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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았던 엄마.

지금도 있을거란 생각을 안고, 동생과 늘 찾아나선다.

하지만 늘 같은 결과


"으아아아아아앙~~~!!!!!"


동생 나리 메이커는 밤 8시만 되면 계속 운다.공포를 느끼고 있나보다.


"메이커, 괜찮아.언니가 있잖아."


나의 나이는 19살.이름은 하니코 레베카.


엄마는 이런 이름을 지어주시곤, 떠나셨다.

아빠도 없다.친척은 여기에 살지 않다.그렇다고 오기도 힘들다.


"으아아아앜!!!!!"


더 커지는 동생의 울음소리.

이쯤 되면 늘 가까운 숲에 텐드를 친다.

당연히 물이 있는 곳에 말이다.


"이제 됬니?메이커^^"


있을 건 다있다.

가스레인지, 물, 부탄가스, 조명, 음식 등등..


"메이커..몇 달만 있음 엄마를 찾게될거야.오래 걸려도 1년이라고!"


그 때는....몰랐다.


엄마는 아빠에 의해 죽었다는 걸..


어디서 왔지?
[["synd.kr", 10], ["unknown", 97]]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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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꿈

와 진짜 신기
어제 하루종일 먹는거 말하는거 조심했는데
내가 조심하니 낮엔 엄마랑 동생이랑 싸우고
잘 넘어가나 했더니
결국 새벽에 위경련나서 손 다따고
오늘 맛있는건 하나도 못먹었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꿈에 둘이나 나오더니..
어떻게 하면 이 징크스가 깨지는거야
내가 그사람들을 용서 해야해?
아님 조심하라는 경고로 좋게 받아들여야해?
정말 신기하다
아직도 속은 아푸다
바고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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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지난 해에 고장나서 한대 버리고 몇 달 전에 또 다른한대는 동생이 홧김에  부숴버려서 올해 여름, 집에 남은 선풍기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여섯 식구가 사는 이 집에 필요한 선풍기는 최소 세대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나는 언니를 시켜 인터넷으로 선풍기 두대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늦게 귀가하니 현관에 커다란 박스가  윗 부분만 열린 채 부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들여다보니 업소에서나 볼 듯한 커다란 선풍기 두대가 들어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거실로 나온 엄마가 짜증난 얼굴로
 '네 언니가 너무 큰 걸 시켰어. 뜯어서 반품도 안된다더라. 네가 조립해놔.'
라고 말씀 하시고 들어가버리셨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난생 처음으로 선풍기를 조립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완성 후 작동해보았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었다. 크기가 커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안방 문을 열고 큰 선풍기 택배에 짜증났던 엄마한테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고 쓸만해. 다 조립해놨어.'  
내 소리에 이미 반쯤 잠들어있던 엄마가 대답했다. '어~그래.'
생각보다 쿨한 엄마의 답변을 들은  나는 문을 닫고 나가려고 몸을 반쯤 돌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앙상해진 아빠의 얼굴 광대뼈가 더 도드라지게 내 눈에 스쳤다. 지난 여름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아직은 몸이 많이 쇠약하신 아빠에게 선풍기 조립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비가 온 아빠의 왼손 때문에 아빠의 많고 사소했던 일들이 나와 엄마의 몫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선풍기를 조립하며 나는 여름이 다 가고 분해해서 창고에 넣어둘 걱정을 미리 하면서 꼼꼼히 분해 순서를 숙지해 두어야만 했다. 이제 이 커다란 녀석을 내가 잘 조립하고 분해해야 식구들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아빠의 약해지고 낯설어진 모습에 적응 중인 엄마의 마음도 다시 안도와 편안함으로 돌려놔야 한다. 미완성 사람인 내가 늦게서야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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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엄마따라 동생이랑 그냥 당연히 주일엔 교회에 갔다
재수를 하고 나서 부터 서서히 교회를 안갔던것 같다
지금도 갈려고 노력은 하지만 일욜아침 게으름을
이긴다는게 너무 힘들다 생각해보니 믿음이 없다
울신랑은 교회는 가끔 가도 확고한 믿음이 있고
교회 가면 은혜받는 스탈이다 
어릴때 하나님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식으로든.
보이지 않는걸 믿으면 더 큰 복을 주신다고 했다
나같은 사람이 믿는다면 더 큰 복을 주실텐데.
난 아직 믿음이 없다 그저 교회안가면 허전하고
가서 찬양하면 기분 좋아지고 하지만
티비에 나오는 큰교회 목사들의 비리와 탐욕,
우주선,구약과 신약의 싸움등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의심스럽다.이러면
모두들 성경을 읽어보라 조언한다
믿음이 있어도 성경 읽긴 힘들거 같은데~^^
나도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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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

