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메뉴

폭풍전야

태풍이 휘몰아치기전 하늘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조용하게 빛나곤하지,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빛나던 하늘은 검게 변하고 비와 바람을 보내지,

우리도 그래,

티없이 사랑했지만 곧 그사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정없이 메마르곤 하지,

지금 그래 우리,

누구라도 한마디만 꺼내면 맑고 깨끗했던 우리의 사랑은 어둡고 칙칙한 마침표를 찍게되겠지,

그래도 말이야,

넌 한때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해,

다른 글들
0 0
Square

폭풍전야

[퉁퉁퉁퉁.]
다리 난간에 걸린 현수막이 세찬 강바람에 고장난 현악기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렸다.
너무 오랜시간 비바람에 노출되어 넝마나 다름없는 그것은, 폭풍전야의 바람을 먹고 가장자리가 팽팽하게 당겨져 휘리릭 말려올라갔다 다시 펼쳐지는것을 반복했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 막 동이 터 올 때까지. 남자는 고가도로가 보이는 건물 옥상에 앉아 밤새도록 경계를 서고 있었다.
차가운 희광이 파괴된 도로와 무덤처럼 변해버린 건물들을 비추자 황폐한 도시의 풍경이 한층 더 으스스하게 보였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그는 고개를 돌려 원래는 현수막이었을 천조각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위에 희미하게 남은 그림과 글자를 보고 그것이 시위용 현수막이라는걸 깨달았다. 물 빠진 붉은 바탕에는 주사기, 동물 따위의 그림이 남아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자 남자는 포장이 벗겨진 낡은 캔 하나를 들어서 어제 먹다남은 것들을 처리 하기 시작했다. 급하지 않게 최대한 천천히, 그러나 맛을 음미하지 않으려 애쓰며 기름이 번들거리는 고기조각을 입안에 넣는다.
그렇게 짧은 아침식사가 끝나고 남자는 개먹이 통조림을 난간 아래 내려놓았다.
텁텁한 입안에서 악취가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속 전구에 전기가 팟 하고 들어간것처럼, 남자는 회사 자판기에서 뽑아 마셨던 달달한 믹스커피를 떠올렸다. 배운지 얼마 안되서 곧잘 기침을 터트리게 만들던 담배에 대한 기억도 함께.
자판기 커피를 떠올리고 나니 겉잡을 수 없이 향수병이 도졌다. '장소'가 아니라 '때'를 향한 향수병이었다.
그는 옛날이 그리웠다.
편리하고 배부르며 청결했던 생활이 그리웠다.
에어컨 바람과 편의점이 그리웠다. 그가 타고 다녔던 구식 토요타가 그리웠다. 자극적인 음식들이 먹고 싶었고, 집 앞 산책로를 걷고 싶었다. 주말 마다 가던 북한산도 가고 싶었다. 지겨웠던 회식자리도 그리웠다.
그리고 칫솔.
남자는 콧등을 찡그렸다. 숨을 내쉴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맡게되는 입냄새에 남자는 잠시 갈등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할텐데, 그는 아직 문명인의 옷을 다 벗지 못했다. 결국 남자는 고이고이 모셔뒀던 식수를 입에 한모금 머금었다.
날은 아직 차고, 해가 빨리 지는 요즘이었지만. 남자는 은혜로운 비가 언제나 찾아오려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 이었다.
사람이 생존하는데 있어서 물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다.
도시에 남아있는 물은 대부분이 오염되어 있는 상태였고, 패트병에 들어가 있는 깨끗한 물은 거래품 중에서도 특히 비싼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남자는 생수병을 사자고 물물교환을 할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공짜 식수를 얻기위해 남자가 했던 행동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이었다. 그는 비가 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멍청한 짓거리 덕분에 남자는 거의 말라 죽을 뻔 했었다.
결국 일주일전에 왔던 폭우가 그를 살렸다.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텐데.)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생존자들 또한 살렸을 것이다.
물과 식량.

