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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열 명의 병신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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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뜨거운 용암 아래서 부글부글
아니다 나의 머릿속이 부글거린다
무엇이 익지않은건지 뜨거운 열기는 내려가지않고
나는 웃고.웃고.웃고 미치광이마냥
나는 또 열에 휘둘려 입김을 뱉고
너는 내 입김을 마시고
우리는 열병에 걸렸다
우리는 아무도 열병에 걸리지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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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열병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습관적으로 찾아오는 열병은 항상 힘겨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걸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지. 왜였을까.
돌이켜보면 온통 흰 마른 몸이 마디마디 붉은 것을 나는 참 신기하게 여겼었다. 성큼성큼 걷는 것을 남들은 답잖게 당차다는 식으로 평가했지만, 나는 그 걸음 걸음이 위태로워 보인다고 말했었다. 유난히 붉었던 입술과 자주 발갛게 물들던 귀를 보며 멍하니 머릿 속에 있던 생각들을 지워버리곤 했었다. 그럴때면 너는 항상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어쩌면 내가 앓는 열병의 원인은 너였을지 모른다. 내 모든 두근거림의 원인이 너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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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열병 
착각
바람
공터
모래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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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

너를 원하고 또 원했다,
너를 원하고 또 원했기에 무엇이든 네게 다 해줄려고 최대한 노력 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결국 지독한 갈증 뿐 그곳에 너의 마음 따윈 없었다, 
너의 마음은 결국 내게 오지 않았다.
너를 위해 모든 걸 바쳤던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저 너를 향한 지독한 애증 뿐, 
내게 있던 모든 것은 결국 우수 날 핀 눈꽃과도 같이 금세 녹아 없어져버렸다. 
나의 지독하디 지독한, 열병과도 같았던 끝없는 감정또한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너의 애정을 갈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너의 애정을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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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고 어느 음악평론가 말한적이 있는데, 그녀가 처음울던 날의 가사를 보면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핀 목련꽃 같애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따뜻한 봄날 이었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20대에는 이노래를 들었을때 단순히 20대의 결혼까지 생각했던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을 그녀의 미소와 그녀의 눈물로 표현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김광석의 가사에서 말하는 미소는
10대의 열렬한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나오는 노인분들의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미소나, 사랑하는 내아이들의 미소까지도 포함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울음은 단순한 사랑의 열병이 끝남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사 굽이굽이의 어려움을 함께 해주시는 성모마리아의 눈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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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우리가 무언갈 하든 하지 않든 계절은 돌아온다. 변함없는 건 돌아온다는 사실 뿐이고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는 그도 매번 바뀌었다. 우리가 뭘 하든, 여름은 돌아온다.