나는 고스톱을 좋아한다
맞고 말고 셋이 치는걸 좋아한다
돈 따는게 재밌는지 
겜과정이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점 100에서 200으로 올리면
간이 작아져 패가 안보이지만~
어쩌면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하고 
하는거라 더 재밌는걸 수도 있다
카드랑 섯다는 고스톱이랑 좀 다르다
왠지 더 노름같은?ㅋ
암튼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으로 한다
아이폰은 한게임이 안돼서 울여보 폰으로 한다
사람들하고 하는거는 체력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지만 온라인은 가볍게 자기전에 한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가족이나 
아는사람들이랑 하는게 더 잼있다
온라인이지만 모르는 사람하고 하면
왠지 더 도박이나 노름 느낌의 죄책감?이 든다
이번 주말 엄마아빠 오시면 동생네랑 한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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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인형

무슨 변덕이었을까.
노량진의 텁텁한 공기가 질렸는지 혼자있을 긴 연휴가 막막했는지 외할머니의 입원소식 때문이었는지
몇년을 되도록 오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한 고향집에 내려왔다.
순천은 변화한  것 같으면서 변화 하지 않아 있었다.
변방에 떨어진 버려진 도시 같달까.
버려진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것인지 대형 쇼핑몰이 생겨나고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횡한 기운은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천은 심심하다.
몇년을 나가산 내 방엔 필요가 없어 두고 간 물건들만 쌓여있었다.
pc도 없고 만화책도 없다.
엄마는 전을 부치고 아빠는 운동을 나갔을때 나는 하릴없이 유투브만 보고 있었다.
큰이모네 식구들이 외할머니댁에 들른다는 건 그 때 들었던 것 같다.
큰이모의 딸, 그러니까 내 사촌언니가 낳은 딸도 같이 온다고 했다.
벌써 2년 전이었나. 
사촌언니는 딸을 낳고 하루만에 목숨을 잃었다.
의료사고라고 했다.
장례식장에 가는길에 그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공부에 집중 못할까봐 언니의 사망소식을 알려주려 하지 않은 엄마가 조금 이상했다(작은 이모가 알려줬다)
장례식장은 사람이 없어 휑했다.
아무도 슬피 울어주는 이가 없었다.
큰이모만이 서러운 하소연을 토해냈다.
나역시 눈물이 나지 않았다.
15년 이상 만난 적 없는 존재만 인식하고 있던 친척언니였다.
사람 한명이 죽는데도 다른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안될 수 있다는게 무서운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언니의 딸이 온다고 했다.
엄마는 죽고 아빠혼자는 키울 형편이 안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고있는 2살짜리 어린 여자애가 온다고 했다.
큰이모네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규모는 모르지만 엄마말로는 잘먹고 잘사는 정도라고 했다.
내 어린 조카는 내 생각보다 불쌍하지 않을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듯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클수도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어리고 불쌍한 조카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을, 애정을 나눠주고 싶어 머리를 굴렸다.
내 형편에 2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별로 없었다.
기저귀나 분유, 옷등은 비싸면서도 아이에게 애정이 전달되지 않을것 같았다.
그 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승재가 들고다니는 토끼인형이 생각났다.
어딜 갈때마다 꼭 붙들고 다니는 애착인형이었다.
tv를 볼때마다 그 인형은 승재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용기를 주는 매개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끼인형이었다.
e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어린조카를 위해 인형을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대모가 된것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어린 조카를 위해서 인형을 사주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내 방에 있는 먼지묻은 양인형 한쌍을 주는게 어떠냐고 묻는 엄마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인형을 선물받은 적이 없다.(그러니까 껴안고 잘 수있는 크기와 폭신함을 가진 인형을 말한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내 주변엔 엄마같은 사람뿐이고 애정과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컸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커졌다.
나도 나이많은 친척 언니나 오빠도 있었고 시집안간 고모도 있었다.
모두 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큰오빠 한명이 나를 조금 이뻐했다.
방에서 오빠무릎에 앉아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들어와서 오빠 피곤하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내려온 오빠를 힘들게 하는 애가 된 것 같아 그때부터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사랑 못받은 건 엄마 때문이었네!!
빨리 이 집에서 탈출해야겠다.
나중에 큰오빠랑 연락이 된다면 좀 더 친하게 지내야 겠다.
시간대가 맞지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외할머니집에 두고간 내 토끼인형을 꾀나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다.
하루종일 꼭 껴안고 다닌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눈물나게 귀엽고 감동적이다.
서울집에 가자마자 내가준 토끼인형이 찬밥신세가 될지도 모르지만
슬플때나 외로울 때 내 토끼인형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네곁엔 토끼인형과 토끼인형을 준 맘씨좋은 이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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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10년전만해도 아이돌은 '오빠'였는데,
이젠 '동생'이 되었다.
어째서인지 그놈이 나이가 뭐라고,
함부러 밖에서 언급하기 그런이름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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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아쉬워서

