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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light.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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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 중 깨달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나는 최선을 다했나
허나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랬다면 이런 생각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어쩌면 난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는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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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언젠가
다 낡아 껌뻑이는 가로등을 보았다.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무도 고쳐주지 않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을 알고 있어도
낡은 가로등은 최선을 다해 희미하게나마 껌뻑인다.
나도 언젠가 저 가로등처럼 늙겠지
저 가로등처럼 끝을 알면서도 그 끝을 부정하며 최선을 다해 껌뻑이겠지...
언젠가
다 낡아 껌뻑이는 가로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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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는데

깨고 나니 다시 꾸고 싶었다.
웃고 있는 나는 오랜만인걸까.
서로의 마음이나 생각을 느끼고 있다는건 어떤걸까..
정신적으로 잘맞다는건 이런 것도 속하는걸까..
꿈에서 편안하게 따스하게 조금은 즐겁게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요
나는 다 용서하고 있었어요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어요
이제 과거는 털어내고 앞만 보고 나아가야죠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고
꿈은 꿈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희망을 품듯 힘을 내 볼게요
도망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볼게요
아니, 이거 나한테 말해야하는거 아닐까
그만 다시 좋은 꿈꾸듯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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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한 직장 사수

나의 거의 첫(?) 직장 팀장이 있었는데
뭐랄까 강단있고,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예스맨(?)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딱봐도 지금 엄청 피곤한게 눈에 보이는데 마무리를 해야되는 일이 있으면
퇴근도 안하고 눈은 빨개져서는 미생의 그 영업3팀 오과장 스타일이랄까?
그 사람은 자기를 그렇게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어깨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 가족들 그리고 팀원들도 있었겠지
문득 어제 꿈을 꿨는데 내꿈에 등장..
갑자기 생각나네 이젠 좀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물론 성격이라 타고난건 안바뀌겠지만..
그냥 인간적으로 짱 멋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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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싱

최근에 흉터를 남겼다. 쑥스럽지만 그래서 제목을 피어싱이라고 지었다. 이 흉터에 지독하게도 집착했다. 혼자 이뤄낸 게 없어서 이번에도 '혼자', 오로지 혼자로는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아 전전긍긍했다. 피어싱을 당장이라도 빼버려야 되지 않을까, 그런 종류의 불안함을 느꼈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치유를 할 것이라는 걸, 그래도 어렴풋이 알아서 다행이다. 마치막 얘기는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가 많이 불안해해서, 그래도 어쩌다보니 답을 찾게 되었다. 인생 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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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비

어두운 하늘 아래, 
잔잔 할 줄 알았던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빗방울이 거침없이 내 몸을 때리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우산이 아쉽지는 않다.
옷에 스며든 빗물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일까.
묵직해진것은 이 마음이 아니라
비에 젖은 옷 때문이라며 안아주는 것일까.
그러다 울컥 - 강렬하게 치미는 구역질과 같은 느낌에
등돌렸던 곳으로 완전히 뒤 돌았다.
지금이라도 가면 너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애처로운 모습의 나에게 마음 움직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다시 울음을 꾹 먹어버리곤
잠시 들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그러니까 나는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잠시 이곳에 가만히.
내리는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눈물을 숨길 수 있는 것이 최선인걸.
새빨개진 눈으로 네가 머물렀던 그 곳을 바라본다.
여전히 내리는 빗물이
허공에 뻗어있는 내 팔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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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연극을 보다가 문득 한 여배우가 주저 앉아 독백하는 부분이 부러웠다
그 여잔 많은 사람 앞에서 제 감정을 드러내며 아무리 비참할 지언정 그 연극의 대본엔 독백이기 때문이다,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내게 오랜 시간을, 아팠지만 아프지 않고 남 앞에 서는 법을 배움으로써 남은 것은 슬픔은 결국 사라지지 않고 제 속으로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흉내내는 것은 결코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점점 좀먹어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아픔을 숨기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그들이 떠나지 않을 거란 믿음 또한 없었다
최선이란 것은 오늘도 나를 갉아먹으며 삶을 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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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는것

