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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감기

베개를 끌어안자 더운 숨이 베갯잇에 부딪혀 얼굴로 되돌아왔다. 머리가 웅웅 울리고 코언저리가 뜨겁다. 일어나고 싶은 동시에 일어나기 싫어서 갈등하다가 결국 번데기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로 구물구물 일어났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 허리를 세우자마자 세찬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아, 왔다, 왔어… 어쩐지 어제부터 낌새가 수상쩍더라니.


 방전되어 있던 핸드폰에 밥을 주고 전원을 켜자 문자 서너 개가 한꺼번에 떴다. 일어났어요? 저는 지금 일 마무리하고 버스 타요. 열한시쯤이면 터미널 도착할 거예요. 미열 때문에 멍멍한 손끝으로 늦은 답장을 보냈다. 조심해서 와. 근데 나 감기 왔나 봐. 올 때 종합감기약 하나만… 거기까지 보내고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넘실거리는 수면에 이리저리 떠다녔다. 잠결에 문이 열리는 소리, 이마를 짚는 찬 손과 A의 먼 목소리를 들었다.


 많이 아파요? 오면서 죽 사 왔어요. 약이랑 먹고 자요.


 대답만 겨우 하고 한참 정신을 못 차리다가 간신히 상 앞에 앉아 죽을 떴다. 분명 새우랑 당근 같은 게 보이는데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없는 식욕에 억지로 씹을수록 머리가 무거워진다. 오로지 의무감으로 반 그릇을 비운 뒤 약을 먹고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 떨어지듯 꾼 꿈에는 내가 걸린 감기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왔다. 놈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몸살과 열도 데려왔다. 그것들과 놀다 보니 한겨울인데 나는 점점 따끈따끈해지고, 줄줄 흘러 바닥으로 퍼져갔다. 킬킬 악독하게 비웃는 것들에게 팔다리를 허우적대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식은땀으로 등과 머리가 축축했다. 숨을 들이쉬자 내내 꽉 막혀 있던 콧속으로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온다. 뻐근했던 몸이 조금 개운한 듯도 했다. 약이 잘 듣나. 누워서 마른세수를 하다가 또 잠들었다.


 좀 살만해진 저녁.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시집을 보고 A는 옆에서 키위를 잘랐다. 팔랑팔랑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A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키위가 미네랄이랑 비타민이랑 뭐더라, 미네랄이 많대요.


 이미 수십 번 읽은 시집은 책장을 덮어도 눈을 시리게 했고, 조곤조곤 말하는 네 목소리는 어딘가 봄볕 같은 데가 있었다. 하루 동안의 병 앓이로 가슬가슬해진 몸이 금세 녹녹해진다. 어느새 접시에 산처럼 쌓인 키위를 한 조각 찍어 먹자 입 안에서 무르고 신 과육과 까만 씨가 자박자박 씹혔다.


 해가 지나간다. 감기도 과일도 끝물이었다.


어디서 왔지?
[["synd.kr", 16], ["unknown",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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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만남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사세요? 내 무례하고 유치한 공격에 남자도 진부한 답변을 했다. 꿈을 먹고 살지요. 여전히 미소가 마르지 않은 가벼운 얼굴이 속을 답답하게 했다. 오기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꿈이 선생님의 밀린 전기세를 해결해 주지는 않잖아요. 그러자 그의 웃음이 진해진다. 그래서 요즘 양초를 켜요. 생각보다 쓸만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피웠다.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비수처럼 던져뒀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하다. 짐승을 찌를만큼 날카롭게 갈아낸 칼날도 그의 가죽은 뚫지 못할 것이다.
허탈함이 지나간 뒤 따라온 건 졌다는 느낌이었다. 찻잔 끝에 말라붙은 커피의 색은 내 패배감과 같았다. 그러나 패인은 생각보다 뾰족했다. 내게는 맹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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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식욕

