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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귓속으로 갖은 소음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든 말들이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급하게 지나가는 지하철 승강장 속. 그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휴대폰과 연결하곤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 한 짝 한 짝을 양쪽 귀에 꽂았다. 귀를 아프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 대신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흘려들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서 왔지?
[["synd.kr", 5], ["unknown", 11]]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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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조금씩

모두 조금씩
모두 조금씩 천사가 될 수 없을까
모두 조금씩 영웅이 될 수 없을까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한
천사 같은 사람이나
살신성인 인간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영웅을 칭송하고 기리는 거야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더 나아가 우리가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될 순 없을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란 말처럼,
몇 명의 천사와 영웅이 있는 세상보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천사와 영웅인 세상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그냥 지금보다
조금만 더 손해보고
조금만 더 양보하고
조금만 더 헌신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조금씩 천사가 되고
우리 모두 조금씩 영웅이 되자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물론 우선 나부터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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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下

 가족 중 누구도 병원 신세를 길게 져 본 적은 없었다. 그 최초가 H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H를 거의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방치에 어떤 책임을 느낀 것 같았다. 이 지경까지 온 게 자신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집에서 늘 하던 부업을 미룬 채 오로지 간호에 매달렸다. 아빠도 되는 데까지 휴가를 쓰고 되도록 병원에 붙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뒤 H를 보러 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며칠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류는 조금씩 달라졌다. 늘 나에게 치우쳐져 있던 관심이 균형을 맞추듯 H에게로 흘러갔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곧 불균형이 될 거라는 걸 멍청하게도 그때는 몰랐다.
 “H. 안 심심해?”
 “…….” 
 “야, 대답 좀 해 봐.”
 아픈 H는 생소했다. 말 걸어도 대꾸 하나 없고, 밥 먹고 볼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랬는데…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가볍게 증발했다. 아프니까 그렇겠지. 다 낫기만 하면 평소처럼 돌아오겠지. 간이침대에 엎드려 문제집을 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며칠째 백지만 넘기고 있는 관찰 일기에도 쓸 거리가 생길 거라고.

 H가 퇴원한 주말, 집에서도 내내 자던 녀석은 갑자기 한밤중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다가 놀라서 급하게 H를 붙잡았다.

 “너 어디 가.” 
 “산책.” 
 “이 시간에?” 
 “답답해서… 계속 병원에만 있었잖아.”
 부모님이 있는 침실을 흘끔 내다봤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이거 말려봤자 안 듣겠지. 하는 수 없이 얇은 재킷을 걸치고 나도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잠들었을 시간. 까만 밤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H는 번화가 정 반대편, 산이 깊고 길이 외진 쪽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하염없이 나아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헛헛해 보였다. 쟤가 저렇게 가벼워 보인 적이 있었나.

 H, 어디까지 갈 거야. 내내 돌아보지 않던 녀석은 내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전철이 지나다니는 굴다리 안이었다. 근처의 개천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비린내와 함께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짐작하기에는 수백 마리 같은 울음이 바글거렸다. 

 “……형.”

 평생에 걸쳐 H가 형이라고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H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조용해.”
 “뭐?”
 H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전철이 세찬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거대한 소음이 계속해서 말하는 H의 목소리를 덮고 귓속을 가득 채워 몸을 뒤흔들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전철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야 겨우 말 끝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벌레 떼처럼 들끓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문득 선뜩한 공포감이 신물처럼 차올랐다. 마주친 H의 눈이 너무도 낯선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
 “귀가 멀어버린 것 같아.”
 H는 바스라기 같은 웃음을 피웠다. 언제나 드세게 타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처럼.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H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제시간에 학교를 왔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책에 필기라는 걸 했다. 부모님, 선생님, 반 아이들, 너나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리고 좋아했다. 이제 좀 살겠구나. H에 관한 일이라면 늘 비이성적으로 변했던 모든 곳에 평화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게 곧 불행이었다.