어제 큰아이 어린이집 체육대회에서 아이가 첫게임으로 줄다리기를 했는데 졌다고 엉엉 울고 그뒤엔 참여안하겠다고 땡깡.실패의 경험은 적고 승부를 해본적이 거의 없긴하다.승부욕이 강해서 지는게 싫다는걸 억지로 시키기 힘들어서 우리부부는 최선을 다하는게 중요하다며 그뒤 부모 참여게임은 다했다.지는모습에 아들은 콧방귀를 끼기까지 했지. 조금은 내맘을 알아주길 바랬는데 내몸이 어제를 기억하는구나.근육통이 장난아니다.
그래도 마지막 단체줄다리기에서 아들이 온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이기기까지했고 부모단체줄다리기는 졌다.내가 구멍같어ㅎㅎ.
그래도 엄마아빠의 모습을보고 조금은 진다는것도 나쁜것이 아니라는걸 알아준것 같기도 하다.
부모란것은 하나님이 준 숙제같이 매일 배우고 고민하게 만든다.게다가 얻는 것도 많다.
그런데 이러고 내일되면 광년이 모드ON
철이 같이 들어가는 이기분 모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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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지각했다.
뛰었다.
팔다리가 있음에 감사.
쩔룩거리지 않고 그냥 전속질주 할 수 있음에 감사.ㅋㅋㅋㅋ
지금 키보드를 내 마음대로 씰룩씰룩 치고 있다.
서걱서걱 키보드소리가 좋아서 감사.ㅋㅋㅋㅋ
스팸을 무지 좋아하는데
저녁으로 노릇노릇한 스팸에 김싸고 밥이랑 단무지랑 먹었는데 감사ㅋㅋ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
내일 누가 치킨쏘기로 했는데..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치킨을 가자고 해서 감사!
몇일째 집에서 키보드를 치게됐다. 감사하다 이건 정말 감사한일..
원래 집 책상엔 늘 옷동산이 있었는데 얼마전 갑자기
사회탐구영역 이지영샘이라는 사람이 했던 쓴소리 강의를 듣고 
우리엄마 집이랑 차랑 사주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열일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감사...
기분 째지고 좋은 마음은
가만이 있을때 생기고 놀러갔을때 생기는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했을때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감사.
피한다고 안락해 지는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아도 힘들어도 이루려고 안간힘을 써서 최선을 다했을때
기분좋고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그냥 오늘은 감사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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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우리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란 말이 있다...
참 진부하기도 하고 비루한 말인것 같지만
차마 부정하기에는 너무도 와닿는 말이다.
인생길 가운데 매순간마다 우린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각자 나름의 고뇌와 숙고의 과정을 통해 
그 선택을 하게 되지만
결과는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다..
어쩌겠는가 그리고 누굴 탓하겠는가 
인간 본연이 불완전한것임을..
언제나 스스로 최고의 선택이라 자부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 선택의 아쉬움이 남는다...
이젠 결과로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후회하는 삶이 되지 않을
아니...훗날 그 선택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되는 선택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의 과정을 살아내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어쩌면 애초부터 최고의 선택이란 없었을지도...
최고의 결과는 자신이 만들어내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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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명언으로 시작된 혼란

처음엔 그냥 좋은 문장 하나 찾았으니 대충 멋있는 척 올려보자였는데 이게 쉽사리 끝이 나질 않는다.
- Voltaire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면 충분한 상태로 끝난 작업보다 못하다는 해석이 적당하다.

Le meglio è l'inimico del bene
볼테르(Voltaire)의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에 있는 내용으로 옥스포드 인용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고 함.
2003년 구글 answers 에서 사용자들끼리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재미난 쓰레드도 있네.

The best is the enemy of good
좋고 나쁨의 여러 단계에서 사회통념적으로 영단어 "best"가 의미하는 단계를 어디로 보는가에 따라 문장의 느낌의 달라질텐데 나는 "best" 가 극도로 좋다는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아 Perfect가 사용된 문장이 좋다. 
The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인터넷에 '볼테르'의 명언으로 번역된 문구는 크게 2가지.
최선은 선의 적이다
"선(善)"이 "최선(最善)"에 못 미친 상태인건 맞는 것 같은데 "선"이라는 단어가 그 쓰임에 와닿지 않고 "최선"은 극한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돌직구같은 아래의 번역이 마음에 든다.

