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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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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위해 대전에 갔던 아내가 왔다

오자마자 부랴부랴 마트를 간다고

호들갑을떨며 따라 나오란다..

감자도 넣고 당근도 넣고

닭도 넣고....

하나 둘 장바구니가 채워질때쯤

우두커니 소고기 앞에서 서있다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돌아온다

가격이 부담이 되는거겠지...

남편이 백수니....

오늘 또 가슴으로 울었다

내 생일이라며 오자마자 닭볶음탕을 해줬다

참 맛있는 요리네...

마트서 집에 오는길에 소고기구이 가게안에서

먹는 사람들을 또 물끄러미 처다본다..


하하......


식사후 입에 문 담배 한대가

입가에 씁쓸함을 남긴다...



어디서 왔지?
[["synd.kr", 31], ["unknown", 361]]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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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묻은 한숨 손으로 얼른 닦고

보리사 마애불 가사자락에 쓰윽 문질러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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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자더라

 새벽날 꼬박 새며 일을 하다가
 내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있는 
너를 보았다.
고르랑고르랑 나른한게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너는 잘도 자고 있더라.
무슨 꿈을 꾸는지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띄우곤
새초롬한 눈을 질끈, 감고 
잘도 자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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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얼마나 오래 걸리게 될까요
닿기는 할까요
나는 잠들지 못하는 시체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눈감지 못해요
감히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곳에 내가 있는 꿈을 꿔요
마음 편히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대를 봐요
저 멀리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며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웃고 있어요
이 순간 이대로 모든것이 꿈만 같아요
꿈만 같아요...
내게 날개를 달아줘요
되돌아가고 싶어요
그대가 있을 그 곳,
멀지 않을 그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입가 끝으로 잔잔히 웃음이 퍼져요
거기 있어줄래요..?
곧 만날 수 있을거에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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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시는군요, 사랑 이야기

일종의 냉소.

일종의 경멸.
일종의 혐오.
남자는 그런 어조로 말했다. 몰이해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남자는 사랑이 지긋지긋하다 말한다.
사랑의 열병을 자주 겪어서도, 애정을 넘치도록 받아봐서도 아니었다.
온 세상에 넘쳐나는 사랑놀음들에 질린것뿐이었다.
흔하디 흔한 사랑고백과 미적지근한 진심들과 클리셰 범벅의 창작물들. 사랑할것이고 사랑하고 사랑했다는 선언들. 그 멍청한 꼴들을 보고있노라면 정신적인 멀미가 느껴진다고 남자가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상상한다.
그 속에서 남자는 사랑의 허리케인과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폭풍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 모두 엿이나 먹으라고.
그를 조롱한다는 뜻이 아니다. 동정하고 싶지도 않다. 사랑을 배척하는 그가 두려운것도 아니다. 사랑을 폄훼하는 그에게 화가 난것도 아니다. 그건 너무 주제 넘는짓이다.
세상일 이라는 것이 꼭 경험 해봐야 알수있는것도 아니니까.
남자는 칼처럼 삐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단정하게 다듬은 손톱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너무 많지않습니까. 너무 과하고."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풀 뜯는 양떼도 초지에 흙이 드러나면 자리를 옮깁니다. 짐승도 아는것을 사람은 왜 알지 못할까요."
정통 로맨스와 러브스토리 광신도인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이 남자는 마뜩찮아 할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는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로미오 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희믓하게 웃고. 나는 조금 생각을 해보다가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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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1)