몇년전만 해도 집앞 편의점에만 나가도 쉽게 얻을 수 있던 것 들이다. 너무 흔해서 그 귀중함을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감히 입에도 댈수 없는 사치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 갈급한 허기와 혀를 말라붙게 만드는 공포가 편의점 커피보다 쉽게 남자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스며들고 저며들고 끝내는 그를 잠식하리라.
그 추악한 끝을 보기전에 남자는 빨리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이 모든게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국영방송에서는 일본 뇌염모기의 변종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떠들어댔으며, 학계의 유명인사는 과학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 밀림에서 새로이 발견된 식인종 향토병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비밀실험실에서 실수로 반출된 생화학 무기일거라고 추정했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월석에 묻어있던 '외계물질'이 지구생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작용한것이라 주장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론은 더 말할것도 없으리라.
내일 당장 세상이 끝장 나기라도 할것처럼 온 세상천지에 뜬소문과 개소리가 범람하고 있었다.
SNS에 난무하는 저질스러운 가십과 우스갯소리가 저녁 뉴스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렇게 인류가 꾸물럭 거리는 사이 감염자들의 1차 발작기간이 지나갔다.
1차 발작이 지난 감염자들은 초기에 비해 폭력성이 강했지만 아직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남아있었다.


만약 그때 백신을 연구했더라면 감염이 이렇게나 빨리 퍼지진 않았을 것이다.

정치놀음에 빠진 과학자들과 연구소들이 백신으로 얻을 이익을 주판에 튕기며 계산하는 사이, 나라에서는 재난컨트롤타워를 운영한다며 감염자들을 검사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냈다. 각 가정으로, 회사로, 학교로.
만약 그들을 임시 보호소에 한꺼번에 밀어넣고 격리했었더라면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지금으로선 모를일이다.
2차, 3차 발작은 더 빨리 찾아왔다.
감염자중 한명이 크리스마스 이브날 명동거리에서 생방송 중이던 뉴스앵커의 얼굴을 물어뜯었을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늦은상태였다.
그러니 '만약' 이란말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남자는 달력을 한장 넘겼다. 12월이 지났다. 오늘은 1월 1일. 그의 나이는 이제 30이 지났다.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는 거짓말이 익숙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생각할 수록 막막해지는 것은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오늘 먹을 식량을 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내일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거야. 아니, 모례는 가능할꺼야. 아니, 어쩌면 일주일 후에.
남자는 피딱지가 내려앉은 입술을 잡아뜯었다.
하늘 저편에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고, 옥상에 홀로 남은 남자가 천천히 굶어 죽어가는 가을의 어느날이었다.
0 0

폭풍전야

폭풍 전에는 고요한데 폭풍 후에는 놀라울 정도로 맑아져. 근데 나는 왜 폭풍 후에 더 흐려지는걸까
1 0

폭풍전야

나는 시험치기 전에 긴장을 하는데, 태풍이 미리 올 걸 알고 하늘도 긴장을 할까? 땅도 식물도 벌레들도 긴장을 할까?
0 1
Square

폭풍전야

태풍이 온대도,
묵묵히,
할 일을 한다.
노처녀에 필수인 Vitamin D+ 망고를 빨며.
1 2
Square

02.끄적(불치병/사랑)

덜컹
차가운 겨울날 너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너는 이 말을 들은것인지 듣지 못한건지 반응이 없다.
아니, 듣고도 못 들은 척 하는거겠지. 너도 아는거야.
"헤어지자고."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차가웠다. 너만 모른다.
날 보는 검은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단지 계속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아하하하..! 이거 맛있지 않아?""좀 먹어봐."
대답을 피하는 너는 나에게 동의를 구한다. 창 밖의 마른 나뭇가지가 유난히도 가냘프다. 바람이 부는대로 부러질듯이 휘는 저 나뭇가지가 마치 나와 같다.
아마 너는 헤어져주지 않을거다. 이제껏 그래왔으니까 그런 널 많이 사랑한다. 가슴 깊이 널 좋아한다.
그래서 너와 헤어져야만 하는거다.
0 0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웃는 너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도 네게 작게 속삭여
사랑해,
이미 너는 내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어.
만약 정말 너 였다면 내 가슴 깊이 칼을 찔러넣어도
성에 안 찬듯이 화를 내며 상처를 더 벌려놓고
고통에 바르작거리는 나의 몸짓과 신음을 즐기겠지.
하지만 아직도 사랑해
내 꿈 속의 너는 아무말 없이 가벼이 키스하며 웃음 지어.
거짓된 따스함에 내 뺨은 천천히 젖어들고,
너는 희미해지다 결국엔 사라져.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너의 달콤한 고백들이 내 귀에 맴돌아.
A
0 0

