니 낮엔 엄마랑 동생이랑 싸우고
잘 넘어가나 했더니
결국 새벽에 위경련나서 손 다따고
오늘 맛있는건 하나도 못먹었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꿈에 둘이나 나오더니..
어떻게 하면 이 징크스가 깨지는거야
내가 그사람들을 용서 해야해?
아님 조심하라는 경고로 좋게 받아들여야해?
정말 신기하다
아직도 속은 아푸다
바고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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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추운겨울 횡단보고를 건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자랑을 하신다.
우리둘째가 어느대학을 갔다고...
엄마시절 엄두도 낼 수 없던 대학에
동경만 하던 대학에
딸이 원을 풀어 주었을까?
자랑하는 엄마를 모시고
대학축제에 갔다
잔듸밭에 앉아 엄마와 둘이 솜사탕을 먹고
학교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보았다.
가장 예쁘게 하고 오신  엄마와
자주가는 분식집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카페에 가자고 했더니
돈아깝고 동생 올 때 되었다고
얼릉 집에 가야 한다며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를 끝냈다.
내가 지금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큰애는 축제때 그림을 그려 인기만점 코너를 운영했다고 자랑하고
난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엄마와의 축제 데이트가 떠오른다.
지금
누구의 도움 없이 움직이기 어렵고
어제의 기억보다
우리 어린시절을 더 잘 기억하시는 엄마
지나간 날이 아리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 기억나세요?
나와 같이 지낸 시간...
난 즐거웠어요
그럼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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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 기억부터 시작해보자. 유치원이었다. 크리스마스였고 나는 산타가 선생님이 분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다음, 아직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가족과 마트에 갔었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하나 고르라고 했었다. 인형 세트를 골랐던 것 같다. 부모님께 들켜 결국 갖지도 못한채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 날부터 원하는 것을 쉽게 말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였던가 중학교 시절, 늘 그렇듯 부모님이 크게 싸운 뒤였다. 엄마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다 같이 뛰어내려 죽자고 했다. 동생은 말렸지만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뛰지도 못할가면서. 4층에서 뛴다고 죽나. 하고 생각하면서. 뛰지도 못할거라는 생각은 맞았고 4층에서 뛴다고 죽지 않는다는 생각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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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던 실화

1.
우리집은, 바닥이 유아용 매트.. 그 뽀로로 매트인지라 양말 안신고 걸어가면 발자국소리가 끈적?하게 들린다. 찌걱거리듯이. 그날 밤에는, 이불속에누워 평소같이 배게를 베고 누워있었다. 원래도 겁이 충분히 많아서 문을 꽉닫고 자는데, 밖에서 누가 돌아다니는듯한 소리가 작게 들렸다. 처음엔 동생들이 몰래 나와서 돌아다니는줄 알았지만,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보자니 시간은 새벽 1시 반. 선잠을 자는편인 동생들은 절대 나올수가 없었다. 만에하나 동생들일까싶어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나 소리는 계속 들렸고, 위치는 내가 못볼만한 곳이었다. 어째 점점 호러영화같아서 천천히 , 문을 닫아버리곤 자리에 누웠다. 그때 발소리가 움직였다. 처음엔 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듯이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뒤에는 살짝 먼곳에서 들렸다. 동생들방. 발소리가 들리는곳은 분명 동생들 방이었다. 방을 한바퀴즈음 돌더니 나오는듯 했다. 그리고 잠시뒤 안방. 아빠와 엄마는 기가 세니까, 뭔가 있겠지 싶엇는데 발소리가 안방앞에선 10초가량 멈추었다가 들어갔다. 그리고는 조금 빠르게 그곳에서 나왔다. 이쯤되니까 솔직히 도둑새끼나 귀신같은거라는 생각이들어 화가 먼저 났다.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서 중장검을 잡아들었다. (검도.무술인입니다.) 혹시모르니 칼집은 꽂은채로, 뭉툭하게 해뒀다. 아직 살인으로 감방가고 싶진 않으니까. 이후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내방앞에선 아예 멈추었다. 10,20,30. 초가 지나고 분이되도록 그소린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소름이끼쳐 나는 검을들고 문을 열고 뛰쳐나와 동생들방에들어가 문을 잠구었고, 이후 기절하듯 잠들어 다음날에는 지각을 할 수 있었다.
2.
