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메뉴

콜롬버스와 국정교과서

페북에 임승수님이 쓰신 글인데 아래와 같이 글이 시작되어 퍼왔습니다.


** 침통한 심정으로 썼습니다.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세대에는 콜롬버스가 신대륙(남미)을 발견했다고 교과서를 통해 의심의 여지없이 배웠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에 대해 다룬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을 쓰면서, 남미라는 지역을 좀 더 내재적 관점에서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콜럼버스가 소위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것을 했을 때, 남미에는 이미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발견’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단어는 남미 지역에 이미 살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졸지에 김춘수의 꽃으로 만들었다. 콜롬버스가, 그리고 스페인과 서양이 이름을 불러줘야만 의미가 있는 존재들. 만약 콜럼버스가 남미가 아닌 조선에 왔다면 조선이 ‘발견’되는가? ‘발견’, 이 얼마나 오만한 단어인가. 사실은 두 문명의 만남일 뿐인 사건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존재로 취급당했다.


수천만 명에 달하던 사람들(선주민)의 수가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사에 다시없을 천인공노할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채로 사람을 굽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죽이는 짓거리들이 백주대낮에 태연자약하게 벌어졌다. 콜롬버스는 어떤 부족이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손목을 다 잘랐다는 얘기도 있다. 황당하게도 이런 콜롬버스를 어린이 위인전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이 희대의 대학살 사건을 ‘신대륙의 발견’으로 배웠다. 우리가 스페인 사람들도 아닌데. 영미권과 서양으로 유학해 세계사를 공부한 ‘한국인’들이 그들의 뇌에 박힌 시각과 관점을 고스란히 우리나라의 교과서에 담아놨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 전 국민은 그동안 외눈박이가 된 것이다. 우리가 최소한의 인류애적 양심이 있다면 어찌 이 비극적 대학살을 미화하고 콜롬버스를 위인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정부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역사에 관해 정부가 정한 한 가지 얘기만을 들려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소한의 양심 찌꺼기라도 남아있는 학자들이라면 모두가 이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학문을 하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확실하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특정한 세력의 ‘관점’이 투영된 ‘사실의 일면’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실체적 사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에 관계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특정 세력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전 국민의 사상적 노예화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간들을 찍어내겠다는 파쇼화에 다름 아니다. 현재의 권력을 통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틀어쥐어 미래를 자신들의 것으로 확보하겠다는 이 무시무시한 시도에 필자는 그저 몸서리가 쳐질 뿐이다. 정말 나쁜 정권이다.


원글 링크 : https://www.facebook.com/chamworld/posts/10208236763662006?fref=nf

어디서 왔지?
[["synd.kr", 5], ["unknown", 514]]
다른 글들
1 0

상처

상처는 발견 하고 나서부터 아프다. 하지만 발견하기 전에도 상처는 그 자리에 있었다.
2 1

아버지와 나

내가 어릴적 즐겨 듣던 노래 [아버지와 나] 신해철(NEXT)
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나갈 길은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난, 창공을 나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마중 나갈 것이다.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0 0

보물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보물은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수만가지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집이 될수도 있고, 차가 될수도 있다.
재능이기도 하고, 지식이기도 하다. 또는 건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보물이 있다. 게다가 난 그 보물을 이미 곁에 두고 있다.
햇살이 이리도 따가운데도 지칠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딸.
또래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 노는 모습이 마치 토끼가 깡총깡총 춤을 추는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는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슬쩍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아이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40분이었다.
슬슬 소아과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아이와 함 께 병원에 가봐야 했다.
왠지 아이의 행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예약 시간에 제때 가지 못하면 진료시간만 더더욱 늦어질 것이었다. 아이도 병원에 있는걸 싫어하니 매도 일찍 맞는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에 갈 시간이다. 이제 그만 준비하자꾸나."
아이는 뜀박질을 멈추었다. 더 놀게 해달라며 눈으로 호소하듯이 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는 듯 순순히 내 말을 따라주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나게 웃고 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이가 느릿느릿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꺼냈다.
"이따 병원 갔다 와서 맛있는 초콜릿 사줄게."
"...몇 개?"
"음... 두 개?"
아이의 반응은 덤덤했다.
"좋아, 아빠가 인심 썼다. 세 개!"
아이는 하는 수 없나, 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만족스러워 했다.
"네? 정밀 검진이요?"
"예. 사진으로 보면 아이의 순환기 계통에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진행해보고 진단을 내려야겠습니다."
병원 대기실에 우두커니 선 채 의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
순환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 즉, 아이의 심장에 문제가 발견되었단 말인가?
"아, 일단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심장 쪽에 무언가 미세한 입자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세한 것은 검사를 더 진행해..."
믿을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매 환절기마다 골골거릴 때 같이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심장병이라니, 있을 수가 없다.
의사는 자기 얼굴을 보는지 허공을 보는지 모를 나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려 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이미 새하얘질 대로 새하얘져 있었다.
그저 방금 전 공원을 나서며 아이와 한 약속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2

