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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우리가 무언갈 하든 하지 않든 계절은 돌아온다. 변함없는 건 돌아온다는 사실 뿐이고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는 그도 매번 바뀌었다. 우리가 뭘 하든, 여름은 돌아온다.


관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미 완전히 망가진 것이었지만 그나마도 가짐과 아예 없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습게도 그랬고 나는 그대로 소리내어 웃었다. 이까짓게 뭐라고 공허함이 느껴지는지, 심지어는 아쉬워지는 건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 웃었다. 어느 순간부터 네 웃음소리가 겹쳐들렸다. 영락없는 비웃음이라 나는 웃음을 뚝 그쳤다. 매미소리가 방 안을 메우고 있다. 창에 들러붙었는지 유난히 시끄럽다. 크게 착각한 수치를 느끼고 싶어도 주변에 널린 건 먼지와 쓰레기 뿐이었다. 감정이 존재하려면 관계가 우선이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감정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세상은 닭과 달걀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절이 왔음을 알 수 있는 몇가지 단서가 있다. 가령 사람들은 서늘한 밤에 낙엽이 지면 가을이 온 줄 알았다. 눈이 오면 겨울이 온다. 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엔 늘 네가 그렇게도 좋아한 덕에 매일 꽃이 꽂혀있었으므로 나는 봄을 모르고 지나갔다. 밖에 나갈 일 없으니 가을바람을 맞을 새도 없었고 다만 느껴온 건 여름과 겨울 뿐이다. 차갑고 맛없는 도시락을 세 숫갈 겨우 들고서 무료하고 무기력하게 방 바닥에 엎드렸을 때. 바닥이 습기로 끈적거리면 여름이었고 대리석처럼 차가우면 겨울이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가지가 달라졌다. 아버지가 떠났고 네가 죽었다. 내가 바닥에 납작 들러붙기도 전에 여름은 시작해버렸고 매미가 울고 있었다. 의식하고 나니 귀가 따가워 나는 신경질을 내며 발로 창문을 걷어차 매미를 날려버렸다. 그새 움직였다고 열이 오르는 몸을 식히려 그나마 서늘한 벽에 몸을 기대 앉았다. 노이로제처럼 멀거니 매미소리가 들렸다. 집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다. 부채도 없었다. 매년 여름은 더더욱 더워졌다. 그는 늘 스스로와 싸움을 했고 늘 이겼다. 아직은 초여름이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이 방 안에 통째로 갇혀 열병을 앓을지도 모르겠다. 나가지 못한 열이 내게로 들러붙은 채로 겨울을, 아니면 나는 모르는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 


여름이 왔다. 공기가 눅눅하게 무거워지고 더는 시원한 바람을 맞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눅눅한 열에 갇히다 보면 어느 순간 여름이라 한다. 나도 전엔 사계절을 모두 알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엔 가을 겨울이 되면 여름의 생기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선명한 색상으로 파란 하늘에 맴맴 울리는 소리를 그리워했다. 이제서 아무 의미 없는 그리움을 떠올리는 건 더위를 먹어서일까. 여름은 생각만큼 파랗지 않다. 눈오기 직전 구름 낀 하늘보다 더 흐리고 잿빛이다. 땀이 차 들러붙기 시작한 겉옷을 벗었다. 흰 양말은 여전히 짝짝이었지만 어째 벗을 생각을 않는다.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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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침에 비가 오는 날이면 너를 생각한다. 너는 비가 오는 날을 싫어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했다. 너는 매일같이 고양이를 만나러 나가면서도 비가 오면 집에서 꿈쩍도 안했다. 결국 그 정도였다. 집안이 눅눅하다. 밖에 널어둔 수건은 젖어가고 있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너처럼. 
바로 일주일 전에도 비가 왔다. 너는 바닥에 웅크린 채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나는 듣지 않았다. 어차피 너는 외출하지 못할 날씨를 불평하고, 늦은 아침을 생각하고, 끝내는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잠이 들테다. 비가 오면 너는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처럼 매번 같았다. 지금은 내가 그렇다. 너와 살던 집을 떠난지가 오랜데 나는 아직 그 집에 있다.