그 이야기는 그저 어느 노파의 옛 이야기였다.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기위해 .. 지어낸듯한 이야기.
하지만,  그런 이야기 치고는 노파의 얼굴이 매우 굳어 있었기에 자꾸만, 불안해져 갔다...
이렇게 불안한 이야기를 들어버린 계기는어제의 일 이었다. 평소에도 괴담과 미신, 소문의 실제 장소에 가서 조사하는건 내 취미였기에, 그 마을에 안갈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 마을에 간다는 소식을 듣자, 평소에 나를 이해해주시던 마을의 어르신께서는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열으셨다 .
"청년, 실질로 그, 마을에 가야하는겨...? 내가 청년의 그 호기심 하나는, 이마을 자랑이라 생각한다만.. 그기는 안된댜... 절대로 안된댜..... 내는 딴건 아니구,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청년이 어찌 될런강...하구, 겁이들어 이러는건디.. 이 늙은이 봐서라두, 가지 말어..."
그때,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을에 남아야 했을까? 지금 돌이켜 봐도 상관없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르신의 말씀에 웃음으로 답하며 그 마을까지 가버렸다.
가서는 어려워도, 가기는 쉽다 하는 말이 있듯이 나는 어느세 마을에 도착했고, 마을주민에게 물어보니, 괴담의 주인공....
'이야기가 모두 이루어 지는 노파'를 만날수 있었다. 노란 저고리가 어울리지 않는  거무잡잡한 피부의 노파는 세하얀 머리를 비녀로 잔머리 하나없이 올린체
주름진 입가를 우물거리며, 눈을 질근 감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 노파의 앞에는 종이 한장이 덜렁 놓여져 있었는데 잘 보니 '주의 사항'이라 적혀있었다.
「주의사항