나는 방에서 홀로잔다. 그렇지만 몽유병인지, 이따금 정체불명의 짓을 하기도 한다. 몇차례의 사례를 적어보자면, 자다가 일어나 나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수십번 소리내 말하다 잠든적도 있고, 밤중에 일어나 집을 세네바퀴 돌며 뭔가를 열심히 빠른속도로 말하기도 했다. 이것을 본 엄마는, 내가 걸어다닌게아니라 뭔가가 나의 어께를 붙들고 끌고다녔다 했다. 이외 집에 아무도없을때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집안 모든 가전가구가 돌아가고있었다던가, 등. 저때는 아무것도 안들어있는 전자레인지가 돌아가고, 가스레인지는 혼자 켜져있는 것 등이었다. 자잘한것들은 자고일어났더니 서랍장이 죄다 열려있거나 방 불이 켜져잇거나. 뭐 이런것들. 그렇지만 며칠전 정신과의사에게 다녀왔다. 이건 몽유병이 아니라는 확답을 들은채로.
3.
이상 쓰고싶지만 오늘은 몸살기운이있어 머리가 댕댕댕 울리고있다. 이후 시간난다면 뵐 수 있기를,
이방인/E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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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지난 해에 고장나서 한대 버리고 몇 달 전에 또 다른한대는 동생이 홧김에  부숴버려서 올해 여름, 집에 남은 선풍기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여섯 식구가 사는 이 집에 필요한 선풍기는 최소 세대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나는 언니를 시켜 인터넷으로 선풍기 두대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늦게 귀가하니 현관에 커다란 박스가  윗 부분만 열린 채 부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들여다보니 업소에서나 볼 듯한 커다란 선풍기 두대가 들어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거실로 나온 엄마가 짜증난 얼굴로
 '네 언니가 너무 큰 걸 시켰어. 뜯어서 반품도 안된다더라. 네가 조립해놔.'
라고 말씀 하시고 들어가버리셨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난생 처음으로 선풍기를 조립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완성 후 작동해보았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었다. 크기가 커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안방 문을 열고 큰 선풍기 택배에 짜증났던 엄마한테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고 쓸만해. 다 조립해놨어.'  
내 소리에 이미 반쯤 잠들어있던 엄마가 대답했다. '어~그래.'
생각보다 쿨한 엄마의 답변을 들은  나는 문을 닫고 나가려고 몸을 반쯤 돌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앙상해진 아빠의 얼굴 광대뼈가 더 도드라지게 내 눈에 스쳤다. 지난 여름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아직은 몸이 많이 쇠약하신 아빠에게 선풍기 조립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비가 온 아빠의 왼손 때문에 아빠의 많고 사소했던 일들이 나와 엄마의 몫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선풍기를 조립하며 나는 여름이 다 가고 분해해서 창고에 넣어둘 걱정을 미리 하면서 꼼꼼히 분해 순서를 숙지해 두어야만 했다. 이제 이 커다란 녀석을 내가 잘 조립하고 분해해야 식구들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아빠의 약해지고 낯설어진 모습에 적응 중인 엄마의 마음도 다시 안도와 편안함으로 돌려놔야 한다. 미완성 사람인 내가 늦게서야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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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나는 우애좋은 아빠 세대덕에 주말마다 사촌동생들을 돌보았고 육아필드에서 알아주는 선수가 되었다. 전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나였다. 밥을 먹여주고 물을 떠먹이고. 울면 안아주고 쉬를 누고 싶다면 바지를 벗기고 변기에 앉혀서 같이 "쉬~~" 놀고싶다면 각종 놀이에. 그래 치이고 살았다. 힘들고 지친노동 속에서 날 구원해주는 건 다름 아닌 소꿉놀이였다. 
 소꿉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엄마 아빠다. 고로 포지션 선정에있어서 많은 트러블이 발생하는데 그틈에 빠르게 아기 포지션을 득해야한다. 아기는 자고 냠냠 자고 냠냠이다. 세상 꿀보직이다. 자는척 진짜 자곤 했다.
 이리 쓰다보니 그때 생각이 많이난다. 아이들을 돌보던 중학생이 군대에 다녀왔고 내 담당 아이들은 초등학생에 중학생도 몇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끝까지 올바르게 사랑스럽게 자랐스면 한다. 우선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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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엄마따라 동생이랑 그냥 당연히 주일엔 교회에 갔다
재수를 하고 나서 부터 서서히 교회를 안갔던것 같다
지금도 갈려고 노력은 하지만 일욜아침 게으름을
이긴다는게 너무 힘들다 생각해보니 믿음이 없다
울신랑은 교회는 가끔 가도 확고한 믿음이 있고
교회 가면 은혜받는 스탈이다 
어릴때 하나님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식으로든.
보이지 않는걸 믿으면 더 큰 복을 주신다고 했다
나같은 사람이 믿는다면 더 큰 복을 주실텐데.
