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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너무 힘이 들어서 목이 콱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아서

알아주세요 알아봐주세요 

그렇게 하나하나 흉터가 늘어간다 

어디서 왔지?
[["unknown", 44], ["synd.k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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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곪아가는 뇌를 방치하고 방식으로 자해 중.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흐물흐물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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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해를 했었다.
엄마가 말하길
“방학에 공부좀 더 해서 학원 다닌 것만큼 따라
  잡아야지?”
“폰 좀 그만 봐. 그렇게 많이 하다가 공부 할때는
  자려고?”
“이번에 성적 작년보다 떨어지면 학원 보낼거야.”

아빠가 말하길
“오늘은 공부 좀 했어?”

“야, 네가 일 나가고 내가 공부할까?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한 줄 알아.”
“아빠 하는 일에 비해 네가 호강하는 거다. 아빠 때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했어.”
등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손톱으로 팔을 찍었다.
언제는 목을 미친듯이 긁고
언제는 양 팔을
언제는 다리를
새빨갛게 올라오는 것도 모자라
푸르딩딩하게 보일 정도로 긁고 찍었다.
문득 생각한다.
자해는 해야겠는데, 모두에게 보여지긴 싫었다.
내 멘탈이 흔들렸다는 점이 보여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자해 하고 난 후에 차가운 물로 식혔다.
그러면 통증은 얼얼한데 자국은 거의 없어지더라.
그런데 최근에 말이다.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우리 학교에 자해를 시도한 아이가 무지하게 많다고 한다. 심지어 기절한 아이, 약 모아서 한번에 먹은 아이.
내가 이상한 줄 알았다.
내가 분노조절장애 인줄 알았다.
나만 스트레스 해소를 못하는줄 알았다.
아니
우리는 다 참는 법을 모르는거다.
받은 만큼 참을 수 없는걸 모두가 안다.
내가 받은 상처의 값은 아무리 값비싼 것이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이해가 갔다.
그 애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학교에 와서 얼마나 태연한 척을 했던 걸까.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도 그렇지만
그 애들도 연기를 잘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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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어릴 때는 화를 참지 못해 무언가를 때리거나 나 자신을 때리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아픈 것을 피하면서도 화를 풀며 다른 이에게 공갈을 치는 것까지 염두했던 영악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심한 상처는 내지 않았다. 다만 내가 피를 낸 적은 몇 번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무의식적으로 피부를 긁어대는 탓에 팔뚝이 헐어 핏물이 스며나오는 일이 있었다. 어린아이답게 빨리 나았고 흉터도 남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독 그 팔뚝의 핏줄에 눈이 가게 되었다. 푸른 정맥을 손톱으로 긁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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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널 생각하며 칼을 집어 들었다. 
지독히도 채워지지 않는 이 버석한 마른 갈증에, 
한없이, 끝없이 밀고 올라오는 나에 대한 깊은 모멸감과 자괴감에 얇은 커터칼날을 집어 들었다. 
바지를 내리곤 두 팔을 걷어 붙인다. 징그럽게도 새하얀 나의 허벅지가 보인다. 
더럽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흉 하나 없이 깨끗한 나의 맨살을 보니 더럽단 생각이 잔뜩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보기가 그렇다니 더럽힐 수 밖에. 
나는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조금씩 칼날을 움직였다. 새하얀 살이 붉게 물든다. 얇은 속살이 이따금씩 비친다. 바닥으로 피가 조금씩 뚝뚝 흘러내리며 떨어진다. 따갑다. 그닥 아프진 않았지만 조금씩 거슬리며 느껴지는 미세한 고통이 괴로웠다.
마치 심장이 옥죄여오는 듯한 그런 류의 고통이다. 
생살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마음 또한 아파왔다. 
너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나에게 푼다, 이건 상상이상으로 아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너를 생각하며 자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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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푹하고 찔렀더니 붉은 피가 뚝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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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자해를 왜 해! 그런 거 진짜 이해 안 가. 미X거 아니야? 넌 그런 짓 하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
.
.
.
내가 중1~2 때쯤 친구의 아는 애가 자해를 한 다는 말을 듣고 한 말이었다. '자해' 라는 개념은 그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해주고 싶지도 않은 이상 행동 정도로 다가왔다. 그 자해를 한다는 아이는 자신이 용감해 보이길 원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 더욱 반감이 들었는지는 모르나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해해서 얻는 것이라고는 고통 뿐인데 왜 그런 쓸대없는 짓을 할까.. 바보같아' 하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있던 나였다. 하지만 저 말을 뱉은지 1년도 채 되지않아 나는 스스로 몸에 상처를 냈다.
한창 사춘기 였던 나는 부모님과 심한 갈등이 있었는데 그때 짜증,화,슬픔 같은 감정들이 내 몸을 둘러오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뒤섞여 오면서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내 팔을 막 긁어대고 있었고 결국 팔엔 상처가 났다. 그땐 '뭐지 나 자해 한건가;;' 거리고 넘겼었었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자신이 너무 싫어지자 내 목까지 스스로 졸라왔다.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울 때, 짜증이 솟구쳐 나 조차도 싫어질 때.. 즉, 자해는 자신이 자신인 것을 거부할 때 나오는 행동 이지 않을까 하고 그제야 이해를 했던 거 같다. 
물론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이 병든 사회에선 병든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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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녹슨 커터칼은 걱정과 달리 잘 들어 얇은 살갗을 갈라냈다. 할 일을 끝낸 커터칼은 피범벅인 채 바닥에 내팽겨쳐진다. 붉은, 그러나 조금은 어두운 적색의 피가 갈라낸 피부 틈으로 차올라 손목을 타고 뚝 바닥에 떨어졌다. 공기에 노출되어 있는 그 상처부위가 따가웠다. 아프다. 찡그려니던 표정도 잠시, 입꼬리는 금방 호선을 그려내며 슥 올라간다. 아프네. 고개를 뒤로젖혀 조용히 미소짓는 눈꺼풀에선 안도감에 젖은 눈물이 한줄기 스륵 떨어졌다. 오늘도 난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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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할수있는게 이것 뿐이라 생각 될때가 있다.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못한, 결국 내 기대에 닿지못한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묻거나 고통을 강요한다.
해결방안이 될수 없음을 스스로도 알고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내는 상처가 나를 표현하는것을 도와줄거라고 생각한다.
미안한얘기지만 이기적인것의 끝에 있는사람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함으로 타인의 고통을 생산하는 사람들.
적어도 나는 용서할수없는사람들
내 가장 소중한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도망쳐버린 소중했던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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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난 너에게 화가 난건데
어째서 나에게 그 분노를 표출하는지
나조차도 모르겠어
아, 그만 하라고는 하지 말아줘
그만 할 수가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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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자해

