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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춥다


스쿠버 다이빙을 포기하고 온 학회는 존나 구리다.

빌리지에서 학회장까지 20 키로가 넘어서 하이힐 신고 달릴 수는 없으니

돈 더주고 호텔로 옮겼는데,

여기도 wifi안되고 방에 불빛이 삐리리한 스탠드 하나 있다.

- 이런 걸로 어떻게 업무를 해.


1. 유럽측에 구체적으로 call title 보내야하고

2. 원고 수정해 제출

3. 발표 슬라이드 10장 만들어 리허설 3회

4. 프로포잘 개요 작성


해야 하는데, 감기약 먹으려면 저녁 먹어야 하는데 조가튼 호텔에서 샐러드를 3만원에 판다.

하루 식비가 3만원인데. -_-;

조가튼 location 떄문에 택시비로 3만원 (편도) 날렸는데, 쥐꼬리 만한 출장비로 밥도 못 먹네.

쫄쫄 굶는데 근데  존나 추워. 어두 컴컴한 방에 가서 호주머니 털어 자비로 치킨이나 배달 시켜 먹어야 겠다.

원래 치킨 비싸서 절대 안먹는데.


씨발 존나 욕나와.

이래 놓고 사람들이 국제 학회에만 몰린다고 지랄 불만

와이파이 팡팡 터지고 교통 편리한 깨끗한 호텔 3만원 짜리가 서울에 널렸다 씨발.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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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갈 수 없는 곳.
나고 자란 고향이고

직장도 이곳이건만.
집값이!!
전세값이!!
생활비가!!
조용히 변두리에 살아야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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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미안하게도 이렇게 나이가 들고나서야
비로소 너와 친구가 되고싶다
너에 대해서 이것 저것 알고
이야기 나누고
즐기고싶다
나와 친구가 되어줄래? 서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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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서울 이곳은

많은 사람들은 청춘을 부러워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와 벅차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청춘이 그렇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 이 곳 서울에서 청춘은 그런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이다.

서울 이 곳은 뜨거운 도시이다. 매일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수많은 자동차 그리고 심지어는 지하에서는 열차들이 이 도시를 뜨겁게 달군다. 그러나 그 바쁜 발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이는 낡은 컨버스 두 짝이 있다. 그 컨버스의 주인,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단 한곳이 있다. 그 곳은 술집들과 클럽으로 가득찬 거리, 젊음의 거리라고도 불리는 그런 곳이다. 그녀는 기름냄새를 잔뜩 풍기며 그 곳을 빠르게 지나간다. 그녀는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숨을 고르기 위해 집 앞 계단 앞에 걸터앉는다. 그 곳에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멍하니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리사이로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는 뜨겁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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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어디로 가든 따라오는 너
서울에서 대구로 가나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나
언제나 나를 따라오네
내가 삶에 치여 돌아올때 보이는 너
나랑 반대로 가는 너
너가 없어진다면
또다른 너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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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속보

놀라지마세요

서울40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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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대숲에서 본글