화약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요즘 희노애락을 겪는다.
특히나 2화에서는 여러가지 공감을 하게 되면서, 막혔던 수문이 열렸다.
첫 장면은,
학교에서 전화를 받는 덕선이의 모습니다. 나는 물론 더 꼬마일 때 전화를 받았고, 혼자서 대구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할머님은 살아계셨고, 내가 도착해서 할머니를 보고 손을 잡았을 때, 그 눈물. 그리곤, 바로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난 엄청나게 울다가 기절을 했다. 그 장면과 모든 씬들이 오버랩이 되면서 아줌마 모드로 스위치가 바꼈다. 
두번째 장면은,
상가에서 울지 않는 상주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빈소에서 짧지만 긴 시간 동안 등을 땅에 대지않고, 눈을 감고 자지 않았다. 아버님을 기억하는 내 지인들의 방문을 술로 맞이하고, 나를 위로하는 지인들과 끊임없이 술을 마셨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의연했다. 하지만, 결국, 아버님을 산골터에 모시고 돌아온 더 이상 아버님의 집이 아닌 곳에서 트리거가 당겨졌다. 속에 품었던 화약에 불이 붙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감정이 폭풍을 겪은 후에 집에 돌아와서 몇일동안 죽음과 같은 잠을 잤다. 
그 이후론, 쓸데없는 곳에서 트리거가 자주 작동을 한다.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회로인 듯 하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그렇게도 불이 붙지 않는 발화점이 엄청나게 높은 감정의 화약인 듯 하다. 
성동일이 형을 만나서 오열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난 아버님이 남겨놓으신 노트를 발견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노트를 남기지 않는다.
2 2
Square

간접연애

며칠 전부터 보기 시작한 네이버 웹드라마 <시크릿 메세지>. 남자 주인공은 빅뱅의 탑, 여자 주인공은 일본의 여배우 우에노 주리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각자 지난 사랑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던 두 남녀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인듯하다. (드라마 진도상 아직 사랑까지는 아니고 조금씩 썸을 타는 단계인듯?)
빅뱅의 탑이 노래뿐 아니라 연기도 하는지는 몰랐는데, (사실 관심이 없어서 빅뱅의 탑이라는 건 드라마 소개를 보고 알았다. ㅋㅋ)연기를 잘하는지는 몰라도 역할에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우에노 주리라는 매력적인 일본 여배우를 발견했다.
아직 두 남녀는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얼굴도 모르는 상태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그런데...
난 언제부턴가 멜로 드라마(영화)를 볼 때마다 간접연애를 하고 있다. 드라마로 하는 간접연애.
언제쯤 간접연애 말고 직접연애를 해볼 수 있을까.
1 1

자! 지금 당신은 씬디의 QA!

