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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Geordanna Cordero-Fields / Unsplash>

할로윈



할로윈에는 잃어버렸던 것들이 돌아온대요.

저에게도 잃어버리고 잊고 있었던 것이 돌아왔을까요.

언니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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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마지막,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이는 것처럼, 언니도 내게 그렇게 찾아왔었죠.
조용하던 내 생활의 활력.
나의 첫사랑.
나는 언니를 좋아했어요.
 우리는 가을에 연애를 시작했죠,
단풍이 져 길거리가 모두 노랗고 빨갛게 물들 때 즈음.
나는 그때의 단풍과도 같아서, 하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언니를 좋아했어요.
내가 울면서 고백한 날, 언니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언니는 태연히 고백을 받아 주셨고, 우리는 그대로 연인이 되었어요.
 나의 생일날. 그때부터 언니에게 원망을 품기 시작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언니는 한창 바쁠 때였는데, 나는 철없이 언니에게 끝없이 실망했고.
그래서 언니의 생일 때 부러 못되게 군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때도 나는 언니를 여전히 사랑했어요.
 여름, 무더운 여름에 우리는 이별했어요.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서 생활하는 언니는, 이제 진로를 선택해야 해서.
중학생인 나와는 달라서.
그렇게 우리는 헤어져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갔어요.
운동을 마친 후 들여다본 휴대전화에서 언니의 이별 메시지를 확인하고 펑펑 울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소리 내 서글프게 울던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직 기억해요.
나는 아직 철이 없었어요.
그래서 놓아주는 방법도 몰랐어요.
 나는 아직 언니를 사랑해요.
그래서 나는 글을 써요.
 아직 좋아해요, 언니.
언니가 내 마지막 사랑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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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언니 저 차셨잖아요.
저는 한 발짝씩 떨어지고 있는데,
왜 자꾸 한 발짝씩 다가와요.
확실히 해주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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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날 언니에게 건조한 인사 대신 사랑한단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너에게 네 사랑을 확인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쓰레기같이 좋아하지 않는다며 언니를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직 후회 속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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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안녕, 나의 첫 사람.

우리는 분명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사랑을 했어요.
내 부모님은 나의 진심을 어린 시절 한순간의 감정으로 치부하셨지만, 언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분명 사랑이었어요.
언니도 나를 사랑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예쁜 연애를 했었죠,
나긋나긋하게 아침인사를 하고, 점심은 무얼 먹었느냐,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묻고.
깨었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대화를 놓지 않는 그런 연애.
나를 향한 언니의 감정도 사랑이었기를 바라요.
한순간이었지요.
언니는 예전과 같은 나를 불편해하기 시작했고, 거리를 두려고 했어요.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루 종일 생각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
언니가 밉기도 참 미웠어요.
바쁜 걸 알기는 알았지만 연인 말고 다른 지인과는 연락하면서 애인한테는 못할게 뭐람.
많이 미워했고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미움과 원망이 더해진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내 감정은 변함없었고, 언니를 늘 사랑했어요.
그리고 이제 내 곁에 언니는 없지요.
바쁘다고 헤어지셨으니 제게 악감정은 없었던 걸로 알아요.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요.
벌써 해가 바뀌었네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내 사랑.
언젠가 또 봐요.
그때에는 조금 더 큰 나를 맞아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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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의 경계

일터에 언니가 성격이 좋아서 친해졌다.
친해지고 나니 말을 할 때 부담되는 부분이 있어서 답하는 빈도를 줄이니 하니까... 그거가지고 뭐라고 하고 혼자 꽁하시고...;;;; 내가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언니가 앞타임이라 일하면서 못하고 넘어간 부분 그냥 아무 말 안하고 했는데 언니는 그것도 아닌거 같다.
내가 낮에 일하는 날 언니가 본인 기준으로 내가 해놨으면 하고 요구하는 분량이 너무 높다. 내가 버거운데 티를 안내고 따라하려 노력하는데 평균 수준이상은... 못따라가겠다.
말을 해야되나.... 답답해서 말하려다가도 서로 사이 나빠지는 것보다는  침묵중인데...(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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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그런 이야기에요

