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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치른 병치레


* 요약 정리

1 각막염

2 편도선 인두염 (목졸리는 듯, 누워서 잠을 못 잘 정도)

3 감기 몇 차례

4 치질 

5 배탈 + 설사 

6 냉방병(머리가 어지럽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쓰러짐, 정신 못 차림)

7 우울증

8 꺼꾸리 운동하다가 등뼈 삐끗 

9 여드름 

10 생리통


결론: 역시, 객지 생활은 고생이다. 집밥 먹으면서, 취미 생활 하고 그래야.

어디서 왔지?
[["synd.kr", 36], ["unknown", 219]]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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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고생시키지 않겠다고했는데
아직도 고생시키고있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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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수고하셨습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2 2

2015년 안녕

2015년 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 많은 일이 있었네요.
새로 자리를 잡고 또 떠나고, 그만큼 한 웅큼 성장했겠죠.
내년도 그러길 바랍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모두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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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들끓는 수많은 단어들의 임계점 위에서 위태롭게 다물고 있는 두터운 입술과 가득차있는 문장들을 제어하기 힘든 정도로 넘치는 신피질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는 심장의 아련함을 침묵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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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불규칙하게 살고 밥도 부실하게 먹고 운동도 안 하니까
야근 밤샘 좀 했다고 금방 감기에 걸렸다
면역력이 바닥인가보다
머리아프고 콧물난다
씬디요원님들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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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총소리 대박 크다

경찰특공대에 물건 납품한거 내일 시연이라고 상태 점검하러왔는데 전술훈련대비 훈련 중. 씨꺼먼 차량에 엎드려서 총쏘고 있는데 총소리 대박! 난 군대 안가봐서 실제로는 처음 들어봄ㅋㅋ
날도 더운데 까만옷에 까만차에.. 고생들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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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요즘 임신해서 그런지 우울했다
기분이랑 감정도 오락가락하고
속도 울렁울렁 거리고
나이들어 애 낳을려니 고생할 생각에
우울했다 심각하게.
해외여행 다녀오고 
내가 사고 싶은 명품 막 사고
몇주동안 돈을 막 썼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
난 막써서 이제 우울증 없어졌는데
카드값보고 울여보야가 우울증 생기는건 아니겠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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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자와 구직자...그리고 잡담

