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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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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지않지만

결국엔 잊혀질,

초등학교 첫 짝궁의 얼굴 같은 것들. 

어디서 왔지?
[["synd.kr", 3], ["unknown", 7]]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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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

수많은 오래된 이야기들의 시작은 끝은 
바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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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난 멀미가 좀 있어서 버스보다 지하철이 좋다.
초등학교때는 멀미가 진짜 심했고 중학교 다니면서 어쩐일인지 없어졌었는데 몇년전부터 다시 고통받고있다. 흔한 농담처럼 달팽이관에 살이 쪄서 그런걸까...
노화겠지.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씀 한 번 안하시는 울 아버지도 몇년전부터 멀미때문에 힘들다 말씀하시는 것도 연세때문이겠지.
좀 슬프네.
효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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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첫사랑

:안녕 내 첫사랑:이란 주제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나의 첫사랑은 초등학교가 끝날무렵 생겨났다
그냥 그저그런 초등학생의사랑이였다
우리는 친구였고 같은학원을 다녔지만
이제는 동창으로 만나 술자리를 간다
그때의 우리는 어른들이 말하던 그저그런 초등학생의 사랑도 나누지못하고 갈라졌다

졸업했고 그후 학교가 갈라졌고 더지나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찾지않고
다른사람을 사랑하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난 언제나 마음속 한구석에 그아이가 들어올수있는공간을 습관처럼 그아이의 방을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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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초등학교

알았다면 1학년때부터 보냈을텐데~
쉬는시간이 30분에 시험도 없고 반장도 없고
블럭이 수업이고 미술도 두시간식 주어지는
아이들에겐 천국 같은 그런 초등학교가 있다니..
물론 알아보면 부풀려진것도 있을테고
그학교도 불만있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일단은 일반학교 보다는 애가 바보는 안될거 같다
나는 우리 아들을 위해
기꺼이 전학도 시키고 이사도 할거다
내가 할수 있을지 나도 의문이지만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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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초등학교때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보는거였는데
중학교때라도 공부 안하고 놀아야했던건데
고1때라도 공부안하고 좀 더 노는건데
시간이 더 있었을때 너에게 사랑한다고 조금이라도 더 말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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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걷는거는 아기시절 수능시험처럼 중요한 문제 일것이다. 두발로 뒤뚱뒤뚱 걸었을때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기분과 비슷할것 이다.  그리고
무사히 유치원 과 초등학교를 두발로 다니는것은 무척이나 기쁠것이다. 친구들을 사귀고 뛰놀며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두발로 걷는거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어느 누가 걷는걸 부러워 할까...
어느 누가 걷는걸 행복이라 생각할까...
수능시험에 떨어진 아기도 있겠지......
작은것도 소중히 여기며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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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능, 
아직 나에게는 멀고 멀기만 한 것 같지만
따지고보면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난 고1이다 아직 파릇파릇해야할 17세에
학교에 박혀서 밤 10시까지 야자하고
심지어는 기숙사라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눈뜨면 다시 어제와 똑같은 하루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런 고등학교 생활들의 마침표
수능이다
초등학교 땐 내가 수능을 볼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중학교 때까지도 수능은 너무나도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수능은 더이상 먼 세상의 이야기도, 생각조차 못할 미래도 아니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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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국민(초등)학교 시절, 흰색 16절지 성적표를 받으면 秀, 優, 美, 良, 可 부터 따져 보았죠.
秀를 받으면 기분이 아주 좋았고 優, 美는 보통  良, 可엔 울상이었던 철부지 그 시절이 있었죠.
그러나 나잇살이나 먹은(?) 지금 새삼 옥편을 뒤적여보니..
秀는 빼어남. 
優는 넉넉함. 
美는 아름다움. 
良은 어짊.
可는 옳음이 아닌가? 
어느 한 글자 나쁜 뜻이 아닌데.. 왜 나는 빼어남과 넉넉함만을 좋아하고 어짊과 올바름을 그토록  싫어했을까? 
잘 나고 돈 많은 것만 좋고 착하고 올바른 것은 
나쁘단 말인가?
다섯 글자는 나름대로 다 좋다는 걸 그때 왜 몰랐을까?
흰 머리가 듬성 듬성해진 지금!! 그 성적표의  의미를 조금 알 듯도 하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시절 성적표 처럼
'수우미양가'(秀, 優, 美, 良, 可) 부터 따져 보고있지는 않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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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공식