 사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있으면 무조건 언니나 오빠가 이익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랬습니다. 어릴때부터 언니에개 잘보이고싶었고, 엄마도 그걸 당연히 여겼습니다. 물론 아빠도 그랬고요. 모두가 저에게는 무관심했지만 언니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초등학교를 다니게된 8살부터 그걸 자각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아마도 3학년인 10살쯤부터 자각하기 시작했죠. 뭔가 이성하다고, 다른아이들가는 다른것이 너무 많다고. 
 들을수록 이상했습니다. 저와 깉은반인 친구들 중에서 이렇게 말해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말을 들었던 때네는 그녀석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석도 그녀석의 언니에게 무언가를 주고, 나누는애였습니다.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녀석의 언니도 그러더군요. 정말 "자매로서의 관계" 더군요. 
처음에는 그녀석만 그런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더군요. 모두 그래왔습니다. 저는 제가 후회하는게 나쁜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아온게 신기하다고 여기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저는 3학년쯤부터 조금씩 벽을 쌓았습니다. 언니네게 조금씩 대들기 시작했죠. 친한애들에개
 못믿더라구요. 못믿겠죠. 못믿는게 당연하더라구요. 저는 점점더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슬프게도, 대들 때마다 혼나는것은 저였습니다. 그 싸움의 원인이 전부 언니탓이었을 때에도요.
 한번은 언니가 저에대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정말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 거짓말은 다름아닌 보일러였지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항상 샤워를 끝내면 보일러를 끄라고 하십니다. 저는 항상 껐고, 언니는 대부분 끄지 읺았습니다. 언니가 끄지 않았던것을 언니는 제가 끄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억울해서 껐다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에 학교에서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두분은 모두 언니의 편을 들었습니다.
왜 거짓말을 하는것이냐고, 사실만 인정하고 사실만 혼나면 될것을.
저는 결국 거짓을 인정해야했습니다. 하지도 않은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억울해서 뛰쳐나가고싶었지만, 돈도 없고 갈곳도 없어서 그날밤 조용히 울었습니다. 자기 전에 정말 조용히 울었습니다. 너무 울어서 코가 막혀오는데도 코를 풀지도 못하고 정말 울기만 했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됀다면, 40쯤이 되어도 살고싶은 생각이 없다면, 친구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다가 행복하게 죽고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말을 들은 다른 친구들은 저와 그 친구를 이상하게 보더군요.
이게 정말 이상한건가요? 내가 살기 싫다는데, 뭘 해주지도 않으면서 살라고만 하는 것을 반대하는게 이상하다면, 더는 이상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자살을 생각하시는분들께는, 어떠한 희망의 말을 전하려 해도 전해지지 않아요. 저를 비롯한 저의 친구도 그렇더군요. 주변에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추억을 이야기 하는것보다는, 노래방이나 가는게 어떻냐며 500원쯤 써주세요. 밝아지더라고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사람의 취향과 취미를 존중하며 함께해줘야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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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의 둥지

내 생각에  언니의 둥지는 우리 집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키려는 마음도 아끼는 마음도 없는 곳에 사람은 젤리 봉지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놓고 떠난다.
하지만 그렇기로서니 언니는 다른 둥지의 사람들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예 같은 건 언니 머릿속에선 사치와 미련과 착하다 못해 멍청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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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어둠소녀

제목:저는 오늘 입학식이라 등교 중인데요?
오늘은 SWAPE 고등학교 입학식이다.
'이 학교는 언니따라 많이 왔었지....'
나는 옆집 언니인 루나 언니를 따라 SWAPE 고등학교에 많이 와보았다.
루나 언니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이 학교의 도서실에 자주 데려왔었다.
'여기는 책이 많아서 좋아...'
나는 익숙한 책 냄새를 맡으며 도서실 안으로 들어왔다.
'뭘 읽을까... 역시 이 책을 더 읽어 보는 게 좋겠어'
내가 고른 책(이라 해야 하나?...)은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당연하지만) 문서를 빌렸다.
사서 선생님은 여기 있는 책이나 문서를 다봤냐며 나를 알아보시고는 물으셨다.
나는 그런 질문을 억지웃음으로 회피하고는 문서를 챙겼다.
'솔직히.. 내가 이걸 봐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To Be compl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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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2-1(?)