완벽함은 훌륭함의 적이다

그런데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하는 나는:

정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될까?
스티븐 잡스의 아이폰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제품의 아름다움과 강력함을 증명한 결과물이 아닌가?
완벽함을 포기하고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내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변명의 문장인가?
만약 완벽함이 아니라면 내 작업과 제품의 "훌륭함" 단계는 무슨 기준으로 정해야할까?
아, 머리 아퍼.
내가 이 문장에 왜 매달리고 있는거지?
그렇지만 뭔가 생각을 포기해버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

내 친구 중에 부모님이 크고 아름다운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친구고 그 집 부모님들과도 오래 알고 지내서 거기서 뭘 먹고 돈을 내본적이 없지.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갈 때마다 식사를 마치면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여기, 5만원 맞죠?"

"이놈 봐라? 내가 니 돈 받겠냐? 맛있게 먹었으면 자주나 와라."
"어휴~ 어머니, 자꾸 돈을 안받으시니까 부담스러워서 못 오자나요."
"에라, 이놈아! 어여 가고 다음주에 또 와."
그런데 서로가 대사를 바꾸면 아주 골때리지.
"어머니, 저한테 돈 받으실거 아니죠? 또 올께요!"
"5만원이나 나왔는데 또 돈 안내고 그냥 가려고?"
"어휴~ 어머니 언제는 제가 돈 냈어요?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아니 이놈아 공짜로 처먹을라면 1~2년에 한두번이나 오던가!"
뻔한 결론이 나와버렸네.
내 제품의 "훌륭함"을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비유로 든 얘기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에 대한 얘기라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각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과 어떤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웃긴 놈이 된다는 것.
제품의 사용자들이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제품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단정한다는 것이 이미 주제넘은 일인 것 같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내 사업이 인터넷/온라인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네.
이건 조각이나 벽화, 건축이나 공산품과 다르게 명확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들을 작은 단위로 끊임없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실시간에 가깝게 어떤 단계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감사하네.
제품의 단계가 "완벽함 - 훌륭함 - 충분함 - 부족함 - 쓰레기" 다섯 단계라고 봤을 때 내 제품들은 아직 부족함과 쓰레기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단계"인거야.
하나씩 해결하고 한걸음씩 내딛으면 결국 앞으로,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게임이지.
다들 힘내자구.


