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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언제부터인가, 내가 어렸을 때 라는 말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기껏해야 초,중학생 정도의 어렴풋 기억나는 그 시절이라는 사실이 어른들에게는 꽤 재롱 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로 더듬더듬 그때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기껏해야 어른의 손을 잡고 다녔거나 친구들과 숨이 벅찰 정도로 뛰었던 정도였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옛날은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도 나의 회상을 재롱으로 보지 않고

어쩌면 나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옛날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아이들의 옛날을 들으면 재롱이라 생각하며 웃어버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른이 될줄 몰랐기에 

어린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나였지만

어른이되는건 어찌나 이렇게 자연스러운것인지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야 하며

어른이 되겠지.


그러나

잠시나마 즐거웠던 어린이의 시절은 

항상 간직한 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디서 왔지?
[["synd.kr", 9], ["unknown",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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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그래요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난 강아지같은 애예요
꼭 강아지를 닮았어요
주인에게 재롱부리는 강아지처럼
아무리 놀리고 힘들게 해도
항상 명랑하게 웃으며
시키는 대로 하죠
날이 어두워지면 눈물이 흐르지만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런 비참한 강아지 같아요
정작 그들은 모르죠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얼마나 아픈지 알지 못해요
나도 감정이 있고
아픔과 슬픔, 괴로움을 느낀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해요
아프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바보같은 강아지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건 주인이 두려워서예요
힘들다고 짖고 물면
주인이 더욱더 아프게,
더욱더 힘들게 할까
두려워서예요
주인에게 나는 그저
감정 따윈 없는
장난감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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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할머니댁 앞마당을 어슬렁거렸던 고양이 삼남매가 있다. 할머니는 예쁜 몸짓으로 재롱을 부리던 작은 녀석들을 귀여워하셨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란 유일한 손녀이다.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을 예뻐하는게 싫었던 것일까. 왠지 모를 짜증에 작은 녀석들에게 못되게 굴었다.
 녀석들의 밥그릇을 이리저리 옮겨버린다던지, 수도에서 손을 씻고 손에 남은 물기를 녀석들을 겨냥해 탈탈 털어버린다던지. 할머니는 "아가, 못살게 굴지말고 같이 놀아라." 하셨지만, 난 성에 차지 않았다.
 그 후 두 달쯤 지났을까, 한 녀석이 지붕에 올라가 놀다가 떨어져 죽었다. 누이의 죽음이 안타까웠는지 두 형제는 한동안 지붕아래에서 야옹-야옹- 울기 바빴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스친다. 조금이라도 더 잘 놀아주고 예뻐했더라면 지붕 위로 올라갈 호기심 쯤은 없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