네가 나를 원망할 때는 부지기수였다. 너는 별것 아닌것에도 화를 내고 물건을 던져 부수다가 -가령 잼 병에 그려진 딸기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이유로- 끝내는 힘겨운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 작고 마른 몸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날 수 있었을까. 피를 토해낸대도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네가 울기 시작하면 나는 방에 들어가서 문 앞에 앉았다. 처참하다.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그래도 담요만 뒤집어쓰고 고스란히 그걸 듣고 있었다. 그건 전부 나의 죄이고, 아버지의 죄이고, 또 너의 죄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
나는 네게 거짓말을 했다. 네 원망은 항상 그것으로 끝났다. 속죄할 수 있는 죄가 우리에겐 없었다. 애초에 뉘우쳐서 사라질 수 있다면 그걸 죄라고 해도 되는 걸까. 너는 내게 사과를 바라지 않았다. 나도 네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내 죄의 벌은 충분히 받고 있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정리는 네가 할테니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언제든 너는, 그 깨진 접시 조각을 들고 내 방에 들어와, 잠든 나를 조용히 죽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두려움 속에 살았다. 동시에 그 날만을 기다리고 살았다. 하지만 사실을 안 지금까지 너는 단 한번도 나를 찾아온 적 없었다. 너는 언제쯤 나를 죽이러 오나. 나는 매트리스에 몸을 누이고 이제는 없는 너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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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혼자 남은 나는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어제 너는 처음으로 사실만 말했다. 아니, 아니다. 어제도 결국 거짓말을 했다. 사실을 접하고 나야지 비로소 네게서 거짓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된다. 그 전까지 내가 진실로 안 것이 거짓이고 그럼 진실은? 하고 돌아본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까지 깨달은 내가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놀랍도록 내 생활에 변화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방에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빵을 찾아 먹고, 아저씨가 부르면 너와 셋이서 또 맛없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고, 화가 나면 접시를 깨다가 울면서 깨진 접시를 치우고, 손이 베여서 또 울고, 웃고, 말하고, 생각하고, 자고, 울고, 먹고, 자고...
내가 이 집에 남아있는데에 의미가 있나. 생각이 문득 말로도 새어 나왔다. 너는 왜 이제야 사실을 말하나.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이미 목소리를 타고 말이 되어 나온 것은 주워담지도 못한다. 설령 틀리기라도 하면? 이런 것 하나도 두려워하는 나는 이미 틀렸다.
고양이를 보고싶다. 우울한 노래를 듣고 싶다. 무릎으로 먼지쌓인 바닥을 기어가 방구석에 있던 고장난 라디오를 틀면 안에 의미없이 들어있던 CD가 헛돈다. 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분다. 비가 온다. 고양이는 뭐하고 있을까. 비오는 날은 싫다. 나갈 수 없다. 매일 가는 꽃집은 오늘도 문을 열겠지만 나는 못나간다. 못간다. 애초에 내가 이곳에서 나간 적은 있었나. 나는 잠깐의 외출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너는 여전히 네 방에 있고,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어딘가로 무언가의 일을 하러 나갔으니 분명 나를 붙잡은 건 없는데도. 나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건 또 두려워서다. 나 자신에게 환멸이 난다. 이래서 비가 오면 싫다. 나가지 못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내 생각이란 보통 자학 아니면 원망으로 끝났다. 
고양이를 보고 싶다. 그냥 네가 싫어하는 걸 보고 싶다. 너는 뭘 싫어하더라. 애초에 내가 널 싫어해서 알고 있을리가 없다.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바닥에 얌전히 누워있으니 이건 네 소리일테다. 나는 꽃병 빼고 전부 깨고 부순다. 너는 꽃병만 깬다. 네 표정이 보고 싶다. 오늘은 -오늘 꽃집을 못갔으니 정확히는 어제- 바이올렛을 꽂아놨었다. 너는 꽃도 꽃말도 싫어하면서 꼭 한번씩 검색해보더라. 웃기지도 않아. 
바이올렛의 꽃말은 영원한 우정이다. 역겹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일부러 네 방에 꽃병을 들였다. 너도 나랑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문득 내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져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도로 누웠다. 거울은 그저께 내가 책을 던져서 깨버렸다. 거울의 틀 주변에 조금 남은 조각만으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대신 손을 올려 얼굴을 더듬어본다. 비죽 올라간 입꼬리가 만져진다. 그제야 나는 만족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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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이왕에 죽는다면 익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끝까지 빠짐없이 잠겨서 내 옆을 흐르는 물이 눈물인줄도 모르고 다만 맘놓고 울었으면 했다. 그렇게 말했더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듣고 있던 너는 말없이 방에 들어갔었다. 어차피 네 대답은 필요없었다. 애초에 네가 죽을 방법을 선택할 기회도 나는 줄 생각이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이 집에서 오로지. 너는 내게서, 그나마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걸 망가뜨렸다. 빼앗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빈 손을 내려다보다 네게로 고개를 돌리니 너는 애초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내게서 가져갔다고 생각했던 것도 전부 발치에 부스러져있었다. 너는 그저 내게 저와 같은 기분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일테다, 아마. 거기서부터 너는 이미 내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으니 나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상대가 내게 못된 짓을 했다고 해서 똑같이 되갚아준다면 나도 같은 사람이 되는거예요,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내게 죽고 싶을 만큼의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돌려주지 않으면? 비참해서 비참해서 거울을 깨던 그 때의 나를 아는 건 나뿐이다. 구제하려면 나밖에 없는데 용서하란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라는 말은 확실히 잘못되었다. 나는 살아있는 내내 모든 시간을 너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며 보낼거다. 어떻게하면 이 기분을 네게 몇배로 돌려줄지 고민하며 살거다. 