영문위키: Perfect is the enemy of good
+) 내가 대체 왜,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전개로 여기까지 온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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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정강이 쪽에 흉터 하나가 생긴지 10년이 넘었다. 어릴 때 딱지를 신나게 뗐더니 결국 흉터로 남게 되었다. 딱히 지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릴 때 워낙 재밌게 뛰어놀다가 얻은 상처라 가끔 어릴 때 생각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이 흉터를 얻기 전 상처는 제법 컸다. 어린 시절이라 과장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꽤나 아팠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그렇게 아팠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점차 사라지고 당시엔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게 해주는 좋은 매개체로 변환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흉터로 남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다. 특히 마음에 생길 것 같은 흉터는 정말로 입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그렇게 살기는 무척 어렵다. 경쟁 사회 속에서, 이기적인 일부(그러나 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구나 마음에 흉터 하나 정도는 갖고 사는 법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혔다. 왜 다른 사람들을 이기지 못할까. 왜 내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왜 주변에선 내게 큰 기대를 거는 걸까.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내가 내 자신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입힌 상처들일 뿐이고, 누구나 흔하게 입는 상처라 어디가서 털어놓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이 상처들은 내게 아직 흉터가 되지 못했다. 힘들면 가끔 피도 나는 상처들이다. 상처가 흉터로 남으면 내가 성장했다는 징표로 남는 것일까? 그냥 미성숙한 때의 철없는 고민의 흔적으로 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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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그녀는 항상 일요일이 되면 이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언제는 책을 읽을 때도 있고 또, 언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커피는 카페 마키아토를 마신다.
그녀와 처음 대화를 나눈 건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일요일이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우리 카페의 손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해외유학 중 만난 점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출근한 이후로는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처음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사교성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축에 속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덕에 잦은 전학에서도 어렵지않게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유학 생활도 외롭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져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아프냐는 질문에도 힘겹게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게 최선이었다.
그 일이 있고 정확히 다음 주 일요일.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도 심장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보다 진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곧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 때, 주문은 하지 않냐는 점장님의 말에 깜빡 잊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와서는
라고 슬며시 물어봤다. 심장은 멀쩡해도 여전히 떨렸던 탓에 이번에도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라떼아트를 구경하며 점장님과 함께 수다를 떨었고 나는 내가 그릴 수 있는 최고의 그림을 그렸다.
그 후로도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그녀를 위해 그림을 그렸고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녀는 항상 웃음으로 답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한 번은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녀가 걱정이 되어서 점장님께 여쭤보니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카페에 오던 도중에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간 그녀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그린 그림이 백여 개가 될 즈음에 그녀가 찾아왔다.
변함없는 그녀의 웃음은 한 순간만에 나의 걱정을 날려버렸다. 괜찮냐는 한마디 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 놓고서는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는 대답 대신에 슬며시 웃어 보였다. 
매일 내가 그려 놓은 라떼아트를 점장님께서 휴대폰으로 찍어 보냈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녀의 번호를알고있냐고 물어보니 점장님과 그녀는 남매 사이였다. 나의 사정을 알고서는 카페에 나오지 않는 동안 수화를 배우러 다녔다고 했다.

그녀와 처음으로 인사할 일요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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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남매

하루 아침에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없어진다면?
이런 생각은 잘 안해본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나에게 중요하고, 사랑하는 사랑이 정말로
하루 아침에 없어진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떨까?
보통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3분류로 나뉜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배우자.
이렇게 중요한 사람, 특히 이번 첫 이야기는
9남매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9남매의 부모님은 바로 어제, 즉.
17년도 10월 20일 일본으로 가는 배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남은 9남매는 어떻게 됬을까..
우울증이 걸렸을까?
밥을 안먹고 아무것도 안먹어서.. 죽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들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9남매는,
더욱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있다.
이번 9남매를 소개 하자면,
첫째는 장녀로
이름은 하채현, 나이 29세로 직업은 소속사 팀장 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항상 애정표현이 없고 차가워서 '겨울 마녀'로 불린다.
둘째는 하석훈.
장남이다. 나이 27세로 한식 식당을 하고 있는 요리사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여자들이 착각 하기도 하는
실수가 조금 씩 티가 나는 귀여운 장남이다.
셋째는 하윤민.
작곡가이다. 나이 25세로 유명한 작곡가이다.
첫째 처럼 무심하면서도 츤데레 끼가 있어서
은근 여자분들에게 인기가 많다.
넷째는 하호민
비라쓰 엔터테인먼트 안무선생님이다.
나이는 24세이지만, 귀여운 애교가 많고, 화려한 춤 솜씨에 이미 유명하다.
다섯째는 하민석,
나이 24세로 호민과 쌍둥이다.
현재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며 아이큐가 139인
똑똑한 영재다.
여섯째는  하지훈, 나이 23세로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의 훈육을 잘해서
지훈이 일하는 유치원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일곱째 하민
유일한 외자 이름으로 23세로 지훈과 쌍둥이다.
카리스마와 귀여움을 둘다 가지고 있으며,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가수 지만 배우로도 성장하는 비라쓰 소속사의 가수. 그룹은 2인조 이며 이름은 윌쓰 이다.
여덟째 하석민
21세 남자 형제중 에서는 막내이며, 하민과 윌쓰로 활동 중이다. 장난끼가 많으며, 그림을 잘그린다.
아홉째, 막내, 하채민
막내이며 여동생이다.
언니처럼 시크 하지 못하는 애교가 많은 우등생이다.
하지만 우등생이라 불리긴..
공부는 항상 전교 1등, 선배로서 후배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전교회장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조금 노는(?) 18세 고2  막내.
이 위에 9남매는 부모님을 잃었지만, 전 보다 훨씨 열심히 산다.
앞으로는 이 9남매의 생활, 다짐을 알아보도록 하자.
→ 이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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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자와 구직자...그리고 잡담

