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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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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지않지만

결국엔 잊혀질,

초등학교 첫 짝궁의 얼굴 같은 것들.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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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

 어느 아이가 있었다.
 미술 시간에 사과를 그렸다. 제 나름대로 빨갛고 반짝 빛나게 색칠했다. 아이는 만족스러웠다. 선생님께 칭찬 받고 싶었다.
 미술시간이 끝나고 모든 그림을 뒤에 걸었다.선생님은 아이들의 작품을 보며 칭찬을 하셨다. 아이의 작품 차례가 되자 아이는 기대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사과를 보며 칭찬대신 붓을 들었다. 반짝거리는 아이의 그림에 노란 물감으로 칠했다. 선생님은 자랑스러워 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그림이 더 예쁘지 않냐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을 칭찬했다. 하지만 아이는 실망하였다. 애쓴 자신의 그림에 먹칠이 된 것 같았다.
 아이는 자신의 일기에 적었다. 솔직히 써도 비밀을 지켜줄 친구인 일기에게. 선생님이 한 그림이 더 별로였다고. 나만 칭찬받지 못해 슬펐다고.
 다음날 선생님께서 아이를 잠깐 부르셨다. 아이는 선생님을 따라 복도에 섰다. 선생님의 손에는 아이의 일기장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혼냈다.
"다른 사람이 이 일기장을 보면 선생님이 널 혼낸 줄 알겠다. 선생님은 네 그림의 부족한 점을 고쳐준 거잖아."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화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그림에 덧칠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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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

수많은 오래된 이야기들의 시작은 끝은 
바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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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늙은 아버지의 주름

나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의 부모의 얼굴과 주름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전라도 촌놈이시다. 초등학교 6년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이상 학교는 못다니셨고, 여동생만 4명을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같이 돌보고 결혼까지 시키셨다. 
아버지는 전라도에서 논농사만 지으면 본인 새끼들이 평생 고생만 하고 살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시골의 조그만 밭을 팔아서 그돈으로 서울에 구멍가게를 차리셨다. 나의 돌사진을 보면 그당시 구멍가게가 보인다. 장사가 너무 안돼서 애들은 먹여살려야해서 건설 일용직을 시작했다.
 여름에 땀은 비오듯 하고, 일은 했는데 남는게 별로없는게 겨울은 놀아야하고 비 많이 오면 일이 없었고 일을 했는데 돈 못받은것도 수차례여서 내자식은 이런꼴 안보게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없는 살림에 아들놈 교육에 공을 들이셨다.
그리고 무식하면 당한다고 공부열심히 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이제는 내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아이들 2명을 양육한다.
나의 늙은 아버지의 주름과 손의 상처를 보면서 가끔 내자식을 위해 나는 그렇게 할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순간순간 마다 아버지의 주름을 본다. 아버지도 나에게 말은 안하고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해오셨구나를 느낄때마다, 나에게 잔소리를 해주시는 늙은 아버지가 계심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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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무걱정 없이
아무생각 없이
친구들과 뛰놀고
해맑게 웃으며
그저 매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그저 순수한 모습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제는 책장 속
졸업앨범으로 남아버린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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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혁신 초등학교

