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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enary dia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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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2개 accept 되면, 천 년 전으로 회귀할 것이다.

존경과 존엄을 나누고, 

참선으로 나를 만나고 말이다.

그 전 까지는 

버텨야 한다. 

이를 악물고.

어디서 왔지?
[["synd.kr", 28], ["unknown", 88]]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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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만에

논문이 마무리 되면, 
천 년전으로 회귀하여, 오늘을 있게 해주심에 감사의 예를 차려야지. 
천 년만에 차를 마시며 존경과 존엄을 나누고, 
참선으로 나를 만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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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한 삶을 살고있습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있습니다.
나를 모두가 부러워하고 존경합니다.
나를 위한 건축물과 동상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저는 바로 당신들이 존경하고 믿는 '신'입니다.
영원한 삶을 살아 참으로 불행하고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는거 자체가 힘들고 부담스럽습니다.나를 위한 신전과 동상이 있다는건 정말로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힘들고 끔찍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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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엄마의 인생을 닮고싶지는 않다. 엄마는 너무 힘든 삶을 살아서 감히 그 힘든 삶을 내가 이해할 수도, 따라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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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박하사탕처럼 달콤함과 산틋함을 가지고 태어난
수민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민들레 꽃잎처럼 훨훨 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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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원래 아픈게 당연한거니까
나도 그렇게 다 겪어왔으니까
이러쿵 저러쿵 이유를 대며
말하는 말들은 이제 더 이상 감흥이 없다
그런 말을 해서라도 존경을 마땅히 받고 싶어서
안달난 당신은 아직도 청춘은 커녕 어린아이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성숙한 사회인으로써 언제나
존경 받기위해 어리광 부리는 그 어른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고 웃음을 지어주고 감탄을 내뱉는다
조그만 생각해도 가짜라는것을 알수있겠지만
이미 그들은 내가 준 가짜선물에 흐뭇해하며
연신 어깨를 으쓱으쓱 거리며 알지도 못한다
진짜 어른이란 뭘까
꼰대라는 말로 불리는 어린이 같은 어른말고
진짜 어른은
나도 그랬다면서 위로를 해주고
아픈 청춘에게 경험이란 약을 발라주는게
진정 겪어본자의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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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너는,행복하니?
꾹 짓이겨진 입이 나를 향해 물었다.
분노를 참는, 그것을 억누르는 그녀가 나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존경해서, 그래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행복하다,라. 아니,행복하지 않다.앞에 있는 그녀를 붙잡고 싶다. 하지만 알고있다. 나와 그녀는 같은 선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제자리에 멈추어서
내게 손을 밀어줄것이다. 그때동안은 행복할지 모른다.하지만, 그 때 뿐이다.그 먼 훗날,우리는 그날을 후회할 것이다. 누군가는 후회해도 행복해지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후회를 남기어주고 싶지 않다.
설령 나 혼자 후회할 지라도.
행복해요.
나는 웃는다,그녀의 울고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너무 미안해서 그만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그래도,나는 행복하다. 행복해 질 것이다.그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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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지금의 나에게 '마무리' 라는 단어는,
길거리의 로또판매점에서 가진 현금을 다 털어
있는 숫자 없는 숫자 다 짜내어 번호를 적어 내도 
3등 근처나 갈까 말까한...!!
그런 확률만큼이나 저 멀리에 있다.
대체 육아의, 그 여정의 마무리는 언제쯤일까.
어린이집 졸업?
유치원 입학?
초등학교 졸업?
매일같이 일단 등짝을 바닥에 붙이고 장단 맞추어
울어나 보자 하는 26개월 딸과
야호 이제 기어다닌다 모든 것을 부수자 하는
8개월 아들은
마치 내게 이제 시작이다 하는 것 같은 공포심을 
열심히 뿌려주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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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간다는 것

