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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너덜너덜

북북 찢겨지고

자근자근 밟힌

걸레짝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이였으니까.

그래도 결국엔  다시 일어나서 꿰메고

삶아 깨끗이 짜내고 햇볕에 말리러 간다.

네가 어떻게 만들어놨던,

걸레의 주인은 나니까.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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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

따가운 햇볕 아래 달리는 지금의 낮은 현실이다
뜀박질로 지쳐 잠든 지금의 밤엔 꿈을 꾼다
지금의 낮이 저물고 저물고 또 저물고
지금의 밤에 잠들고 잠들고 또 잠들고
아스라히 반짝이는 별의 손톱 끝에
수줍은 태양의 은근한 볼이 스칠때면
침대위에 누워 감았던 내 눈썹 속 세상이
햇볕 아래 내 두발로 서있는 세상이 된다
나의 밤이 
나의 낮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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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나에게 계절은 겨울뿐이라 봄은 꽝꽝 언 눈에 막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여름의 햇볕은 눈을 녹이지 못했다.
그런 내게서 가을은 도망가고 남은 것은 겨울밖에 없어서 몸을 옥죄는 추위에 네가 버티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바라던 계절은 나에게는 너무 따뜻해 나 또한 버티지 못해 뛰쳐나왔다.
그 따뜻함에 입은 화상이 너무나 뜨거워 아무도 이런 나를 볼 수 없도록 차가운 눈에 몸을 파묻고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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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물고기의 창문은 넘실거리는 얇은 수면
어린 새의 창문은 높은 둥지의 작은 구멍
들개의 창문은 수풀과 수풀 사이의 덫
박쥐의 창문은 동굴 안으로 드는 햇볕
세상의 창문은 우리가 세는 것보다 아득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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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알수없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죽어있는 것이 아닐까? 
해는 어느 세 자취를 감추고 거리엔 차들이 개미떼처럼 빽빽하게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경적 소리가 들리고, 성질급한 차는 횡단보도 선을 비죽 튀어나와 보행자들의 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둑어둑한 하늘과 반대로 거리는 온통 불빛으로 가득찼다. 하아-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붉게물든 손을 비벼댔다. 벌써 하이얀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 됐다. 내리쬐던 햇볕에 녹아내릴것 같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순식간에 겨울이 왔다. 찜통에 있는것 마냥 괴로웠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 더 나아야 할 터인데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어찌나간사한지, 이제는 살을 스치는 바람이 따가워 차라리 그 때가 더 나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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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드리

