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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아본 적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멍청했고, 지금도 현재진행중으로 멍청하다. 이미 시작한 일을 끝맺기 싫어하고,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못됐다. 물론 내가.


일단 흔들리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슬픔? 나의 슬픔? 아픔? 또는, 사랑이나 그런 비스무리한 우정. 싫어하는 감정. 배신하는 친구들? 등등 대부분의 요소를 예로 들 수 있다. 학생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대부분 대인관계와 학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거지같은 세상이다. 일단 학업은 썩어빠졌다. 10시까지 아이들을 압박한다. 도서관에 가서까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의, 타의? 구분하지 않고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면 이 것들을 견딜 수 있는가?


나도 견딜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리고, 생각하는 사고조차 좀 어리다. 글을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나 별 쓸모없는 거일 수도 있다. 나는 재능이 없다. 좋다. 공부를 왜 해야하나. 세상은 썩어빠졌다. 요새 서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잘나가기 위해? 이후의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딴 것들로 행복해졌을 삶이라면 이미 행복해져야 마땅하다. 그딴 것들로 행복해지는 삶이라면 덧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만 그럴 뿐이지 모두의 생각이 같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공부, 공부. 이것들을 외치는 부모님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한다. 너를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라면 일단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 당신들이 달려온 길을 박수쳐 줄 것은 아니나, 그걸 왜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압박하는가? 자녀를 그럴 목적으로 키우는 것은 아닐 터였다. 


물론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제 자녀들을 위해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싫다는 거다. 뭘 해도 공부, 공부, 공부. 그깟 공부 좀 못해도 되는 거 아닐까. 성공하는 삶은 공부가 아니다. 직업도 아니다. 만족도다.


흔들리는 것에서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한다. 만족하지 않는 직업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점점 삶의 질이 떨어진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신들이 그렇지 않다 해서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왜 당신의 사고를 남에게 고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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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예전에

운동회때마다 엄마가 싸주던 소고기 김밥이 생각난다.
그런 것들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내 삶은

전체가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시지푸스와 같았기에, 
나는 언제나 120% 확실히 
나는 혹시라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느니 
다시는 학교를 다니는 재앙은 겪고 싶지 않다느니 얘기하고 다녔는데, 

그 모든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엄마가 아프지 않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든다.
엄마가 기타치고, 사람들을 웃기고, 같이 터키와 유럽 여행을 가던 시절말이다...
엄마의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부모의 행복이, 자녀들의 행복으로 연결되듯,
나의 행복이 곧 부모님의 행복이된다.
나한테 연합해주고, 공감해주니까 되게 감동적이네.
그래서

요즘 나의 미션은, 
삶의 허무감에 시달리는 엄마 구하기 
혹은 flattering.
어버이 날을 맞아 문자로 쓸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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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어렸을때 부터 가졌던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딫혀 더이상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없다. 어린나이에 장벽이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후, 사회에서 치이지 않는다고 장벽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에게 제지당하기 마련이다. 꿈.. 아이들의 미래를 환히 비춰주는 삶의 이유를 그대들이 짓밟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아버지께서는 내 미래를, 내가 확신하고 있는 미래를 응원 해주시다가도 금세 말을 바꾸기 마련이다.
"이제 그런 희망도 없는 꿈꾸지 말고. 진짜 네가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해."
이 말에 어찌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는지 모르겠다. 장래희망이라는게 부모님의 동의하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 선택따윈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만약 이 글을 보신 분들중에 학부모님이 계신다면. 아이들의 꿈을, 설령 확신이 없다고 해도 자녀를 믿고 맡겨주세요. 아이들을 위해. 내 아이의 활기찬 미래를 위해. 자녀의 디딤돌이 되어 주는것. 그게 본래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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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감탄하지 말아라. 흐드러진 꽃잎을 경외하지 말아라. 봄을 예찬하지 말아라. 벚꽃잎을 손등에 올리고 볼을 붉히지 말아라. 연인과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걷지 말아라. 자녀들과 함께 벚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을 구경하지 말아라. 벚꽃을 상상도 하지 말아라. 벚꽃을 사랑도 하지 말아라.
 어떻게도 씻을 수 없는 너의 더러움이 이 따스함에 묻을까 두렵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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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그리고 보행