20살에 너에게 모든걸 걸어보겠노라 생각했고
21살에 예쁜 딸을 낳았지 그때 혼인신고를 하지말았어야했다 아이를보고 예뻐서 어쩔지 몰라하던 너를보고 나한텐없었던 아빠를 잘해줄것같았던마음에
20대에 절반을 너에게  줬다 엄마없이 자란 너 에게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수있을까 우리엄마가 나한테준 내림 사랑을 너와 내새끼한테 다 퍼부었다  직장상사 때문에 화난다며 다짜고짜 일그만두고 집에온날 내새끼굶길까 걱정됬지만 밖에서 눈치볼까 
  기죽어서 집에들어 오진않을까 화도내지않고 돌갓지난애기 어린이집 맡기고 난  12시간 일했어  열심히 일하는 와이프 보고있으면  행여나 마음고쳐먹을까 하는 마음에 죽기살기로 일했다 남들이 여자인생평생에 한번할  결혼식 안하냐 묻는말에도  행여나 결혼식도 못해주는 형편에 남에집 귀한딸 대려갔냐는소리 너듣게하기싫어서 따분한결혼식 싫다고 웃으며  그돈으로 너랑애기랑 애기크면 해외여행다닐꺼다 큰소리쳤던 나였다, 너랑 연애하고 결혼하고 너를안지 어느덧8년이 다되가는  시점에 월급이라며 가져온돈 1년도 받지못했고 아픈 너네아버지 병수발까지 들고 미성년자 니동생 내동생보다 더 알뜰히 챙겼다
돈한푼안벌어오는니가 무슨베짱에 주점이나 드나들며 백만원짜리양주 마셨는지 모르겠고 
니새끼랑 다녀야할 좋은곳예쁜곳 술집여자들이랑 드나들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혼을하고온 날  내새끼한테 아빠뺏은게 미안해 펑펑울었고 그래도 그간든정에 빈자리가 너무느껴져 
잘못된선택을 했나 후회도했다  술먹고들어오면 집에물건이 다부서져도  나는 행여나 그러다 니손 다치진않을까 걱정하던 그런병신이였으니깐  보통바람나면 이혼해달라 빌어도 시원찮은데 너는 내가 하고싶다는 이혼조차 막았고 술만안먹으면 그래도 아빠노릇 남편노릇 하는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어린나이에 결혼해도 행복하게 사는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너에게 인생을 버리지말라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년간 이혼문제로 씨름을했고 위자료한푼받지못하고 합의이혼으로 우린 끝났다 딱 한달짜리 판결
한달만에 몇년간에 생활이 판단되는게 무서워 숨기만했는데 이혼하고 딱 6개월이지난지금 그시간들이 지금은 어찌나 아깝고 화가나는지 모르겠다 제일 하고싶은게 놀고싶은게 그리고 제일용감하고 예쁠 나이 겁이없고 내자신만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버거울 이십대에초반을 전부 너에게 주고 이십대에 후반에 한발짝 다가선 지금 너에게 하고싶은말이야
양육비 주기싫어 잠수탄 너란걸 알기에 
아가씨에 나보다 애기엄마인 나로 이야기하자면
넌 정말불쌍하고  지독하게도 비참하게 살았으면좋겠어 니가너무불쌍해서 내가 내아이에 아빠인 너를 욕 하지않고 살수있도록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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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위통이 도졌다. 자정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불어난 통증은 새까만 개미떼처럼 맹렬히 위벽을 뜯어먹어갔다. 통증에 잔뜩 웅크릴수록 열이 번졌다. 식은땀을 먹고 무거워진 솜이불이 몸을 꾹꾹 눌러내리는 것 같았다.
 형은 왜 자꾸 아파. 언젠가 어린 동생이 나를 쓰다듬으며 뱉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묻는 말 끝에 물음표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꼭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뭐든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려 했지만 이내 어머니가 동생을 데려갔다. 안 돼, 형 아픈데 귀찮게 하면.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까맣게 가라앉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불행을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것들. 손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전부 빼앗아 텅 비운 뒤에도 온순해질 줄 모르는 뱃속의 악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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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날 
하늘이 우중충해서 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애랑 연애를 시작한 후 고1이라는 어린 나이여서 연애 경험이 없던 나와 그애는 정말 어색했다. 그래도 그애를 좋아하는 마음은 정말 컸다. 비가오던 그 날 난 우산이 없었고 그애는 나에게 자신의 우산을 같이 쓰고 갈꺼냐고 물어봤다. 그애가 "같이 우산쓰고 갈거야?" 가 아닌 "같이 우산 쓰고 가자" 라고 얘기했다면 지금 우리는 좀 달라졌을까. 알수없다. 뭐가됬든 난 그애의 동생이 집에서 그애가 와서 밥을 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때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존재했다. 어차피 같은 학원에 가야하고 비도 많이 오고 어색한 우리 사이가 조금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될거라고 생각됬다. 집에 있는 그애의 동생도 혼자 밥을 차려먹을수 있는 나이니깐. 그래도 그애를 배려해주고 싶었다. "근데..너 동생 밥차려주러 가야하잖아"
라고 묻는 나의 말에는 괜찮다고 오늘 하루쯤은 자기가 차려먹게 해도 된다고 그냥 가자고 얘기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숨겨져있었다. 그러나 그애는 "그건 그래.."라며 말끝을 흐렸고 난 그 애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결국 그 애를 집으로 보냈다. 그 애는 알았을까? 그 애를 집으로 보내며 난 혼자 후회하며 같이 가자고 말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내고 안타까워 했다는걸.. 이젠 모두 추억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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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나랑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날 제외한 가족 세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
모두 다 선천적인 것은 아니지만
날 키워주신 할머니, 아버지는 손가락이 두 개
그리고 세 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남동생은 마비로 인해 다리와 양 손이 불편
하고.
부끄러워한 적은 결단코 단 한번도 없다.
아버지만 해도 오른쪽 엄지, 새끼손가락만 가지고도
글자를 나보다 멋들어지게 잘 쓰시기에.
동생도 나보다 머리가 좋고 성실해 저축도 잘한다.
물론 남들 눈에는 영 어딘가가 티나게 불편해보이는
장애인들로 비추어지겠지.
난 그런 가족들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들보다 내가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닐까.
부끄럽다 생각한 적은 없다고 스스로 여기며
남몰래 내가 그래도 낫지, 생각하며
더 게을리, 형편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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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다