게으름에서 이어지는 얘
기 입니다
게으름에서 밑에 추가 내용(?)을 덧붙였으니
불편하시겠지만 제 글을 보셨던 분들은 다시한번 봐주세요!
 지난 예기를 추리자면!
언니한테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보니
 내가 귀차니즘 발동할 시간이 없었다 ㅋ
내가 전에 어떤맘으로 썻는지 기억이 안나서
이어가기가 좀힘든데 ; 억지로 짜낼거라
(↑자랑임?)
좀 안이어질 수도 있어요
하여튼! 내가 귀차니즘이 발동한 시기는 6학년때 인것같다
진짜 걷기도 귀찮아서 맨날 퍼질러 있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그랬다 ㅎ
그래도 언니 시험기간에는 언니가 집안일을 못해서 엄마가 내몫으로 넘기는 게 살짝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집안일을 많이 하는 시기다
솔직히 그때가 아니면 일주일에
두세번 할까 말까다
진짜 앉아있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심지어 숨쉬는 것도 귀찮은 귀차니즘 말기 인데
정말 다 하기 싫다 폰빼구!
내가 정말 살아있는게 기적인것같다 ㅋ
게으름 에피 3도 쓸까요?
음... 좀 걸릴것같은데 이것도 쓰기 귀찮은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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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

내 동생의 친구의 동생
정민이는 무당벌레를 좋아했었다.
정민이를 처음 만났을때는 겨우 5살
평범한 애기들처럼 날 경계했었지.
2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정민와 꽤 친해졌고
만나면 항상 따라와 붙는
그래서 지유도 질투했지.
벌써 정하네가 이사간지 6개월이 넘었는데
무당벌레라는 걸 보자 너가 갑자기 생각나네
너가 고작 7살때 만났던 이 언니를
만약에 커서 만나면 기억할 수는 있겠니?
건강히 잘 지내렴
정하랑 사이좋게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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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름이 되면 항상 바다로 여행을 갔다. 친가쪽 사람들과 함께 갔는데 그쪽 언니, 오빠들은 모두 고등학생이거나 이미 대학생, 성인이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나는 지금까지도 수영을 못 한다. 그래서 튜브를 끼고 다녔는데 어린 나는 항상 언니오빠와 함께 끼어 놀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불만은 없었다. 어렸기 때문에 귀여움 받았고, 많이 놀아주었으니까. 마냥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이니까.
  고학년, 조금 크니까 조금 미미했다. 주변에는 또래가 굉장히 많았는데 서로 싸우고 놀고 하는 모습이 굉장히 부러웠다. 이미 그 많은 사촌 중에서 고등학생 조차도 둘 남았다.
 가장 최근 일이다. 사촌 언니가 하는 일 덕분에 KT 연수원에 가게 되었는데 인원은 고모와 고모부 4분, 내 부모님, 나. 이쯤되면 그냥 가기 싫었지만 애 혼자서 어떻게 집에 있으려고, 라는 부모님 때문에 결국 왔다. 심심했다.
  서해안 쪽이라 바다엔 가지 않았고 그곳에 있던 수영장이 있다 들었다. 이미 40대 훌쩍 넘긴 사람들이 갈리가 없었다. 온종일 술만 마시고. 놀러왔다, 라는 신나는 기분도 없었다. 몇년 전까지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사촌들도 오지 않았다. 친오빠는 귀찮단다. 
  두 개의 방이 문 하나로 이어져 있었는데 한쪽 방에는 어른들이 술을 마시면서 영화를 보고 나머지 방에서는 내가 컵라면 하나 먹으면서 정규방송을 보고 있었다. 너무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차라리 바다였으면 고기라도 구워먹었는데. 이럴거라면 그냥 두고오지 내가 알아서 잘 할텐데. 아빠가 나에게 수영장에 가자고 해서 (그것도 또 억지로)갔지만 나 혼자 뭘 하겠나. 수영을 하겠나 뭘 하겠나. 할 일 없이 아빠한테 수영이나 배웠다. 오겠다던 사촌들은 결국 막내 고모 딱 한 분만이 왔다. 부모님은 신경 써 주시고 있는 것 같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고 여기저기 해외 여행을 갔다는 아이들도 넘쳤는데, '나만?'이라는 생각에 또 침울해졌다. 다음부턴 그냥 아사를 하든 뭘하든 집에 있고 싶었다. 올 여름 내 최대의 바램은 어른 말고 또래랑 같이 놀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빨리 어른이 되서 집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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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인형