추석연휴와 2년만에 휴가라는 개인사가 있어서 작업을 적절한 사이즈로 잘라내는데 실패함. 장시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긴급수정 내용이 수시로 포함되고 개발했던 코드도 시간 지나고 다시 보니 또 수정해야겠고, 수정하고 보니 기존 패턴과 달라서 기존 코드도 부분적으로 리펙토링하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서 이번 업데이트에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다 까먹음 ㅇㅇ. 까먹을만큼 자잘한 사이즈긴한데 꽤 중요한 수정들이 있었던게 문제. 그래서 오류가 꽤 있을 수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뭔가 이상한 오류나 버그를 발견하면 갖은 방법으로 이를 알려주기 바람.
애니웨이, 이번 업데이트는 원래 "파일첨부" 였음.
에디터 툴바에 종이클립 모양으로 기능이 추가됐음. 그런데 이거 작업하다보니 에디터에 삽입되는 멀티미디어(사진, 유튜브 영상, 각종 iframe)의 추가적인 콘트롤이 불가피해짐. 특히 씬디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수정불가 속성의 figure 태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멀티미디어가 위아래로 붙어버리면 그 사이에 라인을 삽입할 수 없거나, 삭제가 어렵고 HTML 레벨에서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마구마구 발생! 뭐.. 대충 다 때워놨음. 고장난거 있음 알려주기 바람.
그리고 헤더나 인용, 코드 단락의 설정을 단축키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음. 예를 들어 ctrl+h 단축키를 계속해서 누르면 H1, H2, H3, P 순서로 단락 스타일이 변경됨. 단축키는 상단 툴바에 물음표 아이콘으로 확인 할 수 있음. 
아.. 그리고 사진 업로드할 때 orient 정보 있으면 적용되게 수정했고 또 뭐 했더라... 정말 기억안나네... 모르겠다. 끝!
2 0
Square

자바스크립트 - 넷스케이프부터 jQuery 까지

테크 전문 매체에서 자바스크립트를 "한때 우스운 언어였던" 이라고 표현한 글을 보고 넷스케이프부터 nodejs 까지 간략하게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09년 시작된 nodejs 는 다른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자바스크립트는 웹브라우저에서 프론트엔드의 동적인 구성과 사용성 확장을 목적으로 1995년 처음으로 넷스케이프에 탑재된 스크립트 프로그래밍 언어로 넷스케이프 직원이었던 브랜든 아이크가 개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mocha였고 LiveScript 라는 이름을 짧게 거치며 현재의 Javascript가 됐다.
이 후 십여년간 "자바"와는 무슨 관계냐며 이유없이 욕도 많이 먹었지만 묵묵하게 웹브라우저에서 알럿창을 띄우며 훗날을 기약했다. 열심히 일했다.
브랜든 아이크가 LiveScript에서 JavaScript로 이름을 바꿀 때 최고의 인기언어였던 Java의 유명세를 의식했다는 얘기도 있으니 이유없이 먹은 욕은 아닐지도...
2002년 발명된 - 겸손한 더글라스 크락포드는 이를 발견이라고 했다 - 데이터 표현방식인 "JSON"은 사랑의 큐피트가 되어 몇몇 훌륭한 개발자들을 자바스크립트와 진하게 엮는데 성공한다.
2004년 "Web2.0" 광풍과 클라이언트-서버간의 비동기 통신 방식인 "AJAX"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자바스크립트는 웹개발의 필수요소로 떠오른다.
작은 문제라면 당시 대중적인 웹 브라우저들이 AJAX 를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했었고 비동기 통신의 결과를 화면에 갱신하기 위해 필요한 DOM 검색과 선택 방식 역시 제각각이었다는 점.
이런 브라우저간의 문제는 2005년 Prototypejs를 시작으로 jQuery, script.aculo.us, MooTools, ExtJS, Dojo, YUI 등의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의 개발로 이어진다.
한참 시절엔 라이브러리 로고로 a4 한장을 채우고도 남았었다.
이 후 몇 년간 계속해서 새로운 라이브러리들이 개발됐고 각 라이브러리들은 DOM Selector 의 성능이나 자바스크립트 객체에 대한 철학과 디자인 패턴, 더욱 미려하고 부드러운 사용자 화면 효과 등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
몇년에 걸쳐 jQuery가 승자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지면서 javascript 는 다시 한번 웹(모바일웹) 개발 필수 언어로 자리잡게된다.
이후의 싸움은 nodejs가 불을 지핀 자바스크립트 플랫폼 또는 프레임워크의 싸움으로 AngularJS, Backbone.js 등의 선수들이 등장하는 더 큰, 하지만 조용한 싸움으로 nodejs 를 다루며 얘기해보겠다.
0 0
Square

바다

가고 싶다
가서 보고 싶다
가슴이 시원해진다던대.
0 0
Square

먼지

내가 먼지지.
왜 있는지.
뭘 하는지.
뭐든 먼지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