*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는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란다 : 이마의 혹이 발달한 금붕어 품종의 하나.
 I에게는 심각한 허언증이 있다. 아니, 조현병인가. 잘은 몰라도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언젠가 점심 먹으러 가는 복도에서 I는 이렇게 말했다.
 아, 너무 배고프다.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었어.
 주위의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양 낯빛을 어둡게 꾸미고 한마디씩 물었다. 왜, 다이어트해? 어디 아팠어?
 아니, 어제저녁에 금붕어를 토했거든. 나 초등학생 때부터 뱃속에 넣어 기르던 건데. 너무 슬퍼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
 그 애는 똑똑하고 사교적이고 멀쩡해 보였지만, 가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툭툭 뱉었다. 비위가 약하면서도 지나치게 상상력이 좋았던 나는 덕분에 점심을 걸렀다. 이러다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아. 두통에 시달리던 이들은 구석에 모여서 한마디씩 뒷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해가 뜨면 모두 마법처럼 활짝 핀 얼굴이 되어 I의 곁을 맴돌았다. I는 이사장의 딸이니까. 곁에 있으면 콩고물이 고소할 정도로 떨어졌으니까. 그곳은 학부모에게 넌지시 촌지를 요구하고, 상납하지 않은 아이는 선생이 나서서 왕따를 주도할 만큼 썩은 물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I가 옆에 있는 것만이 삶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굴었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2학년을 앞두었을 즈음, I와 나는 더 가까워졌다. I는 나를 과외에 넣어주고 항상 곁에 두었으며 그가 받는 많은 혜택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I 주위를 맴돌던 다른 애들과 나의 차이가 뭐였을까? 글쎄, 강한 인내심? 아무튼 걔는 나를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I는 약간 맛이 간 돈 많은 여자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I의 어머니가 주도한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 겨울 방학을 보낸 뒤 2학년이 되었다. 그해의 공기는 작년보다 더 신선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와 친해지면 I에게도 줄이 닿을 것이라 생각한 많은 애들이 나의 충직한 친구를 자청해왔다. 선생들은 I를 대하듯 자연스레 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성적은 거의 꼭대기를 찍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이었다. 가끔 I때문에 점심을 걸러도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나빴다. 점점 나빠졌다. 공기는 달콤함을 잃었다. I와 나는 비밀이라던가 가정사 같은 것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정확히는 I 혼자 그렇게 생각했고, 목소리를 낮추고 나에게만 해 주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횟수가 늘어났다.
 나 사실 동생이 있었는데.
 응.
 어렸을 때 기차에 치여서 죽었거든.
 …….
 너무 순식간이라 막을 새도 없었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철로에 시체가… 아니 파편이, 막… 여기저기….
 하필 점심을 먹고 난 이후였다. 나는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욕지기가 솟는 입을 틀어막는 게 더 급했다.
 그때 나는 꼬맹이라 핸드폰도 뭣도 없고, 엄마 아빠 몰래 나온 거라 우리 둘뿐이었는데. 오래된 역이라 사람도 없었어. 나는 개구멍으로 몰래 드나들던 내내 거기가 폐쇄된 역인 줄 알았거든. 열차가 다니는 줄은 몰랐단 말야. 아무튼 울다가 어디서 라면 박스를 주워 와서 그걸 담았어. 손이랑 옷이며 신발이 벌겋게 엉망이 되고… 반쯤 담았나. 마침 순찰하던 역무원이 나를 보고 급하게 위로 데려왔어.