수학 공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의 둘레와 넓이에서부터 삼각함수 공식 등등.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교 4학년 때 쯤부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충 분수의 곱셈과 나눗셈을 배울 때 쯤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소금물과 운동장 달리기 문제에서 충격을 받고, 학년이 올라 곱셈공식과 근의 공식이 나올 무렵 수학과 작별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한 과정을 충실히 따라갔다. 그 결과 수학을 좋아 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운동을 싫어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수학의 정석은 집합까지 보거나, 잘해봐야 곱셈공식까지였다. 그렇게 내 인생에 수학과 친해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수학강사로 첫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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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앉아 공책에 양면에 죽고싶다. 자살하고 싶다. 같은 말들을 잔뜩 써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나는 건 상황밖에 없다. 나는 숨기듯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나만 볼 수있게 한거 같은데. 지나가던 아이가 그걸 보고만 것 이었다. 화들짝 놀라 모른 척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무슨 기분으로 그런걸 적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몇년이 지나 내 과거에 대한 평을 보면 다사다난하지만 초등학생때 그렇게 불행했었나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잊혀진 걸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하지만 중학교때는 확실히 기억한다. 그때는 진심으로 죽고싶어했다. 근 1년정도를 반에서 왕따 비슷한걸 당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었다. 그때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불행했다고. 
하지만 책상에 웅크리고 공책에 다 보이게 끄적이지 않았다. 아무도 날 볼 수 없게. 집에 가서만 그런 일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친구를 사귀어도 여전히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우울증에 시달려 그렇게 유쾌한 생활을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함부로 남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은 죽고싶다 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생각하지말라고 과민반응을 보인다. 보통. 상식적으로 살아왔던 내 세상은 그랬다.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의 기숙사 학교로 갔다. 
아직 익숙하지 않는 아이들은 친해지자 반에서 대놓고 심심하면 자살하고 싶다~ 인생 탈주해야지 등의 말을 쉽게 쉽게 했다. 
 죽고싶다는 말은 절대 찍소리 안하고 살아왔던 난 그런 환경이 당황스러웠지만 눈물나게 편안했다. 
어쩌면. 나는 죽고싶다는 말을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곳을 원했던 거 같다. 억지로 호들갑떨며 관심쓰지 않아도 좋으니. 아무도. 내가 죽고싶다는 말을 해도 신경쓰지 않았으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길 바랬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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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지금의 나에게 '마무리' 라는 단어는,
길거리의 로또판매점에서 가진 현금을 다 털어
있는 숫자 없는 숫자 다 짜내어 번호를 적어 내도 
3등 근처나 갈까 말까한...!!
그런 확률만큼이나 저 멀리에 있다.
대체 육아의, 그 여정의 마무리는 언제쯤일까.
어린이집 졸업?
유치원 입학?
초등학교 졸업?
매일같이 일단 등짝을 바닥에 붙이고 장단 맞추어
울어나 보자 하는 26개월 딸과
야호 이제 기어다닌다 모든 것을 부수자 하는
8개월 아들은
마치 내게 이제 시작이다 하는 것 같은 공포심을 
열심히 뿌려주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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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가장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 기억부터 시작해보자. 유치원이었다. 크리스마스였고 나는 산타가 선생님이 분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다음, 아직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가족과 마트에 갔었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하나 고르라고 했었다. 인형 세트를 골랐던 것 같다. 부모님께 들켜 결국 갖지도 못한채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 날부터 원하는 것을 쉽게 말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였던가 중학교 시절, 늘 그렇듯 부모님이 크게 싸운 뒤였다. 엄마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다 같이 뛰어내려 죽자고 했다. 동생은 말렸지만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뛰지도 못할가면서. 4층에서 뛴다고 죽나. 하고 생각하면서. 뛰지도 못할거라는 생각은 맞았고 4층에서 뛴다고 죽지 않는다는 생각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