나는 여지껏 일을 하면서 두군데의 직장에서
관리직이였다.
하나는 공장이고..
하나는 사무직이였는데..
내가 구인자가 되었을때 힘든점은..
"이 사람을 믿고 나와 손발을 맞출수 있을까..."
였다.
공장 구인자였을때..
난 일을 하면 효율적이면서 편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편이다.
물론 일을 대충하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또 있을것인가..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나와서 성공했던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주변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해라"가 주된 안좋은 시선이였다.
나는 그게 왜 잔머리라고 하는지 이해 할수 없었다.
왜 효율적이며 빠르고 편한 방법을 찾는게 잔머리 굴리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저 조건에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건 당연한 조건이였다.
저런 문제는 노가다(현장) 생활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그쪽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30~40년 생활에 찌들어 
뭔가 바꿔볼 생각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30년전에 하던 방법을 지금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몇몇가지들을 바꿔갈때마다 그 사람들은 놀라움과 칭찬을 하기커녕
쓸때 없는 짓이라며 핀박했다.
오히려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게 힘들었다.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데.. 그리고 편한데..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준 사람이 한 공장 사장님이셨다.
10명 안팍의 작은 공장이였지만
우리는 많은걸 만들어냈다.
물론 그쪽 계통이 신소재 쪽이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같은 계통 공장들에게는 없는 경쟁력을..
우리는 가졌다..
그리고 초보자들도 쉽고 빠르게 익힐수 있는 것들도 만들었다.
직접 만들수 없는 제단기계들은 3천만원을 들여서 
기계제작자들과 상담과 연구를 통해서
결국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생산속도는 40프로가 빨라졌다.
그리고 직관제단이라는 부분은 1개월만 배워도 할수있는
간단한 업무가 되버렸다.(그 전에는 최소 6개월을 배워야지..그리고 체력이 따라가줘야지만 할수 있는 일이였다.)
결국은 같은 계통 다른 공장들이 한달 2000헤베를 생산할때 우리는 6000헤베 이상을 생산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원했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수 있는사람들..
그때 내 나이 26~27살이라.. 더 창의적이였을수도 있지만..
많은 면접을 보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있었다.
온지 이틀만에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
5달을 넘게 가르쳐도 아직도 제대로 된 생산라인에 혼자 냅둘수 없는 사람.
나쁜사람만 있지 않았다.
오자마자 1개월만에 남들 2인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리지만 꼬박꼬박 차고 올라오는 사람.
불만은 많지만 일은 똑바로 하는사람.
그렇게 팀을 싹 갈아 엎으면서 수십명의 면접을 봤는데..
그러다보니 행동과 얼굴 말투 등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아주 대충 파악되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잘 활용하고있고....
판매직에 있을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직자일때..
일을 가려본적은 없다.
딱히 내가 일을 가리는거라면 
영업직이다. 
판매직도 하는데 이상하게 보험같은 영업직은 못하겠더라..
일만 가르쳐 주면 항상 열심히 했다.
기술을 가르쳐주면 밤마다 연습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쉬지도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많았다.
돈을 띠어먹는사장도 있었고..
수당까진 안바래도 야간까지 일하면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사장도 있었고..
쉬는날에 인력이 부족한 바람에 다른사람이 힘들까 아침에 출근해 기초적인걸 잡아두고 퇴근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하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쉬는날 너무 피곤해 하루 푹 쉬었더니..
"ㅇㅇ이 요즘 게을러졌어~" 라더라...
난 쉬는날 일하는게 싫다.
쉬는날에 내가 일하는건 다른 직원들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내 쉬는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족과의 시간을 내가 방해 한거일지도 모른다.
이젠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얹혀
내 어깨위로 지나가는 세월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도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더 못사는 최초의 세대란다.
20대 30대의 소득증가율과 월평균 가계지출이 최초로 -로 돌아섰다.
2003년 이후로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란다.
N포 세대란다.
3포세대가 4포세대가 되고 그게 결국 N포세대가 되버렸다.