늘 맛있게 내려주는 커피만큼 괜찮을 줄 알았던 녹차는 기대보다 텁텁했다. 여기는 앞으로 커피만 시켜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던 책을 펼쳤다.
소설은 아직 초반부였으나 주인공은 벌써 사람을 세 명이나 죽였다. 발 앞의 난도질 당한 시신. 기분 나쁜 온기가 남아있는 핏물. 뱃속 깊숙이 박혀 잘 빠지지 않는 칼을 부득부득 빼내는 묘사에 식욕이 완전히 달아났다.
“사람 죽인 적 있어요? ”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한 여자가 앞에 앉아 있었다. 아는 여자다. 맨 윗층에 사는, 집주인의 딸.
“있으면 여기서 커피는 못 마시겠지.”
최대한 억양을 덜어내고 대답했다. 목소리에 자칫 온기나 냉기가 묻어나지 않도록. 목덜미처럼 드러난 감정만큼 손쉬운 먹잇감은 없기 때문이다.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서 내가 들고 있는 책 표지로 옮겨갔다. 핥는 듯한 시선에서 나른한 전의를 느꼈다.
“매일 이런 것만 읽길래, 연구라도 하는 줄 알았죠. 제목에 들어가는 단어부터 그렇잖아. 사건, 살인, 시체, 죽음.”
여자가 책 제목으로 나를 찌르는 동안 나는 그녀의 흰 살결을 본다. 푸른색 셔츠 깃 위로 뻗은 가느다란 목. 두 손으로 잡고 누르면 툭 부러지지 않을까.
누군가 토스트를 주문했는지 카페 안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문득 고개를 든 식욕이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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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꿈속에서도 나는 자주 넘어졌다. 아니 쓰러졌다. 인생을 전부 잡아먹은 깊은 병증은 꿈까지 따라와 발목을 잡았다. 도피할 곳이 없었다. 잠시 잊을 수 있는 아주 조금의 틈조차.