 “너 머리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아보자.”
 “나 멀쩡해.” 
 “아니야, 뭔가 이상이 있어. 미친 것 같다고.”
 “…미친 건 형 아니야? 헛소리 그만해.”
 저벅저벅 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책을 펼치는 H를 보며 머리를 잡아 뜯었다. 저게 뭐야. 겉가죽 외에는 비슷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 저게 어떻게 H야. 내가 부정하거나 말거나 현실은 점점 확고하게 못 박혀 갔다. 갱생한 H, 정신 차린 H. 모두 기뻐하는데 나만 화가 났다. 하루아침에 무미건조해진 생활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손을 놓고 수업을 듣다 보면 학교에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고는 했다.

 혼란스러운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악몽을 꿨다. 놈의 안에 있다고 믿었던 악마가 내게로 찾아온 것 같았다. 온갖 짐승에게 물어뜯기고, 절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삼지창에 쉴 새 없이 몸이 찔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겨우 잠에서 깨면 불면의 시작이었다. 새파란 새벽을 타는듯한 머리로 새까맣게 지새웠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어갈수록 성격도 뾰족해졌다. 날카롭게 갈린 신경이 스스로를 찌를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성적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굴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갔다. 안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내가 울컥할 때마다 끓어오르기도 했다. H가 말하던 끓는 상태라는 게 이런 걸까.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듯한 막막함이 명치께 가득 쌓여갔다.

 “…너 때문이야.”

 무작정 방에 들어와 돌을 던졌다. H는 나를 흘끔 쳐다봤다가 이내 풀던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가 나 때문인데.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너 때문에 여기가 지옥이 됐어. 잠깐의 정적 사이로 바깥의 소음이 끼어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 엄마와 아빠의 듣기 싫은 웃음소리. 나를 깡그리 무시한 채 홀로 평온한 녀석을 보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H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됐네.” 
 “…….” 
 “축하해.”

 빈틈없이 꾹꾹 눌러온 화가 결국 터졌다. 구석에 박혀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었다. 맞아서 이렇게 됐으니, 한 번 더 맞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근거 없는 확신이 악의와 뒤섞여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팔을 휘두르자마자 터진 H의 짧은 비명과 함께 놀란 부모님이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야!”

 벼락같은 호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엄마가 H를 감싸 안고,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힘이 풀려 놓친 배트가 떨어지며 발등을 찍었다. 쓰러지듯 주저앉아 올려다본 H의 눈가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 형이, 형이… 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는 끔찍하다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도리질 끝에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왜 그래, 왜! 지긋지긋해,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이번엔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픈 발등도 잊을 만큼 황황해 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웃음이 터졌다. 그들이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았지만 웃음은 발작처럼 그치지 않았다. 조악한 연극 세트를 보는 것 같았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H도, 경멸 섞인 눈동자가 H가 아닌 내게 향해 있는 이 상황도. 견고하게 쌓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발밑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는 쟤가 안 이상해?” 
 “…….”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아빠가 뭐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 자식이, 이거 당장 열지 못해? 쫓아온 아빠가 문을 덜컥거리며 소리쳤다. 엄마가 창고에서 방문 열쇠를 찾아오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도망쳐야 했다. 책가방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 버리고,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관찰 일기를 쓸어 담은 뒤 책상 위 아빠의 라이터와 지갑을 훔쳐 창문으로 달아났다.

 한참 뛰어서 온 곳이 겨우 학교였다. 이제 다 자랐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디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어리숙한 중학생에 불과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가장자리를 뱅뱅 돌다가 운동장 구석에 앉아 일기를 꺼냈다. 어설프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 또 끅끅 웃었다. 인생 최초의 절망이라는 게 H의 갱생이라니. 우스웠으나 이번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H는 구제 불능이었다. 제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결국 차례차례 H를 포기했다. 나는 그 옆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든 칭찬은 내게 돌아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뺨을 적시고 입 안을 붓게 만들 만큼 울었는데도 계속해서 솟아났다. 무너진 발밑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움켜쥔 바닥의 모래는 새까만 하늘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낮 동안 받았던 햇빛이 사라지자마자 식는 온기는 얼마나 매정한가. 비겁하고 평탄했던 인생이 꼬였음을 자각했다. 짓밟을 디딤돌이 사라진 나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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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그리고 보행

