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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귓속으로 갖은 소음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든 말들이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급하게 지나가는 지하철 승강장 속. 그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휴대폰과 연결하곤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 한 짝 한 짝을 양쪽 귀에 꽂았다. 귀를 아프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 대신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흘려들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서 왔지?
[["synd.kr", 5], ["unknown", 23]]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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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푸르게 트인 하늘에서 
푸르게 펼쳐진 거대한 위용을 바라볼때면
어느새 기억되는 
반짝였던 모래알의 추억
추억의 자취를 따라
나는 한걸음 한걸음 
오늘의 발자국도
빛나는 모래사장 위에
깊이,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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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처음 이 곳과 만났다.
처음으로 이 곳에서 한 글자를 쓴다.
비록 처음이라 서투르고, 힘겹고, 늦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있으니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니깐.
이 곳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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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눈 앞에 터널이 있다.
두려움, 호기심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리고 보이는 희미한 솜털같은 빛. 그리고 희망
빛이 점점 커져서 밝은 세상이 보일 때
드디어 터널의 출구를 나왔다 생각했을 때
뒤를 돌아보니 출구는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터널의 입구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려움, 호기심에 이끌려
한걸음,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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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불, 사랑, 물

 은은한 네게 내 불덩이 같은 사랑을 퍼부어 네 살갗에 피가 맺히게 했다.
 내 열띤 마음은 부드러움을 잃고 일렁거리며 네 마음을 인두처럼 지졌다.
 일방적인 폭격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 걸음씩 조심스레 내딛으며 성장하는 네게 더 빨리 나아가라며, 내 걸음에 맞춰달라며 채찍질을 휘둘렀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알맞게 먹여야 체하지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커나가는 것이다. 사랑을 퍼부어주겠다는 다짐은 오늘부로 버린다. 너를 잘 살피어 네게 알맞는 양을 주고 네가 건강히 커나갈 수 있게 하겠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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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조금씩

모두 조금씩
모두 조금씩 천사가 될 수 없을까
모두 조금씩 영웅이 될 수 없을까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한
천사 같은 사람이나
살신성인 인간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영웅을 칭송하고 기리는 거야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더 나아가 우리가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될 순 없을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란 말처럼,
몇 명의 천사와 영웅이 있는 세상보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천사와 영웅인 세상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그냥 지금보다
조금만 더 손해보고
조금만 더 양보하고
조금만 더 헌신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조금씩 천사가 되고
우리 모두 조금씩 영웅이 되자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물론 우선 나부터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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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下

 가족 중 누구도 병원 신세를 길게 져 본 적은 없었다. 그 최초가 H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H를 거의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방치에 어떤 책임을 느낀 것 같았다. 이 지경까지 온 게 자신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집에서 늘 하던 부업을 미룬 채 오로지 간호에 매달렸다. 아빠도 되는 데까지 휴가를 쓰고 되도록 병원에 붙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뒤 H를 보러 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며칠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류는 조금씩 달라졌다. 늘 나에게 치우쳐져 있던 관심이 균형을 맞추듯 H에게로 흘러갔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곧 불균형이 될 거라는 걸 멍청하게도 그때는 몰랐다.
 “H. 안 심심해?”
 “…….” 
 “야, 대답 좀 해 봐.”
 아픈 H는 생소했다. 말 걸어도 대꾸 하나 없고, 밥 먹고 볼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랬는데…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가볍게 증발했다. 아프니까 그렇겠지. 다 낫기만 하면 평소처럼 돌아오겠지. 간이침대에 엎드려 문제집을 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며칠째 백지만 넘기고 있는 관찰 일기에도 쓸 거리가 생길 거라고.

 H가 퇴원한 주말, 집에서도 내내 자던 녀석은 갑자기 한밤중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다가 놀라서 급하게 H를 붙잡았다.

 “너 어디 가.” 
 “산책.” 
 “이 시간에?” 
 “답답해서… 계속 병원에만 있었잖아.”
 부모님이 있는 침실을 흘끔 내다봤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이거 말려봤자 안 듣겠지. 하는 수 없이 얇은 재킷을 걸치고 나도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잠들었을 시간. 까만 밤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H는 번화가 정 반대편, 산이 깊고 길이 외진 쪽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하염없이 나아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헛헛해 보였다. 쟤가 저렇게 가벼워 보인 적이 있었나.