지긋지긋해. 잠에서 깨면 그런 말부터 시작했다. 염증으로 불거져 나온 혈관만큼 검붉은 불평들이 입 밖으로 툭 툭 떨어졌다. 그러면 형은 언제나 말없이 그것들을 주웠다. 통증에 절어 신음처럼 가늘어진 목소리를 어깨에 둘렀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빼곡히 찔러 넣었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되어 이제 더 이상 꽂힐 공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형은 잔잔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게 지독하고 수치스러웠다. 형을 물어뜯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동시에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그의 살점을 메마른 입 안 가득히 뜯어 먹으면서도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렇게 내 치부와도 같아진 행위의 반복만이 하루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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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죄를 고백하는 것은 쉬웠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내 입을 막고 있었던 것은 가볍고 얄팍한 윤리 의식뿐이었으니까. 도덕책에서 배워 누구나 알고는 있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경계고 벽이었으나, 나에게는 축축하게 젖어 언제든 찢어버릴 수 있는 종이에 불과했던. 그런 물기 고인 의식들.
 “…가출하고 소식이 끊겼던 Y, 이 년 전 실종된 A, 작년 봄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H.”
 아득할 만큼 멀었던 과거에서부터 시작했던 고백은 어느새 현재에 가까워져 있었다. 새파란 얼굴을 하고 부들부들 떨던 P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겁에 질린 개처럼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의 팔을 잡아채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아직이야. 아직 남았어.”
 “이… 이거 놔.”
 “작년 뉴스 일 면에 실렸던 연쇄 토막 살인 사건.”
 “놓으라고…!”
 P는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비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까부터 점차 퍼지던 미소는 어느새 완전한 웃음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목젖 아래서부터 끓어 넘쳤다.
 언제나 열망했다. 내 죄를 고백하는 나를 상상했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팔을 붙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죽였다고. 내가 한 짓이라고.
 “쓰레기…, 쓰레기 같은 새끼! 네가 사람이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게 의아했다. 왜 울지. 아직 제일 중요한 건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작년에 준 화분 기억나?”
 “…뭐?”
 앞뒤 없이 튀어나온 이야기에 P가 좁혔던 미간을 올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속삭였다. 
 “J는.”
 단지 이름 하나. 그 한 명의 이름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멎었다. 몸부림치던 동작, 눈물, 목소리, 울음에 차 가늘게 떨리던 호흡마저. 마치 혼자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기억해?”
 크게 벌린 입가가 이내 일그러진다.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절망이었다. 그녀는 내가 바라던 대로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거든.”
 손을 놓자마자 P는 당장 거실로 내달렸다. 참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감정이 가슴 한가운데를 터뜨렸다. 붕 떠오르는 것들을 애써 가라앉히며 방을 빠져나오자 마침 제 무릎까지 오는 화분을 들고 선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쉽게 던지지 못한다. 두려우니까. 그러나 팔은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도기로 된 하얀 화분은 산산이 깨어졌다. 폭발하듯 흩어지는 산세비리아 사이로 흙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밖으로 굴러 나왔다. 꼭 사람 머리처럼 생긴.
 P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슴을 움켜쥔 채 곧 죽어버릴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다, 이내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터져 나오는 쾌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자는 여전히 오열하고 있었고, 나는 주방으로 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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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너의 하루였으면 좋겠어,
내 눈짓으로 일어나고 내 목소리로 잠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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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난 가수도 되고 싶었고 라디오 디제이도 되고 싶었고 잘나가는 강사도 되고 싶었어.
난 내가 멋있고 목소리도 완전 좋고 말도 잘하고 똑부러진다고 생각했어.
싸이 1집때 엠넷에서 듀오로 신곡 녹화한적이 있어.
녹화 끝나고 싸이가 했던 말 아직도 기억나. 특유의 쓴 표정으로
"난 니가 카메라가 들어오면 변할 줄 알았다."
난 변신을 못했구나.
5년간 같은일을 하고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상황이 변할리 없다.
이제라도 과정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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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였을까

잊지않기로 약속했다. 수많은 여자들들의 향기와 목소리와 웃음과 색깔들은 다잊어도 그녀만은 간직하기로했다. 왜였을까. . 
그토록 죽을것같던 사랑도 수년동안 잠이들어도 깨어있어도 갈구하던 사랑도 잊어버리게 되었는데 왜 그녀만은 간직하고싶은걸까. 
종로의 피아노거리에서 피어나던 홍차의 향도
명동성당 앞에서 웃으며헤어지던 그녀의 노란원피스도 광화문에서 버스를기다리며 잘가라고했던 목소리도 그리고. 내게남겨준 작은 글귀들도
난 무엇하나잊지못한다. 
그래. 너를 잊을수없는것이아니라
내가 너를 잊고싶지않는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소소한 웃음나누며 글자하나를 두고
문장들만들어가는 그런 너와의시간이 그리운것일지 모른다. 달빛이 내리면 손으로 토끼 그림자를 만들어 너에게 다시 보여주고싶어서인지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그렇듯 너를 기억하는지 모른다. 내게 네가 소중하듯 내 모습이 조금쯤은
소중한기억으로 남았으면좋겠다. 
벌써 10년이 다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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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얘기