네가 이 모든 생각들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조금쯤은 미안해하려나. 그게 그렇게 역겨울수가 없는데도 한편으로는 기대되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사실 일기를 쓸까 생각해봤지만, 굳이 글로 남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그만뒀다. 이런 건 그냥, 흘려버리면 된다. 뇌리에서 중얼거리며 맴돌다가 어느순간 밀려오는 잠과 함께 흐릿해지면 그만이다. 오래 담고 있을 이유도 없고, 내일이면 또 새로운 감정과 생각이 생겨날테고.
정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 버릴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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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끝났다. 내가 끝냈다. 오랜 거짓말과 거짓웃음과 거짓눈물, 거짓감정, 어설프게 흉내낸 자비와 배려. 이제는 필요없다. 심지어는 그토록 열렬하고 서투르게 추구해온 원망마저도 나는 그만두었다. 이렇게 간단하다. 나는 네게 모든 걸 내보였고 그건 겨우 스물 몇줄 정도의 문장으로 간추려졌다. 그보다 많을수도 있지만 그 이상은 네게 제대로 들리긴 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끝났다. 너도 나도.
네게는 어리석고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믿음은 너와 나의 관계를 친구라는 단어에 밀어넣고 우정이라는 감정을 키워왔던 것인데 어리석다. 그 모든 일은 너 혼자 해낸 일이고 혼자라는 건 너와 내가 결코 친구도 우리도 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같이, 함께, 너를 위해서. 웃음만 나온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철저히 타인이다.
네가 울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뛰쳐나가 칼이라도 들고 올지도. 그럴까봐 식칼은 어디 구석에 잘 숨겨두었다. 화를 낼까? 때릴까? 뛰어내릴까? 기절할까? 전부 틀렸다. 너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내가 예상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그대로 소금기둥이 된 마냥 굳어있었다. 나는 계속 기다렸지만 혹시 죽었나 싶을 정도로 네가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금방 지루해져 그냥 방을 나와버렸다. 어쩌면 네가 맛본 그 감정이 네게 있어 처음이라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랬더라도 나는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럴수도 없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친구라고 했다. 우리, 이제, 친구지? 3마디. 친구로, 남아있어, 줄, 거야? 또 4마디. 전부 네 말이다. 처절한 외로운 네 어리광이다. 너를 동정했다. 그보다 더 많이 원망했다. 네게 있어 나는 친구일지 몰라도 내게 있어 너는 끝까지 소중한 타인으로 남아있어야만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관계에 내가 소비할 감정과 생각은 더 이상 없고, 앞으로는 네가 방향이 다른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쏟아부을 테다. 간혹 내가 그랬듯이. 매트리스에 누워 흐릿한 천장을 보았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그대로 나였다. 그저 빈 껍데기다. 나비가 빠져나오고 방치되어 마른 번데기다. 원망이 떠나고 나는 남겨졌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절망이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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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오늘도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려서
만사가 귀찮은 마음에 느지막하게 걸어오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니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해가 그리도 반짝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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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날씨 좋은 날 기분좋게 커튼을 걷어낼 때
파아란 잎사귀들이 따스한 햇빛에 반짝일 때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팔랑거리는 옷들이 옷장 구석에서 탈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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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우리는 가을
가을은 우리
따뜻한 너는 여름
시린 나는 겨울
둘이 섞여서 가을
덮지도. 춥지도 않은
딱좋은 계절
때로는 더워 땀이나고
가끔은 추워 덜덜 떨어도
가을 만큼 완벽한 계절은 없다
나에게 너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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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봄은 겨우내 안 보이던 생명들이 돋아나는 게 보여서 '보다->봄' 같고
여름은 한자어가 우리말화 되어 '열熱음->여름'이 된 거 같고
겨울은 모든 것이 얼어붙고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이니
'결結/決'에서 파생된 거 같다는 생각. 즉, '결->겨울'.
그런데
가을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럴듯한 생각이 안 떠오른다.
'가을'에 대한 나만의 어원 유추해보는 어느 가을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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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계절마다 해야한다는 것들이 있다. 봄에는 꽃구경, 가을에는 단풍구경 따위의 것들이다. 남들은 다 하는것들. 덕분에 나는 매 계절마다 무력감을 느낀다. '올 여름도 다르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또 울적해진다. 작년 여름도 올여름도 다르지 않는걸 보면 내년도 똑같을 것 만 같아 익숙한 무력감이 든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됬는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상상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것은, 죽기전에는 오늘과 같은 후회를 할 것이란 것이다. 산다는건 참 피곤한 일이라고 새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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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겨울

가을이 왔다 싶었는데, 벌써 겨울인 듯 하다.
사는 것도 다를 바 없다.
태어났는가 싶었는데, 나이만 먹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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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름 빛 바람이 붉게 변하고
나무와 나뭇잎이 서로에게 작별을 고할 때
나는 차갑고 높은 하늘을 본다.
아직 나비가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직 매미가 우는 줄 알았는데
정신차려보니 그게 아니었더라.
나비도 가을 하늘 높이 날아가버리고
매미도 새로운 인연을 맺고 땅으로 떨어졌다.
나도 땅으로 바다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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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벌써 가을이야?
내 마음은 아직도 지난 겨울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