나는 여지껏 일을 하면서 두군데의 직장에서
관리직이였다.
하나는 공장이고..
하나는 사무직이였는데..
내가 구인자가 되었을때 힘든점은..
"이 사람을 믿고 나와 손발을 맞출수 있을까..."
였다.
공장 구인자였을때..
난 일을 하면 효율적이면서 편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편이다.
물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또 있을것인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나와서 성공했던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주변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해라"가 주된 안좋은 시선이였다.
나는 그게 왜 잔머리라고 하는지 이해 할수 없었다.
왜 효율적이며 빠르고 편한 방법을 찾는게 잔머리 굴리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저 조건에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건 당연한 조건이였다.
저런 문제는 노가다(현장) 생활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쪽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30~40년 생활에 찌들어 
뭔가 바꿔볼 생각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30년전에 하던 방법을 지금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몇몇가지들을 바꿔갈때마다 그 사람들은 놀라움과 칭찬을 하기커녕
쓸때 없는 짓이라며 핀박했다.
오히려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게 힘들었다.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데.. 그리고 편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준 사람이 한 공장 사장님이셨다.
10명 안팍의 작은 공장이였지만
우리는 많은걸 만들어냈다.
물론 그쪽 계통이 신소재 쪽이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같은 계통 공장들에게는 없는 경쟁력을..
우리는 가졌다..
그리고 초보자들도 쉽고 빠르게 익힐수 있는 것들도 만들었다.
직접 만들수 없는 제단기계들은 3천만원을 들여서 
기계제작자들과 상담과 연구를 통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생산속도는 40프로가 빨라졌다.
그리고 직관제단이라는 부분은 1개월만 배워도 할수있는
간단한 업무가 되버렸다.(그 전에는 최소 6개월을 배워야지..그리고 체력이 따라가줘야지만 할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은 같은 계통 다른 공장들이 한달 2000헤베를 생산할때 우리는 6000헤베 이상을 생산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원했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수 있는사람들..
그때 내 나이 26~27살이라.. 더 창의적이였을수도 있지만..
많은 면접을 보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있었다.
온지 이틀만에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
5달을 넘게 가르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생산라인에 혼자 냅둘수 없는 사람.
나쁜사람만 있지 않았다.
오자마자 1개월만에 남들 2인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리지만 꼬박꼬박 차고 올라오는 사람.
불만은 많지만 일은 똑바로 하는사람.
그렇게 팀을 싹 갈아 엎으면서 수십명의 면접을 봤는데..
그러다보니 행동과 얼굴 말투 등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아주 대충 파악되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잘 활용하고있고....
판매직에 있을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직자일때..
일을 가려본적은 없다.
딱히 내가 일을 가리는거라면 
영업직이다. 
판매직도 하는데 이상하게 보험같은 영업직은 못하겠더라..
일만 가르쳐 주면 항상 열심히 했다.
기술을 가르쳐주면 밤마다 연습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쉬지도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돈을 띠어먹는사장도 있었고..
수당까진 안바래도 야간까지 일하면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사장도 있었고..
쉬는날에 인력이 부족한 바람에 다른사람이 힘들까 아침에 출근해 기초적인걸 잡아두고 퇴근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하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쉬는날 너무 피곤해 하루 푹 쉬었더니..
"ㅇㅇ이 요즘 게을러졌어~" 라더라...
난 쉬는날 일하는게 싫다.
쉬는날에 내가 일하는건 다른 직원들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내 쉬는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족과의 시간을 내가 방해 한거일지도 모른다.
이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얹혀
내 어깨위로 지나가는 세월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도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더 못사는 최초의 세대란다.
20대 30대의 소득증가율과 월평균 가계지출이 최초로 -로 돌아섰다.
2003년 이후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란다.
N포 세대란다.
3포세대가 4포세대가 되고 그게 결국 N포세대가 되버렸다.
헬조선,지옥불반도,노오오오력,흙수저,금수저
별의 별 말도 다 생겼다.
그저 웃고만 있기엔 참 씁쓸한 단어들이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더라..
사내결혼으로 아이를 가진 부부를 퇴사시킨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한 대기업은 
사람을 분리수거도 못하는 쓰레기로 취급중이다..
뭐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위해..
발로 뛰는 대기업들도 있다...있긴...있다..
N포세대에 맞춰 30대인 나도
포기한게 많다....
씁쓸하지만...어쩌겠어..
현실인데..
이제 여기서 몸까지 아프면 
정말 한강물에 뛰는 수밖에 없다.
나도 탈조선을 하고 싶었다..
그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할수 있으면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의 사람차별이나...
뭐 별 다를건 없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금방 잊는다' 다.
분노하고 잊지 말자고 하고 바꿔가자고 하고선..
어느새 금붕어처럼 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진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리 되더라...
라는 핑계같지도 않는 핑계를 늘어본다..
그래도 하나 잊지 않는다.
선거는 꼭 하자.
뽑을 놈이 없어도 무효표라도 던지자.
난 '무효표를 던질빠에야 그냥 안하는게 낫지'라고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다행인건지... 
당연한게 이제 시작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20~30대에서 투표를 한다는 사람들
비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한다.
그 전에 일하던곳에선
투표날에 일을 시켰다.
대통령 선거 날이였는데.......
휴가도 못 쓰게하고 일하게 했다.
먹고 살기위해 별수 없이 일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
사전투표라도 했어야 했는데..
설마 투표날 투표하러 가지도 못하게 할줄은...
군대에서도 느끼고 조금한 구멍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두서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부터 
포장을 뜯어서 당당하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산대에 줄서있는게 불만이라 물건을 다 던지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우린 식당도 아니고 그냥 물건 파는곳인데...)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달라고 20분이 넘게 때쓰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항상 간식을 사다 주시는분도 계시고..
힘들까봐 비타 음료 같은걸 가져다 주시는분..
야채를 사갔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반찬으로 먹으라고 주시는분들도..
그냥 존댓말만 써줘도 감사했다.
일상이 반말 듣는거라..
야, 어이 , 거기 , 안들려?, 얼마냐고.. , 아 왜 안되는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도 들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은
전부 손님에게 별 다른걸 원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도 않았다.
먹을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사람 같은 대우만 바랬는데..
본인 아들 , 딸들에게도 저러나 싶다..
사회가 병들어가며..
사람들이 병들었다...
내 탓이 아닌것도 내 탓을 하고...
내 탓인걸 남탓하고..
본인들의 욕심만 채웠다.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한다..
"그냥 전쟁나서 핵폭탄이나 떨어졌으면..."
실제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감히 생각해본다.
구인도 구직도 힘든 세상이다.
양쪽 입장에 전부 있어봐서
더더욱 실감한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보니
더더더더더더욱 실감한다.
공부 못했고 능력 없으면
개처럼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조만간에  난
기계도 아닌...
개처럼...노예처럼 일하러 갈 것이다.
하루에 15시간의 일이다.
쉬는시간도...밥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앉아있는 시간은 밥먹는 시간 뿐이다.
아마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을 다 합쳐서 15시간중 1시간쯤 될거 같다..
손님들 중에 정말 궁금해서인지...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지나가면서 봐도 쉬는사람도 없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으니
궁금할법도 하겠지...
솔직히 말해준다 200번다고.
다들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긴다.
진짠데..............
결국 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같은 일상의 반복을 하러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과거가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고...
그게 나의 최선이니까..
개라도 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 하지 않는다.
조만간 또 이런 나의 투덜투덜
일기장을 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 
웃으며 보고 싶다.
0 0