삼사일 전에 꿈을 꿨어.
늦은 새벽에 차를 몰고 집에 돌아왔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서 근처 유료 주차장으로 들어갔지. 하지만 그 곳에도 주차할 곳이 없더군.
시계를 보니 4시 5분. 대충 아무곳에나 쑤셔넣고 빨리 집에 가서 한숨이라도 자야겠다 싶은 마음에 작은 틈에 차를 우겨넣었지. 그러다가 앞차를 받았지. 내려서 살펴보니 앞차 범퍼가 폭~ 들어갔더군.
전화하긴 이상한 시각이라 생각해 급하게 포스트-잇을 꺼내 "제가 그랬어요. 연락주세요"라고 메모를 남겼어.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차도 이상하게 주차해놨고 사고는 어찌됐는지 궁금해서 주차장에 전화를 걸었어.  그랬더니 주차장 아저씨가 엄청 무겁고 진지한 목소리로 "지금 인터넷에 난리났어요." 이러는 거야. 뺑소니로 생각해서 파렴치한 운전자로 어디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갔나 생각했지.
"아, 제가 메모를 남겼는데요. 일단 제가 다 보상할께요." 라고 말했더니 "이걸 전부 보상하실 수 있다구요?" 이러는거야. 뭔가 잘못됐다고 느껴져서 다시 전화한다며 전화를 서둘러 끊고 브라우저를 켜고 주차장 이름으로 검색을 해봤어.
내 차 주위에 있던 차들 2~3 대가 전소됐는데 그 중 비싼 외제차도 있더군. 꿈속이라 어찌된 건지 주차장에서 있었던 장면들이 확 떠오르는데, 내가 메모를 남기고 떠난 자리에 누군가 기름통을 들고 와서 불을 지른거야. 허허허허허허허!
꿈 속이지만 진짜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에 손발이 떨리고 내 보험 대차한도가 얼마더라.. 내가 뺑소니로 처리되면 보험금은 제대로 나오나? 요즘 일도 없고 돈도 없는데 이걸 아내한테 어찌 얘기하나 이런 생각들로 진짜 간절하게 도망가고 싶더군...
꿈에서 깨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꿈이라 진짜 다행이야 ㅋㅋㅋ
담부터 꿈이든 현실이든 꼬딱지로 막을 수 있는 일은 바로바로 꼬딱지로 막아야겠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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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

여긴 물살이 너무 세 
여긴 텃새가 너무 세
저 바위에 부딪혀
머리가 터져버릴까..
아님 먹혀버릴까
나를 씹어 버릴까
그럼 죽어버릴까
이 큰물에 노는 물고기들이
잡아 먹을까 두려워
나는 점점 바다 밑
바닥으로 들어가
숨어버렸지..
그래서 지금껏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내 얼굴도 이젠 잊어 버렸다.
나를 감싸는 어둠은
너무 차갑고
짙은 어둠이라
한줄기 빛도 없었지
그래서 지금껏
나는 꿈이 없었다
맞아 그래 지금껏
나아 갈 길도
찾은 적이 없었다.
이건 사는게 아닌데..
나는 죽은게 아닌데..
이 바닥에 처박혀
남 눈치만 보다가
홀로 외로우니까..
뭔가 불안하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이건 살아 있단 느낌이 없어
내 가슴속이 뜨겁듯
여긴 점점 화끈거려
뱃가죽이 밑이 울렁거리고
바닥이 찢어지고
땅을 토해내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물고기가 내게 뛰어와
뭐가 없던
나의 인생도 끝이구나
여기까지가
뜨거운 물고기때
뜨거운 목소리로
이 바닥에서 도망쳐
죽어있던 니 삶을 찾아가라
내가 살던 어둠을 지나
한줄기의 빛이 보이네
어둠속에 감추고 살던
내 실체가 궁금했지만
저 빛은 너무 눈부셔
내가 살던 심해를 지나
빛이 나를 비추어 주네
수면위에 비추어지는
내 몰골이 궁금했지만
내 눈이 멀어 버렸지.....
여긴 물살이 너무 세
여긴 파도가 너무 세
해변에 휩쓸려
머리가 터질까
누가 먹어버릴까
나를 씹는다해도
뵈는게 없으니
그 두려움 따윈
사라져버렸지
나를 쬐이는 햇빛과
다른 뜨거운 눈빛들은
분간이 안돼
난 장님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또 살아 나가야 할
빛이 생겼다.........
중식이밴드 - 심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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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下