1.노파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는 이루어 집니다.
2.노파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양과 소년입니다.
3.당신은 양과 소년 둘중 하나의 역할을 맡게됩니다.
4.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상대편,  즉 내가 맡지않은 역할이 누군지 알수 없습니다.
5.게다가 만약, 당신이 ■■■■■■않을시■■■■■■■■■■■■■■■■■■■■■■■■■■■■■■■■■」
5번을 알아볼수없었으나 거이 중요한 정보는 다 나왔다고 생각해 아무 생각없이 나는 노파에게 말을 걸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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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나는 왜 나인가,나는 어째서 살아있을까. 모든것은 이유가있다고들 입을모은다.하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의미가없다.눈을떠야만하고,숨을 내뱉어야만한다. 존재의 이유가없음에도 나는,우리는,모두는 존재한다.그렇게 느낀순간마다 눈앞은 빨갛거나,파랗거나 대체로 채도가 높은 색들이 마구 그앞을 얼룩져놓는다. 그리고 그 틈새로는 내가 죽어간다.
목을 달아 죽은경우,차에치인 경우,불치병에 걸린경우..,그 속을파면 나는 길을 잃은 미아가 된다. 길을 잃은 이는 애처롭게,구슬프게,서럽게 운다.엉.엉.엉. 눈가가 짓물러 아파옴에도 흐느낌은 멈추지못한다. 
내가 존재함에 의미가있는가?
그 누구도 길을잃은 아이에게 길을 알려주지않았다. 길을걷는이들은 그저,아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작게 따끔거리는 동정의 말을 뱉는다.모두들 길을걷고 모두들 미아가된다.길거리는 바쁘게 달리는사람,이제 막 걷기시작한듯한 사람,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있는 사람,이제 목적지에 거의 온듯한 사람이 있다. 모두들 의미를 모르지만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뱉지는 않았다.
결국,서럽게 울다지친 아이는 길을찾지 못하고 헤메이다가 낭떠러지로 데굴,데굴..굴러 떨어져버렸다. 사람들의 입가에서 슬픔이 조금 흘러나왔다. 그치만 모두들 다시걸었다. 모두들 미아를 잊었다.모두가 미아가 왜 죽었는지 생각하지않고 그저 걷고,또 걸었다. 그리고 길거리에 미아는 또 생겨나고 미아는 길을잃고 울다,헤메이고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데굴.데굴.데굴.
구르고나서야 미아는 제 길을 찾았다.그건 딱 발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렸을때다. 미아는 너무울어 붙은 목을 부여잡고 도와달라 소리친다.하지만 그 작은소리는 사람들의 걸음소리에 오늘도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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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예뻐지고 싶다.
과거나 현재나 진득하게 내 마음 바닥에 들러붙은 욕망이다. 예쁘고 못생기고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다. 내가 웃는 것 만으로도, 껴안는 것 만으로도 이뻐해주는 부모님이 계시니.
사실 나는 못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외모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넌 왜 이렇게 다리가 굵어? 보통 남자 다리가 너보다 얇겠다.' 정말 지독히 단순하고 어떤 의미도 없는 한 마디에 상처 받아버렸다. 또래보다 마른편인데도 불구하고 체질상 이상하게 다리만 굵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처음으로 외모에 대해 인지하고,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바보같게도.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다른사람의 몸과 내 몸을 비교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보기 싫어졌다. 내 사진을 보며 놀리는 남자애들의 말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튀어나온 앞니들을 감추려 일부로 손으로 입을 가려 웃고 되도록이면 웃지를 않았다. 좋지 않은 시력으로 안경은 두툼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 생각없이 하나로 묶어 다니던 머리는 나를 '꾸밀줄 모르는 여자답지 못하는 여자애'라 부르더라. 하얀 아이들과 대조되게 내 피부는 언제나 짙은 갈색이었고, 미소 따위 없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아이가 되었다. 반에서 남자아이들과 농담하고 잘 노는 예쁜 아이들을 보며 부러웠다. 나에게는 그저 외모에 대한 트라우마만 주었던 아이들이 그렇게나 사근사근해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예뻐지고 싶었다. 치아 교정이 끝나고 거울 앞에 서서 어색하게 웃어본다. 거의 8년 만에 뻣뻣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너무 못생겨 보여서 다시 입가를 내렸다. 교정이 끝나면 많은게 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그대로였다. 입술이 빨갛면 나을까? 틴트를 발라본다. 그러다 입술만 벌건, 제게 맞지 않는 걸 입은 거 같아 문질러 지워버렸다. 예쁜 원피스를 입어본다. 삐적 마르고 다리만 퉁퉁한 내 모습이 꼴보기도 싫어 다시 벗어던졌다. 화장을 해보아도 어째서 거울 속 내 모습은 그리도 못생긴지... 그냥, 어디를 걸어가든 분명 존재하지 않을, 아니면 진짜 있을지도 모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내 머릿속이 만들어 낸건지, 아니면 환상으로 치부하고 싶은 현실인지. '넌 못생겼어. 안 어울려.'
한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훨 통통하고 덜 예쁘지만 밝은 아이. 난 겁나서 입지도 못할 하늘하늘한 원피스, 짙은 화장, 환한 미소. 그제서야 깨달았다. 정말 어여쁘다고. 다른 사람 눈에는 몰라도 그 맑은 기운이 내게는 참으로 어여뻤다. 조금씩 그 아이를 따라해본다.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고, 새벽에 수십번 입었다 벗었다 망설였지만 치마도 입어보고, 용기 내어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틴트와 비비를 사온다. 같이 찍자며 들이미는 카메라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본다.