관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미 완전히 망가진 것이었지만 그나마도 가짐과 아예 없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습게도 그랬고 나는 그대로 소리내어 웃었다. 이까짓게 뭐라고 공허함이 느껴지는지, 심지어는 아쉬워지는 건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 웃었다. 어느 순간부터 네 웃음소리가 겹쳐들렸다. 영락없는 비웃음이라 나는 웃음을 뚝 그쳤다. 매미소리가 방 안을 메우고 있다. 창에 들러붙었는지 유난히 시끄럽다. 크게 착각한 수치를 느끼고 싶어도 주변에 널린 건 먼지와 쓰레기 뿐이었다. 감정이 존재하려면 관계가 우선이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감정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세상은 닭과 달걀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절이 왔음을 알 수 있는 몇가지 단서가 있다. 가령 사람들은 서늘한 밤에 낙엽이 지면 가을이 온 줄 알았다. 눈이 오면 겨울이 온다. 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엔 늘 네가 그렇게도 좋아한 덕에 매일 꽃이 꽂혀있었으므로 나는 봄을 모르고 지나갔다. 밖에 나갈 일 없으니 가을바람을 맞을 새도 없었고 다만 느껴온 건 여름과 겨울 뿐이다. 차갑고 맛없는 도시락을 세 숫갈 겨우 들고서 무료하고 무기력하게 방 바닥에 엎드렸을 때. 바닥이 습기로 끈적거리면 여름이었고 대리석처럼 차가우면 겨울이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가지가 달라졌다. 아버지가 떠났고 네가 죽었다. 내가 바닥에 납작 들러붙기도 전에 여름은 시작해버렸고 매미가 울고 있었다. 의식하고 나니 귀가 따가워 나는 신경질을 내며 발로 창문을 걷어차 매미를 날려버렸다. 그새 움직였다고 열이 오르는 몸을 식히려 그나마 서늘한 벽에 몸을 기대 앉았다. 노이로제처럼 멀거니 매미소리가 들렸다. 집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다. 부채도 없었다. 매년 여름은 더더욱 더워졌다. 그는 늘 스스로와 싸움을 했고 늘 이겼다. 아직은 초여름이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이 방 안에 통째로 갇혀 열병을 앓을지도 모르겠다. 나가지 못한 열이 내게로 들러붙은 채로 겨울을, 아니면 나는 모르는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 
여름이 왔다. 공기가 눅눅하게 무거워지고 더는 시원한 바람을 맞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눅눅한 열에 갇히다 보면 어느 순간 여름이라 한다. 나도 전엔 사계절을 모두 알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엔 가을 겨울이 되면 여름의 생기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선명한 색상으로 파란 하늘에 맴맴 울리는 소리를 그리워했다. 이제서 아무 의미 없는 그리움을 떠올리는 건 더위를 먹어서일까. 여름은 생각만큼 파랗지 않다. 눈오기 직전 구름 낀 하늘보다 더 흐리고 잿빛이다. 땀이 차 들러붙기 시작한 겉옷을 벗었다. 흰 양말은 여전히 짝짝이었지만 어째 벗을 생각을 않는다.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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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

단 한번의 실수만으로도 저 아래로 추락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능선과도 같은 길을 끊임없이 걸어왔다. 숨막히고 죽을것만 같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는가. 그런 회의감이 들어 그만 뛰어내리고 싶을 때, 그때 나를 잡아준 것은 친구도, 가족도 아닌 별이었다. 그냥 저 위에서 찬란하고 비추고 있는 별을보며 조금 더 해봐야 겠구나. 아직 끝을 보기에는 이를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다짐해오곤 했다.
참 재미있는것이 꿈이란 녀석과 저 별은 상당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득하고 손에 닿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없을만큼 저 멀리 있었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나는 몇번의 고비를 넘겨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마 셀 수 조차 없을것이다. 
내게 꿈이란 그런것이었다. 감히 내가 담아선 안되지만 그래도 숨쉬기 위해 필요한 도피처. 적어도 꿈을 꾸고 터무니 없고, 현실감은 없지만 1년뒤엔 이런것도 해야지. 내년엔 이렇게 해야겠다. 하며 계획을 세우는 동안엔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긴 이후에는 난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곤 했다.
효과 잘듣는 진통제. 현실에 지쳐 열병이 났을때 열을 내려주는 해열제. 그게 내겐 별과 꿈이었다.
사진을 찍고싶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단지 그 꿈을 꾼다는 것이 그렇게 큰 사치였을까.
어느순간부터 꿈을 입에 담는 것 조차 사치부리기 위한 핑계로, 투정으로 들린다며 지금은 해야 할 일에나 집중하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 버티고 있는가. 그런 회의감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밀려들어왔다.
지금 이것을 쓰는 이 순간조차도 말이다.
장녀, 첫째라는 자리는 내가 원한 자리가 아니었다. 내게 어울리는 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아직도 너무 어리고, 나약한것을 내 스스로가 더욱 잘 알고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런 일들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해야할 것 만큼이나 하고싶은것도 많았던 그 시간은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결국 지금 내게 남은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의 무게 뿐이었다.