Ending

ending 이란 무엇일까. 직역하면 무언가의 결말. 소설이든 삶이든, 만화든, 영화든.
우리는 늘 언제나 늘 이 엔딩이라 하는것에 늘 마주하며 산다. 죽음도 어쩌면 일종의 엔딩.
헤어짐도 일종의 엔딩. 졸업도 일종의 엔딩. 이리저리 엔딩은 우리의 곁에 붙어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되기 라도 하는듯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이. 결국 엔딩은 이리저리 끈처럼 붙어있는것일까.
1 1

빙벽

쓰레기장에서
우리 팀 메이가 자꾸 입구에다 빙벽을 세운다
얜 이길 맘이 없는건가 싶었는데
빙벽 부서지자마자
적바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을 퍼붓는다
오해해서 미안
1 0

지독한

지독한 아빠 방귀 냄새
솔직히 소리만 클 뿐
냄새가 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항상 아빠가 방귀 뀌면
우리는 저 멀리 도망간다
냄새 지독한 듯이 코를 막고선
0 0
Square

원치 않는 이별

어그러진 듯, 숨을 쉬는 것 조차
나에게 벅찬 듯이
나의 한숨은 허공 속으로 타오르다가
보이지 않는 재가되어 떨어지네.
나의 심장은 더 살아가라고
나를 재촉하는데
그 박동은 여전히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는 듯
애원하며 매달리며
나를 놓아주지 않네.
그리는 정은
떠날 생각을 않는지
그대 가시는데 마음 속에
깊게 패인 흔적을 남겨놓고
울음을 삼켜내며
전한 그 사랑한단 한 마디.
0 0
Square

사랑이 물들길 기다린다.

올 가을은 가을이 찾아온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코 끝이 시리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릴 무렵에
고개를 드니 어느새 단풍 나무가 빨갛게, 또 노랗게
물들었더라.
그 중에 대부분은 이미 낙엽이 되어 바스락 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
빨갛게 여기에 있었다는 듯이
가을이 가기전에 알아챘다면 좋았을걸
빨갛게 노랗게 물든 너희들에게
예쁘다고 말이라도 했었다면
이렇게 미안하진 않았을텐데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떠나기전에 알았으면
예쁘다 말이라도 했을텐데
이렇게 미안하진 않았을텐데
지나버린 가을에
떨어져버린 낙엽에
보내버린 사랑을 추억하고
다음 사랑이 빨갛게 물들기를 기다린다.
1 0
Square

콧등

가로등이 어두운 밤하늘의 달 대신 밝게 빛났지.
늦은시간까지 너와 함께했던 오늘이지만
우리는 헤어지는게 아쉬운 듯이 네 집 앞에서 몇시간이고 대화를 나누었어.
그러다 문득,
나는 내 콧등을 문지르며 납작하게 생긴 코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칭얼였어.
위로랍시고, 너는 내 코가 낮지 않다며 제 코와 대어서 확인해 보자.
가로등 아래에서.
차가운 겨울 공기에 너와 코를 맞대고.
하얀 입김마저 나오지않을 것 처럼 둘 사이는 좁혀져서.
맞대고 있는 코끝까지 두근거릴까봐.
나는 서둘러 얼굴을 빼내었어. 겨울 공기에 발갛게 변한 볼과 귀를 손으로 덮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