그런 것 말고도 자해의 범주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만 걸치고 뒷꿈치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행동을 해 본 경험은 있다. 일부러 팔을 죄어 피가 통하지 않게 한다던가, 목을 졸라 울대뼈에 압박이 갈 때와 경동맥에 압박이 갈 때의 차이를 알아본다던가, 몸의 혈자리를 눌러 봄으로서 무협소설에 흔히 나오던 점혈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확인해본다던가. 이런 가학적 실험은 상처가 남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일정량의 통증을 전달해줌으로서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신 혹은 미묘한 쾌감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가 목을 벨트로 조르며 용두질을 하다 교살당해 사망신고서의 사인란에 자기색정사, 혹은 자위사라는 천박하고 부끄러운 단어가 들어가게 놔 둘 리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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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음... 오랜만이라 시작을 어떻게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해서 생각나는데로 쓰고있습니다만..! 태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무거운 주제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018년 중2가 돼는 흔한 여중생 입니다. 어쩌면 흔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성격상 평범하지는 않을것 같거든요. 잡담은 넘어가고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이번 겨울방학인지 저번 겨울방학인지 어쨋든 가장 최근의 겨울방학때 저는 처음으로 칼을 사용한 자해를 해봤습니다
"처음으로 칼을 사용한 자해"
별로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아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어쩌면 아무런 기분을 느낄 수 없어서 살아있는 것에 실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일지도 모르죠.
다른분들은 몰라도 적어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솔직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우울증테스트를 해보면 항상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심각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항상" 그랬기에, 이 테스트가 걀과를 가장 나쁜쪽으로 알려주는건가 싶었지만 다른애들은 아니더군요.)
칼로 아무리 손목과 팔을 그어도 흉터만 생기고 소독을 할 때의 따가움 뿐이며, 방학의 그 1달이라는 시간동안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생각했죠.
'가족은 나를 신경써주지 않는 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잠을 자고싶어도 잠도 자지 못하고 12시에 침대에 누워서 자고싶다고 적게 3시까지 우는 것 조차도 알아주지 않았구나.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자해라는걸 해도 자해라는걸 하는 언니를 알아보는것과는 다르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 이구나. 나는 정말 쓸데가 없구나.'
그런데 지금 더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슬프게도 그때의 감정은 '내가 쓸모없는 존재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딱히 별다른 감정을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요. 정말 정말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데, 어떤 때에도 점점더 아무렇지도 않은 내가 무서워져. 이러다간 정말 큰일을 저질러도 내가 아무렇지 않으니 저사람도 괜찮아 라고 생각해버릴 것만 같아서 내가 너무 싫고 무섭지만
그래서 죽어버리고 싶지만, 내가 죽어도 누구하나 슬퍼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화가 날 것 같아. 이제 슬슬 밝은척도 힘들어지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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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시간이 많은 날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지고
긋고
또 긋고
내 손목을 긋지만
상처는 내 가슴에 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