 한 달째 나사 하나가 빠져 있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돌려 입고 아침마다 공들였던 머리 손질도 생략한 채 다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나마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좀 나았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감정 샐 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상사들의 휴가가 겹쳐 사무실 자리 반이 비었는데 딱히 급한 일도 없다. 심심하면 걸려와 사람 미치게 하던 영양가 전무한 영업 전화도 뚝 끊겼다. 거기다 밖에는 날씨까지 화창해 주니 이건 망망한 무풍지대에 고립된 것 같은 환장이었다.
 “……딱 일주일만 안 깨고 자면 좋겠다.”
 아니면 빈사 상태가 되던지. 탕비실에 서서 텀블러 가득 커피를 따르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코 박고 죽으면 과로사로 산재 인정되려나.
 “서 대리님.”
 누가 온 줄도 모르다가 꿈에서 막 깬 사람처럼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U 씨였다. 디자인팀 모 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부하로 죽어가던 팀을 위해 고오맙게도 겨우 하나 뽑아준 신입 사원. 사내 평균 연령을 훌쩍 낮추는, 칙칙한 사무실의 빛나는 형광등. U가 커피포트에 새 원두를 채우면서 물었다. 혹시 오늘 업무 바쁘세요?
 “급한 건 없어요.”
 “그럼 저랑 점심 먹으러 가실래요? 제가 살게요.”
 신입 월급이 얼마였더라. 아무튼 내가 사줘야지 얻어먹을 처지는 아닌데…… 정신 차려 보니 이미 근처의 샤브샤브 집이었다. U는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납작한 냄비에 살뜰히 채소를 잘라 넣으며 얘기했다.
 “저번에 지원해 주신 거 감사해서요. 계속 밥이라도 한 번 사드려야지, 생각했거든요.”
 “음? 아…… 그거. 별거 아니었는데요.”
 디자이너한테 퍼블리싱 떠넘긴 사장이 잘못한 거지, 나한테 감사할 일은 아닌데. 그래도 앞에서 사근사근 얘기해주는 걸 듣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주세요. 이제 제가 할게요.”
 “에이 아니에요. 아, 이거도 드세요.”
 젓가락을 내려놓고 살짝 팔을 뻗었지만 그는 끝까지 가위와 집게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릇이 한가해지면 고기를 올려주고 마지막 코스로 죽을 먹을 때도 나에게 한 국자를 더 퍼줬다. 투철한 막내 정신일까 원래 성격일까. 어느 쪽이든 그래서 다들 예뻐라 하는 거겠지. 아직 몰라서 실수는 좀 해도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고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작년까지 같은 회사에 다니다 이직한 그 누구는 좋게 돌려 말하면 대기만성형,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답답하고 어리바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착하고 순박했다. 사람은 좋은데 자꾸 혼나는 게 안쓰러워서 몇 번 도와준 게 만남의 시작이 되었고, 그는 눈 돌리지 않고 평생 나만 볼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 무구함을 멋대로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의 방심도 섞여 있었다. 멍청했지. 알고 보니 그 착하고 순박한 사람은 이직 이후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내 집에서 나가던 날, 그 개새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한테 사랑이 남아있기는 했어? 나는 그가 쥔 24인치 캐리어가 기가 막혔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지런했다고 자기 짐만 바리바리 챙겨놓았을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가 되는 것은 그 못난 얼굴을 흠씬 때리지 못하고 바보같이 보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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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는 내가 살게요.”
 양껏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선 건 좋았는데, 근처의 카페들은 이미 만석에 거리에도 사람이 차고 넘쳤다. 얼른 커피만 받아 밖으로 나온 우리는 하릴없이 회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날이 좋아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잖아. 잠깐 괜찮았던 기분이 다시 내려간다. 그냥 들어가자니 아쉽고 인파에 치이기도 싫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을 때였다. U가 나를 살짝 잡아끌었다.
 “대리님. 여기 들어갈까요?”
 “……여기요?”
 회사 근처의 동전 빨래방. 재미없는 농담인가 했는데 U는 정말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더니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토닥인다. 얘 뭐지… 어정쩡한 기분으로 일단 앉았다.
 “저 밥 먹고 산책하다가 가끔 여기 오거든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저기 세탁기 돌아가잖아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되게 마음 편해져요.”
 그래서 취향 존중이라는 게 있고… 이제 보니 좀 도라이인가… 잠깐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곧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았다. 벽면을 채운 커다란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잔잔한 백색소음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주선 창문처럼 동그란 유리문 너머 색색이 뒤섞이는 이불과 베개와 옷가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한 섬유 유연제 냄새.
 “U 씨. 저 오늘 출근하다가요.”
 “네.”
 “회사 무너지라고 빌었거든요. 근데 오니까 괜찮네요. 한가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U가 웃는다. 저도요. 커피를 내려놓고 U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끔히 닦인 유리 벽으로 가장 높은 태양 빛이 쏟아졌다. 시야를 전부 지워버릴 것 같은 정오의 햇볕. 뭉그럽고 간지러운 것들이 솟아난다.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손바닥 안에 가득 잡힐 것처럼. 다 타버렸다고 믿었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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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목소리

"안녕하세요."
 길 모퉁이 식당 앞을 지나치며 본 그 붉은 치마의 여성은 몇초만에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게 아름다웠다. 붉은 치마와는 대조되게 푸른 눈동자와, 옷과 조화를 이루는 빨간 입술, 투명하게 빛나는 하얀 피부. 모든 것이 한데 섞여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녀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다가와 인사를 건네면 내가 생각해보아도 수상한 사람일것이라는 느낌이 먼저 와 닿을것 같았다. 그렇기에 발 걸음소리를 줄여, 등 뒤에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기는 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한 번 거절당하고 나니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그녀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비키세요!"
 그녀 앞으로 웬 빨간 자전거 한대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정말로 그녀는 다른 곳에 한눈 팔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건넸던 인사처럼 자전거를 몰던 사람의 말도 듣지 못했다보다. 생각보다 가녀렸던 그녀는 자전거에 살짝 치여 카드탑이 쓰러지듯 가볍게 넘어졌다. 
"괜찮으세요?"
 그녀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 한 마디가 인사가 아니게 되었지만 우선은 이 가녀린 여인을 부축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 손을 잡고 고맙다는 뜻(으로 해석하겠다)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넘어지는 바람에 살짝 헝클어진 머리가 어디선가 불어온 하늘의 입김에 나풀거렸다. 미소를 지으며 살짝 감은 눈은 꽃잎 두 장이 겹쳐진 것 같았다. 잠시동안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자니 마음이 황홀해지는 듯 하였다. 그때였다.
 "아씨 괜찮으십니까!"
 건너편 도로에서 작은 마차 하나가 길에 멈춰서더니 뚱뚱하고 머리가 희끄무레한 한 남자가 내렸다. 그 남자는 이쪽을 쳐다보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치며 달려왔다. 
"아이고 아씨.. 부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저희 아씨가 조금 몸이 연약합니다. "
"아닙니다. 그저 아름다우신 분의 얼굴에 흠집이라도 날까 하여 도와드린것 뿐입니다. 클레어라고 불러주십시오."
"클레어 아가씨. 감사합니다."
그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해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몇 명을 마차에서 불러 그녀를 부축해갔다. 
"아, 저 한가지 질문 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질문이시죠?"
"아씨께서 제가 인사를 드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
"아아.
저희 아씨께서는 목소리가 들리지도, 나오지도 않으십니다.