걷기를 멈추는 인생, 뭐를 더 기대하겠는가. 
걷기는 심장을 건드리고 두뇌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눈에서 나오는 레이져는 하늘도 쏘아보고 벛꽃도 쏘아보고 건너편을 걷는 인간들에게도 쏘아본다. 선거용 현수막 나부랭이, 위로 솟은 교회첨탑, 하교를 하는 자녀를 태우기 위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한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고삼전쟁을 하는 진풍경도 눈빛으로 쏘았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출퇴근하는 길거리에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렇게 그렇게 쌓여서 내 시간들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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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걔를 만나보니깐 손가락이 열개에요”

뭐랄까? 주황색 불빛에 반짝이는 동그란 어깨는 귀엽다. 어느 카페에 앉아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귀여운 어깨를 가진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지 고민해본다.

몰스킨 노트를 펼치고 라미 만년필을 들었다. ‘1’ 숫자를 쓰고 몇 분간 그 다음 글을 쓰지 못했다.
“아 키보드.. 키보드가 없으면 글이 안 나가네” 라고 작게 중얼 거리고 가방에서 ‘맥북 에어’를 꺼냈다. 전원 버튼을 넣고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바라봤다.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뭘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 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메모장을 하나 열었다.
우선 ‘작은거부터 사소한거부터, 목표는 크지만 목적은 작게, 한 걸음씩 걸어 나가자’ 라고 적었다.
드디어 생각났다.
1. 귀여운 어깨를 더 빛나게 해줄 ‘달콤한 향의 록시땅 바디크림’
2. 한달치 마실 수 있는 양의 ‘피지워터’
3. 일본 원서에 한국 번역본, 대만 해적판까지 좋아하는 만화책의 다국어 버전 컬렉션 증정
4. 그녀가 잘 다니는 음식점에 미리 돈을 지불하고 어깨가 귀여운 여자가 오면 계산하지 말고 그냥 보내라고 요청.
5. 아침에 먹을 빵 한 아름 증정
6. 취향에 맞는 음악 찾아서 아이팟에 집어넣고 무심하게 선물
7. 알프스에서 입을법한 원피스 선물
8. 같은 책 읽기(유대감 형성)
9. 경제기사 소리 내서 읽어주기(내 강점 부각)
‘후으’
어머니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해본 내가 뭐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에 이쯤 쓰자 한숨이 나왔다.
‘아냐 아냐 저번 명절에 다들 결혼하는 게 효도라고 말했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10. 데이트 할때 어떤 영화 볼지 쉽게 결정하도록 영화 주간지 정기구독 시켜주기
11. 방에서 집중하기 쉬운 조명 사주기
12. 숙면 취하라고 양키캔들 방에 두고 가기
13.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에 올라 캠핑하기
14. 하고 싶은 일 생기면 적극 응원해주기
14-1. 관련 기사 스크랩해서 전해 줌
15. 일 바쁘면 신용카드 주면서 어디서 굶지 말고 밥 먹고 다니라고 말함 여기서 키포인트는 ‘없는 돈에 주는 거니깐 잘 사용해’라고 이야기하는 것
반쯤 남아있는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이야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 써야할 게 더 많네 내가 미친놈인가’라고 중얼 거렸다.
혹시 모니터 너머 누가 내 글들을 보는 건 아닌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봤다.
“아 형 오셨어요!”
때마침 카페에서 보기로 한 형 두 분이 왔다.
“어 성석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전 잘 지내죠. 형 아메리카노죠? 제가 가지고 올게요.”
“응 그래 고마워”
형과 나는 공백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형 그러니깐 걔가 말은 하더라고요. 딱 문장 구조에 맞게 제 앞에서 말을 하는데 그게 진짜 좋았어요.”
“그랬어? 그래도 다른 애들도 있는데 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이 말했다.
“아니야, 형 성석이 이야기 들어보니깐 거의 ‘걔를 만나보니깐 눈이 두개 있더라고요, 손가락이 열개에요! 이건 기적이에요’ 이런 거랑 지금 똑같은데요? 이건 이미 활주로 탔는데 이미 유턴도 못 해”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이 쉽게 진단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볼이 빨개졌다.
“아..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말은 다 하는 건데…”
“그래도 몇 년 만이다. 네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앞에 앉은 형이 말했다.
“그 그죠? 저도 놀라다니깐요.”
몇 마디 대화에 다들 웃었다.
“형 얘는 지금 아무 이야기도 안 들려요. 몇 달 후에 돈 털리고 정신 황폐해지고 몸 상해야 그때 형 말이 맞았어요. 라고 말하면서 온다니깐요. 직접 경험해봐야지 모.. 형 우리도 그랬잖아요?” 옆에 앉은 형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 형들이 나 생각하는 건 알지만… 누가 몸에 좋다고 마약하나 나쁜 거 알면서도 순간이 좋으니깐 하는 거지.. 나는 메모장의 내용을 저장하고 조용히 맥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형 괜찮아요. 지금 제 삶은 이미 충분히 황폐하고 허무해요. 날 좋아하는지가 문제죠.”