어렸을 때 우리 집엔 나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불을 다뤘고 칼을 썼다. 그것이 내겐 생존의 수단이자, 금지된 행동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미묘한 쾌감이었다. 그러나 그 미묘한 쾌감 끝에 내게 남은 것은 누군가 나를 감시라도 해줬으면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내가 안고 자는 쿠션에 애착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서 '혼-'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접두사가 되는 시대가 됐다. 밥을 먹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혼자가 자연스러워졌고 매체에선 은근히 권장하는 느낌도 났다. 나는 '혼-'으로 시작되는 행동을 많이 해보진 않았다. 주변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다일뿐.
곱씹어보니 그 행동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특히 더 길게 느껴졌던 하루 동안 내가 가장 싫어했던 감정인 외로움을, 크면 느끼지 못할 거라 믿었던 외로움을 안고 사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혼자서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냥 나 혼자 씁쓸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며칠 전 편의점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작은 컵라면을 홀로 먹는 초등학생을 봤다. 아이들만큼은, 홀로 살아간다는 것을 빨리 깨우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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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았다

나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 했다.

SY 를 보았기때문이었다. 
나의 시선이, 그녀를 쫓으며 
버스에서 내리려 했을 때, 버스는 이미 
그녀만 내려주고 출발한 뒤였다. 
그녀는 예뻣다. 
나는 그녀를 고등학교때 부터 줄곧 보아왔지만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양배추 인형 닮았다고 놀리고 그녀가 삐졌던 생각이 난다.
이제 40살이 다 되어서야 
그녀가 
올망졸망하게 생겼으며, 
그녀의 검고 검은 그 흑발이

매우 독특한 그녀만의 특성이며, 
양배추 인형을 닮은 그 입술은 
Mac 이나 시슬리 같은 웬만한 메이크업으로도 
연출할 수 없는 
귀엽고도 특별한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 SY!' 
라고 미친 사람 처럼 혼자 버스에서 소리 쳤을 때, 
그녀는 이미, 
유유히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때, 생각했다.
나는 ㅊㅈ와 ㅈㅎ 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순간 MK와 SY라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ㅊㅈ와 ㅈㅎ 을 찾지 않는 이유는, 
서로 살아온 경로와 피, 땀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MK와 SY는 경로가 다른데도 보고 싶은 것이다. 
이유가 뭘까. 
같이 학교를 다녔기 때문일까. 
그들의 성실함을 직접 보았기 때문일까. 
그녀들을 존경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지.

그녀와 만나야지. 
이제 TEDtalk 때문이 아니라, 
SY 때문에

다이어트를 한다.
맹목적으로 .
저돌적으로 .
그녀를 불러내서,

와인 마셔야지.
애는 몇이나 낳았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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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척해서 미안해

알바로 영어강사를 한지 10개월째 되어가는 나는 그동안 어린아이들에게 내가 영어외에도 잡다한 지식을 주고 재밌게해주는 좋은 멘토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항상 내맘은 그 아이들은 너무나 어리고 세상물정몰라서 도와주고싶은 존재였다. 그리고 난 나름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선생님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오늘 내가 어른인척하는 그냥 애였구나를 느꼈고 너무 부끄러워졌다. 내가 가르치는애들 중 한명은 학원을 오래다녔고 착하지만 숙제를 자주 안해오고 쉽게 힘들어하고 영어와 암기에는 영 소질이없어보였다. 나는 안타까웠다. 맘속으론 저리 재능이없는 아이를 돈을 주고보내는 부모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난 그냥 고용된 강사이기에 주어진바를 가르쳤을뿐이다. 그 아이가 가끔 투덜대거나 하기싫어할때면 정말 수업에 들어가기싫을 정도로 그 아이가 이럴거면관뒀음싶은 생각도 했다. 그
렇게 그 아이를 집중적으로 가르친지 몇개월 나는 원장선생님으로부터 그아이의 사정을 들었다. 그아이가 학원을 다닌지얼마나안된 초등학교6학년때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중학생인 그아이는 그런 나는 경험해본적도 없는 깊은 슬픔을 가진아이였던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니 난 그아이가 존경스러워졌다. 유독 사춘기가 없어보이는 아이의 성향도 이해하게되었다. 그아이에겐 지금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됬다. 그아이는 지금 이렇게 학원을 다니며 또래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장한 일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봐도 난 견딜수 없었을 것 같다. 무엇을위해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겟는데 그 아이는 그런 부모의 죽음을 겪고도 삶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아이였다. 그 나이의 해맑음을 서툼을 가진 아이였다. 이제 나는 그아이를 더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하게되었다. 그리고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그아이를 구박아닌 구박을하고 세상에 더 잘아는척한걸 가슴깊이 후회하기로 했다. 나보다 세상의 더 크고 무거운짐을 지고 이 평화롭기만 세상을 꿋꿋이 살아내고 있는 아이야 선생님이 너보다 어른인척해서 미안하다 선생님은 너보다도 가벼운짐을 지고살면서도 참 으시대서 너무 부끄럽다 앞으론 더 잘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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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무경찰을 지원하여
경찰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한 청년은
어머니가 면회 오신다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을 받았습니다.
장애가 있고 홀로이신 어머니를
뒤로하고 입대를 했기 때문에
그 반가움은 더욱 컸습니다.
칼같이 다려놓은 제복을 입고
반짝반짝 닦아둔 신발을
신고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청년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 것일까
걱정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청년이
교관의 다급한 호출에 면회실에 갔더니
그곳에는 전날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전날 면회를 오시는 중간에
어머니는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던 돈과 핸드폰을
모두 도둑맞은 어머니는
택시도 버스도 타지 못하고
밤새도록 걸어서 경찰학교를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부랴부랴 집에서 손수
싸 오신 김밥과 치킨을
황급하게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김밥에서 코를
찌르는 듯한 쉰내가 났습니다.
더운 날씨에 밤새도록
먼 길을 걸어오면서
김밥이 쉬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만든
상한 김밥을 먹으며
“역시 어머니 음식이 최고예요.
정말 맛있어요!”라고
하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들에게 어쩌면
맛있다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 겁니다.
이 사연을 들은 동기들과
조교, 교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어머니의 차비를 마련해 줬습니다.
지금 아들은 전역하고
10년이라는 시간도 훌쩍 지났지만,
그때 훈훈했던 정(情)과
어머니의 상한 김밥 맛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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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아무리 날씨가 험해도,
밤새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자식을 향하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도,
자식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모든 어머니를 마음속 깊이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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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의 위기는 언제 찾아올까?