 가족 중 누구도 병원 신세를 길게 져 본 적은 없었다. 그 최초가 H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H를 거의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방치에 어떤 책임을 느낀 것 같았다. 이 지경까지 온 게 자신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자책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집에서 늘 하던 부업을 미룬 채 오로지 간호에 매달렸다. 아빠도 되는 데까지 휴가를 쓰고 되도록 병원에 붙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뒤 H를 보러 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며칠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류는 조금씩 달라졌다. 늘 나에게 치우쳐져 있던 관심이 균형을 맞추듯 H에게로 흘러갔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곧 불균형이 될 거라는 걸 멍청하게도 그때는 몰랐다.
 “H. 안 심심해?”
 “…….” 
 “야, 대답 좀 해 봐.”
 아픈 H는 생소했다. 말 걸어도 대꾸 하나 없고, 밥 먹고 볼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랬는데…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가볍게 증발했다. 아프니까 그렇겠지. 다 낫기만 하면 평소처럼 돌아오겠지. 간이침대에 엎드려 문제집을 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며칠째 백지만 넘기고 있는 관찰 일기에도 쓸 거리가 생길 거라고.

 H가 퇴원한 주말, 집에서도 내내 자던 녀석은 갑자기 한밤중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다가 놀라서 급하게 H를 붙잡았다.

 “너 어디 가.” 
 “산책.” 
 “이 시간에?” 
 “답답해서… 계속 병원에만 있었잖아.”
 부모님이 있는 침실을 흘끔 내다봤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이거 말려봤자 안 듣겠지. 하는 수 없이 얇은 재킷을 걸치고 나도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잠들었을 시간. 까만 밤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H는 번화가 정 반대편, 산이 깊고 길이 외진 쪽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하염없이 나아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헛헛해 보였다. 쟤가 저렇게 가벼워 보인 적이 있었나.

 H, 어디까지 갈 거야. 내내 돌아보지 않던 녀석은 내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전철이 지나다니는 굴다리 안이었다. 근처의 개천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비린내와 함께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짐작하기에는 수백 마리 같은 울음이 바글거렸다. 

 “……형.”

 평생에 걸쳐 H가 형이라고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H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조용해.”
 “뭐?”
 H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전철이 세찬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거대한 소음이 계속해서 말하는 H의 목소리를 덮고 귓속을 가득 채워 몸을 뒤흔들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전철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야 겨우 말 끝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벌레 떼처럼 들끓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문득 선뜩한 공포감이 신물처럼 차올랐다. 마주친 H의 눈이 너무도 낯선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
 “귀가 멀어버린 것 같아.”
 H는 바스라기 같은 웃음을 피웠다. 언제나 드세게 타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처럼.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H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제시간에 학교를 왔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책에 필기라는 걸 했다. 부모님, 선생님, 반 아이들, 너나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리고 좋아했다. 이제 좀 살겠구나. H에 관한 일이라면 늘 비이성적으로 변했던 모든 곳에 평화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게 곧 불행이었다.

 “너 머리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아보자.”
 “나 멀쩡해.” 
 “아니야, 뭔가 이상이 있어. 미친 것 같다고.”
 “…미친 건 형 아니야? 헛소리 그만해.”
 저벅저벅 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책을 펼치는 H를 보며 머리를 잡아 뜯었다. 저게 뭐야. 겉가죽 외에는 비슷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 저게 어떻게 H야. 내가 부정하거나 말거나 현실은 점점 확고하게 못 박혀 갔다. 갱생한 H, 정신 차린 H. 모두 기뻐하는데 나만 화가 났다. 하루아침에 무미건조해진 생활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손을 놓고 수업을 듣다 보면 학교에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고는 했다.