거울 속을 봐도 난 여전히 달라진게 없다. 난 못생겼다. 예뻐지고 싶다.
움추리고 싶지 않다. 있는지도 불명확한, 나에게 전혀 상관없는 시선들을 신경쓰다 이쁜 옷 하나 못 입고, 립스틱 하나 발라보지 못했던 과거가 너무 바보같다.
예뻐지고 싶다.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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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당신은 만날때마다 검정이네요."
내 말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늘어진 머리칼과 검정색 셔츠, 검정색 가디건과 검정색 면바지의 남자는 한쪽손에 벗어든 검정색 신발을 쥐고 있었다.
남자의 하얀 발 아래로 파도가 넘실거리는것이 보였다.
"안 추워요?"
허리까지 물에 잠긴 내가 할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묻고 싶었다. 나는 얼음장같은 바닷물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서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다. 나는 깊게 숨쉬려 노력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냉기에 제대로 움직일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 모든일에 자신은 관계없다는듯이, 너무나 태연하게.
"안 추,워요?"
떨리는 턱에 힘을 주며 다시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내 입가가 희미하게 미소짓는것이 느껴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가 대답해주는건.
이 남자가 대체 무슨 변덕을 부리고 있는 것 일까.
"추운데, 왜 여기있어요?"
울고있던 내 얼굴로 남자가 시선을 던졌다.
"나 때문에요?"
남자는 침묵했다.
"날 보러온거에요?"
재차묻자 긍정하듯 남자가 얕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요? 내가 어떻게 뒈지나 보고, 보고싶어서, 왔어요?"
나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두팔로 내 몸을 힘껏 껴안았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추워서 참을수가 없었다. 두 손과 두 팔이 가슴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도록 나는 품에 나를 묻었다.
"네깟게 어디까지 버티나, 얼마나 괴로워 해야. 고통받아야, 제손으로 목숨을 끊을까, 궁리하다가. 이제, 죽을테니까. 어떻게 죽나, 궁금해서 찼아왔어요? 부모도 죽고, 형제도 죽고, 친척도 죽고, 친구도 죽고, 가진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자살하나,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찼아온거에요?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요?"
나는 정신나간 여자처럼 중얼거리며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요, 궁금했어요. 왜 내곁에 누군가 죽을때마다 당신이 나타나는지 궁금했어요. 당신은 저승사자에요? 천사같은거에요?"
남자의 하얀발은 미동도없이 그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고해성사 하듯 고개를 숙이고 그 발을 바라봤다.
"이런게, 저승사자면 천사면.
지옥에 떨어져도 필요없어요, 나는."
부모님이 눈앞에서 돌아가시던 8살때부터 내앞에 나타난 남자는 한번도 내 물음에 입을 열어 대답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묻고야 말았다.
"왜, 나한테 죽어버리라고 말 안해요? 왜 계속 날 구해줘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거기 있는건 서리 내린 들판처럼 차고 시린 눈이었다.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남자는 짙은 눈으로 날 내려다 봤다.
"그래야."
대답없던 자가 마침내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나는 숨쉬는것마저 잊고 홀린듯 그 입술을 바라봤다.
몸을 굽힌 남자가 바다속에서 내몸을 끌어올렸다. 출렁이는 파도가 떠나지 말라며 내 젖은 옷깃을 끌어당겼다.
차가운 귓가로 남자가 속삭였다. 나는 겁에 질려서, 안도감에, 예상했던 대답에. 무력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야말았다.
남자가 말했다.
"그래야. 고통이 계속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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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죄를 고백하는 것은 쉬웠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내 입을 막고 있었던 것은 가볍고 얄팍한 윤리 의식뿐이었으니까. 도덕책에서 배워 누구나 알고는 있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경계고 벽이었으나, 나에게는 축축하게 젖어 언제든 찢어버릴 수 있는 종이에 불과했던. 그런 물기 고인 의식들.
 “…가출하고 소식이 끊겼던 Y, 이 년 전 실종된 A, 작년 봄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H.”
 아득할 만큼 멀었던 과거에서부터 시작했던 고백은 어느새 현재에 가까워져 있었다. 새파란 얼굴을 하고 부들부들 떨던 P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겁에 질린 개처럼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의 팔을 잡아채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아직이야. 아직 남았어.”
 “이… 이거 놔.”
 “작년 뉴스 일 면에 실렸던 연쇄 토막 살인 사건.”
 “놓으라고…!”
 P는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비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까부터 점차 퍼지던 미소는 어느새 완전한 웃음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목젖 아래서부터 끓어 넘쳤다.
 언제나 열망했다. 내 죄를 고백하는 나를 상상했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팔을 붙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죽였다고. 내가 한 짓이라고.
