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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지?
[["synd.kr", 5], ["unknown",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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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싫어

지루한 타일, 철이 부딪히는 소리, 희미한 시야,
뜨거운 열기,흩날리는 물안개.
칙칙하고, 습한 공간. 지옥같은 이 공간에,
나는 갇혀있었다.
화륵!
불꽃이 일고 기름이 튀긴다.
나는 눈을 옆으로 돌려 어깨에서부터 쭉 이어진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그 끝에 붙은 펜의 위에서 육즙으로 몸을 뒤덮은
고기가 춤춘다.
"진저! 22번 테이블! 멀었어?!"
건조하고 영혼없는 독촉, 키가 작아서 염치마저
소멸되어 버린거라고밖에 여길 수 없다.
예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진저! 서둘러!"
꽈득.. 입을 앙다물고 이를 갈고 만다. 이 불편한
익숙함에 살 여력마저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무도회는 초대치 않은 난봉꾼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나왔어요, 에라 씨."
그래, 나왔지. 빚다가 한 쪽이 짖눌린 자기처럼,
유명한 작품의 뒷부분을 앞에 대충 덧댄 원고처럼.
"어휴, 빨리빨리 좀 하라구!"
에라 씨가 접씨를 받아 뒤뚱거리며 손님에게 
가자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그 작달만한 몸을
찢어발기는 영상을 그리며, 다음 일을 받았다.
'젠장,젠장,젠장!' 이 말만이 일하는 내내 뇌리 속에
맴돌았다.
고된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목이 타 한 손에 맥주를 쥐고, 입으론 오징어 
다리하나를 악물고 거친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난 예술가같은 겉만 거창한 인간은 못된다.
오늘, 더더욱 통감했다. 어설픈 자존심 외에,
이제 내 요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원래부터 죽지 않고 굶지 않으려면 혼자 힘으로 벌어 쓸줄 알아야했고, 쓸모없는 내게도 재능이라는 게 있어서,얄팍한 솜씨를 등불삼아 근근히 살아가고있는 것이었다.
목을 조르거나 칼을 긋는건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목구녕에 음식만 넣어주면
나머지는 내 몸이 알아서 해주기때문에 나는 사는 것을 택했다.
헌데 이상하게 하다보니 요리라는 것에도
나름 정이 붙었는지 한 때는 세상이 반짝이는 것 같은
환상도 보았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소원해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들어 
정부 고위인사,유명인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해자들은 제각기 다른 수단으로 살해되었으며, 별다른 단서조차 남아있지 않아 수사에 차질이.."
콱!
참 별일이군, 정의의 사도 등장이냐?
아니, 잘난 놈들만 노리는 걸 보면 열등감에 찌든
한심한 녀석일지도 모르지.
나는 씹던 오징어 다리를 삼키고 맥주를 들이켰다.
"아~ 참으로 x같은 세상이다!"
털썩, 과로한 나머지 그대로 나자빠졌고 눈을 떠보니 이미 동이 튼 뒤였다.
오늘도 또다시,쓰레기 매립지같은 일터에 왔다.
첩첩이 쌓인 그릇과 설거지거리들, 에라씨의 독촉과작열하는 온도에 혐오감을 느껴 시계를 보채고픈 충동에 휩싸인 때에 갑자기 술렁이는 주방, 사람들이 몰린곳 사이로 훤칠하게 생긴 남성이 보였다.
수수하게 차려입었지만 탄탄한 몸과 정갈한 머리
탓인지 강단있고 세련되 보였다.
"제퍼드, 제퍼드 씨야!"
제퍼드, 한창 요리에 열중할 때 잡지에서 본적있다
독보적이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요리는 물론
요리사의 미래까지도 평가한다는 미식가,
통칭 맛의 예언자다.
저 사람이 우리 레스토랑에 왔다는건, 역시
평가하러 온건가? 점장이 잘도 주선해왔군.
그새 관심을 잃고 다시 설거지를 하려던 그때,
탕! 
시끄러운 소음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휩싸인 정적,
그리고  비명이 터져나오려던 때 
다시한번 소리가 울렸다.
콰과고과과광! 
우뢰와도 같고 날랜 이리와도 같은 소리와 모습으로,
식당의 모든것에 피가 튀고 사람들의 몸엔 붉은 장미같은 총알자국이 생겼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예언자는 한 구의 쓰레기로 변했고 그건
레스토랑의 다른 사람들도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내 몸엔 장미는 커녕 먼지꽃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왜 날 쏘지 않았지?"
"변덕이야.. 네 눈빛, 나를 닮았어."
..여자? 의외였지만 그것은 더이상 중요치 않았다.
불청객이 다시 입을 열었으니까.
"날.. 따라오지 않겠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 가지, 지루하지만 않다면."
여자는 끄덕이며 따라오라 손짓했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것이 나와, 리스의 첫만남, 산 송장이었던 내게
살아있는 의미를 찾게 해줄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