무제

 잠이 오지 않던 날이었다. 무언가가 내 가슴을 움켜쥐는 이 답답함에 침대 위에서 몇번이나 이 몸을 뒤집은지 모를정도로 꽤나 괴로운 밤이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게 하나같이 불쾌했다. 이불을 발로차고 옷을 찢어내 바닥으로 던졌다. 그럼에도 오히려 숨은 더 거칠어지고 답답함이 내 목을 조여왔다.  손으로 내 목을 꽉 움켜잡고 손톱이 피부에 박혀 피가 날 정도로 죄였다. 미칠듯이 괴로웠지만 내 피부라도 벗겨내야 왠지 이 답답함이 그칠것만 같았다. ' 울컥 ' 조금 상처가 깊이 파였는지 손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어두컴컴한 방은 내 거친 숨소리와 비릿한 피냄새로 가득차버렸다. 애써 숨을 고르고 휴지를 가득 풀어 상처에 올리고 꾹 눌러 지혈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땀이 흘러 내 턱 끝에 맺혔다. 비틀거리며 내 발걸음은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컵에 따라 힘겹게 들이키고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피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숨을 쉴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는듯 통증이 내 감각을 때렸다. 숨쉬는것 조차 괴로워 헐떡거리면서 이 고통과 피의 향이 내 흥분된 감정은 잠재워주는 듯 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발짝 정도 걸었을까,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졌다. 크게 숨을 내쉴때마다 상처가 다시 벌어지면서 피가 주륵 흐르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건지 어지러웠다. 부엌을 향해 걸어온 복도를 보니 방에서부터 내 피는 흘러 길을 만들어놨다. 기어가듯 힘이 빠진 몸을 끌고 내 방까지 왔다.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피가 흥건히 묻은 손으로 침대시트를 짚고 침대위로 올라가 자리에 몸을 누웠다. 핏자국을 씻어내려면 고생 좀 하겠다는 시덥잖은 농담을 스스로 뱉어내며 통증과, 피비린내와 함께 눈을 감았다. 내 답답함은 그저 자고싶어하는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그저 오래도록 자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뜨거운 피가 흘러 시트를 흥건하게 적셔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난 이렇게 자유로이 흘러가지 못하게 무엇인가 나를 옭아매어냈을 때의 답답함을 안다. 사회와 타인의 시선에 가두어져 내 꿈을 못 흘러내게 했을때의 고통을 난 안다. 그래서 내 몸에서 빠져나가려 힘쓰는 이 혈액의 흐름을 막을 생각따위 없었다. 


그저 난 이제 모든일에 손을 떼고 푹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