해외의 미디엄이나 국내의 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는 블로그 스피어의 무덤위에서 Feedly, Flipboard 같은 어그리게이션, 구독 서비스들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양분삼아 Pinterest, Pocket 등의 일부 생산 서비스의 강점을 영양분으로 "완결된 디지털 콘텐츠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들은 영상분야의 1인 크리에이터들과 MCN 사업자들의 바탕이 되는 유튜브와 같은 포지션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토양을 제공하고 있으며 생산과정이 통합되어 있다는 차별화된 강점도 지니고 있다.
부족한 점이라면 아직 크리에이터들에게 유튜브의 규모로 수익을 돌려줄 수 없다는 정도.
나는 이런 플랫폼의 발전이 지난 5~7년간 듣기만 했던 "언론 위기"의 실체라고 본다.
모든 언론사가(그야말로 모든 언론사가) 카드뉴스의 적절한 사이즈와 가독성이 높은 폰트에 대해 고민하고, CMS와 기술 시스템을 문제의 중심에 놓고 얘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디엄과 브런치는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카드스택이니 스노우폴링이니, 인터렉티브니 하는 것들은 애당초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지속적인 생산을 가능케하고 충분히 연결되어 있는 독자들과 이들의 피드백은 어떤 구성과 형식을 취해야할지 체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언론사들이 버즈피드나 피키캐스트 같은 미디어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방어적인 해석을 내놓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것 처럼 미디엄과 브런치가 뉴스와 무관한 비전문가들의 텍스트 놀이라고 판단하고, 그래서 이들이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문처럼 떠돌던 그 위기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다.
뜬금없이 개인적인 경험을 애기하자면, 난 저서 활동이 활발한 글쓰기 전문가인 언론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했으며 그 전문가들이 만든 기사에 그들에 대한 신뢰를 투영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뉴스와 소속된 언론사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여전히 "글쓰기"에 대해 전문가일까?
독자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들은 누구일까?
아래는 조금 전 알렉사에서 확인한 브런치의 트래픽 랭크다. 
그리고 아래는 같은 시각에 확인한 피키캐스트의 트래픽 랭크다.
접는 서비스가 더 많은 다음카카오니까 모기업의 영향력이라는 이상한 생각은 접으시고, 왜 브런치가 성장하고 있는지, 지금 시점에 미디어는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다들 고민해보자.