난 아직 믿음이 없다 그저 교회안가면 허전하고
가서 찬양하면 기분 좋아지고 하지만
티비에 나오는 큰교회 목사들의 비리와 탐욕,
우주선,구약과 신약의 싸움등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의심스럽다.이러면
모두들 성경을 읽어보라 조언한다
믿음이 있어도 성경 읽긴 힘들거 같은데~^^
나도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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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

나는 고스톱을 좋아한다
맞고 말고 셋이 치는걸 좋아한다
돈 따는게 재밌는지 
겜과정이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점 100에서 200으로 올리면
간이 작아져 패가 안보이지만~
어쩌면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하고 
하는거라 더 재밌는걸 수도 있다
카드랑 섯다는 고스톱이랑 좀 다르다
왠지 더 노름같은?ㅋ
암튼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으로 한다
아이폰은 한게임이 안돼서 울여보 폰으로 한다
사람들하고 하는거는 체력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지만 온라인은 가볍게 자기전에 한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가족이나 
아는사람들이랑 하는게 더 잼있다
온라인이지만 모르는 사람하고 하면
왠지 더 도박이나 노름 느낌의 죄책감?이 든다
이번 주말 엄마아빠 오시면 동생네랑 한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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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인형

무슨 변덕이었을까.
노량진의 텁텁한 공기가 질렸는지 혼자있을 긴 연휴가 막막했는지 외할머니의 입원소식 때문이었는지
몇년을 되도록 오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한 고향집에 내려왔다.
순천은 변화한  것 같으면서 변화 하지 않아 있었다.
변방에 떨어진 버려진 도시 같달까.
버려진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것인지 대형 쇼핑몰이 생겨나고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횡한 기운은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천은 심심하다.
몇년을 나가산 내 방엔 필요가 없어 두고 간 물건들만 쌓여있었다.
pc도 없고 만화책도 없다.
엄마는 전을 부치고 아빠는 운동을 나갔을때 나는 하릴없이 유투브만 보고 있었다.
큰이모네 식구들이 외할머니댁에 들른다는 건 그 때 들었던 것 같다.
큰이모의 딸, 그러니까 내 사촌언니가 낳은 딸도 같이 온다고 했다.
벌써 2년 전이었나. 
사촌언니는 딸을 낳고 하루만에 목숨을 잃었다.
의료사고라고 했다.
장례식장에 가는길에 그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공부에 집중 못할까봐 언니의 사망소식을 알려주려 하지 않은 엄마가 조금 이상했다(작은 이모가 알려줬다)
장례식장은 사람이 없어 휑했다.
아무도 슬피 울어주는 이가 없었다.
큰이모만이 서러운 하소연을 토해냈다.
나역시 눈물이 나지 않았다.
15년 이상 만난 적 없는 존재만 인식하고 있던 친척언니였다.
사람 한명이 죽는데도 다른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안될 수 있다는게 무서운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언니의 딸이 온다고 했다.
엄마는 죽고 아빠혼자는 키울 형편이 안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고있는 2살짜리 어린 여자애가 온다고 했다.
큰이모네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규모는 모르지만 엄마말로는 잘먹고 잘사는 정도라고 했다.
내 어린 조카는 내 생각보다 불쌍하지 않을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듯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클수도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어리고 불쌍한 조카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을, 애정을 나눠주고 싶어 머리를 굴렸다.
내 형편에 2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별로 없었다.
기저귀나 분유, 옷등은 비싸면서도 아이에게 애정이 전달되지 않을것 같았다.
그 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승재가 들고다니는 토끼인형이 생각났다.
어딜 갈때마다 꼭 붙들고 다니는 애착인형이었다.
tv를 볼때마다 그 인형은 승재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용기를 주는 매개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끼인형이었다.
e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어린조카를 위해 인형을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대모가 된것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어린 조카를 위해서 인형을 사주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내 방에 있는 먼지묻은 양인형 한쌍을 주는게 어떠냐고 묻는 엄마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인형을 선물받은 적이 없다.(그러니까 껴안고 잘 수있는 크기와 폭신함을 가진 인형을 말한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내 주변엔 엄마같은 사람뿐이고 애정과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컸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커졌다.
나도 나이많은 친척 언니나 오빠도 있었고 시집안간 고모도 있었다.
모두 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큰오빠 한명이 나를 조금 이뻐했다.
방에서 오빠무릎에 앉아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들어와서 오빠 피곤하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내려온 오빠를 힘들게 하는 애가 된 것 같아 그때부터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사랑 못받은 건 엄마 때문이었네!!
빨리 이 집에서 탈출해야겠다.
나중에 큰오빠랑 연락이 된다면 좀 더 친하게 지내야 겠다.
시간대가 맞지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외할머니집에 두고간 내 토끼인형을 꾀나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다.
하루종일 꼭 껴안고 다닌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눈물나게 귀엽고 감동적이다.