걷기를 멈추는 인생, 뭐를 더 기대하겠는가. 
걷기는 심장을 건드리고 두뇌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눈에서 나오는 레이져는 하늘도 쏘아보고 벛꽃도 쏘아보고 건너편을 걷는 인간들에게도 쏘아본다. 선거용 현수막 나부랭이, 위로 솟은 교회첨탑, 하교를 하는 자녀를 태우기 위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한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고삼전쟁을 하는 진풍경도 눈빛으로 쏘았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출퇴근하는 길거리에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렇게 그렇게 쌓여서 내 시간들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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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s light

당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당신을 병들게 한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될지 모르게 행동해서
어떨땐 작은일에 화를 내고 어떨땐 별거 아닌일에 크게 칭찬하며 당신을 조종하려 든다
당신이 틀리다고 착각이 들게.. 판단할 능력까지 상실해버리게 그는 당신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당신을 낮추고 학대해야 그 사람 자신의 약한점을 감출수있다고 믿어서..
당신 위에 어떻게든 올라서서 누름으로써 본인의 파워와 권위를 느끼기 위해
거짓말을 너무 뻔뻔하게 해서 상대방이 본인이 미쳐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해
이거 정신병이래 gas lighting 을 당한 피해자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빠지고 본인 자신을 믿지못해서 뭐든 혼자 결정하길 두려워해 세상에 나가는걸 두려워 하게 되지
그리고 무서운건 그 gas lighting을 한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더더욱 의지하게 되.. 가해자는 피해자를  조종하므로써 얻는것들이 그들의 최종목표였겠지 목사에겐 돈과 권위 또는 성적인것들 그 목사를 추종하는 자들은 피해자이겠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선해보이던 사람들이 그 세상 권세 가진 목사가 시키는데로 악한짓들을 하는걸 난 너무 가까이 보았어 
뻔히 보이는 그 목사의 거짓말을 믿고 지목된 성도를 외면하던 모습들을... 그렇게 피해자들은 그 교회에 리더들이 되었고 또 하나의 가해자들이 되었지
그 목사는 본인이 하나님과 동일시 생각할수있도록 서서히 변질된 말씀을 피해자들에게 먹였고 거짓말을 하고 무당처럼 그들을 겁을줘서 피해자를 조종했지
성경의 말씀들을 오역해서 끝없이 피해자를 정죄하고 본인이 선을 만들어 그선을 넘으면 죽는다고 협박했지 성경에 써있다고 거짓말하며... 피해자, 그들은 결국 본인의 모든 결정 하나하나 목사에게 물어보고 그뜻을 따랐고 이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보다 목사에게 인정 받길 갈망하며 그 목사를 그 이단을 섬겼지
부모가 자녀들에게 gas lighting을 할수도있어
작은 일에 화내고 아이들이 큰 잘못을 한것처럼 몰아가지. 부모는 그렇게 아이를 학대함으로써 본인은 파워와 권위가 있다고 느끼지
그아이는 혼란에 빠지고 판단력을 잃게되 하지만 또 더욱 그 부모에게 인정 받고싶어하고 아이는 생각하지 내가 멍청해서일꺼야 내가 더 잘하면 괜찮을꺼야
새벽에 gas light이란 단어를 찾아보다가 한번 정리해봤어요 흥미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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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병과 두잔의 커피

한 교수가 그의 철학 수업 시작 전에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앞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말없이 그는 매우 큰 빈 마요네즈 병을 들어올렸고 그 안을 골프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이 병이 꽉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약돌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았다. 교수는 가볍게 그 병을 흔들었다. 조약돌은 골프공 사이의 공간으로 굴러 들어 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이 병이 가득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교수는 다음으로 모래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아 부었다. 역시 모래는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다시 한 번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교탁 아래에서 두 잔의 커피를 꺼내 그 내용물을 병 안에 모두 쏟아 넣었고, 커피는 모래 사이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채웠다. 학생들은 웃기 시작했다.  
 
