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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았던 엄마.

지금도 있을거란 생각을 안고, 동생과 늘 찾아나선다.

하지만 늘 같은 결과


"으아아아아아앙~~~!!!!!"


동생 나리 메이커는 밤 8시만 되면 계속 운다.공포를 느끼고 있나보다.


"메이커, 괜찮아.언니가 있잖아."


나의 나이는 19살.이름은 하니코 레베카.


엄마는 이런 이름을 지어주시곤, 떠나셨다.

아빠도 없다.친척은 여기에 살지 않다.그렇다고 오기도 힘들다.


"으아아아앜!!!!!"


더 커지는 동생의 울음소리.

이쯤 되면 늘 가까운 숲에 텐드를 친다.

당연히 물이 있는 곳에 말이다.


"이제 됬니?메이커^^"


있을 건 다있다.

가스레인지, 물, 부탄가스, 조명, 음식 등등..


"메이커..몇 달만 있음 엄마를 찾게될거야.오래 걸려도 1년이라고!"


그 때는....몰랐다.


엄마는 아빠에 의해 죽었다는 걸..


어디서 왔지?
[["synd.kr", 9], ["unknown",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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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꿈

와 진짜 신기
어제 하루종일 먹는거 말하는거 조심했는데
내가 조심하니 낮엔 엄마랑 동생이랑 싸우고
잘 넘어가나 했더니
결국 새벽에 위경련나서 손 다따고
오늘 맛있는건 하나도 못먹었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꿈에 둘이나 나오더니..
어떻게 하면 이 징크스가 깨지는거야
내가 그사람들을 용서 해야해?
아님 조심하라는 경고로 좋게 받아들여야해?
정말 신기하다
아직도 속은 아푸다
바고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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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

나는 고스톱을 좋아한다
맞고 말고 셋이 치는걸 좋아한다
돈 따는게 재밌는지 
겜과정이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점 100에서 200으로 올리면
간이 작아져 패가 안보이지만~
어쩌면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하고 
하는거라 더 재밌는걸 수도 있다
카드랑 섯다는 고스톱이랑 좀 다르다
왠지 더 노름같은?ㅋ
암튼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으로 한다
아이폰은 한게임이 안돼서 울여보 폰으로 한다
사람들하고 하는거는 체력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지만 온라인은 가볍게 자기전에 한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가족이나 
아는사람들이랑 하는게 더 잼있다
온라인이지만 모르는 사람하고 하면
왠지 더 도박이나 노름 느낌의 죄책감?이 든다
이번 주말 엄마아빠 오시면 동생네랑 한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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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하나님

엄마따라 동생이랑 그냥 당연히 주일엔 교회에 갔다
재수를 하고 나서 부터 서서히 교회를 안갔던것 같다
지금도 갈려고 노력은 하지만 일욜아침 게으름을
이긴다는게 너무 힘들다 생각해보니 믿음이 없다
울신랑은 교회는 가끔 가도 확고한 믿음이 있고
교회 가면 은혜받는 스탈이다 
어릴때 하나님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식으로든.
보이지 않는걸 믿으면 더 큰 복을 주신다고 했다
나같은 사람이 믿는다면 더 큰 복을 주실텐데.
난 아직 믿음이 없다 그저 교회안가면 허전하고
가서 찬양하면 기분 좋아지고 하지만
티비에 나오는 큰교회 목사들의 비리와 탐욕,
우주선,구약과 신약의 싸움등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의심스럽다.이러면
모두들 성경을 읽어보라 조언한다
믿음이 있어도 성경 읽긴 힘들거 같은데~^^
나도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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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뭐가 아쉬워서