저는 정말 말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식당일을 하시는 엄마와 둘이서 6평정도되는 반지하방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엄마는 하루 열시간넘게 일을 하시면서 생활비를 버셨어요.
수시를 지원할때가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비싼 원서비에 손을 바들바들떨면서 두 곳의 대학만 지원했어요. 당장 집에 원서비를 낼 돈이 없었기때문에, 저희 집 사정을 대충 아시는 담임 선생님이 주신 10만원으로 두 곳의 대학을 지원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어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하셨고, 차비로 5만원을 마련해주셨어요. 엄마는 안타깝게도 바쁜 식당일 때문에 따라올 수 없었어요.
저는 지방에 살았기때문에, 버스표를 왕복으로 끊고, 남은돈 만 오천원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아침 면접이었기 때문에, 전날 오후에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입구로 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학교로 가기로했어요.
그렇게 난생처음 서울에 도착했는데, 돈이 없어졌어요. 가방을 뒤져보고 주머니를 한 시간씩 털어봐도 돈이 안보였어요.
저는 대합실에 앉아서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걷기 시작했어요. 터미널에서 서울대로 걸어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어보니깐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대충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한 2~3시간쯤 걸었을까, 너무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힘들었어요.
저는 갑자기 너무 무섭고 서러운 마음에, 길에 앉아 펑펑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면접을 못갈 것만 같았어요.
밤11시가 넘은 시간에 어딘지도 모를 아파트앞 벤치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왔어요.
아저씨는 제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주었고, 저는 제 사정을 겨우겨우 말했어요. 아저씨는 놀라시면서, 저를 숙직실로 데려다주셨어요. 라면을 끓여주시면서, 자기는 하루정도 좀 못자도 괜찮으니깐,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퇴근하시면서 저를 태워주겠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차에서 셔츠를 벗어 주시면서 옷이 너무 촌스럽다고 이거를 입고 가라고했고, 저는 죄송해서 못받는다고 하니깐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면서 나중에 대학에 붙고 옷을 갖다주러오라고 하셨고, 터미널까지 갈때 차비하라고 만원을 주셨어요.
저는 그 아저씨 덕에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합격자발표가 나고, 제일 먼저 엄마 식당에 전화를 했고, 그 다음엔 그 아저씨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아저씨는 자기일처럼 너무 행복해하시고, 나중에 올라와서 밥 한끼 먹자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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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고, 과외랑 아르바이트도 한계가 있었어요.
악착같이 50만원을 모은 저는, 첫 학기가 끝난 날 눈여겨보았던 양복을 샀어요. 7개월만에 아저씨를 만나서 멋진 양복을 전해드렸어요. 셔츠는 돌려드렸지만, 그 셔츠에 맞는 멋진 양복도 꼭 드리고 싶었어요. 다행히도 아저씨는 계속해서 거절하셨지만 결국엔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태어나서 가장 큰 돈을 쓴 날이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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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선 갑자기 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갑자기 남의 슬픔을 보고 이런감정이 들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지금이 감사하고..나도 남을 도아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더 나은 내가 되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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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여러가지의 모습이 있다. 어제 저녁 9시에 태어난 어느 집의 아이처럼, 오늘 8시에 면접을 합격한 어느 성년처럼,  내일 8시에 대학에 입학하는 이름모르는 고등학교 3학년의 학생처럼. 끝없는 고난에서 벗어난 옆집의 아저씨처럼. 기쁨은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늘 찾아온다. 아마 이 기쁨이 오는지 안오는지는 서울에 사는 생각하는 기계의 연구원도 모르겠지. 확률적인 기쁨은 있겠지. 다만 진짜 기쁨은 잴수가 없겠지. 잴수 있다면 과연 누가 잴수있을까. 신도 모르는데 우리라고 기쁨을 알수가 있을까. 아니. 누군가 처음 새상을 만들때 기쁨을 좀더 만끽할수 있도록 기쁨을 잴수 없도록 만들어놓은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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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10월6일

스무살 이후 밤 12시 언저리에 술에 취해 인천행 1호선을 타고갈 때에는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외로움에 치가 떨릴 뿐이었지 언제부터 외로움을 자각하게 됐을까 언젠가 읽은 신문 기사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결혼이나 연애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며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니 외로움을 평생 동안 친구처럼 여기고 살라는 소리를 했다 서울대학교 병원 의사가 쓴 기사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있는 무엇도 없었다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독이 나의 몫이라는 소리였다 개선되지 않는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 사형선고 같은 기사였다 천양희 시인은 너의 삶 또한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 삶 앞에 외로움 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셈이었다 외로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오랫동안 황망했다 나는 아직도 상대에게 핍진한 관심과 변덕에 대해 사과해야하는 스물 네 살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잠못드는 밤들을 버텨내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어 내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난다던 너에게 나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어떤 온전한 길을 걷고 있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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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가제:금성에도 평화가 있나요?) #1

