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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is Chemistry

모든 물질은 화학적으로 구성되어있고
모든 물질의 변화는 화학변화이며 (가끔 미친 물리학자들이 하는 짓 빼고)
고로 세상은 화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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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렸었다면

그래 욕심없이 딱 한 달.
그만큼 어렸다면 이리 후회하지 않았을꺼야
하루를 좀 더 아끼며 열심히 살껄
삶의 변화를 꾀해볼껄.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일까
그저 오늘이 변화의 시작이길,
한 달 뒤의 내가 같은 후회를 하지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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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감정은...
뇌의 화학반응에 의해 생성되는
즉, 호르몬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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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무서워

시간이 무서워.
밥을 먹는 순간에도
잠을 자는 순간에도
시간은 1초, 아니 0.1초라도 나도 모르게 지나가.
할 수있는게 우는것뿐이던 내가
1초의 시간이 모여
벌써 스물둘.
변화를 두려워 말라지만
지금 난 변화가 제일 두려워.
시간이 흘러가는것이 두려워.
다가오는 시간 뒤에 숨어
날 아프게 할 존재가 있을까봐.
난 아직 여린 피부인데
상처가 쌓이는것만 같아.
내 맘도 모르고 시간은 계속 날 스쳐가며
하나 둘 생채기를 남기고
채 아물지 않은자리에
베이고, 또 베이고 또 베인다.
내 시간을 멈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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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종래에는

결국 종래에는 우리는 죽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죽음 때문에 인생은 부조리해진다고 말하지만, 죽음이 왜 부조리함인가. 영원이 부조리함이다.
모든 것은 변화 속에 있다. 살고 죽고.
인간도 변화의 한 부분이며 죽음은 필연이다.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그 진리를 잊고 사는 것이 부조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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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_변화

°
언제부터였더라. 이렇게 널 보게된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이렇게 널 찾게된것이
그거 기억해? 너 입학식날
그 날. 내가 애들하고 운동장에서 축구공 가지고 배구하다가 너한테 날아갔을때. 너가 그 공 잡아서 배구부는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지.
아아. 그 공한테 감사해야겠다. 그 공 덕분에 너가 나한테 말 걸어주었으니.
우리 알게된지 되게 오래됬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말이야.
그 공 때문에 너가 눈을 안떠.
내가 찬 그 공을 가져오겠다며 뒤돌아 뛰어가던.
너의 뒷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
아아. 이제 나는 그 공을 경멸해. 아니 경멸 할 수도 없네. 내가 터트렸거든. 그러니까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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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

X와 헤어지며 들었던말 "외로웠어"
현 여친이 내게 하는 말 "외로운 내 맘을 아냐고"
........
난 변화하지 못하는건가?
내 본성, 나란 인간 자체가 그런건가?
연애하면 안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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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조화

어젯밤만 해도 시원하던 바람은 
오늘아침 매섭게 다그친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이
보다 행복해졌다
시원하던 커피는 차가워지고
뜨겁던 커피가 따뜻해졌다
적당히 데운 라떼가 아쉽다
좀더 따뜻해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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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도전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나는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변화를 싫어한다. 그런 겁쟁이같은 나에게도 도전의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나는 겁에 질려있음에도 여유를 보이며 나를 안심시킨다. 다가오는 것을 피해 끝까지 피하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면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막상 별 것 아니라고 느껴 다음번엔 용기를 가지자고 하지만, 다시 두려워 몸서리치는 겁쟁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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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테니스

보낸다. 그러면 맞고 다시 내게로 온다. 다시 팬다. 그럼 똑같이 맞고 내게로 온다. 그러기를 계속하지만 늘상 같은 패턴은 지루함을 느껴 스매싱도 하고 이리저리 주는곳에 변화를 준다. 근데 그것은 다름아닌 인생 그 자체였다. 더 이상 손쓸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들은 에지를 맞고 그대로 바깥으로 사라지는 경우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들도 받아내는 기적을 만날때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공에 역회전이 걸려 전진을 더디하는 맥팔리는 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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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나는 어땠을까?
어제의나는 어땠을까?
과거의나는 어땠을까?
우리가 지나가듯 생각해본 이 질문은 대답이 다 다를수도 같을수도 있는 이 질문 당신의 나 가 한심했나요? 아니면 자랑스러웠나요? 어떤모습의 자신이였더라도 그건 당신입니다. 오늘의내가 한심했다해도 내일의 나는 자랑스러울지도 모릅니다 변함이없다면 그건 당신이 변하려하지 않은것뿐입니다.
작은거라도좋으니 변화를 시도해보세요 '오늘의나' 를
그걸넘어서 '미래의나'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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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정이라.