 “쓰레기…, 쓰레기 같은 새끼! 네가 사람이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게 의아했다. 왜 울지. 아직 제일 중요한 건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작년에 준 화분 기억나?”
 “…뭐?”
 앞뒤 없이 튀어나온 이야기에 P가 좁혔던 미간을 올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속삭였다. 
 “J는.”
 단지 이름 하나. 그 한 명의 이름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멎었다. 몸부림치던 동작, 눈물, 목소리, 울음에 차 가늘게 떨리던 호흡마저. 마치 혼자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기억해?”
 크게 벌린 입가가 이내 일그러진다.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절망이었다. 그녀는 내가 바라던 대로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거든.”
 손을 놓자마자 P는 당장 거실로 내달렸다. 참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감정이 가슴 한가운데를 터뜨렸다. 붕 떠오르는 것들을 애써 가라앉히며 방을 빠져나오자 마침 제 무릎까지 오는 화분을 들고 선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쉽게 던지지 못한다. 두려우니까. 그러나 팔은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도기로 된 하얀 화분은 산산이 깨어졌다. 폭발하듯 흩어지는 산세비리아 사이로 흙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밖으로 굴러 나왔다. 꼭 사람 머리처럼 생긴.
 P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슴을 움켜쥔 채 곧 죽어버릴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다, 이내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터져 나오는 쾌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자는 여전히 오열하고 있었고, 나는 주방으로 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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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보물은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수만가지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집이 될수도 있고, 차가 될수도 있다.
재능이기도 하고, 지식이기도 하다. 또는 건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보물이 있다. 게다가 난 그 보물을 이미 곁에 두고 있다.
햇살이 이리도 따가운데도 지칠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딸.
또래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 노는 모습이 마치 토끼가 깡총깡총 춤을 추는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는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슬쩍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아이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40분이었다.
슬슬 소아과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아이와 함 께 병원에 가봐야 했다.
왠지 아이의 행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예약 시간에 제때 가지 못하면 진료시간만 더더욱 늦어질 것이었다. 아이도 병원에 있는걸 싫어하니 매도 일찍 맞는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에 갈 시간이다. 이제 그만 준비하자꾸나."
아이는 뜀박질을 멈추었다. 더 놀게 해달라며 눈으로 호소하듯이 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는 듯 순순히 내 말을 따라주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나게 웃고 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이가 느릿느릿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꺼냈다.
"이따 병원 갔다 와서 맛있는 초콜릿 사줄게."
"...몇 개?"
"음... 두 개?"
아이의 반응은 덤덤했다.
"좋아, 아빠가 인심 썼다. 세 개!"
아이는 하는 수 없나, 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만족스러워 했다.
"네? 정밀 검진이요?"
"예. 사진으로 보면 아이의 순환기 계통에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해보고 진단을 내려야겠습니다."
병원 대기실에 우두커니 선 채 의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
순환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 즉, 아이의 심장에 문제가 발견되었단 말인가?
"아, 일단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심장 쪽에 무언가 미세한 입자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세한 것은 검사를 더 진행해..."
믿을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매 환절기마다 골골거릴 때 같이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심장병이라니, 있을 수가 없다.
의사는 자기 얼굴을 보는지 허공을 보는지 모를 나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려 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이미 새하얘질 대로 새하얘져 있었다.
그저 방금 전 공원을 나서며 아이와 한 약속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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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맠] Moon Light 01