 혼란스러운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악몽을 꿨다. 놈의 안에 있다고 믿었던 악마가 내게로 찾아온 것 같았다. 온갖 짐승에게 물어뜯기고, 절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삼지창에 쉴 새 없이 몸이 찔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겨우 잠에서 깨면 불면의 시작이었다. 새파란 새벽을 타는듯한 머리로 새까맣게 지새웠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어갈수록 성격도 뾰족해졌다. 날카롭게 갈린 신경이 스스로를 찌를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성적은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굴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갔다. 안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내가 울컥할 때마다 끓어오르기도 했다. H가 말하던 끓는 상태라는 게 이런 걸까.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듯한 막막함이 명치께 가득 쌓여갔다.

 “…너 때문이야.”

 무작정 방에 들어와 돌을 던졌다. H는 나를 흘끔 쳐다봤다가 이내 풀던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가 나 때문인데.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너 때문에 여기가 지옥이 됐어. 잠깐의 정적 사이로 바깥의 소음이 끼어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 엄마와 아빠의 듣기 싫은 웃음소리. 나를 깡그리 무시한 채 홀로 평온한 녀석을 보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H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됐네.” 
 “…….” 
 “축하해.”

 빈틈없이 꾹꾹 눌러온 화가 결국 터졌다. 구석에 박혀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었다. 맞아서 이렇게 됐으니, 한 번 더 맞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근거 없는 확신이 악의와 뒤섞여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팔을 휘두르자마자 터진 H의 짧은 비명과 함께 놀란 부모님이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야!”

 벼락같은 호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엄마가 H를 감싸 안고,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힘이 풀려 놓친 배트가 떨어지며 발등을 찍었다. 쓰러지듯 주저앉아 올려다본 H의 눈가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 형이, 형이… 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는 끔찍하다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도리질 끝에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대체 왜 그래, 왜! 지긋지긋해,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이번엔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픈 발등도 잊을 만큼 황황해 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웃음이 터졌다. 그들이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았지만 웃음은 발작처럼 그치지 않았다. 조악한 연극 세트를 보는 것 같았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H도, 경멸 섞인 눈동자가 H가 아닌 내게 향해 있는 이 상황도. 견고하게 쌓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발밑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는 쟤가 안 이상해?” 
 “…….”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아빠가 뭐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 자식이, 이거 당장 열지 못해? 쫓아온 아빠가 문을 덜컥거리며 소리쳤다. 엄마가 창고에서 방문 열쇠를 찾아오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도망쳐야 했다. 책가방 안의 내용물을 전부 쏟아 버리고,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관찰 일기를 쓸어 담은 뒤 책상 위 아빠의 라이터와 지갑을 훔쳐 창문으로 달아났다.

 한참 뛰어서 온 곳이 겨우 학교였다. 이제 다 자랐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디 멀리 가본 적도 없는 어리숙한 중학생에 불과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가장자리를 뱅뱅 돌다가 운동장 구석에 앉아 일기를 꺼냈다. 어설프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 또 끅끅 웃었다. 인생 최초의 절망이라는 게 H의 갱생이라니. 우스웠으나 이번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H는 구제 불능이었다. 제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결국 차례차례 H를 포기했다. 나는 그 옆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든 칭찬은 내게 돌아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뺨을 적시고 입 안을 붓게 만들 만큼 울었는데도 계속해서 솟아났다. 무너진 발밑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움켜쥔 바닥의 모래는 새까만 하늘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낮 동안 받았던 햇빛이 사라지자마자 식는 온기는 얼마나 매정한가. 비겁하고 평탄했던 인생이 꼬였음을 자각했다. 짓밟을 디딤돌이 사라진 나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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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야 천국으로 가렴🕊