20살에 너에게 모든걸 걸어보겠노라 생각했고
21살에 예쁜 딸을 낳았지 그때 혼인신고를 하지말았어야했다 아이를보고 예뻐서 어쩔지 몰라하던 너를보고 나한텐없었던 아빠를 잘해줄것같았던마음에
20대에 절반을 너에게  줬다 엄마없이 자란 너 에게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수있을까 우리엄마가 나한테준 내림 사랑을 너와 내새끼한테 다 퍼부었다  직장상사 때문에 화난다며 다짜고짜 일그만두고 집에온날 내새끼굶길까 걱정됬지만 밖에서 눈치볼까 
  기죽어서 집에들어 오진않을까 화도내지않고 돌갓지난애기 어린이집 맡기고 난  12시간 일했어  열심히 일하는 와이프 보고있으면  행여나 마음고쳐먹을까 하는 마음에 죽기살기로 일했다 남들이 여자인생평생에 한번할  결혼식 안하냐 묻는말에도  행여나 결혼식도 못해주는 형편에 남에집 귀한딸 대려갔냐는소리 너듣게하기싫어서 따분한결혼식 싫다고 웃으며  그돈으로 너랑애기랑 애기크면 해외여행다닐꺼다 큰소리쳤던 나였다, 너랑 연애하고 결혼하고 너를안지 어느덧8년이 다되가는  시점에 월급이라며 가져온돈 1년도 받지못했고 아픈 너네아버지 병수발까지 들고 미성년자 니동생 내동생보다 더 알뜰히 챙겼다
돈한푼안벌어오는니가 무슨베짱에 주점이나 드나들며 백만원짜리양주 마셨는지 모르겠고 
니새끼랑 다녀야할 좋은곳예쁜곳 술집여자들이랑 드나들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혼을하고온 날  내새끼한테 아빠뺏은게 미안해 펑펑울었고 그래도 그간든정에 빈자리가 너무느껴져 
잘못된선택을 했나 후회도했다  술먹고들어오면 집에물건이 다부서져도  나는 행여나 그러다 니손 다치진않을까 걱정하던 그런병신이였으니깐  보통바람나면 이혼해달라 빌어도 시원찮은데 너는 내가 하고싶다는 이혼조차 막았고 술만안먹으면 그래도 아빠노릇 남편노릇 하는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어린나이에 결혼해도 행복하게 사는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너에게 인생을 버리지말라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년간 이혼문제로 씨름을했고 위자료한푼받지못하고 합의이혼으로 우린 끝났다 딱 한달짜리 판결
한달만에 몇년간에 생활이 판단되는게 무서워 숨기만했는데 이혼하고 딱 6개월이지난지금 그시간들이 지금은 어찌나 아깝고 화가나는지 모르겠다 제일 하고싶은게 놀고싶은게 그리고 제일용감하고 예쁠 나이 겁이없고 내자신만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버거울 이십대에초반을 전부 너에게 주고 이십대에 후반에 한발짝 다가선 지금 너에게 하고싶은말이야
양육비 주기싫어 잠수탄 너란걸 알기에 
아가씨에 나보다 애기엄마인 나로 이야기하자면
넌 정말불쌍하고  지독하게도 비참하게 살았으면좋겠어 니가너무불쌍해서 내가 내아이에 아빠인 너를 욕 하지않고 살수있도록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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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위통이 도졌다. 자정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불어난 통증은 새까만 개미떼처럼 맹렬히 위벽을 뜯어먹어갔다. 통증에 잔뜩 웅크릴수록 열이 번졌다. 식은땀을 먹고 무거워진 솜이불이 몸을 꾹꾹 눌러내리는 것 같았다.
 형은 왜 자꾸 아파. 언젠가 어린 동생이 나를 쓰다듬으며 뱉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묻는 말 끝에 물음표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꼭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뭐든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려 했지만 이내 어머니가 동생을 데려갔다. 안 돼, 형 아픈데 귀찮게 하면.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까맣게 가라앉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불행을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것들. 손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전부 빼앗아 텅 비운 뒤에도 온순해질 줄 모르는 뱃속의 악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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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上

 이제는 누구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사실 H에게는 망나니 같던 시절이 있었다. 애티를 못 벗은 얼굴로 다 자랐다고 착각하던 중학생 무렵. H는 교내에서 유명한 또라이였다.

“내가 살다 살다 너 같은 꼴통은 처음이다.”

 당시 담임을 맡았던 학주는 H의 입학 이후 터진 수십 건의 개싸움에 뒷목을 잡았다.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것이 그의 굳은 지론이었는데, 그간 수많은 선배들을 갱생시켰다는 사랑의 매타작도 H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마이며 넥타이는 늘 실종 상태에, 정해진 수업 시간과 상관없이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더러운 성정만큼 입도 거칠어서 시비가 붙으면 반드시 싸움으로 번졌다. 의자를 던지고, 창문을 깨고, 끝까지 쫓아가 피떡을 만들어 놓았다. 늘 화난 짐승처럼 구는 H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모글리를 납치해서 학교에 보내면, 아마 너랑 비슷할 거야.”
 “…모글리가 뭔데.”
 “몰라? 정글짐에 나오는 주인공.”

 그때 우리는 한참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H는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잔뜩 우그러트린 채 나를 빤히 노려봤고, 교실 분위기는 한층 더 살벌해졌다. 개의치 않고 디저트로 나온 요플레를 뜯어 뚜껑을 핥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식판도 안 치우고 말이지. 긴장으로 숨까지 참고 있던 애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떠들기 시작했다.

 H가 자리에 없을 때면 가끔 반 애들이나 선생이 나에게 하소연했다. 네 동생 좀 어떻게 해 봐. 딱히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같은 날 태어났지만 H와 나는 외모도 성격도 극단적으로 달랐다. 그런데도 형제인 게 소문이 난 이유는 내가 H를 건드려도 싸움이 나지 않는 유일한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H를 갱생시킬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나는 낄낄 웃으며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진작 했지. 그러면 다들 깊이 수긍하고는 돌아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을 하나 고백하자면, 그때까지 H는 나에게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다.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를 구경하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H를 간간히 관찰하는 것이다. 공부 외에 별다른 취미도 특기도 없는 심심한 인간인 나에 비해 놈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 찬 통제할 수 없는 동물이었다. 지금은 전부 불타 없어졌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몰래 써온 관찰 일기도 그즈음 열 권이 넘어가 있었다.

 이런 일상이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된 건 중간고사가 끝난 5월이었다. 내내 H를 고깝게 보던 3학년들이 직접 학교 뒤편으로 H를 불러냈던 날. 점점 실세에서 밀려나 마음이 급했는지 열댓 명쯤 되는 놈들이 모여 한꺼번에 다구리를 놓았다. 아무리 싸움에 도가 텄어도 쪽수로 밀어붙이는 데는 수가 없어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패도 패도 일어나던 H는 코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살벌한 눈빛에는 마치 좀비 같은, 사람이 아닌 무언가의 검은 생명력이 반짝였다. 미친 뭐 저런 또라이가 다 있어, 다들 때리기에도 지치고 질려서 헉헉대고 있을 때였다.

 “…어?”

악에 받친 한 놈이, 어딘가에서 쇠파이프를 주워 달려오고 있었다. 벤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조차 잊고 뛰쳐나갔다. H, 소리쳤지만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H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상황 파악이 되자마자 새된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H를 때린 놈마저도.
 소란에 수위 아저씨와 선생들이 달려왔다. 그들이 구급차를 부르고, 용의자들을 잡아 이름을 적는 동안 나는 꼼짝 없이 서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