W. nabom

"아저씨,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나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거참."
 동혁과 민형이 처음 만난 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빨리 퇴근한 민형은 자신의 집 앞에 우산도 없이 궂은 비를 맞으며 서있는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된다.
 "어...저기 누구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민형은 그를 향해 물었다.
땅만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는 "이동혁." 이라는 짧은 대답을 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마 그 남자의 이름이 이동혁인듯했다.
"저, 그... 무슨 일로 저희 집에 찾아오신 거죠?"
"우와 아저씨 집이에요?", "아저씨 부자예요?" 
그 남자는 민형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민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27살인 저보고 아저씨라니' 민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 몇 살이야."
"저요? 18이요!"
"야 고등학생, 나 아저씨 아니야 인마. 그리고 너 이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뭐 하는거야.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저, 집 없어요. 그리고 부모도 없어요. 아저씨 제가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할 테니까 저랑 같이 살아요."
 민형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형은 자신이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혁의 옆을 지나쳐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팔을 들었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차갑지만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내가 왜 집이 없다고 했는지, 부모가 없다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저씨도 내가 싫은가요, 아니면 짐 같나요?..." 그 말을 끝으로 미세하게 들리던 목소리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민형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고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동혁의 앞에 멈춰 섰다. '그래 착한 일 한번 해보는 거야 이민형.'
"좋아, 네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졌어. 들어볼께. 일단 집에 들어가서 들어보자. 뭐 해 빨리 따라오지 않고." 동혁의 눈에서 빗방울보다 더 투명하고 반짝이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민형은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동혁의 쪽으로 기울여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곁눈질로 동혁을 살펴보던 민형은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비를 맞고 있었던 것인지 입술이 새파래진 동혁의 모습에 민형은 동혁의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고 서둘러 집안으로 향했다.
 "다녀왔어요 아주머니."
"다녀오셨어요 도련님. 어, 도련님 뒤에는 누구ㅅ..."
"아, 제가 나중에 설명드릴 테니 일단 욕조에 물 좀 받아주시고 식사 준비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빨리 준비할 테니 일단 이 수건으로 몸이라도 닦고 계세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무리 큰 우산이라 해도 남성 2명이 같이 쓰기에는 작은 크기였기에 민형도 비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밖에서 처음 마주했던 눈과는 또 다른 느낌의 눈에 민형은 무언가에 홀린 듯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입만 뻥긋거렸다.
"저기 아저씨?"
"아... 어, 이민형."
"아~ 이민형. 아저씨 잘 부탁해요"
동혁은 민형의 이름을 되뇌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형은 충동적으로 동혁을 끌어 안았다.
옷이 젖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하였다.
"내 가족이 된것을 축하한다. 이동혁."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많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이 아이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적적하기만 하던 자신의 집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은 동혁은 민형의 침대에 끄트머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피곤하면 누워서 자야지 왜 힘들게 앉아서 자고 있어."
"아저씨 허락도 없이 누울 수는 없죠. 제가 또 주인이 없는 침대에서 먼저 잘만큼 예의가 없는 사람은 또 아니라서."
"얼씨구?근데 고딩 다 좋은데 말이야. 그 아저씨라는 호칭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는거니."
"왜요? 완전 찰떡인데?"
"나 몇 살처럼 보이는데."
"솔직하게 외모는 25? 아까 그 정장 입은 모습은 한 29?"
"나 27인데. 너 방금 나 노안이라고 돌려 깐 거지." "에이~ 제가요? 설마요, 그런 적 없어요. 아저씨 그렇게 말하면 동혁이 똑땅해."
"......"
"뭐예요 그 표정. 오케이,  알겠어요. 애교 안 할 테니까 그 표정 어떻게 좀 해봐요."
"아, 고딩 아저씨 말고 민형이 형, 해봐."
"아저씨가 저보고 '동혁아.'라고 불러주면 저도 아저씨 보고 그렇게 불러줄게요."
"하하, 동혁아."
"에이, 그렇게 말고 좀 더 다정하게 한번 더!"
"...동혁아~"
"네 민형이 형~ 우리 피곤한데 일찍 잘까요?"
"결국 용건이 이거였구먼, 그래 자자. 저기가서 빨리 불끄고 와."
Behind
<저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겼습니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았지만 동혁이는 저의 가족입니다. 어쩌면 저와 평생 함께 해줄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후회하냐 물어본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입니다. 삭막하기만 하던 집에 따뜻한 온기가 퍼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밤은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요? 뭐 하면서?"
"널 기다리면서 살았지."
-도깨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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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上