 H, 어디까지 갈 거야. 내내 돌아보지 않던 녀석은 내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전철이 지나다니는 굴다리 안이었다. 근처의 개천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비린내와 함께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짐작하기에는 수백 마리 같은 울음이 바글거렸다. 

 “……형.”

 평생에 걸쳐 H가 형이라고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H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조용해.”
 “뭐?”
 H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전철이 세찬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거대한 소음이 계속해서 말하는 H의 목소리를 덮고 귓속을 가득 채워 몸을 뒤흔들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전철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야 겨우 말 끝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벌레 떼처럼 들끓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문득 선뜩한 공포감이 신물처럼 차올랐다. 마주친 H의 눈이 너무도 낯선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
 “귀가 멀어버린 것 같아.”
 H는 바스라기 같은 웃음을 피웠다. 언제나 드세게 타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처럼.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H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제시간에 학교를 왔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책에 필기라는 걸 했다. 부모님, 선생님, 반 아이들, 너나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리고 좋아했다. 이제 좀 살겠구나. H에 관한 일이라면 늘 비이성적으로 변했던 모든 곳에 평화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게 곧 불행이었다.

 “너 머리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아보자.”
 “나 멀쩡해.” 
 “아니야, 뭔가 이상이 있어. 미친 것 같다고.”
 “…미친 건 형 아니야? 헛소리 그만해.”
 저벅저벅 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책을 펼치는 H를 보며 머리를 잡아 뜯었다. 저게 뭐야. 겉가죽 외에는 비슷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 저게 어떻게 H야. 내가 부정하거나 말거나 현실은 점점 확고하게 못 박혀 갔다. 갱생한 H, 정신 차린 H. 모두 기뻐하는데 나만 화가 났다. 하루아침에 무미건조해진 생활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손을 놓고 수업을 듣다 보면 학교에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고는 했다.

 혼란스러운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악몽을 꿨다. 놈의 안에 있다고 믿었던 악마가 내게로 찾아온 것 같았다. 온갖 짐승에게 물어뜯기고, 절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삼지창에 쉴 새 없이 몸이 찔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겨우 잠에서 깨면 불면의 시작이었다. 새파란 새벽을 타는듯한 머리로 새까맣게 지새웠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어갈수록 성격도 뾰족해졌다. 날카롭게 갈린 신경이 스스로를 찌를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성적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굴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갔다. 안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내가 울컥할 때마다 끓어오르기도 했다. H가 말하던 끓는 상태라는 게 이런 걸까.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듯한 막막함이 명치께 가득 쌓여갔다.

 “…너 때문이야.”

 무작정 방에 들어와 돌을 던졌다. H는 나를 흘끔 쳐다봤다가 이내 풀던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가 나 때문인데.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너 때문에 여기가 지옥이 됐어. 잠깐의 정적 사이로 바깥의 소음이 끼어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 엄마와 아빠의 듣기 싫은 웃음소리. 나를 깡그리 무시한 채 홀로 평온한 녀석을 보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H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됐네.” 
 “…….” 
 “축하해.”

 빈틈없이 꾹꾹 눌러온 화가 결국 터졌다. 구석에 박혀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었다. 맞아서 이렇게 됐으니, 한 번 더 맞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근거 없는 확신이 악의와 뒤섞여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팔을 휘두르자마자 터진 H의 짧은 비명과 함께 놀란 부모님이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야!”

 벼락같은 호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엄마가 H를 감싸 안고,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힘이 풀려 놓친 배트가 떨어지며 발등을 찍었다. 쓰러지듯 주저앉아 올려다본 H의 눈가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 형이, 형이… 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는 끔찍하다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도리질 끝에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왜 그래, 왜! 지긋지긋해,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이번엔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픈 발등도 잊을 만큼 황황해 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웃음이 터졌다. 그들이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았지만 웃음은 발작처럼 그치지 않았다. 조악한 연극 세트를 보는 것 같았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H도, 경멸 섞인 눈동자가 H가 아닌 내게 향해 있는 이 상황도. 견고하게 쌓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발밑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는 쟤가 안 이상해?” 
 “…….”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아빠가 뭐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 자식이, 이거 당장 열지 못해? 쫓아온 아빠가 문을 덜컥거리며 소리쳤다. 엄마가 창고에서 방문 열쇠를 찾아오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도망쳐야 했다. 책가방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 버리고,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관찰 일기를 쓸어 담은 뒤 책상 위 아빠의 라이터와 지갑을 훔쳐 창문으로 달아났다.