왜 나는 가장도 아니고, 누군가의 부모도 아닌데 가정을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아주 기본적인 의문조차 불경시되었다. 너는 첫째가 되어서, 너는 누나가 되어서. 그동안 네가 지원받은걸 생각해봐. 따위의 말 밖에 돌아올 수 없음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그런 생각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 혹여 든다고 해도 입밖으로 내지 않으려 스스로의 입을 닫고 생각을 돌리곤 한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느냐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나도 살 수 있고, 못난 딸으로나마 남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왜 내가 그래야 하느냐 한다면 나는 가족도 없는 독한 계집 그것으로 남을 뿐일테니 말이다. 
한때는 요리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준비하던 그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저 그냥 그렇게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아, 그래도 내게 이정도는 투자해주시는구나. 못낫다 못낫다 하면서도 그래도 가족이니까 해주시는구나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 내 행복은 단  3개월만에 산산히 부숴지고 끝이 났지만.
아직도 엄마는 니가 의지박약이라 그래. 진득하게 하지도 못할거 왜 한다고 해서 돈이나 축내고. 하고 나를 원망하지만 내 귀엔 아직도 시험끝나고 엄마와 한 통화가 귀에 맴돈다.
시험 일주일전부터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어떻게든 더 익히려 연습해온 내 모습을 보고도 당신은 그런소리를 하고 싶었던걸까.
그냥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는것이 싫은건 아니었던건 아닐까? 그래도 내가 당신 자식인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려 애써도 어린 내게 그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니가 그럼 그렇지 뭐. 열심히 할 생각도 없으면서, 공부하기 싫으니 하겠다고 한거면서 뭘. 이제 그만하자'
그때 당시엔 당신이 참 원망스럽고,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잇는 당신의 첫마디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쓰렸다. 당신은 아는가, 아직도 나는 조금만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으면 니가 그럼 그렇지 뭐 하는 한숨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것을. 사실 지금도 원망스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다. 다만 원망의 대상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것은 스스로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돈' 그놈의 돈.
그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 그게 뭐라고 나는 지금까지 퀘퀘묵은 일들을 꺼내가며 눈물흘려야 할까. 그게 뭔데 나는 나를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가. 당신이 그랬어야만 했던 이유를 난 차라리 학원비에 돌리기로 했다. 빠듯한 형편에 돌리면 그래도 나는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당신을 조금이나마 덜 원망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난 가족이라는 끈을 붙잡고 살아야 했기에.
사실 지금도 별 다를건 없을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여전히 나는 꿈을 꿀 것이고, 소소한 희망을 가지고 살 것이다. 다만, 여전히 끊임없이 가정형편이라는 벽앞에 내려 놓아야 할 것이고, 돈이라는 놈 앞에 던져야 할 것이다.
꿈을 꾸는데 자격이 뭐가 필요하냐. 하는 말에 차마 동의할 수 없는것은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일것이다. 
살면서 나는 단 한번도 마음놓고 꿈을 꿔선 안된다는것을 알게 되었기에.
로또 1등같은 꿈은 단돈 5천원이나마 그것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꿀 수 있는 꿈이다.
그럴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내가 꿀 수 있는 꿈은 단 하나 뿐일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꿈이길. 이 지옥같은 꿈에서 깨어나 아늑한 내 침대에서 눈뜨길. 
자는동안 다 불타 사라지길.
내일 또 꿈을 꾸고 내일 또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죽고싶다고 말하며 살기위해 살 방도를 찾아 헤멜것이고,
돈이 싫다고 말하며 돈을 벌기위해, 또 그 돈을 쓰기위해 이곳 저곳을 헤멜것이다.
단지 그냥 그렇게 늘 비슷하게 돌아갈 뿐일테지만, 적어도 내일은 조금 더 후련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눈을 감을 수 있을것같다.
내가 누군지, 읽을 당신이 누구일지 서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오늘 여기에 내 가장 아픈구석을 내려놓고 가니, 당분간은 조금 더 나은 하루들로 지속되길, 그렇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