강원도 울부모님집에 토토랑 미미랑
강아지가 두마리 있다.있었다.
토토는 남자고 미미는 여잔데
미미가 말썽을 마니 부려서 가끔만 풀어주고
부모님이 두마리 다 묶어 놓으셨다
삼면이 산으로 된 집이라 한쪽옆에 산물 내려가는
또랑 같은곳이 있었는데 꽤 높다
작은 판자 다리를 만들어 두마리를 떨어뜨려서
또랑 건너에 개집이 두개 다 있었다
미미가 임신을 해서 엄마가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끼 낳다 또랑으로 떨어질까봐
아빠께 말씀드려 어제 미미집을 새로 만들고 있다가
볼일 보러 나가시고 엄마는 닭물을 주려고 나갔는데
토토(목이 아푼개인지 원래 짖는 소리가 엄청 작음)가
엄마테 말하는것처럼 갑자기 옆에서 막 짖어대서
미미가 목마르다고 알려주는건가 해서
미미집에 가봤는데 미미가 새끼 한마리는 낳고
아푸니까 또 다른 새끼 낳을려고 몸부림 치다가
또랑으로 떨어졌는데 개목줄이 짧아서
목이 감겨 매달려서 죽었다고 한다.
내가 맘이 아픈건 아직 낳지 못한 새끼들과
새끼도 다 못 낳고 맘도 몸도 마니 고통스러웠을 미미와
목소리가 안나와 알려주지 못한 토토와
이미 낳은 엄마 없는 새끼 강아지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강원도 가면 얼굴한번 제대로 본적없고
촉새처럼 자주 짖는다고 울엄마가 구박만 하고
사랑도 마니 못받아보고 이렇게 죽었다니
너무 미안하고 엄마아빠가 밉다
조금만 빨리 개집 새로 지어주지..
토토랑 빨리 개집 바꿔주지..
자주 나가서 미미좀 봐주지..
왜 내가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찝찝해서 미치겠는지 너무 불쌍해서 미쳐버릴거 같다
그동안 미미랑 울아들이랑 찍은 사진 한장이 없네.
하느님 우리 미미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아멘.
2 3

천적

어두운 카페 안에서 쓰는 글은 탄 원두처럼 텁텁했다. 못해 먹겠다. Y가 한숨처럼 내뱉은 불평도 그런 빛깔을 띠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음… 뭐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솔직히,

나는 약 두 시간 전에 들었던 목소리를 곱씹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총평. G는 내 원고를 읽더니 교수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감평에 딱히 순서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교수님의 전체적인 평으로 시작해서, 그 뒤에 덧붙이거나 동의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던 분위기에 송곳 같은 등장이었다. 후배들은 눈치를 살폈고, 교수님은 이놈 봐라 하는 듯한 표정으로 G를 보았다.

-케케묵었어요. 깔아놓은 복선마다 진부해 빠졌고…. 이건 이제 너무 뻔해서 반전으로 쓰기에도 민망할 수준인데. 그냥 적당히 갖다 붙였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7페이지에서 주인공이 편지 받았을 때 결말 예상 못 한 사람 있어요? 이건 둘 중 하나죠. 독자를 멍청이로 알 거나… 작가가 멍청하거나.

원래대로라면 평을 받아적어야 한다. 그러나 점점 막 나가는 비난에 고개를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딱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눈이 마주치자 G는 가늘게 웃었다.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 되감던 테이프가 거기까지 돌아가자 잠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뒷목께가 뻐근할 만큼 열이 한꺼번에 몰렸다. Y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났다. 

“야 나가자. 안 되는 거 억지로 붙들고 있어 봤자 답 안 나온다.”
“…….”
“가자고. 밥도 안 먹었잖아.”
“…혼자 가.”

기막히다는 듯한 헛웃음이 위에서 떨어졌다. Y는 답답했는지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잔뜩 인상을 구기고 말했다. 

“…나 내일 학회 나갈 거다. G 그 또라이 또 마주치면 진짜 정신줄 놓고 팰 것 같아. …아, 진짜 안 가?”
“안 가.”
“후… 그래 잘 해봐라.”

Y는 홱 등을 돌려 성큼 카페를 빠져나갔다. 나는 원고에 시선을 박아넣은 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속이 뒤집히도록 분했다. 행간 사이사이에 놈의 비웃음이 못처럼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