서울집에 가자마자 내가준 토끼인형이 찬밥신세가 될지도 모르지만
슬플때나 외로울 때 내 토끼인형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네곁엔 토끼인형과 토끼인형을 준 맘씨좋은 이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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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쉬워서

20살에 너에게 모든걸 걸어보겠노라 생각했고
21살에 예쁜 딸을 낳았지 그때 혼인신고를 하지말았어야했다 아이를보고 예뻐서 어쩔지 몰라하던 너를보고 나한텐없었던 아빠를 잘해줄것같았던마음에
20대에 절반을 너에게  줬다 엄마없이 자란 너 에게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수있을까 우리엄마가 나한테준 내림 사랑을 너와 내새끼한테 다 퍼부었다  직장상사 때문에 화난다며 다짜고짜 일그만두고 집에온날 내새끼굶길까 걱정됬지만 밖에서 눈치볼까 
  기죽어서 집에들어 오진않을까 화도내지않고 돌갓지난애기 어린이집 맡기고 난  12시간 일했어  열심히 일하는 와이프 보고있으면  행여나 마음고쳐먹을까 하는 마음에 죽기살기로 일했다 남들이 여자인생평생에 한번할  결혼식 안하냐 묻는말에도  행여나 결혼식도 못해주는 형편에 남에집 귀한딸 대려갔냐는소리 너듣게하기싫어서 따분한결혼식 싫다고 웃으며  그돈으로 너랑애기랑 애기크면 해외여행다닐꺼다 큰소리쳤던 나였다, 너랑 연애하고 결혼하고 너를안지 어느덧8년이 다되가는  시점에 월급이라며 가져온돈 1년도 받지못했고 아픈 너네아버지 병수발까지 들고 미성년자 니동생 내동생보다 더 알뜰히 챙겼다
돈한푼안벌어오는니가 무슨베짱에 주점이나 드나들며 백만원짜리양주 마셨는지 모르겠고 
니새끼랑 다녀야할 좋은곳예쁜곳 술집여자들이랑 드나들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혼을하고온 날  내새끼한테 아빠뺏은게 미안해 펑펑울었고 그래도 그간든정에 빈자리가 너무느껴져 
잘못된선택을 했나 후회도했다  술먹고들어오면 집에물건이 다부서져도  나는 행여나 그러다 니손 다치진않을까 걱정하던 그런병신이였으니깐  보통바람나면 이혼해달라 빌어도 시원찮은데 너는 내가 하고싶다는 이혼조차 막았고 술만안먹으면 그래도 아빠노릇 남편노릇 하는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어린나이에 결혼해도 행복하게 사는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너에게 인생을 버리지말라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년간 이혼문제로 씨름을했고 위자료한푼받지못하고 합의이혼으로 우린 끝났다 딱 한달짜리 판결
한달만에 몇년간에 생활이 판단되는게 무서워 숨기만했는데 이혼하고 딱 6개월이지난지금 그시간들이 지금은 어찌나 아깝고 화가나는지 모르겠다 제일 하고싶은게 놀고싶은게 그리고 제일용감하고 예쁠 나이 겁이없고 내자신만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버거울 이십대에초반을 전부 너에게 주고 이십대에 후반에 한발짝 다가선 지금 너에게 하고싶은말이야
양육비 주기싫어 잠수탄 너란걸 알기에 
아가씨에 나보다 애기엄마인 나로 이야기하자면
넌 정말불쌍하고  지독하게도 비참하게 살았으면좋겠어 니가너무불쌍해서 내가 내아이에 아빠인 너를 욕 하지않고 살수있도록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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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위통이 도졌다. 자정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불어난 통증은 새까만 개미떼처럼 맹렬히 위벽을 뜯어먹어갔다. 통증에 잔뜩 웅크릴수록 열이 번졌다. 식은땀을 먹고 무거워진 솜이불이 몸을 꾹꾹 눌러내리는 것 같았다.
 형은 왜 자꾸 아파. 언젠가 어린 동생이 나를 쓰다듬으며 뱉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묻는 말 끝에 물음표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꼭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뭐든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려 했지만 이내 어머니가 동생을 데려갔다. 안 돼, 형 아픈데 귀찮게 하면.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까맣게 가라앉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불행을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것들. 손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전부 빼앗아 텅 비운 뒤에도 온순해질 줄 모르는 뱃속의 악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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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

내 동생의 친구의 동생
정민이는 무당벌레를 좋아했었다.
정민이를 처음 만났을때는 겨우 5살
평범한 애기들처럼 날 경계했었지.
2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정민와 꽤 친해졌고
만나면 항상 따라와 붙는
그래서 지유도 질투했지.
벌써 정하네가 이사간지 6개월이 넘었는데
무당벌레라는 걸 보자 너가 갑자기 생각나네
너가 고작 7살때 만났던 이 언니를
만약에 커서 만나면 기억할 수는 있겠니?
건강히 잘 지내렴
정하랑 사이좋게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