무슨 변덕이었을까.
노량진의 텁텁한 공기가 질렸는지 혼자있을 긴 연휴가 막막했는지 외할머니의 입원소식 때문이었는지
몇년을 되도록 오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한 고향집에 내려왔다.
순천은 변화한  것 같으면서 변화 하지 않아 있었다.
변방에 떨어진 버려진 도시 같달까.
버려진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것인지 대형 쇼핑몰이 생겨나고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횡한 기운은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천은 심심하다.
몇년을 나가산 내 방엔 필요가 없어 두고 간 물건들만 쌓여있었다.
pc도 없고 만화책도 없다.
엄마는 전을 부치고 아빠는 운동을 나갔을때 나는 하릴없이 유투브만 보고 있었다.
큰이모네 식구들이 외할머니댁에 들른다는 건 그 때 들었던 것 같다.
큰이모의 딸, 그러니까 내 사촌언니가 낳은 딸도 같이 온다고 했다.
벌써 2년 전이었나. 
사촌언니는 딸을 낳고 하루만에 목숨을 잃었다.
의료사고라고 했다.
장례식장에 가는길에 그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공부에 집중 못할까봐 언니의 사망소식을 알려주려 하지 않은 엄마가 조금 이상했다(작은 이모가 알려줬다)
장례식장은 사람이 없어 휑했다.
아무도 슬피 울어주는 이가 없었다.
큰이모만이 서러운 하소연을 토해냈다.
나역시 눈물이 나지 않았다.
15년 이상 만난 적 없는 존재만 인식하고 있던 친척언니였다.
사람 한명이 죽는데도 다른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안될 수 있다는게 무서운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언니의 딸이 온다고 했다.
엄마는 죽고 아빠혼자는 키울 형편이 안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고있는 2살짜리 어린 여자애가 온다고 했다.
큰이모네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규모는 모르지만 엄마말로는 잘먹고 잘사는 정도라고 했다.
내 어린 조카는 내 생각보다 불쌍하지 않을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듯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클수도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어리고 불쌍한 조카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을, 애정을 나눠주고 싶어 머리를 굴렸다.
내 형편에 2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별로 없었다.
기저귀나 분유, 옷등은 비싸면서도 아이에게 애정이 전달되지 않을것 같았다.
그 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승재가 들고다니는 토끼인형이 생각났다.
어딜 갈때마다 꼭 붙들고 다니는 애착인형이었다.
tv를 볼때마다 그 인형은 승재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용기를 주는 매개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끼인형이었다.
e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어린조카를 위해 인형을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대모가 된것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어린 조카를 위해서 인형을 사주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내 방에 있는 먼지묻은 양인형 한쌍을 주는게 어떠냐고 묻는 엄마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인형을 선물받은 적이 없다.(그러니까 껴안고 잘 수있는 크기와 폭신함을 가진 인형을 말한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내 주변엔 엄마같은 사람뿐이고 애정과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컸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커졌다.
나도 나이많은 친척 언니나 오빠도 있었고 시집안간 고모도 있었다.
모두 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큰오빠 한명이 나를 조금 이뻐했다.
방에서 오빠무릎에 앉아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들어와서 오빠 피곤하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내려온 오빠를 힘들게 하는 애가 된 것 같아 그때부터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사랑 못받은 건 엄마 때문이었네!!
빨리 이 집에서 탈출해야겠다.
나중에 큰오빠랑 연락이 된다면 좀 더 친하게 지내야 겠다.
시간대가 맞지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외할머니집에 두고간 내 토끼인형을 꾀나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다.
하루종일 꼭 껴안고 다닌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눈물나게 귀엽고 감동적이다.
서울집에 가자마자 내가준 토끼인형이 찬밥신세가 될지도 모르지만
슬플때나 외로울 때 내 토끼인형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네곁엔 토끼인형과 토끼인형을 준 맘씨좋은 이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