나는 토마토 주스에 남은 얼음을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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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길이 캄캄했다. 점점 심해지는 배앓이가 아침에 뾰족이 가다듬었던 것들을 엉망으로 흐트러트렸다. 집에 가려면 아직 오백 걸음이나 남았는데. 노인처럼 허리를 숙이다 결국 주저앉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위로 노랗게 번지는 가로등 불빛만이 나를 알았다. 육지에서도 바다 위처럼 한없이 침잠하는 나를.
 이마와 땅이 가까워지면 그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스쳐 지나간 것들. 탈이 난 배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과 술에 절어 나를 걷어차던 아빠의 발. 어린 기억을 고백하며 다시 더듬어야 했던 마른 흉터. 수치로 발갛게 부어오른 나를 끌어안았던 후배의 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문을 안줏거리로 씹어대던 이들. 관망하던 눈들. 가을이 다 되도록 울던 매미. 학사에 휴학 신청서를 밀어 넣고 도망쳤던 날, 진탕 취한 채 찾아와 형이랑 자고 싶어요, 울면서 매달리던 후배. 모진 마음을 먹고도 무너진 것은 때린 네 뺨이 데일 것처럼 뜨거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너무 엉망이어서.
 창이 반 토막 난 단칸방. 닳디 단 이불. 처음으로 벗겼던 타인의 옷. 하얗게 드러나는 맨살에 혼곤해지던 정신. 입을 맞추다가도 몸을 떨게 했던 안을 헤집는 낯선 감촉. 하얗게 물드는 손끝. 솜털 사이사이 숨결이 밸 만큼 가까이, 서로의 체온을 포갠 채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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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이른 오후 시간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기둥 옆에 세워져있는 SM520V 를 찾아내곤 리모콘으로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운전석 자리를 열지 않고, 뒷문을 열어서 들어가 앉아 수납공간에 넣어 둔 형형색색 이쁜 자갈을 만져본다. 이 차에 영원히 있을 악세사리이자, 이 차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내 옆에 평생 머물 그런 자갈이다.  잠시 감상의 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리곤,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거치대에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끼우고, 네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고, '벽제, 추모공원'을 입력한다. 도착 예정시간은 49분 뒤.
네비게이션의 안내양이 이끄는대로 길을 간다. 가는 길에 보이는 강변북로 변 주유소 겸 편의점. 일년정도 됐을까, 어머님이 타고 가던 차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하고, 저기에 계시는걸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합정동 어느 술집에서 후배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려던 찰나였는데, 미처 한잔을 마시기도 전에 연락이 와서 바로 집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 이 차를 타고 그 장소로 향했었다.
저 멀리 능곡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장면을 마치 정물화처럼 느끼며 스쳐지나, 벽제 화장터 앞을 지난다. 중남미 문화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니, 그 가을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절과 단풍, 그리고 거대한 불상, 그 시선이 머무는 용미리의 쓸쓸함.
어느덧 그곳에 도착을 하고 나서, 차를 안전한 위치에 주차한 뒤 내려서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등 위에 납을 잔뜩 달고, 두 손에는 물통을 가득 든 채 가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너럭바위 위에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벌렁 드러누워 예전을 기억해냈다. 이런 저런 기억들과 다양한 체취들, 그리고 손 끝의 감각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서 주변을 떠돌다가 구름처럼 사라지곤 한다.
눈을 뜨고 슬그머니 앉아보니, 주변에 고양이 두마리, 까마귀 한마리, 직박구리 두어마리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얘들아, 나 죽은거 아냐'
작별 인사를 드리고, 짧았던 면회시간을 다시 그리워하며 길을 떠났다. 언제나 난 길 위에 있고, 언젠가는 이정표가 없는 그런 갈림길에 설 것이고, 그 때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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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볼테르의 명언으로 시작된 혼란