 한참 뛰어서 온 곳이 겨우 학교였다. 이제 다 자랐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디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어리숙한 중학생에 불과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가장자리를 뱅뱅 돌다가 운동장 구석에 앉아 일기를 꺼냈다. 어설프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 또 끅끅 웃었다. 인생 최초의 절망이라는 게 H의 갱생이라니. 우스웠으나 이번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H는 구제 불능이었다. 제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결국 차례차례 H를 포기했다. 나는 그 옆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든 칭찬은 내게 돌아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뺨을 적시고 입 안을 붓게 만들 만큼 울었는데도 계속해서 솟아났다. 무너진 발밑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움켜쥔 바닥의 모래는 새까만 하늘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낮 동안 받았던 햇빛이 사라지자마자 식는 온기는 얼마나 매정한가. 비겁하고 평탄했던 인생이 꼬였음을 자각했다. 짓밟을 디딤돌이 사라진 나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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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고
처진어깨 추스르며
골목길을 걸어가다 
길고양이 한마리를 봤는데 
혹여 사람들에게 들킬까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씩 걸어가고 있는
모양새가 안쓰러웠다 
마치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어쩌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살고있는지,
한걸음 떼기가 힘든지,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다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나도 모르게 꽉 안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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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눈 깜박이는 
찰나의 순간에도
나무늘보의 한 걸음에도
항상 인연은 함께한다
지독하게 외로움에
빠져 있을 적에도
미소지으며 
짜장면 배달왔습니다
하며 말 건네던
소소한 인연이 있었다
하물며 누군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지만
그 수많은 인연속에
왜 너는 없었는지 궁금하다가
제 풀에 지쳐
그냥 그런갑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정도도
허락되지 않는가보다
하며 실실 웃고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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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걔를 만나보니깐 손가락이 열개에요”

뭐랄까? 주황색 불빛에 반짝이는 동그란 어깨는 귀엽다. 어느 카페에 앉아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귀여운 어깨를 가진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지 고민해본다.