1.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음악이 들리면 몸이 멋대로 춤을 추는 병이다. 웃지 마라. 이것은 아주 좆같은 일이다. 나는 가족, 이웃, 선생님, 같은 반 아이들, 그 외 길 가던 행인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자라왔다.
 이 병은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발병했다. 우리 애는 끼가 많군! 핫핫 웃었던 부모님의 입가에는 곧 어두운 주름이 졌다. 이 정체 모를 병은 수도꼭지처럼 물의를 쏟아냈고 두 분은 그로 인해 신음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돈에 관해서는 꽤 여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 돈도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세상 곳곳이 전쟁터였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음악에 나는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발병 이후 열다섯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의사와 목사와 신부와 무당과 그 외 민간의학 사이비를 만났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달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어린 시절 억압된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춤으로 나타나는 거죠. 하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악마가 들렸군요. 구마 의식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체온이 1도 높아지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몸에 자철석을 지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전부 실패했다. 헛된 희망에 끌려다니다 너절해진 나는 열여섯이 되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안 할래요.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해요. 나를 설득하려 했던 부모님은 되려 설득당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
 말도 안 되는 치료와 의식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자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은 부모님이 집에서 특히 공을 들인 곳으로, 방음벽과 차음벽을 몇 겹으로 둘러 바깥의 소리가 한 틈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시공했다. 나는 집에 오면 거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영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 무렵이다.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 이름 석 자를 다 붙여 윽박지르던 목소리들이, 거기에 담긴 기겁과 짜증이, 오랜 시간 밟혀 까맣게 굳고 더러워진 어감이 나를 짓눌렀다. 평범한 이름마저 염증이 되는 게 버거웠던 나는 자조하듯 새 이름을 지었다. 영고. 영원히 고통받는 김영고. 그리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영고야.”
 수업 종이 울릴 때마다 벌떡 일어나 탭댄스를 추는 미친놈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던 사람. 얇은 은테 안경을 쓰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답지 않게 피부가 깨끗했던 A.
 “고등학교 어디 가?”
 “안 가.”
 “에이 알려줘. 난 고고고. 거기 교복 예쁘더라.”
 “진짜 안 가. 검정고시 치기로 했거든.”
 “헐. 존나 부럽다.”
 “뭐라는 거야… 학교 안 간다고 노는 줄 아냐?”
 나는 유일하게 아는척하는 A가 낯설고 불편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치근덕대지. 그럼에도 새 이름을 알려준 것은 걔가 달라붙은 뒤로 본명을 더 자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땡땡! 땡땡! 땡땡아! 돌아볼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불러대는 바람에. 그럼 평균적으로 바닥을 치던 기분이 외핵 내핵까지 뚫고 들어갔으니까.
 “영고.”
 “응?”
 “이름 말고 영고라고 불러.”
 “별명이야?”
 “어. 너만 알려주는 거야.”
 사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는 착실하게 영고라고 불렀다. 진짜 이상한 애였다. A는 내가 매번 데면데면하게 굴고 가끔 무시하는데도 꼭 와서 인사를 받아가고는 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개 같은 질문도 했다.
 “야야. 그럼 너 섹스할 때 뮤뱅 틀면 박자 맞춰서 하냐?”
 “……미친놈아…. 박자대로 털리고 싶냐?”
 중학생답게 태양처럼 밝고 개념 없었던 A. 배시시 웃는 얼굴에 티 하나 없는 것이 천진해 보이던 A.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의 설득에 떠밀려 억지로 나간 중학교 졸업식 날, A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 인생이 뮤지컬이라고 생각해.”
 그게 뭐야. 멱살이라도 잡아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A의 하얀 얼굴 대신 감색 융으로 덮인 졸업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A는 떠들썩한 친구들의 물결에,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헤어졌다.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 창업한 스타트업이 크게 잘 되었다는 소식을 아주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3.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던 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꽤 살만해졌다. 과외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쉬는 모든 것이 내 방 안에서 가능했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안전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거짓말처럼 달콤했다. 내 삶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일 년쯤. 