처음엔 그냥 좋은 문장 하나 찾았으니 대충 멋있는 척 올려보자였는데 이게 쉽사리 끝이 나질 않는다.
- Voltaire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면 충분한 상태로 끝난 작업보다 못하다는 해석이 적당하다.

Le meglio è l'inimico del bene
볼테르(Voltaire)의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에 있는 내용으로 옥스포드 인용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고 함.
2003년 구글 answers 에서 사용자들끼리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재미난 쓰레드도 있네.

The best is the enemy of good
좋고 나쁨의 여러 단계에서 사회통념적으로 영단어 "best"가 의미하는 단계를 어디로 보는가에 따라 문장의 느낌의 달라질텐데 나는 "best" 가 극도로 좋다는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아 Perfect가 사용된 문장이 좋다. 
The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인터넷에 '볼테르'의 명언으로 번역된 문구는 크게 2가지.
최선은 선의 적이다
"선(善)"이 "최선(最善)"에 못 미친 상태인건 맞는 것 같은데 "선"이라는 단어가 그 쓰임에 와닿지 않고 "최선"은 극한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돌직구같은 아래의 번역이 마음에 든다.

완벽함은 훌륭함의 적이다

그런데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하는 나는:

정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될까?
스티븐 잡스의 아이폰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제품의 아름다움과 강력함을 증명한 결과물이 아닌가?
완벽함을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내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변명의 문장인가?
만약 완벽함이 아니라면 내 작업과 제품의 "훌륭함" 단계는 무슨 기준으로 정해야할까?
아, 머리 아퍼.
내가 이 문장에 왜 매달리고 있는거지?
그렇지만 뭔가 생각을 포기해버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

내 친구 중에 부모님이 크고 아름다운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친구고 그 집 부모님들과도 오래 알고 지내서 거기서 뭘 먹고 돈을 내본적이 없지.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갈 때마다 식사를 마치면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여기, 5만원 맞죠?"

"이놈 봐라? 내가 니 돈 받겠냐? 맛있게 먹었으면 자주나 와라."
"어휴~ 어머니, 자꾸 돈을 안받으시니까 부담스러워서 못 오자나요."
"에라, 이놈아! 어여 가고 다음주에 또 와."
그런데 서로가 대사를 바꾸면 아주 골때리지.
"어머니, 저한테 돈 받으실거 아니죠? 또 올께요!"
"5만원이나 나왔는데 또 돈 안내고 그냥 가려고?"
"어휴~ 어머니 언제는 제가 돈 냈어요?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아니 이놈아 공짜로 처먹을라면 1~2년에 한두번이나 오던가!"
뻔한 결론이 나와버렸네.
내 제품의 "훌륭함"을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비유로 든 얘기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에 대한 얘기라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각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과 어떤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웃긴 놈이 된다는 것.
제품의 사용자들이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단정한다는 것이 이미 주제넘은 일인 것 같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내 사업이 인터넷/온라인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네.
이건 조각이나 벽화, 건축이나 공산품과 다르게 명확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들을 작은 단위로 끊임없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실시간에 가깝게 어떤 단계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감사하네.
제품의 단계가 "완벽함 - 훌륭함 - 충분함 - 부족함 - 쓰레기" 다섯 단계라고 봤을 때 내 제품들은 아직 부족함과 쓰레기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단계"인거야.
하나씩 해결하고 한걸음씩 내딛으면 결국 앞으로,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게임이지.
다들 힘내자구.


영문위키: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 내가 대체 왜,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전개로 여기까지 온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