몰스킨 노트를 펼치고 라미 만년필을 들었다. ‘1’ 숫자를 쓰고 몇 분간 그 다음 글을 쓰지 못했다.
“아 키보드.. 키보드가 없으면 글이 안 나가네” 라고 작게 중얼 거리고 가방에서 ‘맥북 에어’를 꺼냈다. 전원 버튼을 넣고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바라봤다.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뭘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 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메모장을 하나 열었다.
우선 ‘작은거부터 사소한거부터, 목표는 크지만 목적은 작게, 한 걸음씩 걸어 나가자’ 라고 적었다.
드디어 생각났다.
1. 귀여운 어깨를 더 빛나게 해줄 ‘달콤한 향의 록시땅 바디크림’
2. 한달치 마실 수 있는 양의 ‘피지워터’
3. 일본 원서에 한국 번역본, 대만 해적판까지 좋아하는 만화책의 다국어 버전 컬렉션 증정
4. 그녀가 잘 다니는 음식점에 미리 돈을 지불하고 어깨가 귀여운 여자가 오면 계산하지 말고 그냥 보내라고 요청.
5. 아침에 먹을 빵 한 아름 증정
6. 취향에 맞는 음악 찾아서 아이팟에 집어넣고 무심하게 선물
7. 알프스에서 입을법한 원피스 선물
8. 같은 책 읽기(유대감 형성)
9. 경제기사 소리 내서 읽어주기(내 강점 부각)
‘후으’
어머니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해본 내가 뭐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에 이쯤 쓰자 한숨이 나왔다.
‘아냐 아냐 저번 명절에 다들 결혼하는 게 효도라고 말했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10. 데이트 할때 어떤 영화 볼지 쉽게 결정하도록 영화 주간지 정기구독 시켜주기
11. 방에서 집중하기 쉬운 조명 사주기
12. 숙면 취하라고 양키캔들 방에 두고 가기
13.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에 올라 캠핑하기
14. 하고 싶은 일 생기면 적극 응원해주기
14-1. 관련 기사 스크랩해서 전해 줌
15. 일 바쁘면 신용카드 주면서 어디서 굶지 말고 밥 먹고 다니라고 말함 여기서 키포인트는 ‘없는 돈에 주는 거니깐 잘 사용해’라고 이야기하는 것
반쯤 남아있는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이야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 써야할 게 더 많네 내가 미친놈인가’라고 중얼 거렸다.
혹시 모니터 너머 누가 내 글들을 보는 건 아닌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봤다.
“아 형 오셨어요!”
때마침 카페에서 보기로 한 형 두 분이 왔다.
“어 성석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전 잘 지내죠. 형 아메리카노죠? 제가 가지고 올게요.”
“응 그래 고마워”
형과 나는 공백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형 그러니깐 걔가 말은 하더라고요. 딱 문장 구조에 맞게 제 앞에서 말을 하는데 그게 진짜 좋았어요.”
“그랬어? 그래도 다른 애들도 있는데 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이 말했다.
“아니야, 형 성석이 이야기 들어보니깐 거의 ‘걔를 만나보니깐 눈이 두개 있더라고요, 손가락이 열개에요! 이건 기적이에요’ 이런 거랑 지금 똑같은데요? 이건 이미 활주로 탔는데 이미 유턴도 못 해”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이 쉽게 진단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볼이 빨개졌다.
“아..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말은 다 하는 건데…”
“그래도 몇 년 만이다. 네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앞에 앉은 형이 말했다.
“그 그죠? 저도 놀라다니깐요.”
몇 마디 대화에 다들 웃었다.
“형 얘는 지금 아무 이야기도 안 들려요. 몇 달 후에 돈 털리고 정신 황폐해지고 몸 상해야 그때 형 말이 맞았어요. 라고 말하면서 온다니깐요. 직접 경험해봐야지 모.. 형 우리도 그랬잖아요?” 옆에 앉은 형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 형들이 나 생각하는 건 알지만… 누가 몸에 좋다고 마약하나 나쁜 거 알면서도 순간이 좋으니깐 하는 거지.. 나는 메모장의 내용을 저장하고 조용히 맥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형 괜찮아요. 지금 제 삶은 이미 충분히 황폐하고 허무해요. 날 좋아하는지가 문제죠.”
나는 토마토 주스에 남은 얼음을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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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그리고 보행

걷기를 멈추는 인생, 뭐를 더 기대하겠는가. 
걷기는 심장을 건드리고 두뇌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눈에서 나오는 레이져는 하늘도 쏘아보고 벛꽃도 쏘아보고 건너편을 걷는 인간들에게도 쏘아본다. 선거용 현수막 나부랭이, 위로 솟은 교회첨탑, 하교를 하는 자녀를 태우기 위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한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고삼전쟁을 하는 진풍경도 눈빛으로 쏘았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출퇴근하는 길거리에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렇게 그렇게 쌓여서 내 시간들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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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류와 월 : 첫만남(3)