 으……
 …그래서 나는 혼자 남았어. 끝.
 웩. 결국 속에 있는 걸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교실에 있던 이들이 요란스레 소리치며 물러났다. 항상 허무맹랑했던 만큼 이 얘기도 구멍투성이였다. 너 내내 서울에 살았다며. 서울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며. 네가 몇 살이나 살았다고 동네에 개구멍까지 뚫린 오래된 역이 있어? 사람이 치였는데 네가 박스를 구해서 시신을 줍는 동안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었어? 진짜 있었던 일이 맞기는 해? 네가 말한 비밀 중에 제대로 된 얘기는 하나도 없었잖아. 증명해, 제발 증명해. 나는 책장이 아니야. 네 역겨운 거짓말이 벌써 내 머리에 수백 개는 꽂혀있어. 얘기는 빌어먹게도 잘 지어서. 길 가다가 생각나고 웃다가도 생각이 나서, 구역질이 나서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라고 나는 소리치지 못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나를 피해 교실 벽까지 멀어졌다. 정면에는 건조하게 나를 방관하는 I의 동그란 눈동자가. 이 난리는 선생님이 달려와 교실을 수습하고 나는 조퇴하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되었다.
 이후 I와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서로를 먼저 찾지 않았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미묘한 어색함이 떠돌았다. 나는 곧 끈 떨어진 연이 되었다. I는 여전히 수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있다. 나는 아직 반절이나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는 채로 부적응자처럼 교실을 방황하다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기쁘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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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정적이 흐르면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그 기운은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주기도 
분위기를 파악하기 힘들게 하기도 한다.
정적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도 있다.
정적은 새로운 말을 시작할 좋은 휴지가 되기도 한다.
선배와 후배사이의 정적
주인과 손님사이의 정적
선생과 제자사이의 정적
부모와 자식사이의 정적
남편과 아내사이의 정적
형과 동생사이의 정적
이 모든 정적은 서로의 소리없는 대화이기도
긴장감이기도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