1. 윤 평화 (18세, 여자) : 부모님 맞벌이로 혼자 서울로 자취하러 온 고등학생.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것 보면 잘사는 집안이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적인 것을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남의 집안보다 턱없이 부족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외동 인생 주제에 혼자가 편한 나날을 꿈꿨으나, 막상 잘 안되는 것이 분해 괜히 옆집 이웃에게 핑계를 돌린다. 어른스러운 척 쿨한 척 보이다가도 사실은 마음이 여리다는 이 시대의 대표 미성년자.
2. 금 성 (28세, 남자) : 직장생활 3년차, 괜찮은 잡지회사에서 영업부에 종사하고 있다. 그저 그런 삶에 굴곡 없이 적당히 힘들어 하고 노력해서 살아온 결과, 여지껏 여자 친구도 사람 친구도 없이 혼자 남아 버렸다. 다행히 혼술과 혼밥이 유행인 요즘, 유행 따라간답시고 당당히 혼자 점심 먹는 인간이 되었으나, 저녁만 되면 늘 허전한 마음은 꾸준하다. 게다가 어느 날 부턴가 옆집 꼬맹이가 신경 쓰이기까지 하면서 잔잔한 호수같은 제 인생에 작지 않은 물결이 이는 것 같다고 느낀다. 물론 로리타 콤플렉스라던가 어린여자나 미자를 좋아하는 그런 쓰레기는 아니다. 그냥 조금은 어딘가 평화가 나와 약간 닮아 보일 뿐.
3. 그 이외 : 평화의 부모님, 달님, 치킨집 배달부님, 냉면집 배달부님 등등
4. 소개: 서울 소재 고등학교를 다니고자 혼자 자취하는 고등학생 윤평화와 3년차 영업부 직딩 금성은 어느 날부터 약속 없이 매일 밤 9시 30분만 되면 집 앞 베란다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없으면 음식을 나누고, 그 것마저 없으면 말 없이 풍경만 감상하다 12시가 되면 각자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름과 나이 밖에 알지 못하는 사이 주제에 제 부모도 모르는 이야기들도 나누곤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삭막한 사회에서 어린 왕자 속 B612 마냥 동떨어져 있다가도 서울 주변은 다 보인다는 우주 오피스텔. 
로맨스를 키우기엔 서로가 귀찮아 하는 이 시점에서 둘은 세상에 치인 상처들을 나누고 치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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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딱 오늘까지만, 씨네코드선재는 상영을 한다. 그리곤 문을 닫는다.
부유하듯 북촌 골목을 떠돌다 선술집에 드나들 듯, 무작정 찾아간 그 적적한 극장엔, 나의 한심함과 세상의 불충분함을 잘도 드러내는 소위 예술영화 같은 게 스크린에 매달려 있었다. 무심하고 쓸쓸한, 하지만 뭔가가 꿈틀대는 극장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북촌의 한적한 골목엔 불이 켜지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하나둘 씩 모여들곤 했다. 북촌엔 낮의 예술이 선사한 취기를 이어갈, 질박한 술집들과 고즈넉한 풍경들이 제법 많았더랬다.
부침이 많은 서울에서, 그런 무의미한, 불분명한, 모호한 것 투성이었던 예술영화, 그리고 그네들을 즐기는 시간들이 오래 허락될 리는 없었다. 그렇게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키 작은 예술영화란 녀석이 매해 땅값이 비싸지는 그곳에 어울릴 수 없었던 거다. 물론 예술영화만을 고집한 건 아니었지만, 그곳은 애시당초 물 건너온 히어로 따위에겐 어울릴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제 우리들 마음 켠엔 우연히 방심하다 조우하는 모든 낯선 것들을 위한 방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다. 
맘 속엔 그리움을 위한 방들만 자꾸 많아지고 있다.   
모든 영화는 끝이 난다. fin 이란 자막이 뜬다해도, 난 조금 더 극장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봐 잠깐, 끝을 음미하고 싶어. 이 영화가 주는 기묘한 여운을 잠시 즐기고 싶단 말이지. 그러니 너무 빨리 극장에 불을 밝히고 다음 손님을 위해 나가라고 하지 말아죠...되새길 시간이라도 좀...내가 왜 이 영화를 찾아온 건지,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했단 말이야...
북촌의 영화 하나가 끝났다. 그리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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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내린 남자

아침에 늦잠을 자다 겨우 일어나 아슬아슬하게 열차시간을 맞췄다.  머리는 깔끔하지 않게 뻗쳐있었다 . 길이도 애매하여, 앞머리가 눈을 찌르는 길이였다. 이번에 서울 올라가면 이발소나 들러야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머리를 넘긴 후 자신의 금테안경을 올려썼다. 그리곤 열차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숨자려고 눈감고 팔짱을 끼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지끈거렸다. 한숨.. 걷혀있던 하늘색 커튼을 쳤고,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붙였다. 
킁.. 
잠에서 깬 남자는 금테 안경을 다시 올려썼고, 하늘색 커튼을 걷어냈다. 해가 저 아래에 가 있었다. 남자는 급히 시계를 확인했고, 자신의 가죽가방과 재킷을 챙겼다.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출구쪽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힘없고 졸린 몸을 열차 밖으로 내보냈다. 담배 하나를 물었고, 불을 붙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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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늙은 아버지의 주름

나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의 부모의 얼굴과 주름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전라도 촌놈이시다. 초등학교 6년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이상 학교는 못다니셨고, 여동생만 4명을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같이 돌보고 결혼까지 시키셨다. 
아버지는 전라도에서 논농사만 지으면 본인 새끼들이 평생 고생만 하고 살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시골의 조그만 밭을 팔아서 그돈으로 서울에 구멍가게를 차리셨다. 나의 돌사진을 보면 그당시 구멍가게가 보인다. 장사가 너무 안돼서 애들은 먹여살려야해서 건설 일용직을 시작했다.
 여름에 땀은 비오듯 하고, 일은 했는데 남는게 별로없는게 겨울은 놀아야하고 비 많이 오면 일이 없었고 일을 했는데 돈 못받은것도 수차례여서 내자식은 이런꼴 안보게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없는 살림에 아들놈 교육에 공을 들이셨다.
그리고 무식하면 당한다고 공부열심히 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이제는 내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아이들 2명을 양육한다.
나의 늙은 아버지의 주름과 손의 상처를 보면서 가끔 내자식을 위해 나는 그렇게 할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순간순간 마다 아버지의 주름을 본다. 아버지도 나에게 말은 안하고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해오셨구나를 느낄때마다, 나에게 잔소리를 해주시는 늙은 아버지가 계심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