 " 그러면, 내려가자 "
 " 그래야지 "
 월의 말에 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월이 먼저 걸음을 옮긴다. 그 뒤를 따라서 류가 걸음을 옮길려고 하자, 무언가를 느꼈는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마을을 쳐다본다. 류? 라고 하면서 월이 등을 돌려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첫 여행부터 사건이 터지지는 않겠지, 속으로 그리 생각한 류는 월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되도록이면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한다. 그래,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이.
 마을을 도착하니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두사람을 반긴다. 상인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장난스럽게 뛰어노는 어린애들. 자신의 옆에 있는 계약자도 그 영감탱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렇게 애답게 지내고 있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류는 월을 힐끗 쳐다본다. 어째서인지 눈 앞에 보이는 마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월을 보고 류가 이렇게 질문한다.
 " 너, 마을 처음보냐? "
 " 응 "
 " 아주 갇혀서 지냈구먼 "
 "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
 " 뭐, 그런건 나중에 듣고 식사나 하자 "
 " 응 "
 류의 말에 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음을 옮긴다. 흠칫, 하면서 류는 다시 무언가를 느끼더니 황급히 월의 팔을 잡아서 제 품에 가두더니 그대로 엎드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기도 잠시 퍼엉-! 하면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온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서 월이 앞을 확인하자, 아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마을이 붉은 불길로 뒤덮여있다. 좋게 넘어가기는 글렀네. 라고 하면서 류는 제 어금니를 세게 깨문다. 꺄아아악-! 하면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황급히 불을 끌려고 사람들이 서로 협동심을 일으켜 양동이에 물을 가져온다. 잘 놀고 있던 어린애들은 부모의 품에 안겨서 대피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 대체, 누가...? "
 " 마수놈들 짓이겠지 "
 " 마수...? "
 " 그녀석들이라면, 이런 짓을 하고도 남으니깐 "
 " 불을 꺼야해, 류! 류는 자연을 다룬다고 했지? "
 " 어? 그렇... 너, 설마? "
 " 얼른 무기로 변해! "
 " 뭐?! "
 " 그래서 비를 내리게 하는거야! "
 얼른! 월은 다급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말에 류는 미간을 좁힌다. 무기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신을 과연 이 여자애가 다룰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만 올라온다. 자신의 능력은 방대하다. 비록 여자애가 자신을 들어올렸다고 해도, 능력을 쓸때와 또 다를 수가 있다. 실제로 무기와 계약자에서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깐, 자신이라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이대로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어 "
 " 알아, 안다고 "
 " 근데 왜 무기가 되지 않는건데? "
 " ...... "
 " 넌, 뭘 두려워하는거야? "
 두려워한다고? 그 질문에 속에서 쿠웅-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분홍색 두 눈동자의 올곧은 의지가 보인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깐,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거겠지. 많은 녀석들이 그리 말했다. 자신이 쓸 수 있다고, 아예 못 들어올린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운 좋게 들어올린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무기로 변해서 사용을 하면, 무기의 능력인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계약자들이었다. 단 한번도 자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녀석들, 더군다나 이런 여자애가 자신을 쓴다고? 결과를 뻔하다.
 " ... 안하겠다면 "
 " ...... "
 " 내가 직접할거야. "
 " 뭐? "
 그리 말하던 월은 등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어이?! 포기할 줄 알았던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오히려 더 대범하게 나오는 월의 반응에 류는 놀라며 불러세운다. 하지만 월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손을 들어올리더니, 검은색 벚꽃 모양 귀걸이를 매만진다. 적어도 이 능력을 사용하면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월은 그 귀걸이를 뺄려던 참이었다.
 " 웃기지마! "
 " ...... "
 " 너같은 꼬맹이가 뭘 하겠다고! "
 " 하지만... "
 " 되면 될거 아니야! 무기가 되고 나서 후회하지마! "
 어째서, 자신은 저 소녀에게 휘둘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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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길이 캄캄했다. 점점 심해지는 배앓이가 아침에 뾰족이 가다듬었던 것들을 엉망으로 흐트러트렸다. 집에 가려면 아직 오백 걸음이나 남았는데. 노인처럼 허리를 숙이다 결국 주저앉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위로 노랗게 번지는 가로등 불빛만이 나를 알았다. 육지에서도 바다 위처럼 한없이 침잠하는 나를.
 이마와 땅이 가까워지면 그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스쳐 지나간 것들. 탈이 난 배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과 술에 절어 나를 걷어차던 아빠의 발. 어린 기억을 고백하며 다시 더듬어야 했던 마른 흉터. 수치로 발갛게 부어오른 나를 끌어안았던 후배의 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문을 안줏거리로 씹어대던 이들. 관망하던 눈들. 가을이 다 되도록 울던 매미. 학사에 휴학 신청서를 밀어 넣고 도망쳤던 날, 진탕 취한 채 찾아와 형이랑 자고 싶어요, 울면서 매달리던 후배. 모진 마음을 먹고도 무너진 것은 때린 네 뺨이 데일 것처럼 뜨거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너무 엉망이어서.
 창이 반 토막 난 단칸방. 닳디 단 이불. 처음으로 벗겼던 타인의 옷. 하얗게 드러나는 맨살에 혼곤해지던 정신. 입을 맞추다가도 몸을 떨게 했던 안을 헤집는 낯선 감촉. 하얗게 물드는 손끝. 솜털 사이사이 숨결이 밸 만큼 가까이, 서로의 체온을 포갠 채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던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