"이제," 웃음이 가라앉자 교수가 말했다.  
 
"나는 자네들이 이 병이 자네들의 인생임을 알았으면 하네. 골프 공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야. 자네들의 가족, 자녀, 자네들의 믿음, 건강, 친구 그리고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 말이네. 자네들 인생에서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것들만 남는다해도, 그 인생은 여전히 꽉 차있을 거야. 
 
조약돌은 문제가 되는 다른 것들이네. 자네들의 직업, 집 그리고 차 같은 것들이지. 모래는 그 외 모든 것들이지. 작은 것들 말이야."  
 
"만약 자네들이 모래를 병 속에 가장 먼저 넣는다면,"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조약돌이나 골프공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거네. 인생도 이와 같네.자네들이 자네들의 시간과 힘을 그 작은 것들을 위해 써버리면, 평생 자네들에게 중요한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게야. 
 
자네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에 집중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낚시를 가도 좋고, 강검진을 위한 시간도 갖게.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다른 (골프)경기를 하게. 언제나 집을 치우고 고장난 것을 고칠 시간은 있을거네. 가장 중요한 골프공을 먼저 생각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그리고 남은 것들은 그냥 모래일 뿐이네."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커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줘서 고맙네. 이건 단지 자네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득찼든지 간에, 언제나 친구와 커피 한 잔 할 여유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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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어제 바보 같이 학원을 또 빠졌다.
이유는 숙제를 하지 않는 것
못한 것은 아니였다. 
그럼 왜 하지 않았으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하핫
그건 내가 진흙인형 같기 때문이다.
진흙인형은 한번 만지면 부셔저 버리니 불에 넣어 굳힌다. 그럼 다른 모양으로 된다는 선택지를 버리는 대신 영원히.  .  .  .  는 아니지만 반영구적으로  그 모습을 이루고 있을 수 있다. 
나는 그것과 같이 갇혀온 생활에 의해 모양이 잡히고 자신의 열등감이라는 불로  인해 금이  가버린 진흙인형이 되버렸다. 
만약 당신이 또는 당신의 자녀가 부셔진 인형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버리겠다는 결정이다. 
부모라면 더 할것이다. 잘못하면 손이 다친다며 부셔진 장난감을 처리한다.
난 그 인형을 계속 가지고 있을것이다.
언제까지나 옆에 두며 손이 다쳐도 다시 낳는다며 웃으며 넘길 것이다.상처 난 손을 필사적으로  숨기면서 말이다.
난 그런 나를 가지고 있고 가끔씩 다치는 것이다.
어제는 그러한 날이었다.
분명 조심히 다루고 있었지만 진흙인형이 세월이 지나며 금이가고 부셔지듯이 나도 그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변화를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납두었고, 결국 상처를 입었다. 
웃긴것은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는 자신이다.
참으로 바보 같지 않나?
알리면 금방 손은 낳을텐데 참고 있었던 휴우증인지
지금은 입에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고장난 라디오같이.
지금은 그저 기다릴뿐이다.
내가 완벽히 고장나 
부셔저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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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의 귀마개

우리 회사에는 나이가 많음에도
과장이신 분이 계십니다.
근속연수에 따라
승진하는 회사라서 그렇습니다.
회사 분위기도 아주 보수적인 편입니다.
과장님은 평소에는 유머 있고
인자하지만, 업무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원리원칙대로 일하시며
조금은 답답한 성격을
지니신 분이기도 합니다.
작년 겨울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과장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감색 코트를 입고,
귀에 귀마개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귀마개가 점잖으신 분의
체면에 맞지 않게 아주 낡았더군요.
저는 호기심에 과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과장님 귀마개가 아주 멋지시네요.
누가 선물로 주신 건가요?”
과장님은 흐뭇한 미소로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딸이 재작년에 사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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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경쟁 사회에서 오늘도
가장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들도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따뜻한 아빠입니다.
자녀들의 미소 지은 얼굴만 봐도
빙긋 웃음을 짓는
딸바보, 아들 바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