내 삶에 불행을 쏟아부었던 악마는 겨우 숨을 틔운 나를 다시 진흙탕 속에 처박았고, 나는 그제야 이 평화가 태풍의 눈이었다는걸 깨닫는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막 열여덟 살이 된 겨울밤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지던 트럭과 부딪혀 차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슬픔보다 황망함이 앞섰다. 내가 뭘 실감하기도 전에 친척 어른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지도 비교적 덤덤한 상태였던 나는, 그들이 나를 추스르겠다고 한마디씩 건넬 때마다 오히려 죽음을 감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것. 영영 볼 수 없게,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것. 그건 갑자기 찾아온 만큼 터무니없이 무겁고 까마득해서, 나는 점차 제정신을 잃어갔다. 몸속의 수분을 모조리 짜낼 것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영정 앞에 엎드려 목놓아 우는 나 대신 큰아버지가 상주 노릇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완전히 탈진해 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그제야 식장 안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 친척과 부모님의 지인들이 모여 떠들썩했다. 그중에는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내게는 사촌인 B도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B는 비죽 뻗친 머리와 개구지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직선적이라 무심해 보이는 큰아버지의 턱을 가졌다. B는 아마 장례식이 지루했을 것이다. 자기 부모님도 아니고, 얼굴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고작이고, 가끔 명절에 만나면 용돈을 많이 줘서 좋은 친척분이 돌아가셨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겠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B를 포함한 온 일가족은 내 병을 알고 있었다. 불치병인지 정신병인지 관심병인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던 B가 내 옆에 와서 댄스곡을 재생한 것은 명백히 새빨간 고의였다.
 새빨갛다고 표현한 것은 기억 속 시야가 터진 토마토처럼 붉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때 나는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하던 빨간 구두였지만, 그 많은 이들 중 내 다리를 잘라줄 자비로운 나무꾼은 없었다. 영문 따위 알 리 없는 문상객들과 영문을 아는 일가족들은 한 몸처럼 나를 물어뜯었다.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눈을 떠보니 장례식은 끝났고, 나는 왜인지 이마가 찢어져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주변은 여전히 쑥대밭이었다. 내가 물려받게 될 재산에 눈이 돌아간 어른들은 온갖 법률 용어로 뒤덮인 문서를 들이밀었고 저들끼리도 개처럼 싸웠다. 내 의사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있는 순간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장례식 날 몸을 뒤덮었던 통증이 종종 다시 살아나 나를 끝없이 잘게 조각내었다.
 B를 죽여야겠다. 그런 생각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모님이 죽었으니 B도 죽어야 공평한 것 같았다. 분노는 맥락 없는 비약을 논리로 만든다. 주방에서 식칼을 골라 칼집을 빼고 신문지를 채운 가방 속에 넣었다. 큰집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옆 동네의 주공 아파트. 택시로는 20여 분. 머리가 식기에는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기어코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 큰어머니 뒤로 큰아버지가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우리 조카님 왔네! 들어 와. 춥지? 커다란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오자 따듯한 음식 냄새가 훅 끼쳤다.
 “밥은 먹었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큰아버지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녁 먹고 가. 그러면서도 왜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살피는 기색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미성년 후견개시…”
 그의 눈이 짐승처럼 반짝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군침도 삼켰을 것이다.
 “…생각해 봤는데, 역시 큰아버지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징그러울 만큼 활짝 웃었다. 잘 생각했다고, 몇 번이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큰어머니도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잠깐 기다리라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며 음모를 꾸미는 이들처럼 속닥거렸다. 내내 이 모든 상황을 껄끄럽게 쳐다보고 있던 B는 안절부절못하다 내 가방에 뭐가 있냐고 질문했다.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굳은 얼굴로 애써 웃고 있었다. 어차피 걷힐 미소인데 헛수고였다.
 “궁금해? 자, 봐.”
 지퍼를 열고 칼을 꺼내자 B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 치는 B를 잡아 찌르는 것과 동시에 귀 옆을 세게 얻어맞았다. 옆으로 이미터쯤 날아가 벽에 반대쪽 머리를 부딪쳤다. 큰아버지가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무언가 터진 듯 얼얼한 머리 위로 상스러운 욕들이 쏟아졌다. 새된 소리로 우는 B와 겁에 질린 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어떡해, 어쩌면 좋아……”
 좋겠다. 걱정도 해 주고. 그 와중에 그게 부러웠다.
 시야가 흘러내리고 이명이 세상을 뒤덮었다. 대자로 누워 빙빙 도는 천장을 보다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