"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는 언덕 너머의 작은 오두막에서 요양중이라고 하였다.전에 나들이 갔다 본 적이 있는 집이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에 생각했다. 다음에 아씨께 가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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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

 햇살이 쏟아지는 날. 푸르른 풀잎들도 하얗게 보이던 날. 그녀는 단 한 톨의 세상도 담겨있지 않은 하얀 재가 되었다. 완전히 연소되어 티끌만큼의 검댕도 남지 않은, 햇빛처럼 눈이 부시도록 하얀 재가 되었다.
 그녀는 햇볕이 쏟아지는 날 그저 그곳에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보는 그녀는 그저 한 송이의 해바라기와도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온몸을 덮는 햇살을 탐닉했다. 눈을 뜬 그녀가 나를 돌아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떨림에 나는 그만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녀는 햇살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안녕"
 그 날 이후 나는 그 공원을 찾아갔다. 그녀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눈을 감고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을 때쯤 나를 돌아봤다.
 "안녕."
 그녀는 붉은 얼굴과는 다르게 푸르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녀는 푸르렀다.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붉음은 오로지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비롯한 얼굴뿐. 그녀는 마치 햇빛으로 자신의 푸르름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하고 있냐는 말에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시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햇살이 좋아서."

 매일 공원으로 찾아오는 내게 그녀는 언제나 푸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푸르다 못해 청량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녀는 언제나 햇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햇살을 받으면 그제야 심장이 뛰는 것 같아. 봐봐. 심장이 뛰니까 얼굴이 붉어지지? 사람은 햇살을 받아야 돼. 그래야 살아있는 거야."
 "햇살을 온몸에 쬐면 내가 정화가 되는 느낌이야. 몸 곳곳에 있는 더러움이 다 산화되는 것 같아."
 "그거 알아? 사람은 햇살을 받아야 몸에서 비타민 D를 합성한대. 그래서 햇살을 받지 않으면 지치고 우울해지는거래. 신기하지 않아?"
 "햇살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를 지나서 지구까지 도달을 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니 나는 상상조차 안 돼. 아무것도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어느 날 찾아간 공원에서 눈이 부시도록 흰 옷을 입은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충만한 햇빛을 받아도 더이상 붉어지지 않는 그녀의 볼은 마치 얼음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내 소원은 햇살이 되는거야."
수줍게 키득이며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나도 햇살처럼 깨끗해지면 좋겠어. 눈이 부시도록 빛나면 좋겠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햇살처럼 아무것도 없는 우주마저 지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말을 마친 그녀는 내 손에 흰 쪽지를 쥐어주곤 떠났다. 하얀 쪽지에는 그녀처럼 푸르름이 묻어있었다.
 쪽지에 적혀있던 날, 쪽지에 적혀있던 장소에서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마지막 만났던 날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햇살처럼 빛나게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난 이제 햇살이 될거야. 햇살이 되면 눈이 부시도록 빛나겠지. 햇살이 된 나는 어두운 우주를 지나서 싱그러운 이 지구에 도달할 수 있어."
 그녀는 연소했다. 그녀는 완벽하게 깨끗하고 새하얀 한 줌의 햇살이 되어 태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찾아간 공원에서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제 막 우주를 지나온 햇살들이 가득 쏟아진다. 시리게 빛나는 햇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