알았다면 1학년때부터 보냈을텐데~
쉬는시간이 30분에 시험도 없고 반장도 없고
블럭이 수업이고 미술도 두시간식 주어지는
아이들에겐 천국 같은 그런 초등학교가 있다니..
물론 알아보면 부풀려진것도 있을테고
그학교도 불만있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일단은 일반학교 보다는 애가 바보는 안될거 같다
나는 우리 아들을 위해
기꺼이 전학도 시키고 이사도 할거다
내가 할수 있을지 나도 의문이지만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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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초등학교때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보는거였는데
중학교때라도 공부 안하고 놀아야했던건데
고1때라도 공부안하고 좀 더 노는건데
시간이 더 있었을때 너에게 사랑한다고 조금이라도 더 말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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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비가 오는 날이 좋아던게
언제 였을까?
초등학교 때 우산쓰고 빗속에서 
놀아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건
당시는 순진해서 였을까
빗소리가 들리면 술 한잔에 파전이
생각나는 건 
그만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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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걷는거는 아기시절 수능시험처럼 중요한 문제 일것이다. 두발로 뒤뚱뒤뚱 걸었을때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기분과 비슷할것 이다.  그리고
무사히 유치원 과 초등학교를 두발로 다니는것은 무척이나 기쁠것이다. 친구들을 사귀고 뛰놀며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두발로 걷는거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어느 누가 걷는걸 부러워 할까...
어느 누가 걷는걸 행복이라 생각할까...
수능시험에 떨어진 아기도 있겠지......
작은것도 소중히 여기며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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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난 멀미가 좀 있어서 버스보다 지하철이 좋다.
초등학교때는 멀미가 진짜 심했고 중학교 다니면서 어쩐일인지 없어졌었는데 몇년전부터 다시 고통받고있다. 흔한 농담처럼 달팽이관에 살이 쪄서 그런걸까...
노화겠지.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씀 한 번 안하시는 울 아버지도 몇년전부터 멀미때문에 힘들다 말씀하시는 것도 연세때문이겠지.
좀 슬프네.
효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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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첫사랑

:안녕 내 첫사랑:이란 주제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나의 첫사랑은 초등학교가 끝날무렵 생겨났다
그냥 그저그런 초등학생의사랑이였다
우리는 친구였고 같은학원을 다녔지만
이제는 동창으로 만나 술자리를 간다
그때의 우리는 어른들이 말하던 그저그런 초등학생의 사랑도 나누지못하고 갈라졌다

졸업했고 그후 학교가 갈라졌고 더지나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찾지않고
다른사람을 사랑하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난 언제나 마음속 한구석에 그아이가 들어올수있는공간을 습관처럼 그아이의 방을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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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역시 나는 포기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님 노력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나는 원래 관심없는건 관심을 가지지못한다.
내가 어린이집때부터 쭉 그랬다
나는 그게 큰 일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중학교 다녀보니 깨달았다.
무관심과 무지는 죄

차라리 어릴적부터 버릇을 고쳐야 했더라면...
하지만 이젠 더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몸에 이름을 쓴다해도 씻으면 사라질거...차라리 포기하기로 했다...
역시 포기는 편하고...후회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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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독립성은 성격과 관련없이 자라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길러지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어른들에게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을 들어오며 컸다. 그런데 그 독립성이 과연 내 성격 때문일까? 아니다. 3살 때부터 집에 혼자 남겨져 컸던 것이 시작이었다. 3살짜리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냐. 하루종일 컴퓨터를 하면서 일찍 한글을 떼게 되었는데 그것이 부모님께 내 머리가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성격이 갑자기 바뀌어 사춘기냐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친구도 없고 따돌림이나 당하는데 성격이 안 변할 수가 있겠나? 4학년 때까지 쭉 따돌림을 당했는데 지금 보면 그 나이에 그걸 혼자 버틴 것이 참 놀랍다. 너무 괴로워 도움 요청을 했는데 그건 따돌림이 아니라 장난이라고 치부하고 넘긴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자라다보니 아빠한테 "넌 4학년 때 이미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지 않냐" 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확실히 내 동생들은 별 힘든 일 없이 사랑도 잘 받으며 컸다. 학교와 집에서 맞지도 않고 동생이라 그런지 하는 짓이 어려도 오냐오냐 하면서 키워서 저 나이 때의 나와 비교를 하면 참 철이 없다고 느껴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네가 애냐" 는 소리를 들었던 나에 비하면 너무 과대보호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학년짜리가 물 떠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걸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맞고 욕 먹으며 크는건 물론 잘못된 것이지만 너무 철이 안 들어서 걱정이다. 
독립성은 성격마다 다르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감정소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