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삐이이이-
어디선가 싸이렌이 울리는가 했지만 주위는 그저 제할 일을 열심히 하느라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은 사람들뿐이었다. 항상 있던, 단순한 내 고질병이었다. 뭐, 현대인들은 누구나 갖고있는 그런 흔한 병일뿐이니 그걸 가지고 유난을 떨기도 우습고, 그냥 끊이지 않는 귀따가운 그런 소리에 약간 짜증을 내며 귀를 비비는 그정도에 그치는게 딱이었다. 사라지지 않는 끊임없는 싸이렌 소리에 마찰때문에 발생한 열까지 합세하여 내 귀를 더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젊지도, 나이가 많지도 않은 서른다섯. 키도 어중간, 몸매나 외모도 어중간한 나는 그야말로 어중간의 중점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가서 자랑할 거리도 없었지만 흠잡을 거리도 없었다. 그냥저냥 내게 맞는 적당한 중소기업에서 부장의 잔소리를 견디며, 퇴근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도 없이 회사랑 그럭저럭 가까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늘어져 티비나 보는 그런 어중간한 일상이었다. 다만 매일 비슷한 하루속에 달라지는 것이 딱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명이었다.
젠장…
그나마 건강도 어중간히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게 위안거리였는데 점차 그 위안거리도 사라진다는게 암담했다. 아니, 중점인생을 벗어나는건가? 시덥지 않은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은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니터 화면에 고개를 처박았다. 앞으로 퇴근까지 채 30분도 남지 않았고, 야근할 거리도 없으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며 캔맥주 하나라도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회사에서 빠져나오며 나는 회사에서 5분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2+1행사를 하는 과자와 맥주 두 캔을 계산했다. 집 주변엔 편의점이 없으니 집에 가는 동안 맥주가 미지근해지더라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골목으로 걸어가는 동안 쉼없이 바스락거리는 편의점 봉지보다 더 거슬렸던 것은 아까 낮에 들렸던 것보다 훨씬 크고 선명한 이명이었다. 낮보다 더욱더 신경질스럽게 귀를 문지르던 나는 갑자기 봉투를 든 왼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봉투를 떨어뜨림과 동시에 맥주캔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고 나는 속으로 욕설을 씹어삼키며 맥주를 줍기 위해 몸을 수그렸다. 그 와중에도 끊이지 않는 이명은 이제 귓가에서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맥주캔을 주우러 손을 뻗은 순간 번쩍거리는 밝은 빛이 내 옆 얼굴을 비췄고, 그 빛을 마주한 나는 영화 어딘가에서, 드라마 어딘가에서 들었을법한 심박수가 0이 되는 삐이이이- 하는 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서 날카롭게 울부짖는 것을 느꼈다. 자동차의 클락션소리, 부릉거리는 엔진소리, 다급하게 외치는 차주의 비키라는 소리를 모두 잡아먹은 그 이명은 이제 나를 잡아먹기위해 내 귓가에 입을 벌리고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