헬조선,지옥불반도,노오오오력,흙수저,금수저
별의 별 말도 다 생겼다.
그저 웃고만 있기엔 참 씁쓸한 단어들이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더라..
사내결혼으로 아이를 가진 부부를 퇴사시킨단다.
사람이 미래라는 한 대기업은 
사람을 분리수거도 못하는 쓰레기로 취급중이다..
뭐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위해..
발로 뛰는 대기업들도 있다...있긴...있다..
N포세대에 맞춰 30대인 나도
포기한게 많다....
씁쓸하지만...어쩌겠어..
현실인데..
이제 여기서 몸까지 아프면 
정말 한강물에 뛰는 수밖에 없다.
나도 탈조선을 하고 싶었다..
그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할수 있으면 하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의 사람차별이나...
뭐 별 다를건 없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금방 잊는다' 다.
분노하고 잊지 말자고 하고 바꿔가자고 하고선..
어느새 금붕어처럼 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진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리 되더라...
라는 핑계같지도 않는 핑계를 늘어본다..
그래도 하나 잊지 않는다.
선거는 꼭 하자.
뽑을 놈이 없어도 무효표라도 던지자.
난 '무효표를 던질빠에야 그냥 안하는게 낫지'라고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다행인건지... 
당연한게 이제 시작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20~30대에서 투표를 한다는 사람들
비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한다.
그 전에 일하던곳에선
투표날에 일을 시켰다.
대통령 선거 날이였는데.......
휴가도 못 쓰게하고 일하게 했다.
먹고 살기위해 별수 없이 일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
사전투표라도 했어야 했는데..
설마 투표날 투표하러 가지도 못하게 할줄은...
군대에서도 느끼고 조금한 구멍가게에서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두서 없는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부터 
포장을 뜯어서 당당하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계산대에 줄서있는게 불만이라 물건을 다 던지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우린 식당도 아니고 그냥 물건 파는곳인데...)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달라고 20분이 넘게 때쓰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항상 간식을 사다 주시는분도 계시고..
힘들까봐 비타 음료 같은걸 가져다 주시는분..
야채를 사갔는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반찬으로 먹으라고 주시는분들도..
그냥 존댓말만 써줘도 감사했다.
일상이 반말 듣는거라..
야, 어이 , 거기 , 안들려?, 얼마냐고.. , 아 왜 안되는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도 들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동료들은
전부 손님에게 별 다른걸 원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도 않았다.
먹을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사람 같은 대우만 바랬는데..
본인 아들 , 딸들에게도 저러나 싶다..
사회가 병들어가며..
사람들이 병들었다...
내 탓이 아닌것도 내 탓을 하고...
내 탓인걸 남탓하고..
본인들의 욕심만 채웠다.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한다..
"그냥 전쟁나서 핵폭탄이나 떨어졌으면..."
실제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감히 생각해본다.
구인도 구직도 힘든 세상이다.
양쪽 입장에 전부 있어봐서
더더욱 실감한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보니
더더더더더더욱 실감한다.
공부 못했고 능력 없으면
개처럼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조만간에  난
기계도 아닌...
개처럼...노예처럼 일하러 갈 것이다.
하루에 15시간의 일이다.
쉬는시간도...밥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앉아있는 시간은 밥먹는 시간 뿐이다.
아마 쉬는시간 밥먹는 시간을 다 합쳐서 15시간중 1시간쯤 될거 같다..
손님들 중에 정말 궁금해서인지...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지나가면서 봐도 쉬는사람도 없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으니
궁금할법도 하겠지...
솔직히 말해준다 200번다고.
다들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 넘긴다.
진짠데..............
결국 난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같은 일상의 반복을 하러 갈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과거가 나에게 보내는 답변이고...
그게 나의 최선이니까..
개라도 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니까
후회 하지 않는다.
조만간 또 이런 나의 투덜투덜
일기장을 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 
웃으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