감정을 칠정으로 나누고, 추가적으로 오욕을 넣는다.
희 노 애 락 애 오 욕. 모든 감정은 이 일곱가지 감정을 기반으로 일어나고, 좀 더 복잡한 상태로 변화한다. 문제는 감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도대체 어떤 상태에 속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기본적으로 욕(慾)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일부분 노(怒)와 애(愛)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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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시간

짧은 시간. 무얼 해봐야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불안한 시간이다. 
아주짧은시간, 이라 하면 1초 정도가 생각나는데, 일생이 하루인 하루살이에겐 그 1초마저도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다. 
짧고 긴 시간은 누가 정하는 거며, 우리는 왜 그 시간을 짧다고 인식하게 된 것인지.
하찮아 보이는 그 '아주 짧은 시간'이 몇 분, 몇 시간, 며칠 뒤 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신비롭다. 
별 게 다 신비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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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에 생긴 어떤 변화

몇주 전, 정말로 오랜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밤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생김새가 달라졌다. 눈이 이상하리만치 부었고 이 붓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눈 밑은 움푹 패어 들어갔다.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던 눈매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이젠 눈물도 맘껏 흘리지 못하는 나이가 된걸까 싶어 새삼스럽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울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흐느껴 울었고, 각종 사건사고 뉴스에도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도. 
오래 전(중학생 때)에 치유은사가 있다는 한 권사님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권사님이 처음본 내게 '눈물의 옷'을 입었다고 그러시며 내 앞에서 나를 붙잡고 엉엉 울며 기도해 주셨다. 그 때는 그런말을 듣는게 무섭기도하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은 알 것도 같다. 
나는 매일같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런 내가 꼭 싫진 않다. 울음은 내 나름대로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자 세상에 공감하는 방식이기에. 하지만 요즘들어 내가 아파하는 이 마음을 딱 한 사람만이라도 공감해준다면 좋겠다는 인간적인 외로움에 깃든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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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한다.
그 순간에 내가 이런 판단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올때가 여러번 생기는데 그때마다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거나, 내가 능력이 없어서와 같은 자괴감이 밀려오던가 아님 주변에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아 일이 잘안되었다고 남의 탓을 하게된다.
삶을 보는 방식엔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운명론자와 삶은 나의 의지와 실천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개척론자가 있다.
후회가 밀려올때 운명론자라면 자괴감이나 주변을 원망하지말고 그때 일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자. 인생이 언제나 맑음도 언제나 흐림도 아니지 않는기.
개척론자라면 이번 후회되는 일에서 내가 배울점과 실수한점등을 파악하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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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Focus

짧은 시간만 주어졌을때, 더 많은 것을 보고, 각각에 대한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Continuous Focusing 이 아니라, Short Term 으로 각 개별의 피사체에 대한 Focusing 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이런 순간에 필요하다. 그래서, Short Focus 라고 제목을 달고 글을 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대상에 대한 Focusing 을 하는 것은 길 시간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짧은 순간이 주어질 경우엔, 그 순간순간의 대상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Focusing 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Focusing 이 전부가 아니가, 그것을 한 이후에 기억하는 것에 있다.
역시, 이런 글을 쓰기엔 여기가 딱이다. 이 것 역시 Short Focu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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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나를 등지는지..

수동적으로 바뀌어지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부정적이라는걸 어찌 해석해야하는걸까?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는 말 역시 내 노력이 포함되지 않은 모든 변화는 나에게 불리하다는 뜻인가?
"불리하다"가 아니라 그저 조금 "내 뜻대로, 내가 원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정도로 수위를 낮춰 해석한다해도 사실은 나를 제외한 모두의 바램은 나의 바램과는 다르다는 결론이 나올뿐이지 않나.
어쩌면 그게 "경쟁사회"의 기본 동력일까?
분위기와 흐름을, 결과와 댓가를 조금이라도 나에게 득이되도록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나보다.
그렇지. 사회라는게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인 이상 내 input 이 있어야만 비로소 최소의 output 을 기대할 수 있는거겠지.
그럴 듯 하지만 매우 우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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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몰랐다.

  바다는 사실 하늘과 맞닿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저런 territory와 sphere 를 정해 놓는 science 교과서를 통해서 세계를 이론 개념도로써 배웠기 때문에,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실제로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있었어. 
우리, 객관적 사실일랑은 버리자. 우리 삶이다똑같지않잖아. 획일화된 기준을버리자. 
1년, 2년... 정량적으로 삶을 재단하지 말자.  그것은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 사회적 기준일 뿐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대로 살자. 
우리의 욕구를 신뢰하자.  
방향을 바꾸고자 했다면, 그게 옳았던 것이다. 
그 변화를 위해서, 무엇을 상실했는지 1 년 2년 세지 말자. 
맹목적이고 주관적으로 살자. 
세상에 하나 뿐인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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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억압된 것에서 벗어서 스스로에 대해 결정하는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환경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삶이 자아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숙고하고 좁히기 위해 달려가는 행로에 접어들 때, 사람이라 부른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변화를 인식하는 건, 언어로부터 구체화되며, 이 언어로 인해 구체화된 인식들이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사람이라 부른다.
페터 바에라의 [자기 결정]이라는 핏빛 커버의 책을 읽고 있다. 짧은 책이지만, 난독증에 난시도 심해져 읽는 게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가끔 말인지 막걸리인지, 라고 투덜거리며 시대의 지성에 침을 뱉는 얕디얕은 인내심을 보이기도 한다.
다 읽고 나면, 난 괴이한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각성' 따위를 기대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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